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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라 힘들었다” <보이스> 김무열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악역의 매력은 뭐랄까… 욕을 먹는 재미가 나름대로 있거든요. 근데 이번 ‘곽프로’는 이런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캐릭터라 힘들었어요.” 보이스피싱 조직의 브레인 ‘곽프로’를 연기한 김무열이 이제서야 털어놓는 말이다. 보이스피싱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영화인 <보이스>는 ‘피싱’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흥미를 높이는 리얼범죄물. 곽프로는 판을 짜고 각본을 쓰는 피싱 설계자로 말쑥한 얼굴 뒤로 쓰레기 같은 내면을 지닌 인물이다. 공감할 수 없어 힘들었다지만, 유들유들하게 때론 광기어린 모습으로 피싱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영화의 색을 한층 선명하게 한 김무열을 화상으로 만났다.

극중 다양한 피싱 방법이 등장한다. 곽프로의 보이스피싱 수법이나 사고방식 중 가장 소름끼쳤던 행위를 꼽는다면.
취준생 프로젝트다. 절박한 심정으로 취업 결과를 기다리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그 절실한 마음을 이용해 돈을 뜯어낸다는 게 정말 끔찍했다. 또 하나는 피싱 후 피해자에게 전화 걸어 돈 잘 쓰겠다고 조롱하는 행동이다. 설마 그렇게 하겠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소름끼치는 일인데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만든 에피소드라고 한다. 이번에 <보이스>를 하면서 보이스피싱 조직과 범죄자들이 지닌 악랄함과 극악무도함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든 이입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전혀 안 돼서 정말 힘들었다.

대사빨(?)이라고 할지, 그가 내뱉는 말들이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인상이다. 전부 시나리오에 있던 대사인가. 현장에서 만들기도 했나.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해서 중간중간 애드립이 섞였다고 보면 된다. 시나리오에는 품격 있는 단어와 종종 문어체 같은 느낌의 단어로 돼 있어서 이걸 좀 더 저렴하게 또 구어체적으로 바꿨다. 감독님과 사전에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을 일상적인 표현으로 변주했다. ‘구라의 기본은 팩트 체크’, 이건 현장에서 만든 대사다.

대사 중 가장 마음에 들거나 인상적인 대사는.
‘보이스피싱은 공감’이라는 대사다. 피해자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해 그 빈틈을 파고든다는 것 아닌가. 보이스피싱이 얼마나 끔찍하고 악질적인 범죄인지 이 한마디 대사에 농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스>
<보이스>

목폴라 티셔츠에 안경, 정돈된 헤어스타일 등 곽프로는 매우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외형적으로 신경 쓴 점은.
보이스피싱 범죄자를 현실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상상해봤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범죄기법을 시전하는 그들이 전화기 너머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니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만큼 생각을 한수 두수 미리 예측하고 있지 않을까 싶더라. 뭔가 분석하고 예측한다는 점에서 똑똑하게 보이게끔 안경을 썼고, 또 나름의 프로의식을 지녔다는 걸 표현하고자 완전한 정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갖춰 입은 스타일로 가져갔다. 주로 머무는 4층에서 피싱 작업장인 1층에 내려올 때는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데, 자기만의 왕국에서 유유자적하게 행동하는 느낌을 주려 했다.

이입하기 힘들었다지만, ‘빙의’된 듯 열연을 펼치던데… (웃음)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분개할 몇몇 절대적인 적을 롤모델로 삼고 연기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또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정말 나쁜 놈인 곽프로에 대한 분노를 역으로 이용해 감정을 폭발적으로 터뜨린 것도 있다.

