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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불안과 격동을 들여다보다 <욕창> 심혜정 감독
2020년 7월 3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아직 늙지 않은 자가 노인의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자가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삶을 떠올려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것이 우리가 묘사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노인의 삶일 것이다. 세상의 관념과 달리 노인은 삶을 달관하지는 못한다. 뜻밖의 여러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정서적 격동이 극심한 한편, 유한한 신체로 인해 빚어진 질병의 시간이 마음에 그늘을 지운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욕심껏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심혜정 감독이 <욕창>으로 들여다본 노인의 불안과 격동은, 자신 곁에 머물던 실제 가족의 모습으로부터 얻어낸 장면들이다. 은퇴한 아버지, 몇 년 째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 그런 두 사람을 한꺼번에 돌보는 조선족 아주머니. 한 집에 사는 세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자식들 사이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그러나 <욕창>은 그 인물들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늙음’ 앞에서 복잡한 감정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욕창>은 병으로 몇 년째 누워 있는 아내, 그런 아내와 함께 사는 은퇴한 공무원 출신 남편, 두 사람의 수발을 드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한 집에서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초 비슷한 소재로 단편 영화 <아라비아인과 낙타>(2013)를 연출한 것으로 안다.
<아라비아인과 낙타>는 다큐멘터리다. 내 어머니가 12년 정도 병을 앓으셨기 때문에 딸로서 옆에서 지켜본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딸인데도 엄마 집에 가는 게 불편했다. 엄마 집이 거기에서 5년 넘게 같이 산 이주노동자 아줌마의 집처럼 변하는게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주노동자에 대한 선주민의 터부가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보통 이주노동자를 다룬 작품은 그들과 권익과 현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만, <아라비아인과 낙타>에서는 거꾸로 주인공이자 선주민인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이야기 했다.


같은 주제를 극영화로 만들면서 주제의식도 변화한 것 같다.
<욕창>에서는 노인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시) 풀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면 에너지도, 격동도, 불안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노인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섬세한 감정을 잘 포착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삶의 여러 변화를 맞닥뜨린다. 예컨대 뇌출혈로 쓰러질 수도 있고. 그러니 젊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자기 삶을 유지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인 ‘강창식’(김종구) 캐릭터도 그런 맥락에서 설정했다.

‘강창식’은 아픈 아내 ‘나길순’(전국향)을 보고 경각심을 느낀 듯 만보기를 차고 열심히 걷는다. TV를 볼 때도 걷기 운동기구에 올라타 있다. 반면 아내 수발의 대부분은 조선족 아주머니 ‘유수옥’(강애심)에게 맡긴다. 요리나 청소처럼 자기 삶에 필요한 것도 모두 ‘유수옥’에게 의존한다.
‘강창식’은 그 정도면 ‘나이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아내에게 책임을 다 하려고 하니까. 자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나름대로 애를 쓴다. 하지만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리, 살림 등은 하지 못한다. 여자들과 달리 (그 시대) 남자들은 ‘생존 노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식사조차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 사람 역시 평생 가부장제도의 남자로 살아온 피해자라는 게 안쓰러웠다. 나의 아버지도 엄마가 아프고 나서 ‘멘붕’이 되셨다. 아픈 엄마보다 아버지를 돌보고 식사를 챙기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을 정도로. 아버지는 양말 한 쪽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저 지경이 됐나 황당했지만.(웃음)

부부의 딸 ‘강지수’(김도영)는 아버지의 성화에 몇 번씩 엄마를 들여다보지만, 아들 ‘강문수’(김재록)는 거의 집을 찾지 않는데.
‘강지수’는 내 실제 경험이 가장 많이 녹아있는 인물이다. 사회적으로 노인 돌봄은 당연히 여자 몫처럼 여겨진다. 사실은 여자보다 남자가 하는 게 훨씬 유리할 정도로 육체적인 힘이 필요한 일임에도 말이다. 내 주위에도 대부분 (아픈) 부모님을 보살피는 건 여성이다. <욕창>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큰아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콤플렉스를 말하면서 “난 그 집이랑은 끝이야”라고 말한다. 반찬이라도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지 좌불안석하는 건 오히려 (그의 아내인, 집안의) 며느리다.


다만 영화의 태도는 그런 지점을 도드라지게 꼬집거나 비판하지는 않는다.
어떤 주장을 하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보여주고 싶었다. 다양한 입장과 관계가 얽혀있는 상황 아닌가. 한 관객이 말하길,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 전부 이해가 간다고 하더라.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이다. 노인 세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는 하지만 등장인물 모두 저마다의 욕창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출했다. 심지어는 큰아들도 그렇다. 공부를 잘해서 아버지에게 사랑받은 남동생 때문에 어릴 때부터 콤플렉스가 생겼다. 공부 실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인 사회에서 얼마나 치여서 살았겠는가.

