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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웃음도 있어 숨 쉬겠더라” <라이스보이 슬립스> 최승윤 배우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한국계 캐나다인 앤소니 심이 연출한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낯선 캐나다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아들이 함께하는 한국으로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감독의 정서적인 경험이 녹아 있는 반자전적인 영화는 소풍 같은 마지막 모자의 여행 속에 아련한 그리움을 아로새겨 넣어, 공감과 감동을 전한 덕분에 ‘2023 캐나다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을 비롯해 전 세계 28관왕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첫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소영’으로 분해 극을 탄탄하게 견인한 배우 최승윤을 만났다. 안무가인 그가 첫 주연으로 외국영화에 출연하기까지 그 인연의 흐름과 인생이 준 기회에 대해 들어봤다.

#엄마 ‘소영’

미혼모 ‘소영’(최승윤)은 아이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 캐나다 이민을 선택했다. 세상에 오직 둘밖에 없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 ‘동현’(황도현)은 낯선 타국에서 거센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잡초처럼 단단히 뿌리를 내려간다. 고된 삶이었지만, 한결 안온하고 평안한 삶이 보장될 무렵 소영은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자신이 죽으면 오롯하게 혼자 남을 사춘기 아들(이든 황)을 위해 엄마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한국, 남편의 고향으로 향한다.

고아인 ‘소영’은 뼛속까지 외로운 존재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의 고독감과 외로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릴 정도였다. 소현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그 심정을 머리로 납득하는 것과 가슴으로 공감하는 건 다른 차원일 것 같다.
진짜 기구한 여성이다. 타고난 고아에 의지하던 남자를 잃었고, 국가는 혼자 아이를 키우도록 받아들여 주지도 않았다. 영화는 간략한 내레이션으로 그의 전사를 들려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영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그 시기의 문화를 찾아봤었다. 70년대 음악과 영화 등 그녀가 자라면서 접한 것들을 경험해 봤다. 정치, 사회적으로 격변기였던 시기라 당시를 훑어보며 소영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하고 이입해 봤다. 극 중 소영은 우리 엄마보다 두 살 어린데 그래서 엄마에게 ‘내 엄마가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처음으로 질문했었다. 일을 많이 해서 한이 많다는 외할머니께도 여러 가지를 여쭤봤었다.


너무 슬픈 이야기라 망설임은 없었나.
전체 내용을 모르고 ‘캐나다에 이민 간 싱글맘’ 이야기 정도로 알고 시작했었다. 처음 오디션에서 딱 두 장면을 전달받았다. 하나는 소영이 학교에서 맞고 온 어린 동현에게 ‘두 유 노 태권도?’라고 아이들에게 애기하며 세게 때리라고 하는 씬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동현이 얘들을 때렸다고 처벌하겠다는 교장 선생과 싸우는 씬이었다. 전체 내용을 모른 채 그 장면 하나하나에 충실했던 것 같다. 나중에 전체 대본을 받으니까 오히려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소영이 힘들고 슬픈 시간만 보낸 건 아니구나, 아들과 즐겁게 보내고 웃기도 많이 했구나 싶으면서 해학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앤소니 심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사안은 없는지.
감독님은 이민 2세대라 이민자로서의 한국인은 한국에서 산 한국인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내가 이러한 부분을 캐치하길 바랐다. 참고 차 LA 폭동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내주셨다.

소영이 느꼈을 이방인의 삶에 어느 정도 공감되든가.
그동안 잠깐 해외 생활을 한 적도 있고 (무용) 공연 차 몇 달씩 묵은 적도 있지만, 이때야 돌아간다는 생각에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평생 살아야 한다면 마음가짐부터 다를 것 같다. 이번에 촬영하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낯선 느낌을 처음 받았다. 공원에 있는데 주변의 사람이 모두 백인이고 나만 동양이라는 걸 느꼈고 이러한 자각이 점차 커지더라. ‘나만 다르게 생겼네’라는 자각인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청소년 ‘동현’을 연기한 이든 황은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고.
커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것도 시골은 처음이라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 됐다고 하더라. 내가 이든은 아니지만, (웃음)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입장에서 이번 한국 방문으로 어떤 정체성을 느낀 듯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촬영을 끝낼 무렵의 이든은 달라 보였다. 마치 동현의 여정을 고스란히 이든이 걸은 것 같더라.

당연히 픽션이지만,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을 텐데 어디까지가 자전적인 이야기인지 아는지.
음,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질문한 적이 있는데 인상 깊었던 부분이 ‘특정 사건이라기보다 동현이 성장해 나가는 정서적인 여정’이 닮았다는 거였다. 극 중 아이들이 ‘라이스보이’ 라고 놀리고, 학교 선생님이 외국 이름을 추천해 주는 행위 등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들었다.

소영과 동현의 마지막 여정에서 한국 시골의 노랗게 익은 논의 풍경은 정말 인상적이더라. 제목과 멋지게 부합되는 장면 아닌가!
추수가 바로 다음 주라 그때만 찍을 수 있는 풍경이었다. 노랗게 익은 논, 파란 하늘과 초록 산 그리고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까지 시공간 자체가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캐나다 스탭들이 다 들어와서 양양 농어촌 체험 숙소에서 묵으며 4일간 촬영했었다. 감독님의 한국 친척분들이 와서 직접 음식도 차려 주시는 등 마치 캠핑하러 온 듯했다.

