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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주인공이지만, 어른이 봐줬으면 <아이들은 즐겁다> 이지원 감독
2021년 5월 10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아빠는 일 때문에 집을 비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전학생 ‘다이’는 새로운 학교에서 ‘민호’(박예찬)와 ‘유진’(홍정민)과 곧 친해져 삼총사를 구성한다. 매일 병원에 가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다이, 어느 날 엄마가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옮기자 엄마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단짝 민호와 까칠한 모범생 ‘재경’(박시완), 의젓한 ‘시아’(옥예린)가 길동무로 합류한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단편 <여름밤>으로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국내 유수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지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허5파6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의 <여중생 A>를 스크린에 옮긴데 이어 ㈜영화사 울림이 제작을 맡았다.

주인공 ‘다이’(이경훈)는 아픈 엄마와 이별하는 9세 소년이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제목이 한편으로는 참 아이러니하다는 인상이다.
‘즐겁다’지만, ‘즐거울까?’라는 물음표가 붙을 수도 있을 거다. 즐겁다는 하나의 의미로 단정하기보다 왜 즐거운지 그리고 즐겁지 않다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던 지점이다.

허5파6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영화로 옮기면서 주안점은.
원작은 ‘다이’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린다. 영화는 그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꾸렸다. 원작이 지닌 정서와 결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에피소드를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다이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같은 반 아이가 지적하는데 원작은 원래 입 냄새였다. 그걸 옷에서 나는 냄새로 바꾸고 이어 세탁기를 돌리는 새로운 시퀀스로 연결한 식이다.

허5파6 작가와 사전에 만났는지. 또 영화에 어떤 피드백을 줬는지도 궁금하다.
직접 만나진 않았다. 사전에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냈고,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문의했었다. 예를 들면, 다이와 대립하는 친구 ‘재경’(박시완)은 원작에서는 별명인 ‘안경’으로만 불리고 따로 이름이 안 나온다. 그래서 물어보니 ‘안재경’으로 생각했다고 해서 그렇게 갔다.

‘아픈 엄마와 영원히 이별하는 소년’이라는 한없이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슬픈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다이’의 가족사를 좀 더 언급하며 눈물을 유발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말했듯) 원작의 감정이나 정서를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원작도 그런 다이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리거든. 독특하고 새롭기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라 각색하면서 특별히 극화하거나 (가족사를) 부각하지 않아도 관객에게 스며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장편 데뷔작이다. 보통 첫 작품은 오랫동안 품어온 이야기를 꺼내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가.
신인감독의 첫 작품은 아무래도 오리지널 스토리인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방대하고 규모가 큰 이야기를 쓰고 있던 참에 <여름밤> 때 인연을 맺은 영화사 올림 대표님이 제안을 주셨다. 대표님이 허5파6작가의 <여중생A>도 제작한 경험이 있는 데다, 원작을 보니 이야기가 너무 좋더라. 선뜻 오케이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해 글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우리 영화가 아이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어린이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이 봐줬으면 한다. (웃음)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어른이란 존재에 대해 질문 던졌던 전작 단편 <여름밤>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즐겁다>를 통해 아이를 둘러싼 세계와 어른의 이야기를 동시에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즐거운 데 있어, 어른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존재가 돼야 할까 등을 생각해봤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그들을 둘러싸는 울타리 같은 존재다. 안전망이 되어 보호하는 것이 그 역할이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그 울타리가 때론 아이를 방해하고 구속하기도 한다.

극 중 재경-다이의 관계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재경과 다이는 취향도 성격도 아주 비슷한 인물이지만, 가정환경에 따라 달리 생활하고 성장한 나머지 대립 관계에 놓인다. 결국 어른이 쳐 놓은 울타리가 가로막는 바람에 친해지지 못한 셈인데, 나중에 그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해지게 된다.

