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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듯 한컷 한컷 영화를 <한강에게>박근영 감독&강진아②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첫 작품이기에 오히려 최대한 독립적으로, 최대한 미니멀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제작과 각본과 연출 그리고 촬영과 편집까지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한강에게>를 완성한 박근영 감독의 말이다. 첫 장편을 만들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 감독은 그렇게 찬란한 기쁨과 슬픔이 함께했던 청춘의 기억을 끄집어내 시를 쓰듯 한컷 한컷 영화를 만들었다. 때론 감정적으로 힘들어 작업을 멈춘 시간도 있었지만, 아픔을 외면하거나 묻어두려 하지 않고 드러냈다. 영화 연출자로서 제작 가능성의 폭을 넓혀준 작품인 미니멀 시네마 <한강에게>를 통해 애도하는 법을 알아가는 중이라는 박근영 감독을 만났다.

# 한강에게>

<한강에게>는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이 순간순간 든다. 초반부 광화문 세월호 추모 광장에서 '진아'(강진아)가 시를 낭독하는 장면, 극 중 인물의 이름이 배우의 이름과 같은 점 등등에서 특히 그렇다.

강진아 처음엔 캐릭터 이름과 내 이름이 같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감독님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접점을 활용할 의도라고 하셔서 이해했고 연기하며 도움받았다. 상대역에 다가가는 데 있어 층 하나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박근영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적인 것이 엮일 때, 실재와 실재가 아닌 것이 서로 간섭하면서 생기는 느낌을 좋아한다.

'간섭'이라는 표현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박근영 실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정보가 영화를 받아들일 때 작용하는 것을 간섭이라고 표현해봤다. 영화 밖의 생각이나 지식이 영화 속에 영향을 미치는 것 말이다. <한강에게> 같은 작은 영화에선 광화문 추모 광장처럼 큰 추모의 장을 연출하지 못함을 알고 있는데, 실재하고 그것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공간에 영화적 인물이 등장하면서 현실과 가상이 섞이게 된다. 그게 묘한 느낌을 형성하고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작은 영화지만 큰 세계관을 지닌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할까. 만드는 입장에서도 감흥이 큰 연출 방식이다.

<한강에게>의 촬영 시기와 기간은. 공개까지 꽤 시간이 소요됐다.

강진아 촬영은 <소공녀>(2017) 들어가기 전에 끝났었다.

박근영 2017년으로 촬영 기간은 약 한 달 정도였고 실제 20일 촬영했다. 다만 후반 작업을 굉장히 오래 해서 촬영 끝난 후 완성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작업량의 문제라기보다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어서였다. 가끔 작업을 잠시 멈추기도 했기에 오래 걸렸다.

<한강에게>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강진아 배우(이하 강진아) 시집을 꺼내 보내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박근영 감독(이하 박근영) 무언가를 관객에 주입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장면을 보여줄 때 느껴야 할 것들을 특정하거나 강요하지 않도록 촬영하다 보니 영화가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다고 혹은 여백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 보는 이가 영화의 여백을 얼마나 어떻게 채워나가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것 같다. 게시판을 비추는 불빛이나 한강에 반짝이는 불빛 등등의 장면을 아무 의미 없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의미를 찾으며 본다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거다. 어떤 해설과 서사를 좇아가기보다 장면 장면이 감흥을 던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으니 보고 충분히 느끼시길 바란다.
 <한강에게> 스틸컷
<한강에게> 스틸컷

# 박근영

프로듀서, 각본, 연출, 편집과 조명까지 혼자 작업했다. 미니멀 시네아스트라 할 수 있는데, '미니멀'을 지향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상업영화 스태프로 들어가서 경험을 쌓던 중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단편 영화 만들었던 경력이 전부로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었고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었다.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작은 규모의 단편을 만들었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 더 극단적으로 작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내가 가진 것으로만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한강에게>를 시작했다. 영화 학교 출신이라 스태프로 참여해 줄 친구들이 있었지만, 첫 작품이라 오히려 배제하고 최대한 독립적이고 미니멀한 방식으로 찍었다.

<한강에게>를 미니멀 시네마로 완성 후 소감은.
처음 시도이고 도전인 데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니 내심 불안했었다. 하지만, 완성한 후에 용기가 많이 생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받은 영감에 대해 굳이 자본의 유무와 크기에 상관없이 찍을 수 있겠더라. 연출자로서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강에게>는 긴 세월을 함께 보낸 연인을 떠나보내는 중인 젊은 시인 '진아'(강진아)의 이야기다. 첫 장편의 소재로 이별과 상실을 선택한 이유는.
<한강에게>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영화다. 전작인 단편 <사일런트 보이>(2014) 역시 중학교 시절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첫 장편은 내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20대와 30대 초반의 내 청춘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 말이다. 당시 나를 사로잡고 내가 몰두했던 것들, 친구들과 함께했던 찬란한 순간과 아픔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시와 시인들, 그 모든 것이 <한강에게>에 담겨 있다. 그 시절에서 기억하고 싶은 모든 것들과 감정들을 한 영화에 기록하고 싶었거든.
 <한강에게> 스틸컷
<한강에게> 스틸컷

영화를 만드는 내내 슬픔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과 최선을 다해 슬퍼하는 법에 관해 자문했다고 하던데..해답을 얻었나. (웃음)
아니,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고민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고 깨달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이 해답은 아니지 않나 싶다. 영화 속에 박시하 시인의 '슬프 무기'가 나오는데, 그 중 '지기 위한 싸움도 있다'는 시구가 있다. 최선을 다해 슬퍼한다는 게 그런 것 아닌가 한다. 질 것 알면서 싸우듯 되뇔수록 괴로울 것을 알면서 덮어두려고 하지 않는 것, 외면하려 하지 않는 것 그게 애도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 일부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을 웃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취미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고 음악 듣거나 책을 보거나 운동하는 게 전부다. 사람들 모임에서 말수가 적은 편인데 유일하게 말이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 영화 이야기와 농구 이야기를 할 때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와 이야기하든 즐겁고 제일 신난다. 사실 시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흥분하곤 하는데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다.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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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목요일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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