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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활동력 <1984 최동원> 조은성 감독
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다큐멘터리 <1984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7전 4승 1패라는 비현실적일 정도의 맹활약을 펼친 고 최동원 투수를 다룬다. 한국 야구계에서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주인공만큼이나 눈여겨볼 만한 건, 연출을 맡은 조은성 감독이다. KBS N SPORTS에서 방영된 야구 다큐멘터리 <더그아웃> 제작 경험과 재일교포 야구단 이야기 <그라운드 이방인>(2014)의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던 그는 야구에 대한 지대한 애정을 신작으로 연결시켰다. 그에게는 야구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있는데 <고양이 집사>(2019)와 <꿈꾸는 고양이>(2021) <나는 고양이로소이다>(2017)의 의 ‘고양이’, <60만번의 트라이>(2013) <울보 권투부>(2014) <나는 조선사람입니다>(2020)의 ‘재일동포’ 그리고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시민 노무현>(2019)의 ‘노무현’이다. 기획, 제작, 총괄프로듀서 등 작품이 실질적으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두루 역할을 맡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메가폰도 잡았다. 자기 관심사를 다큐라는 결과물로 관객에게 꾸준히 선보여온 조은성 감독의 지난 시간을 증거할 만한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분명 ‘왕성한 활동력’일 것이다. <1984 최동원> 이후 그의 관심은 다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의 이야기로 이어질 예정이다.

고 최동원 선수가 활약한 1984년 한국시리즈를 스크린에 담았다.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10년 전쯤 KBS N SPORTS에서 방영되는 <더그아웃>이라는 야구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고 있었다. 그때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가 목동 야구장에서 열렸다. 경남고 출신인 최동원 선수도 오셨지만 이미 복수가 이만큼 차 있어 경기는 뛰지 못하셨다. 건강 회복 중이라 인터뷰도 다음에 하자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석 달 뒤에 돌아가셨다. 나도 어릴 때 야구 선수였다. 최동원 선수는 워낙 존경하는 인물이라서 그때 인터뷰를 못 한 게 너무 후회되더라. 그분을 추모할 방법이 뭐가 있지 고민하다가,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니 그분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건 5년 전부터다. 유족을 만나고 영상 자료를 모았다.

아카이브가 너무 없어서 작업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가장 먼저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떠올랐는데, 1984년 당시 경기 영상을 보관하고 있지 않던가.
1980년대 우리나라에 아카이브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있었겠나. 방송국에서도 고가의 방송 테이프를 한 번 쓰고 그냥 보관하는 게 아까워서 그 위에 다른 영상을 덮어씌워 재녹화하는 식으로 제작비를 절감하곤 했다. 그래서 손실된 방송 테이프도 굉장히 많다. KBO에도 온라인 중계가 시작된 2000년대 이후 영상만 가지고 있고, 그 이전 것은 없더라.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잘 안 나오는 이유가 이렇게 아카이브가 없어서다. 차범근 다큐멘터리가 왜 못 나오겠나. 그러니 뉴스 영상에서 쓰이는 최동원 선수 이미지도 늘 같은 거다. 또 (‘야구 대표팀’ 하면) 자료화면으로 등장하는 한대화 선수의 3점 홈런, 김재박 선수가 개구리번트 장면이 1982년 야구세계선수권대회 영상인데, 사실 그 시절 야구 영상 자료라고는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이다.


<1984 최동원>에서는 당시 한국시리즈 경기 영상은 물론 사석에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최동원 선수의 모습이 담긴 희귀한 모습까지 확보했다.
최동원 선수의 사모님이 수소문 끝에 극적으로 찾아내서 보내주신 영상이 많다. 최동원 선수의 육성은 박동희 야구전문기자가 제공해줬다. 돌아가시기 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덕분에 잠실 야구장의 텅 빈 마운드에서 최동원 선수가 혼자 발을 구르고 흙을 고르는 장면에서 육성 내레이션을 쓸 수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와 벗고 있을 때의 차이를 후배들은 잘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그 장면이다. 최동원 선수 관련 영상 테이프를 17개 정도 확보했는데, 3배속으로 녹화된 2시간짜리 테이프였으니 합치면 100시간이 좀 넘었을 것이다.