어른이란 존재에 관해 물음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고 아주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좋은 어른을 접했는지 생각해 보니 별로 없는 것 같더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어른인지 자문해봤다.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고, 강의하면서 후배에게 학생에게 어땠을지 생각해보니 그리 좋은 어른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에서 ‘어른’이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좋은 어른이란 어떤 모습일까.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책임감 있게 나서주는 게 좋은 어른이 아닐까 한다. 가르치고 지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하는 거지. 여담인데, 안 그런다고 하면서도 나이 먹으니 불쑥불쑥 꼰대 같은 모습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동료와 지인들이 따끔한 지적과 제재를 통해 많은 가르침(?)을 주는 덕분에 정신 차리고 자제하긴 하는데 자칫…경각심을 놓는 순간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다는 묘한 두려움과 강박감이 있다. (웃음)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

‘다이’를 연기한 이경훈을 비롯해 다섯 어린이 배우가 온전히 극을 이끈다. 엄마, 아빠를 연기한 이상희, 윤경호 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웃음) 어른은 말 그대로 거들 뿐이다. 그만큼 캐스팅이 중요한데, 관련 이야기 좀 해 달라.
꽤 오랫동안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중요하게 본 것 중 하나가 실제 성격과 성향이 캐릭터와 닮았느냐였다. 네 아이는 상당히 비슷한데 경훈이는 좀 다르다고 느꼈었다. 원작도 그렇고 내가 생각한 다이는 훨씬 차분하면서 내성적인 모습인데 경훈이는 엄청나게 밝은 친구였거든. 한데 진지할 때는 또 진지한 얼굴을 하는 걸 보면서 아이나 어른이나 한 얼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캐릭터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깨 보는 것도 좋겠더라.

당시는 경훈이가 출연한 <저 산 너머>가 개봉하기 전이었다. 경훈이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그 마스크와 표정에서 나오는 어떤 확실한 정서가 있다. 또 ‘다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끌고 가야 하니 빡빡한 스케줄에도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런 면에서도 경훈이가 적격이었다.

시나리오의 대사에 따른 연기가 아니라 상황을 주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유도했다고 들었다. 촬영 난도가 훨씬 높지 않나. (웃음)
매 순간 힘들었다.(웃음) 우리가 총 32회차 촬영했는데 예산 규모에 비해 많은 편이다. 성인 배우의 촬영시간보다 약 3배 정도 더 필요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당시 9~10살 정도의 어린이 배우에게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작업하면서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프로 배우’라는 걸 여러 번 느꼈다. 촬영하기 전에는 혹시 힘들다고, 중간에 하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책임감 있게 임하더라. 특히 ‘다이’를 연기한 경훈이는 31회차에 걸쳐 촬영했으니… 성인도 버거운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신지이 배우가 연기커뮤니케이터로 큰 역할했다던데.
덕분에 촬영장에서 어린이 배우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없으니 매 순간, 테이크마다 배우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간혹 바쁘다 보면 어린이 배우에게 급하게 디렉션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 신지이 배우가 상황을 파악해 중간에서 알기 쉽게 풀어 전달하는 등 전반적인 소통을 컨트롤해줬다. 신지이 배우의 고생과 어린이 배우의 프로의식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 중 어린이 배우의 연기에 대한 칭찬이 많아서 뿌듯하고, 감사하다.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즉석 연기를 고수한 까닭은.
감정이란 건 익숙해질수록 소모되고, 또 성인보다 어린이 배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황이나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성인 배우의 경우 경험이 많으니 감정을 리프레쉬하거나 조율하는 게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어린이 배우는 한 번 각인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촬영 들어가기 전 준비 단계에서 시나리오를 주고 그대로 따라서 연기를 해 본적도 있다. 대사를 외워서 하니 누가 봐도 어색한 연기가 나오더라. 상황을 말로 전달한 후 연기할 때는 배우 본연의 말투가 나오는 데 말이지. 페이퍼와 글자가 얼마나 한계를 짓는지 알았고, 힘들더라도 시나리오 없이 가기로 했다.

