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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가장 친절한 사랑의 행위” <탄생> 윤시윤 배우
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종교영화 <미션>(1986)인 줄 알았는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 더라!’ 윤시윤의 농담 섞인 영화 소개다. <탄생>은 헌신과 염원이 모여 조선 최초 신부가 탄생하기까지 청년 김대건의 알려지지 않은 궤적을 조명한 작품. 민영화사 박곡지 대표와 박흥식 감독, 부부의 혼신의 노력이 빚어낸 결실이라 할 만하다. 종교영화라기보다 조선시대 태동한 초기 종교인의 이야기라고, 성인(聖人)이 아닌 시대를 앞서간 개척자이자 드리머로 접근했다는 윤시윤을 만났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부터 지난 9월에 종영한 주말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의 현재까지, 유난히 어르신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윤시윤. 배우가 되기 전 개척 교회에 나오는 한 할머니를 보며 드라마의 힘을 체감했다는 그에게 연기란 가장 친절한 사랑의 행위라 한다.

조선 최초 신부인 김대건을 연기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나. 종교적, 역사적으로 의미와 상징이 큰 인물이라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사실 매우 큰 영광이다.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의 역사적 인물 중 종교인 그것도 가톨릭 청년을 맡은 건 로또와 같다고,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청년’을 언제나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꼭 하고 싶었고 부담감보다는 설렘이 컸다. 그런데 영화를 완성해 바티칸에서 상영회를 가지면서 점점 부담감이 올라오고 떨리더라.

바티칸 상영회에 관해 좀 들려 달라. 어떤 풍경일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웃음)
바티칸 내에 교황님과 추기경님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공간이 있다. 대중에게 일반적인 목적으로 개방하지 않는 장소인데 이곳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추기경과 교황님을 비롯해 성직자, 대학생 등 다양한 인종의 관객이 모였는데 그분들의 엄청난 리액션에 놀랐다. 마치 이탈리아 축구 경기에서 볼 듯한 적극적인 반응이라 신기했다. (웃음) 상영회 후 영화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이런 영화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시는데 부담감이 커지더라.

종교영화라고 예상했는데 사실은 블록버스터 더라. (웃음) 중국 국경을 넘나들고 프랑스 함대를 타고 항해하는 등 스케일이 크다. 더 놀란 건 긴 대사를 프랑스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로 소화해 낸 점이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영화 <미션>(1986)을 예상했는데 <레버런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 였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는 사료에 가까운 자료여서 이렇게까지 프랑스어 대사가 많을 줄 몰랐다. 해석과 단어 뜻을 정리한 파일을 요청해서 받았는데 프랑스어만 40장에 달하더라. 순간 이걸 외우려면 내가 끝나든가 영화가 끝나겠다 싶었다. (웃음) 농담이고, 다행히 주변에 도움받을 사람이 많아서 약 한 달 정도 연습했다. 뜻을 하나하나 인지하고 외우는 건 불가능해서 한글화돼 있는 프랑스 발음을 통째로 외웠는데 한국 사람이 발음하기 어려운 몇 가지가 있다. 이 발음을 하려고 아랫입술을 하도 깨물어서 다 부르트기도 했다. 후반부 설산에서 입술이 튼 모습이 나오는데 이때 따로 메이크업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단어나 음절에 따라 색깔과 폰트, 크기를 달리해서 시각적으로 구분했다. 이렇게 하면 마치 그림이나 판화처럼 머릿속에 박힌다.