당시 함께 경기를 뛴 당대의 선수들을 고루 인터뷰했다. 프로젝트 기간 총 몇 명을 인터뷰했나.
실제로는 30명 가까이 됐고 인터뷰 영상 전체 분량은 80시간 정도였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6개월 동안 앉아서 그것만 봤다. 정작 영화에는 절반 정도의 인물만 등장했는데, 1984년 가을에 열흘 동안 함께 그라운드를 뛰었던 선수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김인식 감독님을 인터뷰하고도 그 내용을 넣지 못했다. 일단 등장시키기로 한 인터뷰 대상자들은 관객이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화면에 꽉꽉 채운 익스트림 샷을 썼는데, 그분들의 얼굴을 풍부하게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야구장에서는 선수들의 표정이 잘 안 보이지 않나. 이분들을 화면에 가득 담아 놓으면 나중에 젊은 관중이 야구장에 갔을 때, 예컨대 1루수를 맡은 선수의 지금 표정이 어떨지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가 있었다.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 그 시절을 더 잘 추억하게 하는 것,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시절 이야기를 보며 즐길 수 있는 것.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연출했나. 방향성에 따라 결과물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텐데.
후자였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한 인물이 야구를 통해서 극적인 결과를 내는 과정으로 비치기를 바랐다. 그런데 시사를 하고 나니 영화가 좀 불친절하다는 평도 간혹 있더라. 그래서 스코어가 어떻게 됐다는 거지? 최동원이 몇 구를 던졌다는 거야? 이겼다는 건가? 정보가 좀 모자랐다고 느끼신 것 같다. 그런데 일일이 자막을 깔고 화면 효과로 스코어를 넣으면서 너무 많은 디테일을 한꺼번에 주면 ‘방송스러워’질 것 같았다.


방송스러워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는 방송 다큐멘터리와 영화 다큐멘터리의 차이는 밀도다. 방송은 중학교 2학년이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면 편성 자체가 어렵다. 영화는 (구성과 연출을 통해) 그 이상의 것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본래는 롯데 자이언츠가 (원정 경기를 가느라)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한다는 표시를 하면서 지도도 띄우고 여러 CG 효과를 줬었는데 결국 다 뺐다. 이미지 과잉이 아닌가 싶어서다. 조진웅의 내레이션도 절제된 버전으로 진행했다.

구성이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간순, 이닝 순으로 경기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듯한 비디오 코멘터리 느낌이 들어 아쉬웠는데.
그렇다고 경기를 역순으로 보여줄 수도 없고, 1차전 3차전, 2차전 4차전 식으로 홀수 짝수로 보여줄 수도 없지 않나.(웃음) 그래서 최동원이 (등판해) 이기거나 진 경기는 디테일하게 보여줬고 그가 아예 등판하지 않은 경기는 좀 더 빠르게 지나 보냈다. 이야기에 앞서서 관객에게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 세레모니를 먼저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때 관객에게 이 영화는 오롯하게 1984년도의 야구만 이야기할 거라는 양해를 구한 거였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사실 최동원 선수는 동료 선수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도 만들었고 직접 출마도 하면서 그야말로 직구 같은 삶을 살았다. 영화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지만, 언젠가 다른 연출가가 그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면 흔쾌히 도움을 줄 의향이 있다.


재일교포 고교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그라운드의 이방인> 프로듀서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처음 뛰어들었다. 야구를 워낙 좋아하는 것 같다.
박동희 기자가 연재한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이라는 기사를 보고 일면식도 없는 그를 찾아가 이 얘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온라인 마케팅을 하다가 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정작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랐다.(웃음) 어릴 때부터 선후배로 지내던 제작사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를 찾아갔다. 그도 야구를 정말 좋아하거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 학교>(2006)의 김명준 감독을 추천하더라. 그 작품으로 ‘자이니치’라는 존재는 물론 일본 사회도 잘 알게 됐을 거라면서 말이다. 김명준 감독은 막상 야구는 잘 몰랐지만, 피디인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서로 보완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그게 2009년 연말쯤의 이야기인데, 개봉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지.

국내에서는 2015년 개봉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라운드 이방인>은 2010년부터 제작비를 구하러 다녔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피칭 끝에 8천 만원의 제작지원금을 받았다. 촬영 대상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준비 끝에 2011년 봄부터 촬영을 할 수 있게끔 스케줄을 맞춰뒀는데, 일본으로 가기 하루 전날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다. 프로젝트가 그렇게 완전히 중단됐다. 김명준 감독은 지진으로 무너진 조선학교를 다시 짓기 위해 배우 권해효와 함께 몽당연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모금 활동을 했고 그러면서 영화 일정은 자연스럽게 좀 더 지연됐다. 2012년 봄부터 다시 촬영을 시작해 2014년 완성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한 것이다.

