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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는 사회를 보는 우리 취향의 퍼레이드판!
2006년 9월 9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어쩌면 산모의 마음처럼 동구를 출산하기 위해 10년 동안 창작의 진통을 겪었을지 모른다. 아니, 자신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이야기가 스크린 안에서 미묘한 다름을 보일 때, 동구만큼은 제 손으로 키우고 싶다고 어쩌면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시나리오 작가로 오랜 시간 짝패를 이룬 이들이 여자가 되고픈 소년 동구를 앞에 세워서라도 하고팠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지나는 외모와 달리 그들의 이야기는 묵은지만큼 맛깔났다.

성적 소수자인 동구가 차별을 극복하고 천하장사가 된다는 무난한 스토리인지 알았다. 그래서 학교생활이 많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가족얘기이더라.
이해영(이하 해영): 일단 학교생활이 많이 나올수록 얇디얇은 청춘물이 될 거다.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학교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게 사실 한정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쌍둥이가 등장하는 것과 종만(박영서)이가 지각처리를 해준다는 상황이 학교생활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치의 드라마라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1~2씬으로 처리했던 거였고 그 외에는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 거고.
이해준(이하 해준): 여자가 되려는 남자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가족얘기와 사회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 뭔가를 이기고 여성을 획득할 것인가가 이 영화의 본질인데 그 무언가를 이기는 그 무언가는 결국 사회와 계급 그리고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족체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 거다.

결국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어 그걸 가장 잘 드러내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뜻인가?
해영: 보통 보수적인 사람들의 시각에선 이런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기중심적인 사상 때문이다. 또래의 아이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또한 역시 성기중심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살면서 평생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달고 나왔으면 값을 해라, 달린 놈이 이게 뭐냐, 이런 말일 거다. 남자가 남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걸 강요받는 게 성기에 대한 값이다. 모든 사고와 교육이 그렇게 되어 왔기 때문에, 계속 말하자면 성기를 벗어나 성기를 빼고 다른 것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거다. 성기를 딱 두 개로 나눠야 굉장히 편안하게 법적인 사상, 교육이 그대로 먹혀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걸 벗어난 동구 같은 아이는, 이 사회에서는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배타적일 수밖에 없고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집착하는 성기에 대한 것을 홀가분하게 벗어버리는 게 중요했다. 그런 맥락에서, 여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의 성기로 상징되는 샅바를 차고 씨름을 한다는 것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고 봤다. 결승전에서 동구가 주장의 샅바를 놓는 건 그래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이다. 앞의 샅바 이미지는 고속으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저속으로 한 번 더 보여줬던 거는 그걸 완전히 놓는 순간이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해준: 영화 속에서 ‘샅바를 잡아라, 샅바를 꽉 잡아라’는 대사를 의식적으로 계속 썼다. 샅바를 꽉 쥐는 모습을 그 전까지는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기는 순간에는 되레 샅바를 놓는 지점에서 이긴다는, 상충되는 고런 지점들을 찾고 싶었다.

동구가 샅바를 놓는 순간 주장은 동구 입술 위 점을 보고 게임에 진 거라고 해석했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예쁜 여자 지나가면 남자들이 뒤돌아서서 힐끗 쳐다보는 것. 주장이 동구의 여성성을 보고 넋이 빠져 졌다고 생각했다.
해영: 그래서 (무비스트 최초평가)흥행성13%가 비였구나(하하) 마지막에 점과 털이 중요했던 거는 동구의 지향점이 마돈나 점에 있는데 그 지점에 난 털이라는 게 동구에겐 콤플렉스다. 동구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가 이기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해주는 건 아버지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나 보수적인 사회를 넘어섰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물론 털이 코미디 요소로 쓰이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드라마 맥랑 상으로 볼 때 미워하고 혐오했던 신체의 일부분이 아주 정적인 한 순간에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이유가 된 그 순간이 중요했다.