청년 김대건이 최초의 신부가 되기까지 대략 8~9년에 걸친 시간을 담았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평소 독서를 많이 하는 거로 유명한데 자료를 좀 찾아봤는지. 김대건에게 어떻게 접근했나.
감독님께서 추천해 준 책은 모두 봤다. 남아있는 실제 사진이나 그림 자료는 없어서 여러 사람이 그린 그림에서 교집합을 찾으려 했다. 이렇게 실제와 보다 더 가까워지려고 했었다. 김대건은 유교 중심의 전통 사회에서 새로운 사상과 종교에 눈뜬 인물이다. 당시에는 죄인으로 취급당했으나 드리머(Dreamer)이자 개척자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면을 보이는 데 집중했다. 결코 종교인으로 접근해 어떤 거룩하고 성스러운 면을 부각하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연구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을까.
조선 후기는 천지개벽하는 국제 정세에 관해 극히 어두웠던 시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대건에 관한 자료를 보면 그는 아편전쟁 등을 비롯해 국제 지형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청년이 비단 김대건뿐이었을까? 조선 스스로 개화를 준비 중이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우리가 매우 객관적으로 서양과 마찬가지로 국제 정세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 좀 닳은 면이 있나. (웃음)
김대건이 세계지도를 보며 국제 정세를 읽는 장면이 있다. 사실 뭐 이렇게까지 많은 걸 궁금해할까 하는 마음으로 촬영했는데 이번에 바티칸 시사회에 앞서 일주일 동안 준비하면서 내가 딱 그러고 있더라! 새로운 세상, 미지의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학구열이 유난히 큰 편이다. (웃음)

안성기, 김강우, 이문식, 윤경호를 비롯해 외국인들까지 많은 배우가 참여했다.
신앙과 신념을 지닌 분들이 작은 역이라도 좋으니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욱더 책임감이 컸던 것 같다. 분장하거나 휴식 시간에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촬영 전에 기도하고 들어가기도 했다. 특히 경호 형님과 이런 대화를 자주 했다.

투병 중인 안성기 선생의 건재한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관객이 많다. 함께 작업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배우로서 부단히 따라가고 싶은 마음인 꿈 같은 선배님인데 드디어 만났다. (웃음) 손자처럼 재롱떨고 싶었는데 너무 추워서 말을 거는 것도 힘든 날씨라… 이런 와중에서도 먼저 편하게 하라고 말씀 주셨다. 인터뷰를 빌려서 ‘당신을 롤모델로 하는 작은 배우가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이번에 선배님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일명 오버걸린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다른 배우가 연기할 때 배경으로 신체의 일부분이 잡히는 걸 의미한다. 김대건이 세례를 받는 장면에서 선배님의 어깨와 갓이 나오는데 자세가 너무 불편한 자세라 스탭이 옆에서 잡아줄 정도였다. 사실 이런 장면은 스탭이 대신 의상을 입고 찍는 경우도 많은데 선배님은 촬영 내내 그 불편한 자세 그대로를 유지하고 계셨다. 나같이 젊은 배우조차도 예민한 순간은 합리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때도 있는데, 정말 대단하시더라.

이문식 배우는 윤시윤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다고 극찬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큰 칭찬을 해 주셔서 창피한 일이지만, 집에 가서 울컥해서 조금 울었다. 선배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가장 큰 영광 아닌가. 평소 진정성 있는 연기 투혼을 보이는 선배님을 보면서 나중에 변했다는 소리를 듣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초심을 지켜야지!

외국인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놀랐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렇잖아도 얼마 전에 꼼장어 집에서 한 번 모였는데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분이 와서 신나게 월드컵 이야길 했었다. 리딩 연습하는데 20여 명 되는 외국인 사이에 나만 한국사람이라 처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주교를 연기한 자비에 형의 경우 부모님이 아들이 성직자가 되길 희망했는데 이번에 조선에서 순교한 성직자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셨다고 한다. 건강이 좋아지면 영화를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하더라. 모두 신앙심이 깊어 자부심을 갖고 행복하게 연기했었다.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문자가 계속 와서 오히려 고맙다.

해상 씬이 많다. 풍랑으로 배가 흔들리고 추운 날씨에 파도를 맞는 등 CG로 효과를 높인 게 아닌 실제로 촬영했다고.
외부 배경만 특수효과이고 풍랑과 배의 움직임 등은 2주간 워터 캠프에서 촬영했다. 물을 채우는 데만 20분이 걸릴 정도로 어마한 물을 투입해서 찍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한 번 찍으면 10초도 안 돼서 바닥에 떨어진 물이 그대로 얼 정도였다. 스탭들이 토치로 녹여가면서 촬영했다.

