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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상적인 갱스터’ <낙원의 밤> 엄태구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심각한 병에 걸렸으나 도와줄 방법이 없고, 어린 조카는 안쓰럽다. 모시는 형님은 단점도 많고 그릇도 작은 인간이지만, 어릴 때 맺은 인연과 의리로 그 곁을 떠날 수가 없다. 조직 생활을 과연 언제까지 할지. 현실에 찌들고 지친 깡패 ‘태구’가 있다. 상대 조직의 보스를 처리한 후 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잠시 제주도에 머문다. 그곳에서 만난 ‘재연’, 태구와는 다른 의미로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여자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의 주인공 ‘태구’를 연기한 엄태구를 화상으로 만났다. 말수가 많지도 달변가도 아니지만, 수줍은 듯 충실하게 답하는 엄태구, ‘애상적인 갱스터’라는 표현을 새롭고 기억에 남는 반응이라고 꼽는다.

완성된 영화를 본 느낌은 또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화면에 글을 잘 살렸다는 생각이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느낀 것보다 더 처절하고, 더 통쾌하고 더 웃겼다.

<낙원의 밤>의 수식어 중 ‘감성’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여타 갱스터 무비나 누아르와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전통 누아르를 지키면서도 살짝 벗어나 여성 캐릭터 ‘재연’(전여빈)을 통해 색다른 숨결을 불어넣는다. 신선하고 새로움이 가미된 누아르라고 생각한다.

규모 있는 상업영화로 첫 주연작인데 극장을 패싱, 넷플릭스로 공개됐다. 아쉬움은 없는지. 또 전 세계 관객을 만난 소감은.
큰 화면과 좋은 사운드를 통해 공개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한데 전 세계에 동시 공개돼 각국의 관객과 만난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설레는 기분이다.

극 중 이름도 ‘태구’다.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놀라고 신기하고 재미있어 박훈정 감독께 혹시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 물어봤었다. 예전에, 나를 몰랐을 때 썼던 글이라고 하시더라.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만큼 ‘태구’의 비중이 커 부담이 되긴 했다. 특히 초반에 누나와 조카를 잃은 슬픈 감정을 어떻게 내재해 제주도로 이어갈지 고민했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밝지도 않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관건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태구’라는 인물을 특정하기보다 궁금한 상태로 현장에 나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자 했다. 그의 전사, 전 상황 그리고 현재에 집중해 한 단계 한 단계 구축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태구의 전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박훈정 감독이 들려준 그는 어떤 인물인가. 또 구체적인 디렉션이 있다면.
감독님이 말하길 태구는 현재 매우 지친 상태다. 일을 그만두고 누나와 조카를 케어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형님으로 모시는 ‘양 사장’(박호산)이 단점도 많고 부족한 인물이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과거에 받은 도움과 은혜로 인해 끝까지 의리로 곁을 지키는 상황이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태구가 처음 등장하는 게 복도 신이다. 그 장면에서 태구의 얼굴만으로 그의 전사가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나의 병과 조카에 대한 걱정, 조폭 생활에 대한 고뇌와 망설임 등 삶에 찌들고 지친 모습 말이다. 외적으로는 별도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스킨과 로션만 발라 거친 얼굴을 보이려 했다.

역할을 위해 9kg을 증량했으나 촬영하면서 원래 몸무게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그만큼 연기하는 데 힘들었던 걸까.
무조건 많이 먹었고, 보충제의 도움도 받아 살을 찌웠었다. 살이 다시 빠진 건 이번 촬영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어떤 현장이든 촬영하면서 살은 빠지는 편이다.

등장인물이 단출한 만큼 태구-재연의 호흡이 중요하다. 박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가 멜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는데, 인물 사이 흐르는 감정선을 어떻게 파악하고 접근했나.
꼭 이성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재연을 보며 죽은 누나와 조카가 생각이 났을 것이고, 삼촌과 단둘이 사는 그 모습에 어떤 동질감도 느꼈겠지.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물회를 먹으면서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하게 된 거다.