언론시사회 당시,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로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갈등이 있고 장애가 있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극복한다는 이야기구조는 대중적임이 분명하다. 대중성에 대한 나름의 변이 있을 것 같다.
해영: 대중성의 획득에서 제일 큰 거는 성기다. 쉽게 대중성을 얻는 방법 중 우선 코미디였다. 그리고 감동이 만약에 있었다면 그걸 구현하는 건 사람의 진심이다. 그걸 뺄 수는 없다. 사람들은 평소 갖고 있는 편견으로 어차피 이 영화를 볼 거다. 하지만 담보할 수 없게 만드는 진심은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아이의 진심이 아주 작은 해결을 보일 때 결국에는 대중적인 감동과 어떤 포인트가 생길 수 있다. 이게 이야기의 완결성이며 동시에 대중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준: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코미디의 방식이라는 게 특수한 상황에 주인공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게 되고 우연치 않게 그걸 설파해 하는 과정을 관객들이 주인공의 입장에 서서 생겨한 어떠한 것들을 설파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면 <쉘위 댄스> <반칙왕> 이런 유의 영화들이 관객들이 공감하기 쉬운 패턴이다. 말하자면 주인공의 입장이 되기가 일단 쉬운 거다. 그 주인공의 입장에서 생경한 단계들을 밟아가면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생기니까 또 그걸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들이 다형적인 화법일 수밖에 없다. 우리 영화도 마찬가지로 그런 라인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장르를 대중적으로 풀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지점들이 생겨난 거다.

방식에 있어 대중적이었다고 말하는데 결국에는 동구의 가족은 해체됐다. 아버지는 동구를 안 보겠다고 하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대중성은 가족이 화합할 때 더 용이하게 획득되지 않는가?
해영: 거기에는 우리 취향도 반영이 됐겠지만 무엇보다 여자가 되고 싶은 아이가 여자가 된다는 것은 가부장시스템 내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기존의 가부장제를 깨부수고 새로운 무언가를 얻어야만, 예를 들어 투쟁하고 쟁취해야만 여성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단 아버지를 버려야 한다는 게 제일 첫 번째다. 버려야만 모계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구조들이 삭제가 되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강요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요구되는 것들에서 벗어나야지만 홀가분하게 (동구가) 온전한 자아를 찾아나갈 것이다. 결국엔 이 가족이 해체되면서 동구에게 대안가족이 생기는 구조로 영화는 나아간다. 주장이 혼자 운동하고 있는데 동구가, 지긋지긋하게 당신 같은 사람을 잘 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건 주장을 향해 한 말이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한 말로 봐야 한다. 알고 보니 주장은 단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만 보자면 동구와 닮은 아이였다. 결승전에서 동구가 주장을 이기고 난 후, 에필로그 공연을 보면 동구를 온전한 여자로 인정해주는 세윤이가 있고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발전적인 새로운 아버지 상을 보여주는 주장이 있고,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자가 된 동구가 있다. 이 사람들이 이 영화가 끝난 다음에 어떠한 형태로 살아갈 것인가? 가족이 완전히 해체된 상황에서 어떠한 대안이 그 속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주장이 발전적인 아버지상을 상징하는 캐릭터인지는 몰랐다. 대부분 백윤식 선생이 연기한 씨름부 감독을 동구의 대안 아버지로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씨름부 감독은 시종일관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치 동구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함부로 터치하거나 의견을 내놓을 수 없다는 두 감독의 태도 같기도 하고.
해준: 이야기가 좀 풍성해지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3자의 시선도 있으면 좋겠다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생각했다. 영화 안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관조하고 있지만 뭔가를 다 아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에 씨름 결승전을 앞둔 두 사람에게, 행복이 뭔지 알아? 이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 장르영화에선 두 소년이 빨리 결승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딱 보고 영화는 그걸 몰아줘야 하는데, 뜬금없이 행복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건 위배되는 측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이 승패만을 생각할 때 영화가, 어느 한 사람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승패와는 좀 다른 얘기를 해주길 원했던 거다. 그런 다양한 시선들이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씨름감독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설정했다.

