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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년, ‘말맛’ 세공가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극한직업>이 1,283만 명을 돌파하며 <7번 방의 선물>을 누르고 코미디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그 흥행 속도도 가히 파죽지세다. <스물>(2014) <바람 바람 바람>(2017)에 이어 세 번째 작품으로 단숨에 천만 관객 감독 반열에 오른 이병헌 감독. 서른 살, 첫 단편을 연출하며 딱 10년만 해보자고 다짐했던 당시를 떠올린다.

이병헌 감독 코미디에 흔히 따라붙는 단어인 ‘말맛’. 상황을 대변하는 위트있고 감칠맛 넘치는 대사로 일당백의 효과를 끌어내는 이병헌 표 웃음을 향한 애칭이다. 평범한 이웃의 소소한 일상을 주로 다루기에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무기로 내세울 게 ‘대사’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 이 감독. 그 ‘말맛’의 노하우를 묻자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니 걸린 거라고. 결코 단번에 쭉쭉 뽑아낸 결과물이 아니라고 한다. 어느덧 10년, ‘말맛’을 위해 언어를 다듬고 다듬은 진정한 ‘말맛’ 달인, 이병헌 감독을 만났다.


<극한직업>의 연출 방향은. 또,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명절에 온 가족이 불편함 없이 시원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었고, 예상대로 잘 나온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스타일과 영화적 욕심 혹은 평가에 대한 강박을 모두 내려놓고 재미있는 리듬으로 찍어 보자 했다.

상업 영화 데뷔작 <스물>(2014)에 비해 당신의 색깔이 옅다는 시선도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작 <바람 바람 바람>(2017)과 <스물> 사이라고 할까.
<스물>은 내 언어와 생각이 결집된 영화로 내 색깔이 훨씬 도드라졌었다. 타깃도 어느 정도 제한적이라 메가 히트될 수 있는 대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감하고 좋아하고 웃을 수 있는 한정된 대상에 응집력이 높다고 할까. 그렇기에 아주 좋아하는 분이 있는 반면 욕을 할 정도로 싫어하는 분도 꽤 많았다. <극한직업>은 대중적인 요소가 넓게 포진돼 있다. <바람 바람 바람>은 개인적으로 원작에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내) 완성물로서는 아주 아끼는 작품이다.

연출에 있어 중점 둔 바는.
겸손이 아니라 이번엔 영화 속에서 내가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극한직업>을 보시는 관객 한 명 한 명이 불편하지 않게 즐기길 바랐기에 감독 ‘이병헌’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했다. 말했듯 내 색깔이 호불호가 갈리고 아주 대중적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불편하지 않은 영화를 지향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젠 그럴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일부는 <바람 바람 바람>이 이유이기도 하다. <바람 바람 바람>을 개인적으로 아끼고 열정을 가지고 만들었지만, 민감하고 불편한 소재라 한편에선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감독 입장에서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적 평가에 대한 강박이 어느 정도 작용했고 당시 비난받으며 힘들었기에 다음 작품은 편하게 가고 싶었다. 그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웃음으로 작정하고 웃기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면 나 역시 힐링 받으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타이밍 좋게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생각할 것도 없이 덥석 붙잡았다. (웃음)

최근 인기를 끈 <완벽한 타인>의 각본가인 배세영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당신이 각색했는데 소요 기간과 수정한 부분이 있다면. 또, 배세영 작가와 배틀하듯이 각색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웃음)
배틀한다는 기분으로 썼다는 건, 반 농담이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더 재미있게 고쳐봐야지? 이런 느낌으로 각색했었다. 총 3개월 정도 걸렸고, 배 작가가 써준 재미있는 큰 설정은 그대로 가고 내가 원하는 리듬에 따라 다시 구성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모든 장면에 코믹요소를 삽입하는 거였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 좀 쉬면서 가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체 분량은 원래 시나리오에서 한 20페이지 정도 줄었다.

<스물>은 오리지널 각본을, <바람 바람 바람>과 <극한직업>은 각색을 맡았다. 직접 쓰는 것과 각색하는 작업의 차이는.
감독과 작가 포지션에 따라 다른데, 감독 입장에서 각색은 새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골격이 있는 걸 허물어 다시 세우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고 차라리 처음부터 새로 짓는 게 수월하지 않나 싶다

<극한직업>이 세 번째 상업 영화인데 단 세 편만으로 코미디 일가를 이룬 인상이다.(웃음)
독립 영화까지 하면 네 번째 장편이다. 단 세편이라고 하지만 시간은 오래 걸렸다. 코미디를 주로 하는 건… 예전에 습작을 많이 하던 시절엔 호러나 스릴러 등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썼었는데, 하루 종일 무서운 생각을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했다. 코미디를 보는 것도 구사하는 것도 좋아하거든.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극한직업> 스틸컷
<극한직업> 스틸컷

평소 코미디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는지.
알다시피 내 영화가 상류층을 소재로 하는 게 아니기에 보통 살아가는 모습과 생활상, 각종 매체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근처에 있는 가까운,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를 좋아하거든.

앞으로도 계속 코미디 장르를 할 생각인가.
이전 작들은 감정과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로 웃기는 게 절대로 우선 목표가 아니었다. <극한직업>은 그냥 웃기는 데 충실했다. 앞으로도 코미디 장르를 놓지는 않겠지만, <극한직업>처럼 웃음이 주가 되는 작품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영화 예고편의 문구부터 범상치 않다.
예고편 대사와 맛깔난 상황 등의 대부분은 배세영 작가 아이디어다. 그녀의 아이디어가 류승룡 선배의 입으로 나와 웃음을 생성한 거다. 되도록 손 안 대는 게 이번 연출 방향이라고 할까. 솔직히 <극한직업>이 양산한 웃음에 내 지분이 별로 없다. (웃음)

마약반 5인방(류승룡, 진선규, 이하늬, 이동휘, 공명)의 면모가 사뭇 생소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캐스팅 이유는.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고반장’(류승룡)의 말투와 행동은 누가 봐도 딱 류승룡 배우 아닌가. 정극에서도 그렇지만 코미디 영화에서 선배는 두말할 나위 없는 분이시다. 일단 선배가 캐스팅되고 나니 안정감이 느껴졌다. 나머지 배역을 캐스팅함에 있어 여유가 생기고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겠더라.

