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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차 한 편의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 인터뷰
2016년 6월 10일 금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동생은 누나를 탐했고 아빠는 딸을 탐했다. 그래서 미쳤다(<올드보이>). 신부는 친구의 아내를 탐했다. 그래서 미쳤고 결국 죽었다(<박쥐>). 이모부는 조카를 원했고 사기꾼은 미끼를 사랑했다(<아가씨>). 누가 미치고, 누가 죽을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캐릭터는 금단의 사랑을 갈망하고 이는 기존의 질서를 탈주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포착하는 박찬욱 감독의 시선은 사뭇 날카롭고 집요하다. 통상적이고 상식적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을 낱낱이 찢어발겨, 관객 앞에 던져준다. 그런데 이 사람, 그렇게 비틀린 영화를 만드는 박찬욱 감독은, 너무나도 온화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오히려 퍼즐 같아서, 인터뷰조차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가씨>는 영국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이다. 이 소설의 어떤 부분에 매혹됐나?
소설의 1, 2부가 좋았다. 덧붙여 애기하면 2부 중간에 숙희가 집에 도착하면서 1부의 장면이 반복된다. 우리는 숙희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것도, 히데코와 백작이 사기를 치려 짜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한 가지 사건을, 인물의 시점만 달리 한 채 보여주는 거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하나 보다(웃음). 다른 시점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는 영화. 퍼즐 같지 않나? 부분적인 진실만 알고 있던 관객이, 자신의 정신활동으로 빠진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거다. 그러다 마침내 온전한 그림을 완성하는 거지.

<아가씨>를 3부로 나눈 것도 관객의 적극성을 요구하기 위한 장치인가?
그렇다. 뿐만 아니라 빠진 퍼즐 조각으로 전체 그림을 보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진실이 반영돼 있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이 사건의 내막은 이렇겠지, 저 사람은 저렇겠지’ 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고 넘어간다. 그런데 정작, 진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다를 때가 많잖나.
듣자 하니, 화를 영화로 푼다 하더라. 부분적인 진실만 보는 이들에게 오해받았던 화가 <아가씨>에게 녹아든 건가(웃음)?
그 말의 반은 농담이다(웃음). 2, 3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는데 화가 뭐 얼마나 풀리겠나. 사실 내가 화를 잘 안 내는 편이거든(웃음). 둔한 편이다. 상대방의 눈치나 안색을 살피지 못한다. 그래서 욕을 먹곤 한다. 상대방은 화가 났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내가 캐치를 못해서, 아내나 친구한테 혼이 나지(웃음).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둔한만큼 상대방이 잘못해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친구들은 내게 ‘너 참 잘 참는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런 사람의 영화치고 당신의 영화에서 ‘복수’는 중요한 키워드다. <올드보이>를 비롯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등.
그렇다고 내가 분노를 못 느끼는 건 아니다(웃음). 군사정권의 만행으로 화낼 때도 많았다. 어쩌면 화를 영화로 푼다는 말은, 분노의 요모조모를 분석하면서 분노라는 감정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는 뜻일 거다. 특히 분노의 발로인 복수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중요한 행동이다. 동물은 자신에게 이익이 생기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복수에 자기 삶의 모든 것을 던지잖나.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닌데도.

복수가 인간 고유의 어리석음이라는 건가?
어리석다면 어리석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복수가 주는 효용이 있으니까 복수를 하겠지. 복수 행위에 몰두해서 준비할 때 느끼는 위안이 있는 거다.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그런 말을 하잖나. “복수가 다 끝나면 무슨 낙으로 살지”. 어쩌면 복수는 영원히 미뤄져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준비할 때만 행복한 거니까.
당신의 영화에서 뽑은 또 다른 키워드는 ‘금기’와 ‘사랑’이다.
사랑은 맞는 말이지만 금기는 항상 맞는 것 같지는 않다. 금기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게 목적인 적도 없고. <올드보이>야 말로 금기에 가장 다가간 영화라 할 수 있을 거다.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근친상간을 다루고자 시작한 얘기는 아니다. 그저 원작과 다른 결말을 맺고 싶어서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원작을 각색하려다 보니 ‘이우진이 오대수를 왜 풀어줬지?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둬두는 게 제일 큰 처벌일 텐데’ 싶더라. 그러다 문득, 화장실에서 딸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시간을 뺏는 게 이우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일 거란 생각이 떠오르더라. 이우진이 오대수를 풀어준 이유를 고민하다 떠오른 결말일 뿐이다. 엄청난 답을 기대한 사람에겐 허망하겠지만(웃음).