그렇구나... 이 영화가 새롭게 보인다.
동시에: 하하하~
해준: 아까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아버지하고 헤어지는 게 나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혈연관계이니까, 아버지이니까, 아버지와 아들이니까 서로한테 상처를 주더라도 그래도 어떻게! 우린 혈연관계이니까, 그래도 어떡해? 지지고 볶고 살아야지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관계는 헤어짐으로써 훨씬 더 해피하고 더 즐거울 수 있는 관계가 있다고 분명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마다의 관계가 다 다른 건데, 왜 아버지와 아들이니까 같이 무조건 살아야 된다는 식으로 강요하는지. 뭐 이런 측면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구의 삶만큼이나 아버지의 사회적 관계, 인생을 영화 안에 비중 있게 다룬 건가?
해영: 아버지에 대한 설정은 처음 단계에서는 (영화) 앞부분까지만 있었다. 동구의 라인을 만들어 놓고 상대적으로 아버지를 맞추길 시작했다. 아버지가 동구의 돈을 날릴만한 합의가 필요한 어떠한 폭행을 저지른다는 거기까지만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체 아버지는 누굴 왜 때렸을까? 이게 단순히 술 먹고 그냥 누굴 때린 건가? 이유 없는 폭력이었다면 아버지한테 논리가 안 생긴다. 아버지의 입장이라는 것도 얘기할 수 없게 되는 거고. 아버지가 이렇게 피상적인 캐릭터가 돼버리니까 결국에는 동구의 드라마에 힘이 덜 갈 것이고. 그렇다면 동구가 아버지를 던질 때의 그 어떤 확장되는 느낌이 굉장히 축소가 될 거고. 그래서 아버지가 폭행한 이유를 하나하나 역으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개자식 같은 아버지도 사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었던 거다. 동구 못지않게 살기 위해 투쟁하면서 말이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 캐릭터가 완성돼간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자고 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하게 됐는지? 굳이 왜 씨름이었는지 궁금하다.
해영: 동구가 여자가 된다는 뜻은 타고난 몸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다. 가장 여자다운 여자가 되기 위해서 마초들의 스포츠인 씨름을 통해서 그걸 딛고 여자가 된다, 라는 그 맥락자체에서 재미가 생긴다. 하지만 무엇보다 몸을 이만큼 쓰는, 이렇게까지 사내들끼리 벗은 몸을 부딪치면서 살이 부대끼는 스포츠는 어디서도 보기 힘들다. 몸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몸의 투쟁기를 가장 확실한 비주얼로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해준: 또 하나의 욕심은 초고 시나리오를 처음 딱 읽어보고 사람들이 한 가지 오해했던 게 굳이 씨름이어야 하느냐이었다. K1 이런 걸로 바꾸면 안 되냐고 잠깐 말씀들을 하셨는데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는 문제다. 우리도 씨름이 그닥 흥미로운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근대 영화적으로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이야기 할 거리도 더 풍성해지고 말이다. 소재에 대한 부담보다는 스포츠영화를 하는데 있어서 이 이야기가 스포츠영화 맞느냐라는 부담감이 사실 더 컸다. 매번 똑같은 스토리가 펼쳐질게 뻔한, 스포츠영화를 답습할 건가에 대한 부담감은 오히려 한 번도 영화상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씨름이라는 스포츠를 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보여주면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이용됐다.

애초 시나리오에는 동구가 키도 크고 덩치가 좋은 소년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류덕환은 실제로는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지 않았는가? 동구 역 캐스팅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해준: 처음 시나리오 상에서는 180이 넘는 거구의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무조건 찾아야 한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에 남자들이 소위 말하는 여성연기를 한다는 패턴들이 워낙에 뻔하지 않은가. ‘어머머~’로 대변되는 연기들을 이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겠다, 라는 결심이 있었고 그런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여성성을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걸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목소리였다. 섬세한 목소리가 필요로 했고 동막골에 나온 류덕환을 보는 순간, 이게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봤더니 키를 떠나서 너무 왜소한 거다. 당시에 51kg정도였으니까 황당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 목소리가 우리한테는 유일한 탈출구, 유일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모든 단점들을 걷어내고 선택하게 됐다.

