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문화·예술 연대 모습으로 어떤 혐오정서를 만회하고자” <재춘언니> 이수정 감독
2022년 3월 3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일은 어때?” 이수정 감독이 묻는다. “안 하던 걸 하느라 여기저기 쑤셔 죽겠어” ‘재춘’이 답한다.

‘콜트 기타’는 기타 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범용적인 기타 브랜드다.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타 메이커 중 하나로 그 기타는 국내에서 생산했던 한국 고유의 제품이었다. 하지만 2010년 초반 회사가 국내 생산 공장을 정리하고 해외 이주를 결정, 현재는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의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때 열악한 환경에서 ‘내 것’ 같은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여 기타를 만들던 기타공들은 속수무책으로 정리해고 당한다.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그들의 투쟁은 패소를 거듭하고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2019년에 이르러서야 일부 타결 국면을 맞는다. 극적으로 노사협의서를 작성하고 재춘은 복직했으나 그렇다고 다시 기타공으로 돌아간 건 아니다. 복직 곧 퇴직, 그렇게 30년 기타공은 대전 집으로 내려가 공사판의 노동자가 된다.

이 감독은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의 복직 고공투쟁을 따라간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2012)를 시작으로 세월호를 다룬 <나쁜 나라>(2015), 다섯 노동자들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시 읽는 시간>(2016) 그리고 <재춘언니>까지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화상으로 만난 이 감독에게 <재춘 언니>에 관해 들어본다.

<재춘언니>
<재춘언니>

십여 년에 걸쳐 촬영한 <재춘언니>를 부산국제영화제(2020)에서 상영한 데 이어 드디어 개봉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긴 촬영을 염두에 뒀던 건가.

2012년에 시작할 때만 해도 콜택 투쟁의 종료 여부와 상관없이 2014년에는 마칠 계획으로 들어갔다. ‘우주최강 콜밴’이라는 제목으로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작은 지원을 받은 게 있어서 추가 펀딩으로 자금을 좀 더 조달해 2014년에 완성하는 걸 목표로 했었다. 한데 펀딩이 생각만큼 안된 데다 2014년 콜택이 중요한 재판에서 연달아 패소하면서 투쟁이 계속 이어질 조짐이었다. 그래서 기한을 정하지 않고 작업하기로 마음먹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덩달아 촬영도 길어진 셈이다.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초반의 기획 의도나 취지가 변한 점은 없나.

처음에 투쟁의 종료 여부를 떠나 작업을 종결하려고 마음먹은 건 이 다큐멘터리로 (콜택이) 투쟁하는 데 뭔가 도움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김성균 감독의 <꿈의 공장>(2010) 같은 역할, 그러니까 콜택의 투쟁을 공론화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투쟁이 길게 이어졌고, 그러다가 2019년 급작스럽게 노사타협이 성사되면서 투쟁이 종결됐다. 그때 처음으로 박영호 콜택 사장의 얼굴을 봤는데 궁금했던 인물을 비로소 대면하니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더라. (웃음) 그렇게 투쟁이 끝나고 어안이 벙벙한 느낌으로 있다가 서둘러 작품을 완성해야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기획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고, <재춘언니>는 가장 마지막 버전이다. 벼랑 끝에 내몰려 이전의 편집본을 다 버리고 새롭게 만든 버전이라 하겠다.

그 변천사를 좀 들려달라.

촬영분이 원체 많았고 그만큼 해야 될 얘기도 굉장히 많다고 느꼈었다. 주제도 처음에는 (투쟁 노동자들의) 밴드 이야기로 출발해서 예술과 노동의 만남에 포인트를 맞췄다. 그러다가 투쟁이 장기화되면서는 장기 투쟁에 초점을, 또 투쟁과 연관된 집단간의 어떤 갈등과 내막을 알게 되면서는 그 내부 갈등을 조명하려 했었다. 복잡한 얘기라… ‘콜트·콜택 투쟁’으로 통칭하지만, 인천 콜트와 대전 콜택은 처음에는 공동으로 투쟁하다가 나중에는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재춘언니>는 대전 콜택 쪽 사람들의 이야기에 해당한다.

‘임재춘’이라는 개인의 매력에 크게 힘을 받는 작품이다. ‘오필리어’역으로 ‘구일만 햄릿’(기자 주: 9일만 공연한다는 의미에서 ‘구일만 햄릿’) 연극 무대에 서고, 틈틈이 글을 적고, 당신과 주고받는 문답 사이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알겠더라.

복직투쟁 과정에서 재춘은 안 그런 듯하면서도 의외로 두뇌 회전이 빠르고 정곡을 찌르는 말을 많이 하는 인물이었다. 인터뷰도 자신은 ‘말을 못한다’며 회장 등 다른 이에게 떠넘겼지만 말이다. (웃음) 기억력도 매우 좋고, 또 현장에서는 식사 준비를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농성 천막을 오가는 이들에게 ‘밥은 먹었냐’고 ‘엄마’처럼 챙겼었다. 덕분에 여러 사람과 편하게 교류했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는 기타공의 가공되지 않은 어떤 날 것의 모습이 있었다.

