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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도 디즈니도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레드슈즈> 홍성호 & 김상진 감독 ②
2019년 7월 30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126억의 제작비로 화제가 됐던 토종 SF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2003), 시대를 앞서? 간 탓에 제작을 맡은 홍성호 감독은 쓴맛을 봐야 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계 시장 공략을 목표로 <레드슈즈>로 돌아왔다. 이번엔 <라푼젤>, <겨울왕국>, <모아나> 등 디즈니 캐릭터를 창작해 온 김상진 감독이 천군만마가 돼 주었다. 김 감독의 앞선 기술력과 축적된 노하우, 홍 감독의 뚝심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터의 노력이 합해져 완성된 <레드슈즈>를 공개한 후 두 감독은 뿌듯하기도 떨리기도 무엇보다 설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배우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레드슈즈’역의 클로이 모레츠, ‘멀린’역의 샘 클라플린, 모두 할리우드 스타 배우 아닌가. 캐스팅 비결이 궁금하다.(웃음)

김상진 예쁜, 누가 들어도 공주 같은 느낌의 보이스는 배제하려 했었고 그런 면에서 클로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허스키한 편이고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홍성호 클로이 모레츠는 나이는 어리지만,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그녀는 ‘레드슈즈’가 지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힘찬 면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클로이로 결정된 후 ‘멀린’ 캐스팅에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샘은 당시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2018) 촬영차 피지에 체류 중이었는데 캐스팅을 수락해줘 부랴부랴 장비를 챙겨서 피지로 날아갔었다. 피지에 영화 촬영 외에도 뭔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어 주위가 소란스러워 따로 공간을 빌려 녹음했는데 정말 여차저차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애니메이션에 있어 배우의 목소리가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클 것 같다.

김상진 당연하다. 그래서 캐스팅이 정말 중요하다. 클로이 모레츠와 샘 클라플린 뿐만 아니라 ‘마법 거울’역의 패트리 워버튼, 마녀 ‘레지나’를 연기한 지나 거손은 매우 관록 있는 배우로 역할을 모두 훌륭히 소화했다.
 좌) 홍성호 감독, 우) 김상진 감독
좌) 홍성호 감독, 우) 김상진 감독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우가 각자 따로 녹음하나 보다. 국내의 경우 출연진이 모두 모여 작업하는 게 통상인데 말이다.

김상진 사실 감독도 출연진이 함께 녹음하며 리액션을 주고받길 원하지만, 원체 유명한 배우들이라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든 거로 알고 있다. 가령 <토이 스토리>의 경우 ‘우디’역의 톰 행크스와 ‘버즈’역의 팀 알렌은 실제 맞춰서 작업한 거다. 그래야 즉흥적 연기와 캐릭터 간의 호흡이 더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홍성호 우린 그 정도로 힘이 없다 보니 따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보통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더빙을 하지 않나. 그런데 할리우드의 경우 시나리오만 가지고 녹음한다고 들었다. 작업한 영상을 보면 아무래도 배우 고유의 창의력에 제한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연기가 안 나오는 경우만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장면을 보여준다고 하더라.

<레드슈즈>는 일곱 난쟁이, ‘레드슈즈’, 마녀, 곰돌이 3형제 등등 정말 캐릭터가 다양하다. 심지어 세쌍둥이가 필요할 정도로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 액션도 소화해야 한다! 특히 힘들었던 작업을 꼽는다면.

김상진 처음엔 네 쌍둥이였다. (웃음) 그런데 홍 감독이 네 명은 좀 심한 것 같다고 하더라.

홍성호 액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보다 ‘멀린’과 ‘레드슈즈’가 둘이 이야기하거나, 모닥불 옆에서 고백하고 첫 키스하는 등 그런 감정 표현이 힘들었다.

관객이 유심히 봐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김상진 액션처럼 동작이 큰 신보다 잔잔하면서 미세한 감정을 보여주는 신을 만드는데 더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눈동자의 작은 움직임 등 감정을 표현하는 신을 좋아한다. 또, 영어 대사다 보니 한국말과 달리 혀의 움직임도 다르다. 가령 ‘L’과 ‘F’는 한국 발음에 없지만 그런 것까지 완벽하게 싱크되도록 정성을 들였다. 세세한 부분까지 공을 들였으니 보는 맛이 있을 거다.
 <레드슈즈> 스틸컷
<레드슈즈> 스틸컷

개인적으로 나무 곰 3형제가 정말 심쿵하더라. 이건 정말 굿즈로 출시해야 할 것 같다. 또 빅 버니 캐릭터도 귀여웠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김상진 영화 속에서 제일 고생한 동시에 나를 제일 고생시킨 ‘멀린’ 그리고 ‘레드슈즈’는 당연하고.. 아, 하나 그려서 세 명을 해결한 일타삼피의 쾌를 안겨준 삼둥이도 좋아한다. ‘피노’, ‘노키’, ‘키오’ 이름도 내가 지은 거다.(웃음) 빅 버니는 홍 감독이 토끼를 좋아하는지 동물 중 토끼를 추천하더라. 원래 집채 만한 몸집의 털이 많이 달린 토끼로 했다가 마법과 관련된 것은 모두 나무와 연관시키자 해서 나무 토끼로 만들었다.

