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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있으면 일단 잡는다” 왓챠 <사막의 왕> 김보통 작가
2023년 1월 5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왓챠 오리지널 <사막의 왕>은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시리즈로 넷플릭스 < D.P. >로 잘 알려진 김보통 작가가 주축이 된 프로젝트다. 김 작가는 전체 각본과 1화 연출, 이탁 감독은 2~4화 연출, 이태동 감독은 5화~6화 연출을 맡았다. 각 에피소드는 SF, 드라마, 스릴러 등 각기 다른 장르를 표방하지만, 하나의 세계관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라는 황폐한 사막과 같은 인생을 헤매는 여러 군상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인가’라는 반문을 던져보고 싶었다는 김보통 작가를 화상으로 만났다. 자칭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김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막의 왕> 프로젝트의 시작은.
올해(2022년) 초 왓챠로부터 임팩트 있고 타이트한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을 제안받았다. 평소 하나의 세계관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기에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맞물려 가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여름에 촬영, 가을에 편집해서 12월에 공개했으니 번갯불에 콩 볶듯이 후다닥 작업한 셈이다. 이탁, 이태동 감독이 캐스팅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도움 주셨다.

연출은 처음인데 해보니 어떻든가.
에피소드 중 하나를 연출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1화를 선택했다. 언뜻 시청자가 제일 이해되지 않을 서사와 무드라 내가 하는 게 낫겠더라. 처음이라 아는 게 워낙 없으니 다른 두 감독이 항상 현장에 동행해 주셨고, 배우들과 스탭 모두 많이 도와주셨다. 연출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다. (웃음) 이전에는 배우의 행동이나 동선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러니까 해당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지 않고 머릿속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 직접 해 보니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표현하기) 상당히 힘들었을 수도 있겠더라. 예전에 < D.P. >의 한준희 감독이 기회가 되면 연출을 한번 해보라고 조언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알겠더라. 글을 쓰는 데 유효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작가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단편) 영화를 연출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여섯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메시지나 주제를 짚는다면.
평소 최우선 독자는 나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내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이야기에 타인도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쓴다. 이번에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 혹은 내가 느끼고 싶었던 감정은, 우린 현재 노예제도를 비롯해 신분제도가 사라진 시대에서 자유인으로 살고 있지만 과연 ‘진정한 자유인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분명히 자유의지로 직업을 선택하고 가정을 꾸리고 일상을 영위한다지만, 그 안에는 매우 많은 부분이 돈에 의해 좌우되고 있지 않나. 돈이란 원래 물물교환을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든 형태화된 가치일 뿐인데 이러한 돈이 최우선인 세상이 됐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식이 팽배한 현재, 우리가 만들어낸 도구에 왜 삶이 끌려가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더라. 물론 나 역시 끌려가는 입장이라(웃음), 이 같은 생각을 어느 정도 자조적으로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를 사막에 비유한 까닭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성이 상실돼 있는 사회라 그렇다. 평소 생명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 사막이라는 생각이다. 데뷔작인 웹툰 ‘아만자’의 경우, 주인공이 암환자인데 그의 마음속에 사막이 생기고, 그 사막의 왕을 물리치러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부터 내게 사막은 생명과 인간성의 대척점의 상징 같은 곳이 됐다. 백성도 없는 사막에서 홀로 왕인 사람인 ‘사막의 왕’이라는 캐릭터는 심지어 작가를 하기 전부터 계속 집착해온 캐릭터인 것 같다. 마치 이현세 화백의 ‘까치’ 같은 캐릭터라고 할지.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스무 살 때 어떤 애한테서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사막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도 가끔 ‘너는 내 자식이 아닌 것 같다’고 하시고. (웃음) 내가 봐도 인정이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긴 하다. 평소 방긋방긋 웃으며 얘기는 잘하는데, 먼저 연락하거나 사담을 잘 나누는 편은 아니거든. 거의 일만 하고 인간미가 없다. 그런데 바뀌지 않는 걸 어떡하냐고! (웃음)

도형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1화 ‘모래 위의 춤’은 노골적인 비유라는 시선도 있고 한편으로는 불친절한 이야기라는 평도 있다. 낯설기도 하고 그만큼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연출 시 주안점은.
우리 어머니는 평생 자영업을 하셨고 한 번도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분이다. 1화에서 의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렇게 바보 같은 회사가 어디있냐’고 하더니, 월급 620만 원이 입금되는 걸 보고는 ‘나도 (저 일) 할 수 있겠어!’ 하시더라. 그러다가 마지막 회사를 뛰쳐나가는 ‘이서’(정이서)의 선택에 그럴 수 있겠다고 공감하시는 거다. 불친절한 이야기 속에서도 원래의 의도가 통한 것 같아 조금은 뿌듯했다. 정리하면, 시청자가 공감할 지점이 이야기 속에 적어도 한 곳은 있기를 바랐다. 월급을 받고 즐거워하거나 어떤 이유로 출근길이 가벼워지는 등 극 중 인물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으면 했다. 더불어 모든 에피소드가 뚜렷한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유추할 수 있게끔 했다.