성적소수자의 얘기는 공적으로 애기할 때 예민한 문제가 한두 가지 걸리는 게 아니다. 더구나 대중영화라면 관객을 설득하고 동일시를 일으키는 것조차도 어려운 문제다. 잘못하면 경박하게 그려질 공산이 크기 때문에 말이다.
해영: 트랜스젠더들을 보면 자기가 왜 여자인지에 대한 이유가 사실 없다. 계기도 없고. 그게 그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매우매우 기본적인 존재론적인 갈등이나 외부에 나의 이런 성향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이 사회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과 같은 외부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사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어떤 외부적인 것이 없더라도 여자라고 자신을 인식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확실한 확신이기 때문에, 예를 들면 동구가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그걸 찾아간다거나 그걸로 갈등하거나 이런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건 영화가 해줄 수 있는 몫이 아니다.
해준: 그거는 그 차이를 이해하는 방법이 없는 거니까 그들도 모르는 거다. 그러니까 이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인 문제라고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리적인 문제에서 이유를 찾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조금만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고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니까 자꾸 이유를 찾게 되는 거다. 근대 그거는 그들도 모르는 거다. 너는 왜 그렇게 생겼니? 라는 질문과 같다. 내가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이렇게 생긴 게 당연한 건데, 이렇게 생긴 이유를 대라는 것은 굉장한 폭력이다. 영화상에서 달리 설명할 방법도 없었던 거였고.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자신이 여자님을 깨닫거나 여자가 돼야겠다, 라는 동기를 넣어볼 생각은 없었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동시에: 전혀 없었다.

해준: 내가 이렇게 생겼잖아요. 영화상에서 그렇게 생긴 이유를 만든 것과 같은 거다.

일반적인 관객들은 인과율이 드러나는 명확한 구조를 좋아한다. 동구의 다름을 인정하긴 위해서는 영화적인 인과율이 있었다면 좀 더 대중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해영: 초입에 매우 짧지만 지나가는 그 이미지가 얘는 진짜 이런 애구나,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부분이니깐 심정적으로 동구는 어렸을 때부터 원래 그런 애였다는 정도만 우리가 전달해주면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거 외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해준: 그걸 정신병리학 적으로 설명하면 되게 웃기는 짓이다. 만약에 이 영화가 동구가 여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를 댈 수만 있다면 노벨 심리학상, 이런 상은 없겠지만 받을 만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만큼 이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이유를 자꾸 갈구하는 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조차에게도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는 거고 그건 굉장한 폭력이라고 본다.

결국, 관객은 마음은 여자고 몸은 천하장사인 동구를 무방비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해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이 영화의 초점이다.


동구는 혼자 알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깨닫고 그렇게 성장해나간다. 알아서 혼자 성장하는 아이다. 그래서 그 또래의 친구들과 달라 보인다. 꿈을 매일 바꾸는 종만이와 비교했을 때 그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해영: 말하자면 그렇다. 종만이가 동구에게 ‘너는 좋겠다 꿈이 있어서’ 이런 식의 얘기를 한다. 그런 꿈이 동구의 입장에서는 정말 화가 날만한 이야기가 되는 거고. 종만이란 친구는 어떤 면으로 보자면 소수자고 동구도 물론 마찬가지고.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맞닿길 원했다.

3명의 씨름부원들의 적은 대사와 건장한 체구에서 나오는 남성성의 대비도 그런 의도였나?
해영: 일종의 조연이 구가하는 유머고 일정의 우리 취향이 반영된 캐릭터들이다. 원했던 건 얘네 3명이 한 덩어리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처음 등장이. 동구의 관점에서 볼 때 무생물적이고 험악하고 무서운 무리로 그려져야 한다고 의도했다. 이야기기 진행될수록 한 명씩의 개성이 조금씩 드러나서 좀 이입이 되는 구석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게 원래 계획이었고. 사람의 첫 모습만 보고 편견을 갖고 판단을 했지만 결국엔 알고 보면 종만이도 그렇고 다들 진심이 있는 사랑스러운 녀석들인데 뭐, 다들 알고 보면 이렇지 않나? 하는 그런 흐름으로 가고 싶었다.