홍성호 아무래도 ‘멀린’이다. 남자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이기적이고 저주를 풀기 위해 정주행하다 보니 욕을 먹기도 하는 그리 호감을 못 사는 캐릭터 아닌가. 극 중에서 고생도 많이 했고!

아버지를 넘어 어느덧 할아버지 입장이 됐는데 여전히 캐릭터를 창작할 수 있는 동심의 원동력은 뭘까.

김상진 누군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자기 안의 어린이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이라도 또 할아버지라도 그 안에 아이를 지니고 있다. 다만 나이가 들며 무뎌지고 감춰지고 억눌릴 뿐이지. 그런 게 간혹 평소 일상에서 발현되는 순간이 있다. 아이와 손주와 놀 때 솟아나는 감정이 작업하면서 발휘되는 것 같다.
 <레드슈즈> 스틸컷
<레드슈즈> 스틸컷

세계 시장 공략을 목표로 했는데, <레드슈즈>의 전 세계 개봉 일정은 정해졌나. 또 혹시 게임화 예정이 있는지.

홍성호 캐릭터만 활용해 서바이벌 게임으로 제작될 것 같다. 사드 이후 중국 개봉은 어려울 것 같고 북미는 아직 결정이 안 됐다. 현재 모든 계약이나 일정을 한국 개봉 이후로 잡은 상태다. 우리나라가 인구가 적음에도 전 세계 5~6위를 다투는 큰 영화시장에 그만큼 영향력도 크고, 무엇보다 국내에서의 성공이 중요하다.

<레드슈즈>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개인적 소감은. 또 김상진 감독의 경우 한국에서 첫 작품이라 감회가 남다르겠다.

김상진 긴 시간 작업했고 정말 오래 기다렸다. 이전 디즈니 영화 개봉할 때에 가졌던 긴장감과 설렘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떨리고 기대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스태프가 열과 성을 다해 만들었으니 우리 영화가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 발전에 기폭제 혹은 디딤돌 역할을 한다면 좋겠다. <레드슈즈>가 시발점이 돼 이후 다양하고 독특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많은 관객이 봐주시면 좋겠지만, 그건 관객 고유의 권한이자 선택이다.

홍성호 현재 마블과 디즈니 영화가 높은 점유율로 영화시장을 석권했지만, 그들 역시 시작은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레드슈즈>가 한국 영화 산업과 애니메이션 업계를 위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큰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이후 또 다른 도전이 계속될 것 아닌가. 사실 한국에선 <레드슈즈> 정도의 큰 작품을 할 기회가 없고, 그러다 보니 인재들이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출자와 디자이너도 중요하지만, 특히 우린 프로듀서가 부족하다. 그런 부분이 참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우린 시나리오부터 음악, 프로듀싱까지 전부 다 한국 사람의 손으로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황수진 프로듀서, 이름 세 글자를 기억해 달라. 또 개인적으론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웃음)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또 향후 바람이 있다면.

김상진 예산 이야기로 연결되는데 자본을 지닌 집단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한다. 양질의 콘텐츠에 목말라 하는 어린 관객들을 위해 스튜디오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에 훌륭한 인력이 더 이상 해외로 유출되지 않았으면, 그와 같은 악순환이 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호 어릴 때 주로 TV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했고 나이가 들어서야 우리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꼭 국가를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현재 할리우드에서 많이 이용되는 소재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자리를 중국이 차지할 것 같다. 중국은 넓은 시장과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망해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 즉 아티스트들이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우린 아예 그런 기회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디즈니 아류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려면 그만큼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한다. 또 유명한 픽사도 조지 루카스의 ILM(Industrial Light & Magic)을 거쳐 스티브 잡스의 지원 이후 디즈니에 인수된 이력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있을 거로 믿는다. 그들이 애니메이션에 꾸준히 지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다음번에도 두 감독이 함께하는 건가.

김상진 조건이 있다. 캐릭터가 세 명 이내면 하는 거로! (웃음) 일단 좋은 시나리오가 나와야겠지.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오버 더 문>(Over the Moon) 작업에 참여 중이다.

홍성호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데 판권과 투자 유치 문제로 아직 밝히긴 힘들다. 좀 명확해지면 김 감독에게 또 하자고 던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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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30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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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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