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정일’은 관찰자면서 당사자 <생일> 설경구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으로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애칭과 젊은 여성 팬덤을 형성한 설경구가 <우상>과 <생일>을 통해 서로 다른 아버지로 관객을 찾는다. 처한 상황도 모습도 판이하지만, 아들을 잃은 깊은 슬픔을 지닌 아버지로 절절한 부성애로 극을 꽉 채운다.

세월호 참사 후 남겨진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위로를 전하는 <생일>에서 그는 가족의 곁을 오랫동안 떠났다가 돌아온 아버지 ‘정일’로 분했다. 죄책감에 아들을 떠나보낸 비탄과 고통을 표현하지 못 하는, 염치없어 마음껏 슬퍼할 수조차 없는 가여운 아버지이다. ‘정일’을 관찰자면서 당사자라고 소개한 설경구는 표현 그대로 떠난 이를 추모하는 ‘생일 모임’ 한가운데로 관객을 인도한다.


영화를 본 주변 반응은 어떤가.
많이 울었다는 분이 여럿 있는데 감사하다. 또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이야기 나아가 우리 이야기라고 하는 분도 계셨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됐다고 하시는 데 이건 우리가 기대했던 반응이다. 아프니까 마냥 울자는 영화가 아니라 부모와 형제, 주변 친구와 이웃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고 싶었고, 어떤 선입견 없이 봐주셨으면 했는데 그런 면에서 만족한다.

특히 우려한 지점은.
아픔을 왜 다시 끄집어내냐는 측과 한편으론 너무 이르지 않냐는 측이 있는데 모두 걱정으로 작용했었다. 그런데 이종언 감독이 위로하는데 시기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고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이 감독이 봉사 모임에 갔던 경험을 들려줬었다. 처음에는 죄스럽고 조심스러워 유족에게 다가가기조차 못 했는데 그들이 먼저 다가와 말 걸어 주셨다고 하더라. 전해 들은 것만으로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은 게 후반부 ‘생일 모임’ 촬영하며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유가족 시사에서 많은 분이 울었다고 하던데..
(전)도연이가 주차장부터 힘들어 했었다. 상영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데 못 들어갈 것 같다고 하더라. 촬영하기 전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을 것 같아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어서 그때가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거든. 뭔지 모를 죄스러움과 무거움 등등 처음에 인사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도연이가) 눈물이 터져버린 거지. 많은 분이 우셨고 영화 본 후 고맙다고 하시는 데 그런 감사를 듣는 게 또 미안했다. 영화에 반대했던 분들도 같이 보셨는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우려했던 부분은 해소됐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초반에 절제력을 발휘해 뜨거움을 잘 다스려 후반부에 몰아친 연출이 개인적으로 좋더라.
‘정일’의 시선으로 시작되는데 그게 바로 관객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정일’은 참사 발생 후 2~3년이 지난 시점에 집으로 돌아온다. 촬영 시작이 실제로 그 시기였다. 그가 가정으로 돌아와 처음 느끼는 낯섦이 관객이 처음 영화를 접하며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이후 ‘정일’의 시선을 따라 주변에 서서히 가까워진 후 여전히 고통의 감당이 안 되는 ‘순남’(전도연)을 만나게 된다. 그런 전개 방식이 좋았다.

지금 말한 부분이 극 중 ‘정일’의 롤인 것 같다.
그는 가정을 떠나 있었다는 죄책감에, 마음껏 슬퍼하는 것조차 염치없다고 느끼는 가여운 아버지로 극 중 관찰자면서 당사자이기도 하다. 다른 유가족들과 거리 두기를 하던 ‘순남’이 ‘정일’로 인해 하나씩 아픔이 건드려지며 점차 앞으로 나가게 된다. 그를 통해서 ‘순남’의 마음이 차차 열리고 슬픔을 갈무리하게 되는 거지. 마찬가지로 ‘정일’에 이끌러 관객이 생일 모임에 다다라 참사 후 생긴 국민적 트라우마를 치유는 못하더라도 위로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후반부 생일 모임은 30여 분의 롱테이크로 촬영했다고 들었다.
연기를 오래 했지만, 처음에 가능할지 반신반의했었다. 한 번만 찍고 끝난 게 아니라 카메라 3대로 촬영했고, 카메라가 누구를 찍고 있는지 모르니 계속 집중하고 있어야 했다. 힘든 상황은 맞는 데 힘든 지 몰랐던 이유가 당시 보조출연자 포함 50여 명이 넘은 인원이 함께 작업했는데 모두 다 하나같이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극 중 내 조카로 나온 친구는 통곡해서 뻗을 정도였다. 상황에 너무 공감하고 동화해 감정이 격해진 거지. 달래며 울다가 웃다가 촬영하는 과정에서 위안받고 슬픔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관객 역시 생일 모임 어딘가에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드실 거다.
 <생일> 스틸컷
<생일> 스틸컷

스케줄상 참여하기 힘들었는데 무리했다던데..
<우상>의 촬영이 늦어져 서너 달 미루면 안 되겠냐고 물으니 <생일>의 촬영 시기가 숲이 우거지면 안된다고 해서, 미루고 미뤄서 4월 초에 들어갔다. 당시 <우상> 촬영이 안 끝난 상태였는데 <우상>측에서 특히 (한) 석규 형님이 배려해 주셔서 가능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시나 노래가 나오는데 세월호 추모 영화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꼭 함께하고 싶었거든.