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지원금을 받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을 최초로 공개했다니?(웃음)
그때만 해도… 월드 프리미어 규정이 없었다.(웃음)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일본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이일하 감독의 <울보 권투부>와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일본 현지에서 90% 이상 촬영하다 보니 거기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면서 한국 감독 중에 일본 오사카에서 조선학교 럭비부 이야기를 찍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60만번의 트라이>를 공동 연출한 박사유 감독이다. 영화 작업을 한 번도 안 해본 상태에서 후반작업은 물론이고 한국 개봉도 해야 하니, 나에게 프로듀서 역할을 해주겠냐고 하더라. 당시 가편집본만 6시간에 달해서… “미친 거야?” 했지.(웃음) 줄이는 것 까진 내가 관여할 수 없으니 최대한 편집을 하고, 한국어 내레이션은 한국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권해효 배우를 통해 문정희 배우를 연결해줬다. 당시 감독이 내레이션 디렉션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내가 문정희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고 자막 교정도 직접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작품을 배급사 인디스토리에 연결해주는 일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이일하 감독의 <울보 권투부> 프로듀서 역할도 맡게 된 거다. 그때도 후반 작업 일체와 한국 배급 계약을 도맡았다.

프로듀서 역할을 수락하는 기준은 뭔가. 일을 맡고 처리하는 방식을 들어보니, 그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제안을 받았을 것 같다.
당연히 많은 제안이 있었다. 일단 스포츠 이야기면 가급적 하려고 했고 고양이를 좋아하니 고양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을 다룬 작품은 ‘관심 없다’고 했고, 통일 운동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잘 모른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나 세월호 관련 작품 제안도 있었지만 그걸 수락하면 다른 이야기는 하지 못할 것 같아 거절했다. 사회참여형 이야기는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주제인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 나 말고도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 그분들이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쪽이 맞는 것 같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프로듀서를 맡았고 <시민 노무현>은 아예 제작까지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는 ‘사회참여형’까지는 아니어도 ‘사회형’ 소재 아닌가. 그 외에 정치적 이슈를 다룬 작품에 참여한 바는 없는 거로 안다. 사회적 함의를 지닌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다룬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던가.
부담스러웠지. 하지만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왜 아무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지?” 싶어서였다. 주변에 물어보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들고 있겠거니 믿고 있거나 아직은 때가 안 됐다고들 생각하더라. 때라는 게 어디 있겠나?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야지. 그런 ‘무식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시민 노무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10주기에 맞춰 제작한 작품인데,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최초로 만들었다는 경험 때문에 일종의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영화도, 성격도 여러모로 선한 백재호 감독에게 <시민 노무현>을 한 번 연출해보겠냐고 제안했는데 ‘노무현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 그를 알아가면서 변화하는 당신의 시선이 담기는 게 다큐멘터리라고 말하면서 설득했다. <고양이 집사>(2019), <꿈꾸는 고양이>(2021)도 비슷한 방식으로 감독을 찾았다. 내가 직접 연출하기보다는 작품을 제작하거나 프로듀서 역할을 하는 게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감독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당시 무비스트 인터뷰에서 연출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나이 드니까 하루 5~6시간씩 촬영하는 게 너무 힘들다.(웃음) 근력이 부족하고 판단력도 좀 흐려지는 것 같고.(웃음) 반면 젊은 감독들은 집중력도 좋고 아이디어도 신선하다. 다만 제작비를 구하거나 섭외하는 일을 어려워하는데 그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일단 괜찮은 아이템이 있으면 가지고 와 보라고 하는 편이다. 가능성이 있으면 돈을 구해주고 (연출을 할 수 있는) 마당을 펼쳐주는 게 내 역할 아닌가 싶다.

<1984 최동원>은 직접 연출하지 않았나.(웃음)
그건,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 중에 나보다 최동원에 대해 더 잘 알고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웃음)

제작자로서, 프로듀서로서, 감독으로서 선보일 또 다른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건축학 고양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재건축하는 카페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려는 이야기다. <고양이 집사> <꿈꾸는 고양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감독 3인방이 자기 고양이와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달하는 ‘3인 3묘’ 형식의 작품도 준비 중이다. 스포츠 쪽에서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했던 선수들의 이야기도 있다. 당시 ‘각하’가 꼭 우승해야 한다고 잠실야구장까지 지어줬던 대회다. 마지막 경기는 공교롭게도 한일전이었다. ‘사회형’ 작품도 하나 있는데 아직은 아이디어 정도라 공개하기 어렵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사회인 야구를 할 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돼서 매주 경기를 나갈 수 있게 됐는데 무려 내가 가장 막내다.(웃음) 고양이 두 마리와 야구 볼 때도 좋다. 요즘 가을 야구도 너무 재미있다.

사진 제공_트리플픽쳐스 & 영화사 진



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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