전여빈 배우는 당신을 ‘향수 같은 배우’라고 칭찬했다. 작업해보니 그는 어떤 배우던가.
전여빈이야말로 향수 같은 배우다.(웃음) 영화 <밀정>(2016) 촬영에서 스치듯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주연한 <죄 많은 소녀>(2017) 공개 당시 연기 괴물이라는 평이 자자해서 궁금해 찾아봤었다. 딱 그 평가가 맞더라. 연기를 너무 잘하고 아주 좋은 사람이다. 제주도에서 촬영할 때 감독님이 우리를 불러 매일같이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사 주셨다. 덕분에 가까워질 기회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다. 나중에 다른 작품,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고 싶다.
 <낙원의 밤>
<낙원의 밤>

영화에 흐르는 블랙유머를 책임지는 ‘마 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선배인 차승원 배우와는 첫 호흡이다.
촬영이 끝나면 그날 찍은 분량의 현장 편집본을 다 같이 봤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그때 ‘마 이사’의 연기를 보고 깜짝깜짝 놀랐다. 미세한 표정 하나로 현장의 스탭들이 웃기도 또 정적에 잠기기도 하는데 정말 놀랍더라. 차 선배가 내가 힘들게 액션 찍은 후에는 에너지 드링크를 살짝 몰래 전해주곤 하셨다. 참 따뜻한 기억이다.

전반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크지 않으나 몇몇 장면은 임팩트가 크다. 특히 힘들었던 신이 있다면.
힘들었던 신은 두 개로 하나는 사우나, 다른 하나는 차 안의 액션 시퀀스다. 사우나 시퀀스는 처음에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는데 점차 몸이 풀렸다. 그때 스탭들은 옷을 다 갖춰 입고 찍느라 많이 고생했다. 사우나 안이 정말 습하고 더웠거든. 스탭들이 땀을 줄줄 흘렸던 게 기억난다. 차 안 시퀀스는 무술팀이 내 액션을 너무 잘 받아줬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맞기도 무지하게 맞는다. 안쓰럽더라.
때리는 것보다 맞는 장면을 찍을 때가 마음이 편하고 그래서 더 선호하는 편이다. 무술팀이 원체 프로라 실제로 맞은 적도 없고, 오히려 내가 그분들과 부딪히는 경우가 있었다.

기억에 남거나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가장 좋아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에서 ‘재연’이 벌이는 총격 시퀀스다. 전여빈과 함께 한 장면 중에서는 아무래도 첫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주도에서 재연의 차를 얻어 타고 가던 중 태구가 창문을 열자, 재연이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날린다며 화내는 장면이다. 제주도에서 한 첫 촬영이었는데 아무래도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감과 떨림, 새로움의 감정이 가득했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태구 캐릭터와 실제로도 닮았다는 느낌이다.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모습이 그렇다.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밖에서 가져오든 안에서 끌어내든 내 모습이 (알게 모르게) 표출되는 것 같다. 그게 선하든 악하든 어쨌든 내 안에 있는 모습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역할에 따라 이것저것 최선을 다해 내 안에서 끄집어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일상에서의 나와 겹치기도 하고 혹은 전혀 의외의 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게 배우라는 직업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공개된 이후 기억에 남는 반응이나 기분 좋은 평가가 있다면. 더불어 형인 엄태화 감독의 반응이 궁금하다. (웃음)
음, 그(엄태화)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반응도 항상 비슷하다. ‘괜찮은데?’ 정도. 나쁜 말은 하지 않는 편이다. 부모님이 재미있다고 잘했다고 해서 기분 좋았다. 기억에 남는 댓글은 ‘애상적인 갱스터’다. 이런 표현을 처음 들어본 것 같아 새롭고 좋았다. 또 동료들은 ‘잘 봤다, 정말 재미있고 고생했겠더라’ 이런 반응이 많지는 않았고 딱! 두 분에게 연락 왔다. (웃음)

지난해 예능<바퀴 달린 집>에 출연해 팬들을 기쁘게 했는데, 다른 예능 출연 계획은 없는지. 또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동물 농장>의 애청자다. 불러 주시면 꼭 나가고 싶다.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OCN 드라마 <홈타운>이 곧 방영된다. 1999년 지방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한예리, 유재명 선배와 함께한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그간 <어른도감>(2017), <판소리 복서>(2018) 등에서 주축으로 극을 끌고 나간 경험이 내 안에 쌓여 이번 <낙원의 밤>도 할 수 있었다. <낙원의 밤> 역시 앞으로의 자양분이 될 거로 생각한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 누가 되지 않고 잘해 나가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 있다면.
특별한 취미도 없고 일이 없을 때는 주로 집에서 보내며 재미없게 사는 편이다. 참 별 볼일 없이 심심하게 보내는데, 부모님이 보내준 ‘엄지’(강아지) 동영상을 힐긋힐긋 보면서 웃곤 한다. 촬영할 때는 그날의 연기를 만족하게 하고, 차에 탈 때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사진제공_넷플릭스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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