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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간지에서 스간지로! <자백> 소지섭 배우
2022년 10월 27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터틀넥에 수염을 기른 소지섭, 그간에 보여준 터프함과는 질감이 다른 어떤 냉정하고 야비한 인상을 풍긴다. 젠틀한 매너 속에 언뜻언뜻 비추는 양면적인 모습은 언제든지 물어뜯고 뒤통수를 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경험하지 못했던 스릴러 장르에 도전해 색다른 얼굴로 관객 앞에 선 소지섭. 1995년 모델로 데뷔 후 어느덧 마흔 중반에 접어든 현재, “내게 더 이상 궁금한 게 있을까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는 소지섭을 만났다.

“불륜을 한 데서 일단 ‘그렇게 괜찮은’ 놈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읽다가 점점 빨려 들어갔어요. 설마설마하면서 보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소지섭이 <자백>에 참여한 결정적인 이유다. 다음이 궁금해지는 이야기의 힘, 그만큼 흥미로운 시나리오였다고. 이후 원작인 스페인 스릴러 <인비저블 게스트>(오리올 파울로 연출, 2016)를 봤지만, 원작과 달라진 점이 마음에 들었다. 원작이 마지막 반전을 위해 모든 요소가 오롯이 복무한다면, 큰 줄기를 가져오되 변주를 거친 <자백>은 반전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흥미로운 덕분이다. 마침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시기에 받은 캐스팅 제안이기도 했다. 시나리오의 재미는 물론이고, 함께 전달받은 윤종석 감독의 디테일한 손편지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고 한다.

“처음 유민호가 별장의 문을 열고 나올 때 누가 봐도 무죄였으면 좋겠다는 게 감독님의 바람이었어요. 저도 그랬고요.” 유민호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하자면, 능력있는 와이프와 막강한 처가를 업고 한창 잘나가는 IT 사업가다. 여기에 (말했듯) ‘세희’(나나)라는 여성과 불륜 관계였다가 정리한 참이다.

“전형적인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첫 단추를 잘못 끼어 그릇된 선택으로 점차 흑화 돼 간다고 할까요. 그 변화가 관객에게 보이기를, 그리고 유민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객이 궁금해하기를 바랐어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세희의 협박에 돈을 챙겨 호텔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어버린 민호. 깨어나 보니 돈은 그대로에 세희는 이미 죽어 있다. 문도 창문도 안에서 잠긴 상황인 완벽한 밀실 살인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나나가 타이트한 대사 등을 칠 때 전혀 신인 같지 않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려운 장면이라도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자기화하는 센스를 지녔어요. 눈이 굉장히 매력적이라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을 받았죠. 현장에서 에너지를 나눠주는 배우예요.” <자백>은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2020년에 이미 촬영을 마무리했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던 나나는 신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자백>은 소지섭에게 장르로도 또 캐릭터로도 새로운 작품이다. 본격적인 스릴러도 처음이고, 악역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악역) 시나리오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 반응이 좋으면 계속 들어오지 않을까요. 심적으로 힘든 면이 있긴 하지만, 재미있는 시나리오라면 또 도전할 것 같네요.”

심적으로 힘들었다는 소지섭,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새로운 캐릭터라 쾌감은 있었지만, 나쁜 인물이라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악몽을 꾸기도 하고, 촬영 후에도 그 감정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죠.”

“특히 제일 어려웠던 장면은 렌치로 때리는 씬이에요. 착한 캐릭터로 때리는 것과 악한 캐릭터로 때리는 건 그 결이 달라요.” 생각해 보니 소지섭이 ‘악한 놈’이었던 적이 있던가. 줄곧 정의롭거나 선한 쪽에 있는 인물을 연기해왔던 그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듯! 나쁜 마음을 품고 때린 연기의 여파가 이렇게 크다니!

눈 오는 밤, 산속에 있는 별장에 홀로 있는 민호를 찾아온 이가 있다. 바로 유민호가 사건을 의뢰한 무패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이다. 탁자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속고 속이는 진실 게임을 시작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불꽃 튀는 공방전이 시작된다.

“별장 내부 공간이 넓어 보여도 사실 굉장히 좁거든요. 답답하기도 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기도 한데 이 부분이 기싸움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오히려 넓고 쾌적하면 연기 톤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자백>의 주요 무대인 별장의 외관은 가평에 있는 실제 집을 촬영했다. 내부는 세트로 꾸몄는데 감독과 미술팀이 많은 고민과 공을 들여서 탄생했다고 한다.

소지섭과 시종일관 팽팽한 텐션을 유지한 상대역 김윤진은 소지섭의 별명을 ‘소간지’에서 ‘스간지’로 바꿔도 될 만큼 스릴러 장르에 어울린다고 칭찬한 바 있다.

“선배가 보기에 잘 어울렸나 봐요. 계속 나쁜 놈을 하라시네요.”(웃음) 워낙 베테랑이라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정말 암기력이 대단하십니다. 1시간 40분이 넘는 영화의 모든 대사를 완전히 외우고 있어요. 또 연기할 때 감정 콘트롤이 빨라서 보면서 저도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좋은 에너지를 공유한 현장이었다고 한다.

어언 데뷔 30년이 가까운 소지섭은 “내게 더 이상 궁금한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저 혼자는 힘들고요, 감독님과 다른 배우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잖아도 여름에 개봉한 <외계+인 1부>에서 전혀 색다른 얼굴을 보인 그이다. 또 영화의 규모나 역할의 비중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의견을 전한다.

소간지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멋짐’의 대명사였던 그도 가정을 이뤘고, 어느새 40대 중후반이 됐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솔직히 너무 좋아요. 연기에 있어 연륜이 쌓이고 삶에도 여유가 생기니까요. 지금 제 나이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니 젊은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기에는 나이가 있는 편이고, 선배들과 비슷한 역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황정민, 이정재, 정우성, 이병헌 등등 50대 초반의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 영화계의 상황을 보면 납득되는 대답이다. 과장하자면 ‘낀’ 세대라 하겠다.

“결혼으로 배우 소지섭이 크게 변한 건 없어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좀 변했습니다. 결혼해보니 알겠던데요. 안정감과 조금의 여유, 그리고 혼자일 때와는 다른 책임감이 생겼어요. 기분 좋은 책임감이에요.”

다작하지 않는 소지섭인데, 어쩌다보니, 올해는 드라마 <로이어>와 영화 <외계+인 1부>에 이어 <자백>까지 선보인다. 특히 <자백>은 선한 모습부터 악한 모습까지 다 담았으니 ‘소지섭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작품이다. 피프티원케이(51K)를 통해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를 국내에 꾸준하게 소개하고 있는 그이다. “찬란 대표님이 워낙 베테랑이라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어요. 제가 (실무에) 끼어들 깜냥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영화라 하시니 대표님이 들어야 할 이야기를 대신 듣는 것 같아 쑥스럽네요.”라고 공을 돌린다.

차기작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드라마가 될 것 같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소지섭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무언가 주어지면 걱정하고 고민하되, 최선을 다하는 사람 같아요. 잘하든 못하든 일단 결정하면 최선을 다합니다.”


사진제공. 피프티원케이

2022년 10월 2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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