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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30번 봤다, 특수관 비전 보여준 CGV 스크린X 김세권 PD
2019년 1월 2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20세기 폭스사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2018년 말, 기어코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로써 한국은 할리우드의 고장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48개 개봉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익을 끌어낸 ‘기록’을 세우게 됐다. 훌륭한 음악을 즐길 줄 알고 한 인간의 드라마를 사랑할 줄 아는 국민적 감수성이 크게 작용한 결과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를 향한 대중의 열기가 쉽게 식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극장들의 노력도 분명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기존의 정면 화면에 좌우 양쪽 벽면까지, 3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스크린X는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라이브 에이드 시퀀스의 감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치 1985년의 공연장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 그 기획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됐고, 누구의 손에 의해 구현된 걸까?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제작사의 기대작 <보헤미안 랩소디> 촬영본을 미리 확인하고, 거기에 40여 분의 스크린X 화면 연출을 곁들이겠다는 이 도발적이고도 창의적인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인터뷰에 앞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크린X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면 좋을 것 같다. 2012년 CGV와 카이스트가 손잡고 개발한 기술로 정면 스크린만 사용하던 기존 상영 방식에서 좌우 벽면까지 3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특수관이다.
스크린X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감독이 전하려는 이야기를 더욱 흠뻑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스크린X 담당 PD들은 영화의 서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품 본연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연출을 더한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900만 관객을 돌파하기까지 40여 분의 스크린X 버전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3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라이브 에이드 시퀀스는 일반 상영관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몰입감을 선사하더라.
정말 성공적인 결과물이다.(웃음)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를 스크린X 버전으로 만들어보겠다고 했을 당시에는 내부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800만, 900만 관객이 넘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화려한 영상을 자랑하는 액션물이나 블록버스터 장르에 더 어울리는 기술이라는 인식이 컸던 것 같다. 미국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에서도 드라마 요소가 많아 상대적으로 정적인 느낌이 강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과연 스크린X와 잘 어울리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스크린X는 <킹 아서: 제왕의 검>(2017) <염력>(2017) <블랙 팬서>(2018) 등 주로 볼거리가 화려한 장르에서 활용돼왔다. 서정성을 갖춘 음악 드라마 <보헤미안 랩소디> 작업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설득의 과정이 필요했겠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부터 끝까지 서른 번 정도 봤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차분한 편이지만 퀸의 대표곡이 등장할 때는 확실한 임팩트가 있었다. 그 감흥을 스크린X로 더 끌어올려 보겠다는 콘셉트를 제안했더니 20세기 폭스사에서도 꽤 적절한 방향인 것 같다는 대답을 줬다. 그러고는 <보헤미안 랩소디> 편집팀이 아직 해산하지 않았으니 영국 런던으로 가서 함께 작업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줬다. 자신들이 일정을 조율해주겠다고 말이다. 망설일 것 없이 바로 런던으로 날아갔다.(웃음)

세상에나.(웃음) 국내 관객이 본 스크린X 화면은 결국 <보헤미안 랩소디> 편집팀과 함께 논의해서 결정된 장면이겠다.
맞다. 영화 편집 실장을 맡았던 분과 함께 앉아서 2~3일 정도 영화 촬영본을 함께 봤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간 스크린X용 장면을 적절하게 찾아주는 건 물론이고, 추천도 해줬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장면도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말이다. 특히 브라이언 메이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부분이 본편에서 삭제돼서 아쉬웠다면서 스크린X에서 그를 등장시키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까지 내줬다.

브라이언 메이의 카메오 등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성사된 이야기였군.(웃음) 그 외에도 스크린X 버전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특별한 장면들이 있다면 몇 가지 꼽아 달라. 이미 영화를 본 관객 입장에서도 기억을 돌이켜 볼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다.
‘We Will Rock You’처럼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곡이 나올 때는 의도적으로 화면을 분할했다. 그리고 손뼉을 치거나 발을 퉁퉁 구르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영상을 사방에 띄웠다. 눈에 확 띄지는 않더라도 전체적인 관람 분위기가 점차 고조될 수 있도록 연출했다.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솔로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아마 관객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스크린X는 그저 양쪽 화면에 추가 영상을 덧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담당 PD의 연출과 창작이 작용하는 영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이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 중 하나가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관객이 진짜 게이 클럽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의 빨간 불빛과 그래픽을 적절하게 편집했다. ‘I Want To Break Free’라는 곡은 멤버 전원의 여장 뮤직비디오가 워낙 상징적이기 때문에 영상 작업을 진행할 때 최대한 그 뮤직비디오를 재현하려고 했다

당신들이 계획한 스크린X용 연출을 본 20세기 폭스사의 반응은 어떻던가.
너무 좋아하더라. 중간 점검 시사에서 이런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콘셉트를 가져왔다며 큰 격려를 해줬다.

지금껏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콘텐츠 보안에 각별한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의 영화를 개봉 전에 미리 확인하는 것도 모자라, 스크린X 버전으로 재가공한다는 점에 관해서는 상대의 합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개봉 전 영화가 유출됐다면 아마 우리는 몇백, 몇천 억의 손해배상을 청구 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웃음) 더 큰 문제는 그럴 경우 사실상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그레이트 월>(2016) 작업 당시에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반감이 굉장히 컸다. 자신들의 소중한 저작물을 한국의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웃음)…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데 불만이 컸을 것이다. 한 부서를 설득하면 다른 부서에서 안 된다는 식이었다.