‘장형사’(이하늬)와 ‘마형사’(진선규)가 상당히 전형적인 캐릭터이기에 시나리오상에서 새로움을 부여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를 캐스팅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마침 이하늬와 진선규 선배가 떠올랐는데, 캐스팅만으로 유니크한 조합이 만들어졌고 시너지도 뛰어났다.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고민이 한번에 해결됐다고 할까. 진선규 선배의 경우 <범죄 도시>가 막 끝난 직후라 조폭 역할만 안 하면 어떤 역할을 해도 신선하게 느껴질 시점이었다. 선배는 코미디 장르에 대해 불안감을 표했지만 나는 그의 연기에 신뢰가 있었고 굉장히 잘할 거로 확신했다.
 <극한직업> 스틸컷
<극한직업> 스틸컷

평소 코믹한 모습을 보여온 이동휘 배우가 의외로 진지 모드인 점도 흥미로웠다.
시나리오상에서 ‘영호’(이동휘)는 대사도 적고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인물로 다소 희미해 보였다. 그를 어떻게 다른 캐릭터와 대등하게 만들까 고민했었다. 상식적인 인물을 자꾸 엉뚱한 행동을 시킬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 고민이 웃긴 배우라는 인식이 강한 이동휘를 캐스팅하면서 한 방에 해결됐다. 동휘는 베테랑이라 할 만큼 코믹 연기에 능숙하고 한 번 쏴 줘야 할 때는 싸주는 센스가 뛰어나거든. 공명의 경우 이미지가 앉아 있으면 해맑고 순수한 영혼인데 일어나면 건장한 체격을 지닌 열혈 넘치는 형사인 ‘재훈’(공명), 딱 그 자체였다.

캐스팅 제안을 받은 5인 방은 바로 OK 한 건가. 류승룡과 진선규 배우는 감독님을 믿고 했다고 하던데.
진짜 바로 OK 했다. (이) 동휘의 경우 예산 부족으로 캐스팅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시나리오가 재미있다며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줬다. 류 선배와 진 선배가 나만을 믿어서가 아니고 시나리오의 힘이었다고 본다.

후반부 마약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더라.
웃음도 중요하지만 웃음 웃음 웃음으로 끝날 순 없기에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고민했다. 극 중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경찰 공무원과 소상공인이다. 생활 안에서 자기만의 감춰진 능력치가 있을 테지만 그것을 다 꺼내고 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숨겨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 순간 느끼는 쾌감을 전달하고 싶었다. 또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필살기를 부여하면 액션도 풍성해질 거로 생각했다. 마약반 5인 방이 모두 멋있을 필요는 없기에 막내인 ‘재훈’(공명)은 맞아도 안 아픈 야구부로 설정해 귀엽게 가보자 했다.

좀 전에 평범한 주변에서 발견하는 웃음을 선호한다고 했는데, 식당을 운영하는 등 과거의 다양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을 돌이켜보면 학업에 충실했던 기억이 없다. (웃음) 작은 우동집을 비롯해 장사했다 망한 적이 수차례다. 아르바이트를 한 25여 가지 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요식업과 자영업 등 운영 시스템과 제도적인 부조리, 소상공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편이다. 게다가 친척 중에 경찰 공무원이 있기에 그들이 친숙한 존재다. 덕분에 특별한 취재 과정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병헌’ 표 코미디하면 자동으로 ‘말맛’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그만큼 감칠맛 나는 대사가 일품인데, 대사를 쓰는 노하우가 있다면. 풀어놔 달라! (웃음)
내 이야기는 평범한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빌딩이 무너진다든지 전쟁이 터진다든지 하는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인 스토리가 아니다. 또, 영상적으로 감흥을 줄 수 있는 대작도 아니다. 그러니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대사밖에 없다. 그래서 대사를 쓰는데 고민에 고민한다. 한 번에 단숨에 써지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계속 수정한다. 가령 오늘 1페이지부터 30페이지까지 썼다면 다음날 다시 1페이지부터 수정해 나가는 패턴이다. 어쩔 땐 한 페이지도 더 진도를 못 나가고 수정하다 끝나는 날도 있다. 단번에 대사를 쭉쭉 뽑아내는 달인이 절대 아니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예전에 드라마 준비하다가 제작이 무산된 적이 있는데 당시 작가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왔다. 수다스러운 여자가 주인공인 16부작 로맨틱 코미디다. 소소한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 선뜻 하기로 했다. 이제 스태프 꾸리고 캐스팅 들어간 상태다.

요즘 영화와 드라마 등 플랫폼 차이에 따라 존재하던 벽이 작가와 감독의 경우 점점 허물어지는 추세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수다를 떨 수 있다면 그게 스크린이든 브라운관이든 공간 플랫폼이 문제 되지 않는다. 연극도 하고 싶고 유튜브로 좋다. 자연스럽게 오가려고 한다

최근 인상적인 일 혹은 행복한 일을 꼽는다면.
서른 살 때 처음 단편을 연출하며 10년만 해보자 했던 게 정말 10년이 됐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극한직업>을 작업하면서 행복했고, 작업 끝나고는 정말 많이 걷고 있다. 걸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하는데 그 시간이 참 행복하다.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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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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