화장실에서 떠올랐나(웃음). 그렇다면 왜 사랑이라는 소재에 집중하나?
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중요하지 않나? 근데 사랑을 말하면 오그라든다(웃음).

그런데 그 사랑이 항상 비틀려 있다는 게 흥미롭다.
그래야 거기에 역경이 따르니까. 역경이 있어야 고통이 생기고, 여기에 죄의식이 동반되잖나. <아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숙희 입장에서는 자기가 히데코를 백작과 결혼시켜야 본인이 헬조선을 탈출할 밑천을 잡을 수 있는데 히데코를 좋아하게 됐잖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히데코가 목을 매달려고 할 때 잡아주는 건 사기꾼으로서도 응당 해야 할 행동이지만, ‘결혼하지 마세요’ 하는 건 용기 있는 고백이다. 역경 속에서 고통과 죄의식을 극복하려 하는 건 드라마틱한 거고, 마침내 극복해냈을 때는 영웅적인 행동이 나온다.
숙희가 히데코를 사랑하는 마음의 근원에 모성애가 있었다. 숙희를 모성애로 충만한 인물로 만든 이유는 뭔가?
보통 나이가 많은 캐릭터에 모성애를 설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나이와 무관한 문제잖나. 나이 많은 사람에게 모성애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클리셰이기도 하고. 어린 숙희가 모성애를 느끼면 귀엽고 웃기면서도 그럴 듯할 것 같았다. 모성애는 숙희 캐릭터의 핵심이다. 숙희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어 할 정도로, 아이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여기고 돌본다. 또한 아기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그러면서도 숙희는 사기꾼에 소매치기, 도둑으로 자라 선머슴 같고, 걸음걸이도 쿵쾅대며 “옘병”하고 욕설도 한다. 선머슴 같은 숙희가 모성애를 가진다는 겉보기와는 다른 성정이 재밌었다.

모성애 덕에 이들의 사랑이 소수자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모성애는 숙희의 개성의 일부다. 그리고 이건 히데코를 이끌고 나가는 힘이 되어 준다. 히데코는 감히 책을 찢고 담을 넘지 못하지만 숙희는 히데코를 아끼는 마음으로 책을 찢고, 히데코가 담을 넘을 수 있도록 가방도 쌓아준다. 이 용기만 봤을 때는 남성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근본은 모성애다. 예쁜 것을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 모성애는 여성적인 것, 후반의 용기는 남성적인 것으로 나눌 수는 없다. 남자라고 해서 예쁜 것을 보살피지 말라는 법도 없고, 여자라고 해서 계단 만들어 가며 용기 내지 말란 법도 없잖나.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다.