어쩌면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각의 스튜디오가 요구하는 보안 가이드를 철저히 갖췄다. 예컨대 스크린X 작업 공간은 무조건 지문 인식 같은 잠금장치를 설치했고, 그 시설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CCTV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 기록을 몇 년 후에도 점검할 수 있도록 보관했다. 작업물에 접근하는 PD의 신상을 사전에 모두 공유했고, 그렇게 일련의 확인을 거친 PD만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작업물 유출을 방지하는 기술적인 제재도 모두 따랐다.

신뢰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고 본다.
의외로, <그레이트 월> 이후부터는 우리 생각보다 닫혔던 문이 빨리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최종편집본밖에 제공 받지 못했는데 <킹 아서>를 작업 할 때는 워너브러더스가 보유하고 있던 그 외의 추가 영상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를 작업할 때는 배와 관련된 3D 영상이나 CG 영상까지 공유받았다. 신뢰를 쌓고 작품을 거듭하다 보니 할리우드에서도 스크린X에 대한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제는 제작자나 감독까지 흥미를 갖고 먼저 제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할리우드의 문을 ‘요만큼’밖에 열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 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분명 실패의 경험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웃음)
상처받은 기억은 빨리 지우는 편이라…(웃음) 아무래도 ‘작품 빨’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다. 스크린X가 아무리 훌륭하게 구현됐다고 하더라도 작품 자체의 힘이 약하면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염력>(2017)이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그 어떤 감독보다도 스크린X 팀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주신 분이다. 시간이 곧 돈인 촬영 현장에서도 스크린X 전용 카메라 한 대를 더 얹고 촬영하는 부담스러운 일을 기꺼이 감당해 주셨다. 덕분에 <태양의 공주>(가제)라는 애니메이션을 함께 준비하는 새로운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작품 전반은 물론 스크린X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은 경우 어떤 점이 패착이었는지를 되짚어보기도 하는지.
물론이다. 이 작품에서 왜 스크린X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는지, 관객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다음번에는 어떤 지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사후 분석 시간을 갖는다. 사실 이 과정은 마블 스튜디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블랙팬서>의 경우에는 우리가 직접 마블 스튜디오의 사후 분석 회의에 참석해서 어떤 점이 좋았고 나빴는지를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작업할 <앤트맨과 와스프>(2018)에서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서 접근해야 할지도 이야기하게 되더라.

새삼, 스크린X가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스튜디오와 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웃음)
마블 스튜디오 덕분에 할리우드의 다른 스튜디오가 스크린X에게 문을 좀 더 활짝 연 것 같다. 마블 스튜디오는 그중에서도 굉장히 진보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편이다. 감독주의나 작가주의 형식의 작업보다는 지위를 막론하고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크린X 팀 역시 <블랙팬서>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마블과 함께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쌍벽을 이루는 DC의 신작 <아쿠아맨>(2018)을 스크린X로 선보였다. 가장 중점에 둔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아쿠아맨>은 최첨단 VFX 기술이 접목된 작품이라 아름다운 비주얼이 상당히 많다. 그걸 잘 느낄 수 있도록 기술적인 시도를 여러 차례 곁들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편집 단계에서부터 협업을 시작했다면 <아쿠아맨>은 본편 작업을 맡은 VFX 업체와 일부 신 작업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예컨대 본래 VFX 장면이 딱 여기까지만 해당됐다면, 스크린X 버전을 위해 그 옆까지 그림을 더 만들어준다든가 괴물은 더 멀리에 배치해준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빅뱅메이드>(2016) <트와이스랜드>(2018)까지 아이돌 공연 콘텐츠를 스크린X로 만들기도 했다. 영화 외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한다는 면에서는 고무적이지만, 최근 선보인 <트와이스랜드>의 경우에는 내용 면에서 아쉬움이 크더라.
<빅뱅메이드>는 단순히 공연 실황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수준의 이야기 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여러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 성공 사례 덕분에 이후 작품들도 제작할 수 있었는데, <트와이스랜드>는 공연 실황만 가지고 영상 작업을 했던 터라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2019년 초에 홍콩에서 상영을 시작할 <메이데이>라는 영화에서는 중화권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조용필밴드만큼 영향력이 큰 밴드 메이데이의 공연을 담았는데,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보완했다고 본다. 앞으로는 K-POP 외에도 글로벌 뮤지션을 스크린X 영화로 담아내려고 한다.

참고할 만한 전례 없이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기술로 매번 새로운 효과를 구현해내야 한다는 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부담스러운 일일 것 같기도 하다.
매뉴얼이라는 게 없으니, 정말 막막하다.(웃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정해진 대로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작업해온 정보가 어느 정도 쌓였기 때문에, 이제는 작품에 따른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단계라고 본다. 2019년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스크린X 팀에 들어와도 금세 작업에 적응하고, 주된 일과 부수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스크린X는 2012년 기술 개발 이후 지금껏 흑자 전환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할 것 같던 할리우드와의 협업을 끌어냈고, 스크린X에 특화된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해 나가는 중이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동력이 있다면, 뭘까.
스크린X는 오직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다. 아직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스크린X가 극장 경험의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정말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그렇다면 극장은 더는 사양산업이 아니다. 미래 세대에게도 극장이 데이트 장소로 손색없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그게 우리의 비전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행복하려면 늘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상대를 얻는 것, 그리고 내가 정말 즐기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2018년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뤘다.(웃음) 굉장히 좋은 한 해였다.


2019년 1월 2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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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CJ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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