곽프로의 서사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는지.
극 중 드러나는 단편적인 전사들을 보면, 한때는 증권가에서 잘 나갔으나 나쁜 쪽으로 빠져서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와서는 아예 대놓고 돈과 욕망에 목숨 걸게 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잘 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간과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시간, 극단의 두 상황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천하의 나쁜 놈이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재보다 나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으로 양극단의 경험이 공존하면서 이상하게 발현되고 뻗어 나가 괴물 같은 인물이 탄생했다고 파악했다. 캐릭터의 서사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그가 겪은 감정의 변화와 이런 감정이 인물에 내재되어 어떻게 외부로 뻗어 나갈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곽프로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 아무래도 부담이 클 것 같은데 어떤가.
이번에는 확실히 부담감이 컸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만 해도 스미싱이나 보이스피싱이 이렇게 전문적으로 행해지고 그 피해 규모가 이 정도로 큰지 몰랐었다. 자세히 모르다 보니 범죄행위나 이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데 영화 속 인물이지만, <보이스>가 리얼범죄를 표방한 작품이라 곽프로를 현실적인 인물로 구현해야 해서 더 부담됐다.(웃음) 대사도 많았고. 하지만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라 다듬어 나갈 여백이 많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보이스>는 크랭크인하기 전에 감독님과 사전 작업을 가장 많이 한 작품으로, 감독님의 의도와 대사 등을 하나하나 함께 검토하고 들어갔었다. 촬영하면서는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하는 등 자유도가 큰 현장이었다.

한편으론 악역을 연기하면서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악역의 매력은 뭘까. (웃음)
음… 욕먹는 재미? 촬영하면서 스태프나 상대 배우들이 ‘죽이고 싶더라’ 이런 비슷한 얘기를 들을 때 나름의 재미가 있긴 하다. 그런데 이번 <보이스>의 곽프로는 사람의 불안을 파고들고 심지어 조롱하는 인물이라 그런 재미를 느낄 만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서준’을 연기한 변요한과 온몸으로 격돌하는데, 작업해보니 그는 어떤 배우던가. (웃음)
(변) 요한이와는 처음으로 함께했는데 정말 훌륭한 배우다. 지금까지 그가 한 결과물(작품)을 볼 때도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해보니 다시 보게 되더라. 핵심은 상대 배우를 향한 존중이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건 자신을 소중히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또 상대역으로 하여금 최고의 연기를 끌어낼 좋은 촉매제라고 생각한다. 작업하는 내내 함께 연기하는 동료이자, 내 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껴주는 첫 번째 관객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액션 합은 어땠나. 대역 없이 대부분 소화했다고.
요한이가 코어가 좋다. (웃음) 나를 들어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안정적으로 잘 던지더라. 배우끼리 액션을 찍다 보면 잘못 맞거나 부딪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워낙 잘 던져준 덕분에 여러 차례 부닥쳤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생채기 하나 안 났었다. 둘이 격돌하는 장면은 거의 대역 없이 갔는데 합이 너무 잘 맞아서 촬영이 일찍 끝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백만 관객 공약으로 ‘스우파’(Mnet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나오는 춤을 추겠다고 공약했는데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웃음) 또 이백만 공약을 이 자리에서 내건다면.
아… 마음으로는 준비했고, 이제 연습해야 한다. 한데 요한이는 이미 하고 있다더라. 이백만이 넘으면 어려운 영화계에 단비가 될 것 같아 정말 좋겠다. 그러면, 춤을 췄으니 랩? 춤을 곁들인 보이스피싱 방지 랩을!

지난해 미스터리 스릴러 <침입자>와 코미디 <정직한 후보>를 통해 전혀 다른 얼굴로 관객을 찾았다. 쉬지 않고 작품 활동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배우는 기술직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안 하면 녹슨다. 그렇기에 작품마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완성물이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에 상관없이 내 연기를 통해 청자 독자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이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작품이 누군가를 만나서 그에게 좋은 경험과 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전 출연작들을 다시 챙겨보는 편인지. 각별하게 남은 작품을 꼽는다면.
웬만하면 보지 않는 편이다. 보면 왜 저렇지 싶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민망한데,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괜찮네’ 할 때가 있다. 요즘엔 전작 중 <작전>(2009)의 주식브로커 ‘조민형’이 떠오른다. <보이스>가 개봉하면서 곽프로와 비슷한 캐릭터라 그런지 비교하는 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만들며 즐거웠던 건 <개들의 전쟁>(2012)이다. 아직도 단체 채팅방이 있을 정도로 당시 함께한 분들과 친하고 돈독하게 지낸다. 각별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배우 김무열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음, 그냥 배우로 만족한다. ‘배우’ 김무열, 배우를 붙여 줌에 감사하다.

마지막 질문! 일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는지
쉴 때는 영화나 책 보고 운동하고 여행하는 편인데, 요즘엔 첫째가(반려견) 몸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다니고 있다. 병원에 다니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더 각별해졌고, 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첫째가 주는 사랑과 기쁨이 아주 크다.


사진제공. CJ ENM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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