동구의 남다름을 받아들이는 주변 캐릭터의 조화에 대해 남다른 고민이 있었을 듯하다.
해준: 동구가 생전 처음 해보는 씨름부에 들어오고 덩치들 입장에서도 이런 애는 생전 처음 이상하게 생긴 오가 들어온 거다. 일단 여기서는 씨름이 중요하다. 처음엔 전혀 융합이 될 수 없는 관계의 지점에서 이들이 어떻게 뭉쳐질까에 대한 고민은 동구가 덩치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덩치들은 동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봤을 때, 씨름이 아닌, 춤이 그 매개 역할을 한다. 춤을 통해서 서로 알아가는 지점들이 생기길 원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 일본풍의 영화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기자도 그렇게 느꼈다. 웃기다가 갑자기 심각한 장면으로 전환되거나 정적인 장면으로 순간 카메라가 인물을 잡고 있다. 썰렁하다고 할까? 정확히 말하면 여백이 느껴졌다.
해영: 이것도 정서에 대한 이야기인데 마냥 즐겁고 유쾌한 해프닝으로 그리게 되면 아버지를 넘기는 그 순간의 진폭이 약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가 되기 위한 씨름투쟁기도 물론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 영화에서 비주얼 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 방점이 찍혀야 하는 부분은 결승장면보다 아버지를 넘기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를 넘기는 그 순간의 진폭을 굉장히 크게 하려면 유쾌한, 말하자면 화사한 청춘들의 해프닝 속에서 현실을 자꾸 환시시킬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사실 이거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씨름부의 이야기들은 매우매우 영화적인 아주 인위적인 코미디인데 이런 것들을 즐겁게 보다가 중간 중간에 현실을 환기하는 건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삶도 있지만 현실은 사실 이렇다. 그 척박한 현실을 끊임없이 주지를 시켜야만 동구 아버지를 넘길 때 시원한 느낌이 커질 것이고 그게 결국 동구의 성취와 연결되는 가장 큰 고리가 될 방법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말했다시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소수자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형식을 취했던 거다.
해준: 일본영화와 비슷하다고 말했죠? 이거는 여기저기 다닐 때마다 하는 얘기인데 일본영화 같다고 판단했다면 별로 우리도 할 말은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우리 입장에서 일본영화스럽다는 거는 우리 취향이기도 하다. 썰렁하고 퀭한 코미디가 우리 취향인데 그게 일본풍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런 휑한 유머는 세계 각처의 영화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감성이다. 영향을 받았다면 웨슨 앤더슨(로얄 테넨바움,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생활 등을 감독함) 식의 코미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묘사를 한 건데 일본영화에서 많이들 봐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무튼.

난 그저 인물을 잡는 카메라가 기타노 다케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말을 꺼낸 거다.
해영: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하는 것 역시 그가 구사하는 코미디 취향이 맞기 때문이다. 기타노 다케시 영화를 보면 찌질이들이 나오는데 다케시는 그런 못난이들을 굉장히 따듯하게 바라본다. 기타노 다케시 본인은 정작 굉장히 마초이긴 한데 이렇게 따뜻한 마초는 정말 처음 봤다. 그 사람이 갖고 인간을 보담는 입장이나 자세들이 적용됐다면 적용될 수도 있다. 씨름부 캐릭터를 그릴 때, 다케시를 염두에 두진 않았는데 늘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기에 그런 정서에서 일정부분 통했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덩치 세 명을 모아 놓고 보면 사회적으로는 그들 역시 비만아들이기 때문에 소수자다. 그런데 우리는 그 친구들을 생기 있고 귀여운 애들로 그리려고 했다. 만약에 닮아 있다면 사람을 따뜻하게 보담으려는 자세가 닮은 거다. 단순히 그 사람의 화법을 어떻게 했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영화도 그렇고 함의하고 있는 이야기도 그렇고 결국 취향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럼 두 사람의 취향은 이번에서 제대로 맞은 건가?
해준: 다른 사람이니까 취향이 완벽하게는 일치할 수는 없다. 근대 최소한 이 영화에서만큼은 우리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취향의 퍼레이드 같은 영화이자 페스티벌인데 그것이 맞았기에 연출까지 가능한 작업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연출하고 싶다, 연출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했던 것도 우리 취향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싶어서였고. 사실 두 사람의 취향이 일치된 부분이 있어 구현 가능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어느 한 쪽이 더 세서 한쪽의 취향으로 밀고 나간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취향이 버물린 영화 맞다.