많은 것을 배운 현장이었겠다. (웃음)
어린이 영화를 찍는 분을 존경하게 됐다. 처음 한 번은 멋도 모르고 덤볐지만, 또 하라면… 하하! 근데 양가적인 마음이다. 다신 못 하겠다 싶다 가도 다음에는 이번 경험을 바탕 삼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작업을 통해 연출 공부를 많이 했다. 성인 배우는 감독의 디렉션이나 표현이 부족해도 알아서 채우는 반면, 어린이 배우는 (감독의 지시가) 부족하면 부족한 그대로 연기하더라. 덕분에 언어와 표현의 정확성에 대해 훈련할 수 있었다. (웃음)

엔딩 무렵, 엄마와 만난 다이가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면 나는 좀 무서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슬픈 대사였다.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꼽는다면.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굳이) 아는 척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상황은 생각해 보니 나라도 무서울 것 같아, 그런 대사를 쓰게 됐다. 엄마가 없다고 생각해봐라. (웃음) 다이라면 그렇게 차분하게 말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모처럼 집에 온 엄마가 다이와 친구들에게 잡채 등 음식을 해줘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이다. 이후 밤에 귀가한 아빠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극 중 세 식구가 함께하는 유일한 시퀀스다.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이지 않을까 한다.

잡채가 맛있어 보이더라.
생일 파티 등에 가면 꼭 있고, 대부분이 좋아하고, 또 과정 자체도 손이 많이 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음식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엄마가 잡채를 만들어주면 좋았거든. 촬영하면서 아이들이 마침 배가 고픈 상태라 진짜 맛있게 먹었던 게 기억난다.

관객이 놓칠 수 있는 포인트나 주목(집중)했으면 하는 포인트를 짚는다면.
TV를 보는 다이의 뒷모습이 꽤 길게 두 번 잡힌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다이를 보여주려 한 의도였는데 감사하게도 다이를 애잔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분이 꽤 있더라. 홀로 TV 앞에 앉아 있는 다이의 뒷모습을 보며 인물에 한 발자국 더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첫 장편을 개봉하게 된 소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영화를 전공했고 업계에서 일하면서 내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개봉하는 건 하나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게 돼 지금 행복하다. 사실 이전까지는 내가 과연 영화를 하고 있나,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의구심이 들었거든. 이제 한 편 내놓은 입장에서 ‘감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아직 부족하지만, 한 세 편은 만들어야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웃음)

영화를 만들어 개봉까지 간다는 게 정말 녹록하지 않은,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개봉은 처음이라 관련한 모든 과정이 낯설지만 즐기려고 노력한다. 오랜 동료인 촬영감독이 한번은 이야기하던 중에 그러더라. “형이 언제 코엑스에서 시사회를 하겠느냐고, 지금을 즐겨라”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더라. 지금을 즐겨야지!

당신에게 있어 영화의 의미는. 또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중고등학교때 남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본 것도 유독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얼떨결에 영화과에 진학했는데, 동기들은 대체로 할리우드 키드더라.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일부러 영화를 많이 봤는데, 그러면서 영화가 점점 좋아진 경우다.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영화만의 낭만과 매력이 있어 너무 좋다. 살면서 이렇게 좋은 게 있었나 싶고, 너무 좋아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영화밖에 없다. 보는 것도 찍는 것도 좋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게 ‘감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짧은 질문을 던졌다는데 나라면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 같다. 또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 있다면.
걷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 한 5킬로는 걷고 있다. 또 술 약속 있으면 천천히 걸어갔다 다시 걸어오며 술도 깨고 생각도 정리하고, 그러다 보면 막혔던 것도 풀린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운동도 되는 그렇게 걷는 시간이 참 즐겁다.



사진제공. CJENM

2021년 5월 10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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