영화의 감정선이 확장되는 시점은 ‘강창식’이 조선족 아주머니 ‘유수옥’에게 모종의 관심을 보이면서부터다. 그의 외출을 몰래 쫓아가고, 심지어는 비자 문제로 한국인과 결혼이 필요하다는 ‘유수옥’에게 차라리 자신과 결혼하자고 주장한다.
‘강창식’은 죽어가는 존재(아내)를 계속 의식하면서 (오히려) 삶의 의식이 증폭된다. 동네에서 (질병 후유증으로 걸음이 편치 않은) 빨간 잠바 입은 아저씨를 마주칠 때마다 만보 걷기에 더 집중한다. 극 중 (지저분해진 아내의 몸을 씻기고) 침대에 함께 눕는 장면은 일종의 터닝 포인트다. 그 뒤로부터는 생의 에너지를 좇는다. 본격적으로 ‘유수옥’을 쫓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건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고, 죽어가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현재에 성실(충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건 죽음의 부정적 측면이 아니라 긍정적 측면이라고 본다.

시놉시스만 본 상태에서는 ‘강창식’과 ‘유수옥’ 사이에 성적인 요소가 있으리라는 짐작도 들었다. 정작 영화의 분위기는 상당히 정갈하고 깔끔하더라.
‘강창식’은 ‘유수옥’을 사랑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가 자기 삶을 잘 유지하도록 활력을 주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가 없으면 타격을 입을 테니 그 사람을 옆에 잃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는 건 당연한 욕망 아닐까. 물론 ‘강창식’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화를 내는 관객도 있었다.(웃음) 아내가 누워있고, 어떤 연유로 팔까지 부러져 있는데 ‘유수옥’과 집에서 춤을 주는 장면이 나오니까. 주변에서도 그 장면을 촬영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래도 춤 장면만큼은 고집했다. 그들의 복잡한 감정이 잘 표현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 ‘강창식’역을 맡은 김종구 배우가 ‘유수옥’역을 맡은 강애심 배우의 등을 툭툭 쳤는데, 시나리오에는 없던 동작이었는데도 강애심 배우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영화에서 성적인 관계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들의 관계가 성적으로까지 진행돼도 이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유수옥’은 불법체류자 신분이 발각돼 경찰당국에 잡혀간다. 누가 신고했을까, 영화는 그 점을 지목하지는 않는데.
보는 사람마다 누가 신고를 했을지 생각이 다르더라. 어떤 사람은 큰아들, 어떤 사람은 며느리, 어떤 사람은 딸. (심지어 기자 본인은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미국에 사는 작은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런 분석이 고맙기도 하고 너무 재밌기도 하다.(웃음) 영화제 GV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대중과 만나는 것도 나에게는 늘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영화 감독인 동시에) 미술작가이도 한데, 갤러리는 (대중에게는) 문턱이 참 높거든. 전시를 해도 주변 사람들과 작가만 좀 보고 만다. 그럴 때 허망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많은 관객이 봐줄 수 있는 예술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런 ‘짓’을 하게 되는 것 같다.(웃음) 관객과 (내가) 교차하는 순간의 기쁨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아서 만들고 또 만드는 거다. ‘힘든 즐거움’이라는 게 있다는 걸 느낀다.

관객은 궁금할 것 같다. 이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뿌연 연기 속에 점차 어두워지는 영화의 결말 역시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뭐, 앞으로는 더 쉽지 않겠지. <욕창>은 결국 불안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자기 위치에서 꼼짝하지 못하기 때문에 썩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말한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굳어 딱딱해진 가족 사이의 얽힘이 쉽게 재배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관객과 함께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엔딩에서 연기 속에 보이던 주인공 ‘강창식’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어떤 음악도 없이 온전히 그의 호흡이 들릴 때 관객이 거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작품이 예정돼 있나.
하성란 작가의 <곰팡이꽃>이라는 단편 소설을 영화화하려고 한다. 소설 주인공은 남자지만 시나리오에서는 여자로 바꿀 예정이다. 쓰레기를 통해서 아파트 주민을 파악하던 여자가 옆집 남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는 남는 것보다 버려지는 게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것 아닐까. SNS에 올리는 사진은 한 장이지만 사실은 (올리지 않고) 지운 사진이 나를 훨씬 더 잘 증명하는 것처럼. 새 작품은 쓰레기 속에서 진실과 사랑을 찾는 여자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음… 남영역 근처에 개인 작업실을 얻게 됐다. 7~8년간 작업실이 없는 상태로 집과 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그 공간이 주는 기쁨이 상당하더라. 서쪽으로 난 창에서 드는 석양이 너무나 좋다. 하늘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껴본 지가 너무 오래 된 것 같은데, 정신 없이 살다가 이렇게 잠시 멈출 수 있는 순간이 참 좋다. 그게 다음 작업을 하게 하는 힘이 된다.

사진_ 이종훈(스튜디오 레일라)


2020년 7월 3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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