류덕환군이 감독이 2명이다 보니 연기자 입장에서는 두 감독의 의견을 다 수용하기 힘들어 딱 중간적인 1.5의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
해영: 이간질을 시키네. ㅋ
해준: 워낙에 시나리오 작업할 때부터 늘 부딪쳤었고 늘 무언가 문제가 생겼었고. 현장에서도 거의 비슷한 정도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되면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이 영화가 요구하는 최선의 궁합이 있기 때문에 오케이 컷을 내리고 오케이를 정할 때 어렵지 않더라. 물론 감독이 둘이어서 덕환이가 얘기한 것처럼 배우 앞에 놓고 서로 A, B를 이야기 했을 때가 있긴 있었다. 그럴 때는 덕환이처럼 1.5를 취하거나 아니면 A, B를 둘 다 찍어보거나 아니면 둘이서 A, B를 만들거나 했다. 융통성 있게 자유롭게 그때그때에 따라서 촬영을 진행시켰다.


<신라의 달밤> <품행제로> <안녕, 유에프오> 등, 충무로에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 당시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한 기사들도 봤다. 그런데 원래부터 감독도 겸임할 생각이 있었던 건가?
해영: 감독이 먼저는 아니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먼저였다. 감독을 이번 영화로 하게 된 것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이야기의 정서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건, 이런 정서를 갖고 사람이 연출하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다른 사람은 분명 다른 취향이 있을 테니까 연출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생길 거다. 우리의 시나리오와는 (정서) 다르게 말이다. 그냥 이걸 취향대로 밀고 나가자 해서 연출까지 하게 된 거다.
해준: 이게 완벽히 장르적이고 어떤 장르의 공식대로 완성도만 추구하면 되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구의 하나하나의 표정과 말투 뉘앙스까지 중요하다. 덩치들이 보여주는 유머코드도 어디서 얼마큼의 말을 주고 빼느냐의 따라서, 이 유머가 적당량을 발휘하느냐의 게임인데 그거는 우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시나리오가 그걸 다 말해주는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이거는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게 된 경우다.

시나리오 작가로도 충무로에서 인정받고 있는 두 사람이 영화감독까지 했으니 모두들 두 사람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 한다.
해준: 그럴 걸 물어볼 때마다 난감한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금 아무 계획이 없다.
해영: 어차피 감독을 목표로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든 게 아닌 것처럼 그리고 공동작업을 10년 넘게 같이 하고 있지만, 공동작업을 10년 넘게 하자라고 시작한 작업이 어차피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도 공동 작업이 목적이랄지, 혹은 작가와 감독이 목적은 아니다. 늘 아이템을 쫓아온 거였고 지금도 아이템이 중요할 뿐이다. 다음 작품의 아이템이 만약에 둘 다 하고 싶은 거라면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이고, 나는 하고 싶은데 이 친구는 하기 싫다면 혼자 하는 거고.

지금까지 공동작업을 했는데 사람이 두 사람이라고 해서 두 배의 값을 주는 것 아니잖은가? 그러니 돈 때문이라도 각각의 길을 갈듯한데...
해영: 음... 페이 때문이라도..
해준: 두 사람이기 때문에 2배로 주지 않고 어차피 커리어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에 말하자면, 우리랑 비슷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사람에 비해 우리는 늘 반만 갖고 가고 있다. 엄밀히 따져 돈을 만약에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진작 결별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원래 돈 없이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돈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두 사람이 결코 가난하게 보이지 않는다. 부티난다.
해영: 오늘 메이크업해서 그런다. (하하) 농담이다 농담!

