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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침투한 낯선 여동생, 그 불편함이 안기는 매력 <침입자> 손원평 감독
2020년 6월 3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퍼시픽 하이츠>(1990)와 <요람을 흔드는 손>(1992), <숨바꼭질>(2013)과 <변신>(2019). 범죄, 스릴러, 공포 사이에 걸쳐 있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가족 안으로 침입해 들어온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와 그에 맞서는 주인공을 부각한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을 ‘가족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소환한 손원평 감독은 그 매력을 자신의 시나리오 감성과 영상 화법으로 재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무열, 송지효 주연의 <침입자>다.

<침입자>의 ‘서진’(김무열)은 어린 시절 잃어버린 여동생 ‘유진’(송지효)이 나타났음에도 어쩐지 불편하다. 평생 헤어져 있던 가족 안으로 스스럼없이 침투해 점차 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유진’의 모습이 생경하다 못해 미심쩍은 건, 그저 자신의 신경증 때문일까. 가족이라는 안온한 울타리, 무조건적인 애정을 약속한 부모님, 굳건할 것 같던 스스로까지, 침입당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 <침입자>로 인해서.



<침입자>는 어린 시절 잃어버린 여동생이 집으로 들어와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그린다. 급작스럽게 가족 내 주도권을 꿰차는 동생을 바라보는 오빠는 뭔가 혼란스럽고 미심쩍다. 가족을 소재로 한 ‘침입’이라는 모티프는 관객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장르라고 본다.
가족 스릴러라는 장르에 속하는 영화가 워낙 많다. 중, 고등학생 때 지금은 고전이 된 미국 스릴러를 많이 봤다. 외부의 사람이 들어와 내 집과 우리 가족을 위험하게 하는 <퍼시픽 하이츠>(1990)나 (가사)도우미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요람을 흔드는 손>(1992)같은 작품 말이다. 한창 미국이 중산층의 위기 같은 걸 겪던 때였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작품이 많지 않았다. 요새 들어 <숨바꼭질>(2013)을 비롯한 몇 가지 작품이 나왔다. 가족의 가치가 붕괴되고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가족에 관한) 최소한의 물음을 던지는 일상적인 스릴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디 포스터 주연의 <패닉 룸>(2002)도 떠오른다. 뉴욕 맨해튼 고급 주택가에 사는 모녀가 집을 침입한 강도 3인방과 맞서는 내용의 범죄 스릴러다.
그만큼 가족 스릴러라는 장르는 우리에게 보편적이다. 그 장르가 많이 활용되는 이유는 (이야기의 일부분만) 변화시켜도 관객에게 공포와 서늘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새 가족이 생기면서 여러 상상을 하게 됐다. 잃어버렸던 아이가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침입자>를 기획, 개발하는 단계에서 주인공의 관계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최초에는 50대 엄마의 입장에서 20대 후반의 아들을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아들이 돌아온 것을 좋아하지만 갈수록 아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김)무열 씨가 연기한 역할이 싱글 맘이었던 적도 있다. 반대로 여동생이 오빠의 비밀을 추적하는 버전도 있었다. 대중적인 상업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변화를 거쳤다.

김무열, 송지효 주연의 개봉 버전은 결국 남매 관계를 채택했다. 관계의 성격에 따라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도 달라졌을 텐데.
남자가 위협적일 때와 여자가 위협적일 때, 분명 물리력의 차이가 있다. 여성이 약자일 때는 너무 뻔한 공포 구도가 나오게 된다. 그걸 뒤집어보고 싶었다. 독보적인 여자 캐릭터가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한 가정에 침투해 구성원을 포섭, 장악하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다. 배우들과도 이런 점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송지효가 맡은 ‘유진’역은 여성의 돌봄 노동을 일종의 무기처럼 활용하며 가정을 장악해나간다. 노쇠한 부모님을 정성스럽게 수발하고 어린 조카를 성심껏 돌보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은 어느 순간 식탁의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유진’을 발견하게 된다.
‘유진’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지닌 결핍을 메워준다. (엄마를 잃은) 조카에게도 엄마의 대체재인 친인척 여성으로서 친근함과 따뜻함을 보여준다. 돌봄 노동을 무기로 사용하려 했다기보다는, 사람을 잘 다룰 줄 아는 여자를 보여주려고 했다. 식탁에 앉은 식구들의 모습이 세 번 정도 나오는데, 처음에는 아빠(최상훈)가 중앙에 앉아있었다면 어느 순간 ‘유진’이 그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다. 나름대로 계산해서 넣은 장면이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가정을 장악해 나가는 여동생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오빠의 시선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사고로 아내를 잃고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다. 약을 먹으며 버티는 그는 ‘내가 미친 건지, 저 애가 이상한 건지’ 혼란스럽다. 이런 혼란은 <살인자의 기억법>(2017)이나 <기억의 밤>(2017)같은 최근의 한국 영화가 잘 보여준 지점이기도 하다.
<식스 센스>(1999) 이후부터 (신경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을 앓는 주인공의 혼란은) 너무 흔한 설정이 됐다. 특히나 (김)무열씨가 나온 <기억의 밤>이나 최근 개봉한 공포 영화 <변신>(2019)은 가족 스릴러에 해당하는 서사까지 결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침입자>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서진’의 입장에서 느끼는 생경함을 표현하려고 했다. 집안에 점차 침투해 어느덧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는 생경함 말이다.

