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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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공식 초청받은 이탈리아 페피 로마뇰리 감독
남북정상회담 있던 2018년 북한 평양에서 다큐멘터리 <영광의 평양 사절단> 찍어
정상회담 당시 북한 사람, 말은 못 하지만 ‘만세’ 부르며 진심으로 좋아해
“북한 사람과 말해보니, 지금 당신과 느낌 똑같아… 두려워 말길”
영화 <영광의 평양사절단>(2018)은 당신을 포함한 서양인 4명의 북한 방문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스위스 공산당원인 작가 ’데이비드(Davide Rossi)’, 구소련에서 유년기를 보낸 러시아 출신 배우 ‘이반’(Ivan Senin) 등이다. 함께 북한에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느 날 ‘이반’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신혼여행을 갈 수 있다면 어디를 선택하겠느냐고. 그때 북한이라고 대답하더라. 거기는 낙원이라면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전 세계가 북한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데 왜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건가.(웃음)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북한으로 향하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더라.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로마에 주재하던 북한 대사가 해고되고, EU 소속이 아닌 ‘이반’의 거주 허가증 연장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결국 스위스 베른의 북한 대사관까지 찾아간다.
로마에서 여러모로 일이 잘 안 풀렸다. 다행히 (스위스 사람인) ‘데이비드’가 열쇠 같은 역할을 해줘서 평양으로 갈 수 있었다. 평양에 도착한 날이 때마침 ‘이반’의 생일이었는데 정말로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년기를 보낸 구소련이 생각나는지 북한 사람들과 굉장한 공감대를 형성하더라. 북한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학자인 ‘데이비드’ 역시 북한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나 좋아해 줬다며 당시 여정을 극찬하고 있다.
많은 것이 통제되는 북한에서의 영화 촬영은 그 자체로 독특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북한 사람들이 (우리를) 경계하더라. 당신들과 달리 북한 사람들은 자신이 (외국인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게 될지 불안해하는 것 같다. 촬영을 하다가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북한 가이드에게 촬영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전부 설명했다. 내가 왜 이곳에 왔고 무엇을 찍으려 하는지 말이다. 그러고 나니 마음의 문을 좀 열더라. 나중에는 신뢰 관계를 쌓아 서로 진짜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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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매체는 대체로 북한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IMDB에 올라 있는 당신 영화 설명란에는 “서양 매체가 말하는 것처럼 북한이 정말 그렇게 지옥일까?”라는 질문이 담겼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양에서는 평균적으로 북한을 ‘필요에 의한 적’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한 작가에 따르면 김정은이 진짜 적이라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탓을 돌릴 수 있는 외부의 적 같은 것이다. 그게 우리(서양)의 프로파간다다. 이런 프로파간다는 사안을 좁은 시야로 보게 만든다. 나는 우리는 모두가 직접 자기 눈으로, 자기 심장으로 현실을 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영광의 평양사절단>은 당신의 눈으로 보고 심장으로 느낀 북한의 모습이라는 의미겠다. 하지만 대한민국 관객 입장에서는 진실을 호도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높고 화려한 건물, 넓고 깨끗한 광장, 잘 정비된 도서관과 대중교통 등 철저히 도시적인 평양의 풍경을 비추는 영화가 실제 북한 사회의 굶주림이나 인권 문제는 외면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내가 본 게 전부 옳다고 확신할 순 없다. 나는 서양인이고 평생 한반도 외부에서 살아왔다. 그 때문에 당신들과 사안을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본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만 보여줬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손님을 우리 집에 초대해 놓고 나쁜 모습을 보여주려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당신이라도 그렇지 않겠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면 (일반인들 사이의) 소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내가 북한에서 이야기해본 사람들 모두 당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 다 똑같은 인간이다. 어찌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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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시점이 아주 흥미롭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영화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촬영을 하러 갔다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걸 알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리적으로 그 장소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신이 났다. 북한 사람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고 싶어서 거리로 나갔는데, 많은 사람이 지하철에 모여 뉴스를 보고 있더라. ‘이반’이 한 사람에게 다가가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말은 못 하고 몸동작으로 ‘만세’를 해 보이더라. 진심으로 통일을 원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흥분한 느낌이었다. 내 생각에는 김정은도 (평화 분위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일 처리가 조금 괴팍하고 아기 같은 면은 있지만, 결국 전 세계가 한반도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게 목표 아니겠나.
지난해 9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개봉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났다. 앞으로 영화를 선보이는 일정은.
아직 해외 배급사를 만나지 못했다. 유럽 중에서도 마음이 꽤 열려있는 나라가 프랑스라고 보는데, 프랑스 배급사마저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보더라.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그쪽에서는 어찌 됐든 감독인 내가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외 배급은 정체된 상태다. 하지만, 밀라노에서 열린 비지오니델문도(Visioni dal Mond)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서는 극찬을 받았다.(웃음) 밀라노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교수가 내게 간접적으로나마 북한과 화해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을 때, 참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를 통해 <영광의 평양사절단>을 선보인다. 아마 전 세계에서 북한이라는 나라에 가장 많은 관심을 둔 국민이 대한민국 사람들일 텐데,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저 관객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웃음) 나는 서양 사람들에게 북한에 관한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된다면 그건 세상에서 제일 특이한 사례가 될 것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조합되는 세계 최초의 경우일 테니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힘은 좀 들겠지만, 양쪽에서 좋은 점만 가지고 모인다면 분명 최고의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사진_평창남북평화영화제
2019년 8월 20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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