재춘에게 직접 질문을 던져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고 이로써 투쟁의 진행 상황과 심정, 현실적인 사안 등을 전달한다. 당신이 왕왕 카메라에 잡히기도. (웃음)

원래는 인터뷰를 그렇게 많이 담을 의도는 아니었지만…(웃음) 촬영하면서 친해지니 툭툭 편하게 이야길 했는데 편집 감독이 이런 부분이 재미있다는 거다. 시네마 베리테(verite, 인터뷰를 통해 꾸밈없는 반응을 불러내는 것) 형식같이, 정식 인터뷰가 아닌 나와 ‘재춘’이 주고받는 대화를 담자고 하더라. 그러면서 꼭 내가 화면에 들어가야 한다고. 이전 편집본이 내가 봐도 좀 재미가 떨어지고 무거운 느낌이 강해서 관객이 좀 더 보는 재미가 있도록 나를 희생(?)했다. (웃음)

말했듯 그(재춘)는 농성장에서 늘 밥을 짓고 반찬을 가지고 와서 연대하는 많은 젊은 친구들에게 식사를 권했다. 주변에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고 돈도 없는데 거기에 가면 밥이 있으니 얼마나 좋나. 게다가 무척 맛있거든. 그렇게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사람들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다. 또 상황이 악화되어 분위기가 무거워질 때면 우리도 눈치 아닌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재춘은 그럴 때도 툴툴대면서도 질문하면 다 대답해준다.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격의 없이 대화했었다.

편안하게 주고받은 대화 덕분인지 일반적인 노동이나 투쟁 다큐에 비해 전반적인 분위기가 소프트하다.

재춘에 포커싱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때때로 삽입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혐오 정서 그러니까 투쟁하는 노동자를 바라보는 대중의 어떤 거부감이랄지 이런 걸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농성 천막 안팎으로 보이는 조끼 입고 머리띠 두른 노동자도 20대 딸을 가진 누군가의 아빠라는 걸 보이고 싶었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하나의 어떤 덩어리, 즉 편견이 낀 고착화한 이미지가 아닌 때론 툴툴거리고 귀엽기도 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친근한 모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부각했다.
 <재춘언니>
<재춘언니>

연극, 밴드 공연, 전통 공연, 종교계 등과 다양한 연대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재춘의 동료이자 해고노동자인 ‘김경봉’씨가 언급한 ‘농성 자체는 회의적이어도 그 과정에서 경험한 여러 시도와 도전은 긍정적’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그분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리해고 당하고 소송을 냈지만, 재판이 거듭되면서 결과가 뒤집히고 매우 억울한 상황에 놓인다. 너무나 원통한 마음은 당연하지만, 투쟁을 계속하는 데 있어 어떤 원한의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는 건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쟁은 이어가되 자기들을 늘 피해자의 입장에 두는 걸 좀 뛰어넘기를 바라는 마음이 쭉 있었다.

예술인과의 연대는 다른 사람, 다른 존재로서 경험하게끔 된다. 예를 들면, 베이스 담당인 김경봉 씨는 연주하면서 나름대로 멋과 기교를 부리고 또 연극배우로 무대에 올라 관객의 박수를 받는다. 피해의식이나 원한 감정에 사로잡힌 해고 노동자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그분들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역할과 다양한 관계 맺음을 통해 사랑스럽고 개성 있는 존재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연뿐만 아니라 젊은 친구들이 수시로 천막을 드나들며 도서 낭독, 그림 그리기 등의 활동을 함께 한다.

그분들이 보기엔 (자기네보다 훨씬 더 가난해 보이는) 예술한다는 젊은 친구들이 와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해준다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을 거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예술가도 별거 아니네’라면서 농담을 건네는 거지. 그분들은 자기 살길만 찾는 동료나 연대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해 일부 미워하는 마음이 있던 반면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연대하는 예술가들에 대해선 굉장히 고마워했다. 특히 재춘은 ‘이 연대해 준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투쟁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어도 미안해서라도 그만들 수 없다’고 종종 얘기하곤 했었다.

마지막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풀’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대마초로 잘 알려진 대마에 관한 이야기다. 알아보니 대마는 치료제와 기호식품 등 여러모로 효용이 있는 풀이더라.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우리가 왜 ‘금지’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고 궁금해졌다.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할수록 이런 의문이 커지더라.

더욱 흥미로운 건 대마라는 풀이 기후 위기 시대에 매우 대안적인 작물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이런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만들고 있다. 관련인을 만나 이야기를 두루두루 듣다 보니 우리나라가 (대마의) 합법화와 비범죄화를 왜 못했는지 역으로 알게 될 것 같더라. 미국이나 캐나다, 유엔에서도 대마가 마약에서 제외되고 있는 상태이고 한국도 이제는 물밑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나아가 무지하기 때문에 갖는 오해나 편견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진제공_시네마달/ <재춘언니> 스틸

2022년 3월 3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