마지막 순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장면이 아닌가 한다.
십자가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장면이 아닌가 한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표현하고 싶은 염원에서 출발한 장면이라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김대건이 우여곡절 끝에 사제 서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참 아름답고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잘 드러낸 장면이라는 생각이다. <탄생>은 종교영화라기보다 조선시대에 태동한 초기 종교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신앙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이야기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장면은 종교인의 화양연화가 아닌가 한다. 너무 아름답다. TMI 하자면,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은 중국 모자 쓰고 찍은 씬들이다. (이) 호원이랑 이런 모자를 쓰고도 잘 생겨 보이는 중국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또 이때 유난히 지나가는 인파도 많더라! (웃음)

긴 호흡으로 성인의 청년기를 담아냈고,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배우로서 한층 성장하지 않았나 싶은데 어떤가.
과연 그렇다. 내게 (나쁜 의미에서) 치명적인 몇 가지 표정이 있는데, 일명 꺼벙한 표정도 그렇고, 주위에서 이런 표정 좀 짓지 말라고 한다. 앞으로 다듬어 가다 보면 윤시윤이 아닌 누군가를 제대로 표현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건강한 연기를 이어가면서 궁금한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다음에 어떤 연기를 할지 기대하게 하는 배우 말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돈을 내고 일부러 보러 오는 거라 늘 무서움이 있다. 관객이 냉정한 심판자이기도 하고. 이렇게 조금씩 테스트 받다 보면 어느 순간 신뢰받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데뷔작 <지붕뚫고 하이킥>(2009) 이후 어느덧 13년 차 배우다. 그간을 돌아보면.
데뷔부터 연이어 출연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까지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는 재능이 아닌 운 덕분이라는 걸 들킬까 봐 (인기나 시청률 등) 뭔가를 지키려는 마음이 컸다. 군대를 다녀오면서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모든 게 하나의 과정이고, 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전역한 후로는 쉼 없이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종영한 주말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를 하면서 모든 사람이 공감하면서 그 안에 깨달음이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바로 주말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매번 비슷한 포맷이라 재미가 없다는 젊은 층도 있지만, 이런 드라마에 나만의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연기의 동력은 뭔가.
가족은 당연하고, 이번에도 다시 한번 느낀 부분이 연기란 가장 친절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이다. 데뷔 초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예전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개척 교회를 다녔었다. 이때 아주 고집이 센 생활보호 대상자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설교 시작하면 바로 잠이 들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지 않은 분이셨다. 이분이 유일하게 소통하고 변화하고 감동하는 게 바로 드라마였다. 이런 어르신께 건강한 손주 같은 배우로 그분들의 리모컨을 멈추게 하고, 극장을 오시게 만드는 연기를 하고 싶다. 패착은 어르신들만 유난히 좋아한다는 거! (웃음)

젊은 시청층이 주로 찾는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도 출연했지 않나. (웃음)
세 분(이선빈, 한선화, 정은지)의 에너지가 거의 태극전사와 맞먹는다. 평소 낯가림이 없는 편인데 그 열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나중에는 그분들화 돼서 즐겁게 촬영했다. (웃음) 작가님이 좋은 의미로 정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와 대사라 시즌2도 기대된다.

마지막 질문이다. 윤시윤은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
단점만 보여서… <탄생>을 찍기 전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지금도 부담감 때문에 잠을 잘 못 잔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넌 원래 그랬다’고, 친한 후배 역시 ‘형은 왜 변한 게 없냐’는 거다. 한마디로 불안하니까 연대하고 더욱더 준비하고 돌다리도 늘 두드리는 배우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좋은 동료들 덕분에 이러한 불안감을 동력 삼아 잘 건너온 배우이고!


사진제공. 민영화사

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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