남성성, 여성성을 전복시켰다는 말인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킨 거지. 소극적인 것을 여성적으로, 적극적인 것을 남성적으로 보지 말라는 말이다. 히데코는 무척 소극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백작 보다 한 술 더 떠 자기가 먼저 바꿔치기할 계집을 구해 달라 말하잖나. 백작이 능구렁이처럼 굴며 사업제안을 할 때도 자기가 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고. 원래 자기의 몸종이었던 준코도 히데코가 먼저 백작에게 꼬시라고 말한다. 이때의 능동성은 숙희는 물론이거니와 백작마저 압도한다. 히데코가 소극적인 건 여성적이라서가 아니라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 거다. 독회 장면에서도 그렇다. 독회 신에서 히데코는 자기를 바라보는 남성관객을 완전히 압도한 채, 이들의 시선을 가지고 논다. 난 당시의 히데코가 마치 윤석화나 박정자처럼 모노드라마의 대배우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랬나. 남성 관객 앞에서의 독회 장면이, 내게는 마치 시선으로 강간하고 있는 장면처럼 보였다.
이모 역의 문소리가 독회를 할 때는 강간이다. 반면 히데코는 강간의 희생자로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이모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남성관객을 압도하려고 든다.
많은 감독들이 여자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영화에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곤 한다. 반면 당신의 영화에서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영화 전면에 등장한다.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가 뭔가?
<올드보이>의 결말을 놓고 고민할 때였다. 강혜정의 미도는 끝까지 오대수의 정체를 모르잖나. 애인인 오대수가 자기 아버지란 사실을 모른 채 영화가 끝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취할 수는 없었다. 이걸 끝까지 숨기려고 오대수가 혀를 자르면서 울고불고 지랄을 하는 거니까. 이우진이 미도에게 비밀을 지켜준 채 죽는 것도, 그가 마지막으로 내보이는 인간적인 면모거든. 내러티브가 요구하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자만 아무것도 모르고 끝나야 한다는 게 참 싫더라. 미도의 복수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여자의 복수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복수 3부작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기도 했고. 이영애도 한 작품 같이 하자고 제안한 찰나였다. 그렇게 <친절한 금자씨>가 시작됐다. 이영애가 이 영화를 찍으니 참 멋있더라. 결함도 많지만 뭔가 자기의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몸부림치면서 싸우는 여자의 모습이 정말 멋있더라고. 그 길로 재미를 붙인 거지(웃음).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성인을 위한 페미니즘 동화’라 말했더라. 동의하나(웃음)?
그런 면도 있고 아닌 면도 있지.

기자간담회에서 <아가씨>가 남성적인 시선으로 베드신이 그려졌다고 비판받았다고 말했다. 이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신의, 어떤 샷이, 어떤 앵글이 그런 건지 말해줬으면 좋겠다. 삽입을 중요하게 여긴 거라 그런 거라면 여성들도 장난감을 사용해 즐거움을 누리잖나. 여성이 혼자서 즐길 때, 함께 즐길 때 도구를 사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동의할 수 없다.
당신은 흥행하는 건 상업영화에서의 직업윤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가씨>나 <올드보이>도 어찌 됐든 금기시되는 동성애, 근친상간 등에 도전한다. 통상 대중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부분이다. 당신은 상업성이나 대중성, 그리고 예술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
최민식을 캐스팅하면 된다(웃음). 스타를 모셔 오는 게 중요하다(웃음). 물론 영화에 어울리는 스타라야 하겠지만. 우선 스타가 캐스팅되면 관객이 영화에 접근하기가 쉬워진다. 낯선 배우가 연기하는 것보다는 관객이 감정 이입하기가 수월해지는 거다. 믿음도 가잖나.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선 스타를 캐스팅하려면 영화가 너무 이상한 내용이면 안 되니까.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은 담보해야겠지(웃음).

막내딸이 <아가씨> 미술팀의 스텝으로 참여했다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와서 허드렛일만 하다 갔다. 별다른 실수 없이 잘 해내더라.

영화 쪽으로 진로를 잡은 건가?
영화 쪽에는 관심 없다 하던데(웃음). 그냥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한 거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뭔가?
배우들과 무대인사를 다닌 거다. 힘들긴 했지만,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잖나. 우리가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관객은 너무 멀리 있다. 인터넷에 활자로만 존재하는 익명의 누군가다. 몇 만 관객, 하는 식으로 숫자로 불리는 존재인 거다. 그런 관객을 직접 만난다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관객이 내 영화를 반겨주면서 웃고 있는 걸 보면 흐뭇해진다. 특히 젊은 관객들(웃음). 나는 여성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여성관객이 많으면 반갑다. 그 사이사이에, 깨알같이 억지로 끌려 온 남자들도 좋고. 와 준 게 어디냐 싶어서 정말로 반갑다(웃음).

2016년 6월 10일 금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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