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윤수연 기자]
19살 유학을 떠나 시작한 디자인.
약 30년이 지난 지금 그레이스 문은 아시아계 최초로 국제 미인대회 심사위원이 됐다.
‘2018 미스 글로벌 미인대회’(Miss Global Beauty Pageant)의 심사위원과 오프닝 패션쇼를 위해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앞서, 한국을 방문했다.
오랫동안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건 일도, 인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 덕분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적인 것을 장점으로 내세워 우뚝 선 그는
이제 한국과 세계를 잇는 브릿지(Bridge)가 되고 싶다고 한다.
# 2018 미스 글로벌
필리핀 마닐라에서 하는 ‘2018 미스 글로벌’에서 심사위원과 오프닝 패션쇼를 하는 소감?
아시아계에서는 처음으로 국제대회 심사위원과 메인 오프닝 패션쇼를 하게 됐다. 감사하고, 영광이다. 아시아계 최초가 정확히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국제적인 패션쇼에서는 처음으로 알고 있다.
성공의 요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게 정말 성공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감사하게도 아시아계에 내 나이까지 현직에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뿐이다. 대부분이 20대에서 40대까지 하는데 난 이제 50대가 넘었다. 끝까지 있었던 게 성공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포기하지 않고, 어려워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들이 어떻게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패션쇼의 컨셉은?
이번엔 글로벌로 나가고 싶어하는 한국 디자이너와 함께 콜라보를 한다.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나가고 싶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언어와 문화다. 한국에서는 언어와 문화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패션쇼도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글로벌 무대에 문화를 담을 예정이다. 더불어 미인대회다 보니까 우아함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아한 이브닝드레스와 컬처가 섞여지는 디자인을 보여줄 것이다.
글로벌 역량은 어떻게 키웠나.
19살 때부터 해외에 나갔다. 외국에는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들, 보이지 않는 인종적인 차별이 존재한다.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게 됐다. 탤런트라고 하지 않나. 패션 쪽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상대방들도 받아들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서로 respect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 것에 감사하다. 이 같은 경험이 우리 밑의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부터 심사위원을 해왔지만 국제 미인대회인 ‘미스 글로벌’에서는 심사 기준이 다를 것 같다.
맞다. 미스코리아 심사위원도 여러 번 해보고, 미주 주관사도 해보고, 미주에 있는 미스 아시아 USA 심사위원도 했는데 이번에는 국제대회다 보니까 미의 기준이 많이 다르다. 또, ‘미스 글로벌’은 리더십 있는 여성들에 포커스를 뒀고, 국제적인 이슈를 다룬다. 나의 심사 기준은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열정과 꿈이 있는지를 볼 것이다. 지원자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좋은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
본인에게 ‘미스 글로벌’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미스 글로벌’은 아직 7-8년밖에 되지 않은 대회로 나도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에 참여한 이유는 다른 대회는 27세까지밖에 나갈 수 없는 반면에 이 미인대회는 35살까지 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싱글맘도 나갈 수 있다. ‘미스’ 글로벌이기 때문에 아이가 있어도 결혼은 하면 안 된다. 해외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애기를 낳을 수 있지 않나. 이 단체가 지원 연령대를 높임으로써 그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와닿았다.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이 기회를 통해서 ‘이너뷰티’ 즉,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는 여성 지도자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참여했다.
이너뷰티에 대해 말했는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나는 미를 결정하는 심사위원이다. 어떨 때는 미를 평가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가를 하는 입장이지만 답은 ‘I don’t know’다. 디자이너들이 볼 때는 느낌이라는 게 있다. 영감, feel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열정이라고 표현을 한다. 아름다움은 서로의 열정들이 나타날 때 보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라고 하지 않나. 외적인 부분들은 지금 당장 눈에 띄지만, 길게 보면 꿈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 한국적인, Global 디자이너
어떤 계기로 디자인을 하게 됐는지.
모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부분이 있다. 35-40년 전 한국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해외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대학 때 유학을 가 의류학을 전공하면서 19살 때 처음으로 패션에 대한 공부를 했다. 디자인은 그때부터 큰 회사들을 다니면서 원단 디자인, 액세서리 디자인 등등 거의 다 해봤다. 그러고 나서 30년을 돌아보니 ‘아, 이런 게 디자인이었나 보다’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 봤을 때는 글로벌 인재, 글로벌에서는 한국적인 디자이너다.
그걸 컨셉으로 잡았다. 나보다 훨씬 더 디자인도 잘하고, 좋은 스폰서도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경쟁하는 곳이라 내 안에서 다른 점을 찾아야 했는데 사실 다 마이너스였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외모적인 것도 어딜 가든 꼭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보곤 했다. 내가 코리안(Korean)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외적인 부분이다. 난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두기로 했다.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으로 오히려 더 부각을 했다. 이후로 한국적인 장점들을 활용했고, 그걸로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한국적인 면이 있다면?
한 10년 전만 해도, 한복을 보여주면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다 저런 옷을 입고 사는 줄 아는 외국인들이 적잖이 있었다. 전통 옷이라고 해도 오해를 하니 너무 답답했다. 요즘엔 그런 걸 묻는 사람들이 없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노력해서 알렸던 결과의 이득을 내가 얻고 있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장점은 탤런트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것은 어디에 가도 질이 높다. 그런 부분을 해외에 보내고자 한다. 베버리힐즈에서 쇼를 할 때는 협찬사가 하이트 진로였다. 한 번도 소주와 막걸리를 마셔본 적이 없는 이들을 상대로 시음회를 했다. 나중에 스피치하고 있는 동안 보니 막걸리를 통째로 먹고 있더라. 그러다 죽는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더라. (웃음) 이처럼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궁금해하고, 좋아한다.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과 세계의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패션쇼라도 길어지면 옆에 있는 사람과 얘기를 하게 된다. 눈이 재밌어야 시선을 끌고, 한국을 홍보할 수 있다.