아들을 잃은 비통한 아버지 ‘정일’(설경구)을 연기했는데 쉽게 그 감정에서 벗어나 지던가.
<생일>과 ‘정일’이 내게 남다르게 남을 것은 틀림없다. 또 일상으로 돌아가 다른 캐릭터를 담아야겠지.

<우상>과 <생일>에서 모두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역할이다.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는데 연기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색깔도 주어진 상황도 다른 아버지라 다행이었다. 다만 <우상> 촬영으로 염색해 노란 머리색으로7개월 정도 지내다가 <생일> 때문에 검은색 머리로 돌아오니 스스로 너무 낯설더라. 거울을 봐도 이상하고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편으론 그런 낯섦과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생일>과 맞겠다 싶었다.

전도연 배우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이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18년 만이라고 하더라. 배우끼리 작품에서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 인연이 닿아야 하는 거지. 평소 친분이 있어 그런지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외모도 비슷한데, 눈은 더 깊어진 것 같다. 무슨 도사처럼 말이다.

이번 <생일>이 여성 감독과 첫 호흡 아닌가.
처음은 아니다. <여행자>(2009)의 우니 르콩트 감독과 작업한 적이 있고, 당시 이종언 감독이 연출부였었다. 이 감독이 원체 단단한 데다 단지 상상한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쓴 것이기에 <생일>에 믿음이 있었다. 또 <생일> 관련된 사항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서 내가 어떤 질문을 하든 바로바로 답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극 중 ‘정일’이 출입국 사무소를 방문해 아들의 여권에 도장을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 그런 분이 계셨다고 들었다. ‘순남’ 집의 현관 센서등이 깜박깜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일> 스틸컷
<생일> 스틸컷

<생일> 외의 이야기를 해보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 이후 ‘지천명 아이돌’ 이라는 애칭?이 생겼다. 젊은 여성층의 팬덤이 대단한데 실감하나. 또 평소 작품 선택 기준과 <불한당> 이후 변화가 있는지.
한 번은 팬미팅에서 <불한당> 관련 시험? 을 본 적이 있다. 변성현 감독은 60점, 난 80점인가 받았는데.. 영화 속 차 번호 등 정말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영화를 분석했더라. 평소 작품을 선택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건 시나리오다. 일단 재미있고 몰입감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은 감독이 누구인지를 살핀다. <불한당>으로 얻은 사랑에 정말 감사하고 고맙지만, 작품 선택에는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다만 전후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있다.

어떻게 변화했나.
<불한당> 이전에는 표정이나 몸짓 등에서 인위적인 것을 굉장히 싫어했었다. 그런데 이후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좋은 연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한당> 덕분으로 감사한다.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당신인데,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 것 같나.
글쎄, 누구 밑에서 일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학교때 연기를 처음 시작했는데 나 때만 해도 대학에서 연기하더라도 사회에 나가서까지 계속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보통 학년이 높아지면서 취업 준비하는데 나는 그런 고민을 안 했었다. 오히려 ‘연극해서 왜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지?’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정말 대학 2학년 때 대학로에서 공연하며 돈을 벌었다! 50만 원 월급을 받았는데 정말 많이 받은 거거든. 딱 현금으로 주는데 얼마나 묵직하고 빵빵하던지.(웃음) 정말 운이 좋았던 거다. 덕분에 다른 길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차피 그만둘 거 같다고 반대도 안 하셨다니까!

연극 무대가 그립진 않나.
그립다기보다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무섭다. (황)정민이가 계속 연극을 하고 있는 게 정말 대단하다. 예전에 독일 공연이 잡힌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연극 끝난 후 이창동 감독님이 오셔서 '네가 연극 다 망치고 있다'고 하시더라. 영화 몇 년이나 했다고 발성이 벌써 그 모양이냐고, 앞 다섯 줄까지밖에 목소리 안들리겠다면서 네 앞에 마이크 대줘야 할 것 같다는 거다. 정말 얼마나 창피하던지.. 이후 독일 공연가서 냅다 소리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로 연극이 무섭다.

극 중 '정일'은 속마음을 쏟아내기보다 삼키는 스타일인데 실제 성격은 어떤 편인가.
무뚝뚝하고 내성적인데 그렇다고 안으로 담지는 못한다. 뱉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극 중 '정일'은 죄책감도 있고 말했듯이 관찰자 입장이라 자신의 감정을 누르면서 주변을 살펴야했기에 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관객을 데리고 다니며 '순남' 에게 인도해야 해서 좀 절제해야 했었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촬영에 들어간다. 또 이준익 감독과 <자산어보>를 준비 중으로 짧은 시간에 촬영을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흑백으로 저예산 영화인데, 이준익 감독님과 작업하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아 기대 중이다.

최근 즐거운 일이 있다면.
그런 거 없다. (웃음)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_씨제스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