이 영화는 아이러니로 충만한 작품이다. 제목부터 그 포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마돈나는 마돈나인데 왜 천하장사 마돈나인가? 남성의 상징과 여성의 공격적 성향이 묘하게 결합된 제목이다.
해영: 사실 마돈나가 여성스러운 여성기긴 보다 남성스러운 여성이잖은가. 말하자면 여전사의 이미지다. 그렇다면 동구는 어떤 여자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여자가 바람직한 여성상인가를 고민 할 때, ‘천하장사 신사임당’이라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신사임당 말하자면 정숙하고 수위 사회적으로 여자다운 여자라고 일컬어지는, 엄밀히 따져 여자들이 욕망하는 여자가 아니라 남성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요구되는 바람직한 여성상일 뿐이다. 동구가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거다. 동구 엄마의 대사처럼 앞으로 많이 싸우고 살아야 할 텐데 그러려면 동구는 순종적인 여성상은 분명 아니라는 거지. 여전사가 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쟁취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근육질 여전사를 만들고 싶었고 그 모델이 마돈나였다. 천하장사는 샅바로 상징되고 마돈나는 란제리로 상징이 되는데, 마돈나가 내놓았던 아주 훌륭한 담론 중에 하나가 성담론이었고 결국 그건 성기에 대한 메시지다. 마돈나의 노래 중에 여자의 음부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라는 가사처럼 마돈나는 성전복을 이뤘다.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천하장사의 샅바가 있다면 마돈나에겐 딱딱하고 공격적인, 무기화 된 여자의 유방이 있고, 이 두 개가 적절히 출동하면서 어떤 시너지가 생겨 버렸다. 마돈나가 왜 마돈나인가는 결국 딱딱한 가슴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여자의 가슴이라는 건 남자들에게는 크고 부드러워 모성을 상징하는 거였는데, 마돈나는 역으로 가슴을 무기로 만들지 않았는가. 마돈나의 상징은 자신의 주체가 되어 자기 성기를 확실하게 내보일 수 있는 그러한 힘에 있다. 그 이미지가 동구가 여자가 되는데 있어 훌륭한 제안점으로 작용됐다.
해준: 에필로그 장면인 동구의 콘서트 장면에 대역을 쓰실거죠?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동구는 뚱뚱하니까 쭉쭉빵빵의 대역을 쓸 거라고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묻더라. 백윤식 선생님이 시사회를 본 후, 살 빠진 류덕환군을 보고 쌀을 빼갖고 에필로그를 찍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했는데 우린 그 모든 얘기가 다 가당치 않은 얘기라고 생각한다. 동구가 고생고생해서 얻은 여성성이라는 게 고작 남성중심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이라면 너무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고. 남성이 요구하는 쭉쭉빵빵의 여성상, 그러한 겉모습은 동구 엄마가 얘기했듯이, 예쁨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에 위배된다.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설파하는 영화에서 뚱뚱한 여자가 된 동구가 무대 위에 나와 인사하고 노래해야하는 것들은 당연히 보여줄 필요가 있고 필요했다.

여자가 되기 위해서 천하장사가 되는 동구를 보고 남성성을 인정받고 여성성을 얻는 구조 또한 마찬가지로 뭐라고 표현 못할 기분을 안겨주더라.
해준: 남성성을 인정받는다는 표현보다 우리는 남성성을 이기는 거라고 표현하고 싶었던건데...
해영: 남성성 극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결승전에서 점과 털이 중요했던 거다. 그리고 거기서 이기고 나서 덩치들 위에서, 꼭대기에서 세레모니를 할 때 샅바를 머리에 두르는 것 또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원래는 락커룸에서 혼자 거울보고 샅바를 둘렀는데 결국에는 당당하게 남자들의 꼭대기에 앉아서 한다. 그거는 남성성을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남성성을 극복하고 여성성을 매우 자유롭게 내보이는 순간이다.

미처 몰랐던 부분이다. 얘기를 들어보고 그 장면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마돈나가 동구에게 여성성의 어떤 영향을 줬는데 반해, 엄마에게는 영향을 못 받은듯하다.
해준: 너무나 명확하게 동구에게 영향을 주지 않나?
해영: 동구가 나는 정말 못생긴 여자가 될거야라고 말하자 엄마가 말을 받아서 엄마는 옛날에 예뻤는데 살다보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고 답해주는 부분만 보면 알 텐데. 어머니의 영향이 쾌 크다. 아버지한테 커밍아웃할 때 어머니의 옷을 입을 정도다.
그게 엄마 옷이었나? 엄마(이상아)가 그렇게 말랐는데 뚱뚱한 동구에게 그게 맞다니 전혀 매치가 안 된다. 엄마 옷이 맞다는 설정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해준: 늘어나는 소재다!

취재: 2006년 9월 9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사진: 2006년 9월 9일 토요일 | 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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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ka458
잘 읽었습돠~ 마지막 질문은 진따로 웃기네요 최기자님 말이 맞아요.늘어나는 소재라고 주장하는 감독님모습이 상상돼서 ㅎㅎ;;   
2006-09-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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