일을 할 때 철학이 있다면?
일을 하면서 늘 어려움이 많았다. 매쇼마다 1억 이상 들기 때문에 스폰서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럴 때마다 이번만 하고 다음엔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다 해결이 됐다. 사실 특별히 철학을 두며 살진 않았는데 돌아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철학으로 두기로 했다. 내 인생에 있어 뭐든 잘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도 큰 문제가 없다면 오래 본다. 인연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똑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20대, 3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말 지금 하는 일을 꿈으로 가지고 있다면 너무 먼 곳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멀리를 보기 보다 지금 눈앞의 현실적인 것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꿈꿨던 곳에 와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것들 중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20대는 성공을 해야 하는 나이가 아니다. 20대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는 나이다. 3-40대는 그 경험을 통해서 자기 것을 만드는 때다. 40대 이후에 성공의 길을 갈 수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대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고민을 많이 해보길 바란다. 패션 필드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거의 노동이 수반되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일을 하면서 힘이 솟는다. 20대 친구들이 내 체력을 따라오지 못한다. 자신에게 맞는 일이란 하면서 더 힘이 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꿈을 이룰 것이라 믿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모델을 키워 국제적인 무대에 세우는 것이 꿈이다. 지금 양성하는 모델은 여자이고 키가 181cm이다. 한국에선 큰 키여서 해외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열정이 있는지 무대에 한 번 세워봤다. 물론 나한테는 도전이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기회니까.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연결된 친구들은 소속사에서 관리를 하니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반면, 이렇게 열정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기회를 줘서 키워 보고 싶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다르게 키우고자 하는 게 있는지.
직접 해외무대로 보내는 것이다. 내 패션쇼 무대에 옷이 총 스무 벌이 올라가면 그중 한 벌 정도는 내가 키우는 모델에게 맡긴다. 이 친구가 실수를 해 망칠 수도 있지만 도전을 시켜보는 것이다. 그런 게 재미있다. 내 아들도 그렇게 발굴이 됐다. 앞으로도 이런 모델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그 모델이 20대, 30대, 40대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좋은 멘토가 되어주는 게 꿈이다.
# 어머니 그레이스 문의 아들, 조슈아 문
‘아시아모델어워즈’에 이어 ‘미스 글로벌’의 MC가 된 소감?
큰 무대라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그렇다. 크게 부담되는 건 없다. 차라리 영어로 하는 게 쉽다. 작년에 아시아모델어워즈 MC를 했을 땐 고민이 많았다. 가벼운 대화식의 한국말은 괜찮은데 대회 MC를 설 만큼 유창한 한국어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자라면서 겪은 어려움은? 또, 오히려 그걸로 인해 얻은 능력이 있다면.
코리안 아메리칸 중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다. 나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이 자리에 설 수 있던 것도 뭘 더 잘해서라기보다는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 하니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일 뿐이다. 정말 감사하다.
‘미스 글로벌’의 다국적 모델을 보면서 느끼는 동질감도 있을 것 같은데.
맞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미의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다. 이 때문에 나도 어려움도 많았다. 한국이 추구하는 미, 엔터테인먼트가 추구하는 미가 있다면, 미국에서 자란 나에게 익숙한 미도 있는데 이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단 한국에 오면 살을 빼야 했다. 어릴 땐 무조건 그 기준에 맞췄지만 점점 내 자신을 잃는 것 같았다. 다들 하는 것처럼 하게 되면 개성이 없어진다. 자기다운 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그레이스 문과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조슈아만의 꿈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다. 노래를 하며 준비를 해왔고, 기획사에도 있어봤다. 사람들은 내게 글로벌 시대에 맞다고 한다. 한국 친구들은 외국에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우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있다. 나의 꿈은 그런 자리에 가는 것이다. 뛰어나고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우리도 글로벌한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탤런트와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난 늘 행복하다. 늘 앞으로 올 일들이 너무 기대가 된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좋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인드로 살면 매일매일의 순간이 조금 더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바꾸면서라도 즐겁게, 좋게 만들어야 한다. 행복은 선택하는 것이다. 돈에 따라 행복하고, 일에 따라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성숙한 것 같다.
그레이스 문 너무 성숙해서 사람들이 애늙은이라고 한다.(웃음)
조슈아 문 벤자민 버튼처럼 앞으로 갈수록 덜 성숙해질 것이다.(웃음)
그레이스 문 이 나이의 남자애들과 다르게 이 친구는 생각에 깊이가 있다. 그래서 내가 너무 힘들다. 내가 더 애 같다.
조슈아 문 나도 힘들다.(웃음)
그레이스 문의 소소한 행복은?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여행을 갔다. 미국의 10대 아이들은 90%가 엄마아빠와 여행가는 것을 꺼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항상 함께 여행을 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자식들이 결혼하면 결국 다 소용없다고 한다. (웃음) 그래도 지금까지 20년 넘게 같이 즐거웠었던 추억이 있어서 행복하다. 가족들과 여행을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 글 윤수연 기자( y.sooyeon@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