‘도형 그리기’ 발상은 어떻게 떠올렸나.
사실 가치 없는 일로 어떤 일을 할지 스탭들과 많이 고민했다. 큐브나 퍼즐 맞추기 등 여러 아이디어가 오가며 어느 순간 엄청 진지한 논의가 되더라.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거지.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 그냥 세모나 엑스 같은 도형을 그리자고 했다. 한편으로는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사람의 본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들은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고액의 월급을 받는 걸 보며 나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아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반문을 한 번쯤 해보기를 바랐다.

대기업 사장(진구), 무기력한 신입사원 ‘이서’(정이서), 어린 시절 외계인을 만난 경험이 있는 딸 바보 아빠 ‘동현’(양동근), 빚더미에 앉은 다단계 사업가 ‘해일’(이홍내), 한물간 유튜버 ‘현숙’(김재화), 정의의 용사가 되기로 결심한 공시생 ‘천웅’(장도윤) 등 <사막의 왕>에는 황폐한 사막과 같은 인생을 헤매는 여러 군상이 등장한다. 이들 중 동현의 딸 ‘서은’(박예린)만이 유일한 미성년 캐릭터다.
서은은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서은만 미성년자이고 나머지는 다 어른이라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어른이 약하고 어린 사람을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상황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면서 잊고 산다. 게다가 이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 바보나 멍청이라고 생각하며 비웃기도 한다. 이런 어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어린이 ‘서은’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얘기하며 훈훈함을 불어넣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약간의 치트키 같은 캐릭터로 극 중 가장 애정하는 인물이다.

당신을 포함해 이탁, 이태동 세 감독이 연출했는데 각본가 입장에서 각기 개성을 꼽는다면.
이탁 감독은 뭐랄까 아주 집요한 감독이다. 3화 ‘가족여행’ 에피소드에서 이홍내 배우가 처음에 사람들 앞에서 웅변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리허설만 8시간 했다고 들었다. 나 같으면 화냈을 것 같은데. (웃음) 집요한 배우와 감독이 붙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림을 위해 섣부르게 타협하지 않는 거지.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약간 통통했는데 편집을 끝낸 후에는 완전히 피골이 상접했더라. 실제로 20kg 정도 빠졌을 정도로 작품에 진심인 분이라 보면 알겠지만, 컷과 컷이 아주 쫀쫀하게 붙어있고 속도감이 뛰어나다. 이태동 감독은 굉장한 현장 전문가다. 나이는 어리지만, 20살 때부터 현장에서 슬레이트 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업무를 두루 거쳤기 때문에 현장 장악력이 어마어마하다. 의사결정, 소통, 촬영, 편집 모두 빠르고 효율적인 모습이 어느 경지에 오른 듯하다. 아주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는데 예산 대비해 때깔이 잘 나온 데는 두 감독의 공이 정말 크다. 물론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준 왓챠에도 고맙고!

< D. P. > 시즌2 등을 비롯해 차기작 계획은.
< D. P. > 시즌2는 촬영을 끝내고 편집 중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2023년 여름쯤 공개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 촬영 중인 작품도 있고, 캐스팅 단계인 것도 있어서 앞으로 3~4년은 계속 신작이 나올 것 같다. 무명이 길어서 그동안 준비해 놓은 글이 있는데 한 5년 후에는 고갈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인사드릴 수도!

무명이 길어서 생각해 둔 글이 많다고 했는데 영감의 원천은 뭘까.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것 아닌가. (웃음)
음…결핍 시기 질투? (웃음) 잘 되는 사람을 보며 질투와 시기 같은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했고, 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며 도서관과 가까이 살며 책을 많이 접했다. 꼭 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보니 책만 죽어라 읽었고 마침 고모부가 비디오 대여점을 하셔서 영화를 무진장 봤는데 이런 경험들이 글을 쓰는 데 도움된 것 같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독서를 많이 하고 영화를 많이 보면 이렇게 마흔 넘어서 빛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인터뷰 사진을 인형 탈을 쓴 사진으로 대체하고 실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처음 만화가를 시작할 무렵 사실은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었다. 필기에 합격한 상태에서 만화 연재가 결정됐었다. 6개월 연재가 끝나면 딱 3월 입학 시즌이더라. 원고료 받아서 등록금 내고 판검사가 되어 승승장구해야지 했는데 면접에서 그만 떨어져 버렸다. 처음에는 판검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뷰하며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10년쯤 되다 보니 계속 쓰는 것도 공개하는 것도 애매해졌다. 탈을 쓰지 않은 사진도 돌아다니고 있고, 하여튼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인척을 제외하고는 내 직업을 모르는 분이 많다. 대외적으로 주식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기도.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김보통은 어떤 사람인가.
별로 상관없이 사는 사람. 무슨 의미냐면 주어진 기회를 일단 잡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게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먹고 본다. 마치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 같다. 게다가 먹어보니 똥이라 해도 그 옆에 똥을 또 한 번 찍어 먹는다. 사실 < D. P. > 가 성공하며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저렇게 똥을 찍어 먹던 시절에는 이런 칭찬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찍어 먹어볼 것 같다!


사진제공. 왓챠

2023년 1월 5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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