그 대목에서는 부모를 향한 인정 투쟁을 떠올리게 할 만한 요소도 있다고 본다. 비단 남매 관계가 아니라 자매,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니라 언니, 오빠, 동생에게 더 많이 의지하거나 애착을 보이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격렬한 질투의 감정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적 불편함 중 하나가 그 지점 아닐까 생각했다.
깊게 분석해 보자면, 나는 좀 거창하긴 해도 ‘서진’이라는 캐릭터가 현대 가장의 비애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는 장남이라는 위치 덕분에 특권도 받았겠지만, 자기 때문에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부담을 떠안은 상태로 밖으로만 나돌다가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쳐 버린다. 현대 가장에게 요구되는 건 가족을 잘 돌보고 그들과 일상을 나누면서 돈도 벌어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가치관의 충돌 안에서 혼란스러웠던 남자가 겪는 비극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있겠다.
그래서 ‘서진’의 첫 장면은 회사에서 시작하고, 마지막 장면도 회사에서 끝난다. 마음속으로는 그토록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실제로도 딸을 지켜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으로는 못 돌아가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그 의도가 연출로 잘 드러나야 하는데 이렇게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니…(웃음)

많은 감독이 연출 의도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더라.(웃음)
상업영화 안에서 연출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란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가는게 제1의 목표이고, 상업적인 얼개가 어느 정도 갖춰졌을 때 최후의 욕심을 소극적으로 집어 넣는 정도다. (건축가라는) ‘서진’의 직업이나 대사, ‘따뜻한 믿음을 짓는다’ 같은 영화 속 표어 같은 것으로 녹여내려고 했다. 그런 부분을 단 몇 분이라도 읽어준다면 그걸로 기쁘다.

당초 씨네21을 통해 영화 평론가로 데뷔한 것으로 안다. 영화에 대해 논하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입장으로 바뀌었는데.
대학교 4학년 때, 상금이 있길래 우연히 내본 평론이 당선됐다.(웃음) 당시 이미 영화 만들기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필진으로 활동을 병행하다가, 쓰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재미있어서 필진을 그만두고 영화 학교를 선택했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을 내놓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촬영 현장은 너무나 즐거웠지만 어쨌든 (영화를 만들어 개봉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공들인 영화를 관객에 선보이기까지 8년가량의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는데, 코로나19로 얘기치 않은 개봉 연기까지 세 차례나 맞게 됐다.
극장 개봉을 하는 것만으로도 천운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완전히 끊긴 코로나 시대에 관객의 걸음을 다시 견인하는 첫 영화가 된 것 같은 책임감을 떠안게 됐다. 나로서는 다 계획이 있다.(웃음)

당신은 다 계획이 있었군.(웃음)
(마스크를 끼고) 3월 개봉, 5월 개봉, 6월 개봉이 쓰여 있는 포스터 세 장을 들고 “코로나 시대에는 이랬습니다”하는 모습을 나중에 어디선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웃음) 이 초유의 사태에서 할 수 있는 건 겸손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뿐이다. 영화를 보러 와달라는 말 자체가 실례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고 또 극장 관람이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으면 한다. 영화 산업계의 모든 사람도 그 어느 때보다 한마음이 돼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간 전혀 단합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끼리 그러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웃음) 우리 영화가 이 시기를 잘 뚫고 나가서, 이어지는 다른 개봉작도 순탄하게 관객을 만났으면 한다.

한때 영화를 평하던 입장에서, 창작자가 되어 관객의 냉담한 평가까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웃음)
나도 기자 시사회에 갔을 때는 (팔짱을 끼고)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식이었으니.(웃음) 농담이다. 요즘은 관객의 댓글도 촌철살인이다. 댓글 학원이라도 다닌 것 같다. “감독을 침입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웃음)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평가를 안 볼 것 같지는 않고, 다 찾아볼 것 같다.

작품을 통해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많을 것 같은데, 다음 작품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소설과 영화를 계속해서 병행하고 있다. 올여름쯤 소설 책이 나올 것 같다. 네 명의 남녀가 나오는 연애소설이다. 소설 <아몬드>처럼 강렬한 사건이 나오거나 <침입자>처럼 옥죄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잔잔한 내면의 묘사가 전부인 이야기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작한 도전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웃음) 같은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이 매번 다르듯, 기자들의 인터뷰 질문도 비슷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르다. 이 어려운 시기를 딛고, 떨리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창작자로서 나의 변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관심을 주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사진 제공_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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