#최승윤

다섯 살부터 시작해 대학에서 전공하고 졸업하기까지 발레는 최승윤에게 있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레를 너무 사랑하지만, 클래식 예술 세계의 경쟁과 혹독함에 힘들었던 그는 졸업 후 베를린으로 향했다.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장르와 사람을 접하고 좀 더 넓은 의미의 예술가가 되고자 했다. 컨템포러리 무용 안무가로 활동하다가 예기치 않게 픽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고, 이 인연으로 ‘소영’이라는 캐릭터를 만났다. 의도하지 않은 인연의 흐름은 앞으로 그를 또 어떤 세계로 인도할지, 차기작이 기대된다.

안무가, 다큐멘터리 연출자, 리얼리티 출연자 그리고 배우까지 이력이 다채롭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거나 의도해서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웃음) 웹드라마 <두 여자>(2016)를 하게 된 건 그 제작진이 친구라서였다. 출연을 부탁하길래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연기력이 필요한 게 아니고 평소처럼 얘기하면 된다고 해서 하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길게 텀을 두고 진행해서 덕분에 카메라 앞에 서는 일에 이질감이 없어졌다. 그러다 무용 작업하던 중 픽션 다큐멘터리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2019)를 공동 연출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고, 그곳에서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프로듀서 ‘수 킴’(기자 주: 캐스팅 디렉터로 활동 중)을 처음 만났다.

첫 주연작이 외국 작품이라 특이하다 싶었는데 그런 인연이!
그가 우리 다큐를 보러 온 것도 우연이다. 며칠간 계속된 미팅 등 꽉 짜인 일정에 시달리다 좀 쉬려고 들어왔다고 하더라. 그렇게 알게 되어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연기에 관심 있냐고 물어서 그 당시만 해도 큰 뜻이 없어서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아주 좋은 분이라 계속 연락을 이어갔다. 그즈음 <두 여자>를 연출한 친구들이 ‘최승윤 배우 만들기’라는 픽션 다큐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자고 하더라. 이게 의외로 관심을 받았고, 논픽션이라고 생각해 진짜로 (캐스팅 관련) 연락을 주는 분도 계셨다. 신기하게 생각하던 중 수 킴 프로듀서가 연락해서 <라이스보이 슬립스> 이야길 하는 거다. 뭐랄까, 주변의 흐름이 배우로 향해 가는데 한 번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디션 영상을 찍어 캐나다에 보냈다.

오디션 후 바로 캐스팅된 건가.
처음 영상을 보낸 후 한 네 번은 더 본 것 같다. 심 감독님과 (화상) 대화를 많이 나눴고, 감독님은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다지만, 생초짜 배우라 제작진과 투자자를 설득하고 확신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더라. 프로듀서까지 모두 참석한 마지막 오디션을 치르고 대략 2달 준비해서 캐나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3주, 한국에서 4일 촬영했다.

작업해 보니 앤소니 심 감독은 어떤 분이던가.
화상으로 처음 만나서 첫 느낌을 얘기한다는 게 애매하지만, 처음 콜백 받고 한 시간 반 정도는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 스타일인 듯하다. 배우의 능력치를 검증하기보다 사람으로서의 배우를 살핀다는 인상을 받았다. 촬영하면서도 배우가 잘할 수 있도록 그 기량을 최대한 펼칠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모두 나에겐 첫 경험이라 비교 대상이 없긴 하다. (웃음)

외국 촬영에 힘든 점은 없었나.
대학 졸업하고 약 1년간 베를린에서 머물며 무용 공부를 한 경험도 있고, 또 공연 때문에 외국에 체류한 경험이 많아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코로나 시기라 비자 받고 캐나다와 한국 양쪽에서 격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격리하는 동안은 감독님 어머님이 정말 잘 챙겨 주신 게, 한국 반찬을 직접 만들어 숙소에 넣어주곤 하셨다. 인디 영화라 규모가 크지 않아서 다들 손발이 척척 맞고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라 덕분에 편안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배우 ‘최승윤’을 스크린을 통해 접한 느낌은.
처음 내부 시사를 하는데 정말 나만 보이더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왜 저렇게?’ 이런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거슬리는 지점이 많았다. 그렇게 한 세 번 보고 나니 영상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 생겼다. 그제서 내가 아닌 ‘소영’이로 보이고, 이야기를 따라가겠더라. 배우라는 게 참 재미있는 직업인 이유는 자기 안의 거리가 생기기 힘든 예술 매체라서 그런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게 배우는 자기 자신을 보는 것 아닌가. 내가 아닌 소영으로 보이기 시작한 때부터 내 얼굴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물, 한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고 느꼈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무용 공연은 조만간 시작하고, 영화는 지금 오디션을 보는 중이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건 없다. 이번에는 굉장히 슬프고 가슴 저린 엄마였으니, 다음에는 시트콤 같은 코미디나 재미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계획을 미리 세우기보다 선착순이라고 할지, 그때그때 (마음이) 동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편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이 앞으로 또 어떤 기회를 주지 않을지!

마지막 질문이다. 최승윤은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는 박스 안에 가두고 싶지는 않지만, 다만 노력하는 부분은 있다. 솔직한 사람이 되는 거다. 좋은 일은 물론이고 나쁜 일에도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솔직과 용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단어다.


사진제공. 판씨네마㈜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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