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누가 되지 않기를...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2017년 8월 7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영화는 무한한 창작의 영역에 존재하지만, 비극적인 실화를 다루는 순간 현실에 명확히 발을 딛는다. 그 딛음이 이미 찢긴 누군가의 마음에 다시금 상처 내지 않기를 바라는 것,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다룬 <택시운전사>를 연출한 장훈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그 날의 아픔을 여전히 품고 있는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그 날의 광주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슬며시 젖어 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장 비극적인 근현대사 중 하나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돌아왔다. 언제, 어떻게 시나리오를 접하게 된 건가.
2003년부터 제작사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이야기를 기획,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한 독일 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수상소감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엄유나 작가의 손을 거쳐 초고 시나리오로 완성되고, 내가 건네받은 건 2015년이다.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고지전>(2011)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어떤 이야기로 관객 앞에 설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텐데, <택시운전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접할 때, 연출자보다는 한 명의 관객이 되어 읽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여지는지가 중요하다. <택시운전사>는 평범한 소시민 ‘만석’(송강호)의 모습과 내가 동일시되는 부분이 있었다. 독일 기자, 광주의 택시기사 등 주변 인물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영화의 주요 소재인 광주민주화운동은 무게감이 상당한 역사적 비극이다.
6.25전쟁을 다룬 <고지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연출자로서 근현대사의 큰 비극을 다룰 때는 그 무게감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에게 누가 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태도로, 어떤 시선으로 이야기에 접근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영화 톤은 어둡지만은 않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등, 당대를 주름잡은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미 그날의 비극적 역사를 모두 알고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부채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비극적인 톤을 잡으면 관객에게 감정적 부담감을 안길 것 같았다. 또, 1980년 5월을 살던 당시 광주 사람들의 ‘현재’를 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두려움에 짓눌려있던 게 아니라, 보통사람들처럼 반응하다가 점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평범한 대응과 일상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그간 5.18을 다룬 영화에 비하면 광주 시민이 당하는 폭력이 자극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묘사된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현실은 너무나 참혹해서, 대중영화에서 고스란히 묘사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자료 사진을 그대로 나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처참하게 보여주느냐보다는 ‘만섭’과 ‘피터’ 두 외부인이 광주에서 경험하는 정서적, 심리적 변화에 기준을 맞추려고 했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지금의 2~30대 관객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두 외부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 영화의 특징이다. ‘피터’역은 독일 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를, ‘만섭’역은 그를 도운 서울의 택시기사 김사복을 모델로 삼았다.
두 사람 모두 외부인이다. 그러면서도 시각은 조금 다르다. ‘피터’는 당시 광주가 대한민국에서 고립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이고, ‘만섭’은 그런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이다. 두 사람의 시각을 함께 전달하면 상당히 매력적일 것이고 생각했다.

‘만섭’은 중년 남성이자 서울의 소시민, 부성애 가득한 아버지다. 공감을 끌어내는 보편적인 설정인 동시에,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느낌도 드는 편이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기억하는 김사복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제외하면, ‘만섭’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창작된 캐릭터다. 혼자 딸을 키우는 아버지이고, 월세를 밀린 서민이라는 설정이 그렇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점에 둔 건 보편성이다. 그래야 관객이 자기감정을 쉽게 이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이하고 새로운 설정보다는 보편적 요소를 살리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만섭’역을 연기한 송강호는 <밀정>(2016) 개봉을 앞둔 당시 이미 <택시운전사> 캐스팅이 확정된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변호인>(2013) 이후 묘하게 작품이 뜸하던 그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송강호 선배 생각이 났다. <변호인>에 출연한 후로 작품 선택에 여러 부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도저히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아 제안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고민을 조금 하셨다. 내가 직접 나서서 설득하지는 않았다. 배우로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당신 입장에서는 시간을 주고, 충분히 기다려준 셈이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웃음)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에 비해, 독일 기자 ‘피터’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에게는 감정이입을 할만한 기회가 너무 적다는 평가도 있는데.
사실 촬영 당시에는 ‘피터’ 분량이 더 있었다. 편집을 거치면서 좀 더 ‘만섭’ 위주로 구성됐다.

그렇게 가다듬은 이유는.
‘만섭’은 감정적 변화가 큰 인물이다. ‘피터’역은 그에 비하면 표정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 편이다. 토마스 크레취만의 연기가 워낙 미니멀한 데다가, 실제 모델이 된 독일 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향도 있었다. 그가 언론인으로서 보여준 태도가 너무나 한결같고 일관적이었기 때문에, 보다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실제와 다른 방식으로 영화적 묘사를 할 수는 없었다.
혹시 그 외에도 편집된 이야기들이 있는지.
언론에 대한 이야기가 줄었다. 광주의 소식을 외부 국가로 내보내려는 독일 기자 ‘피터’, 국내에 알리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최기자’, 기사를 쓰려고 하지도 않고 그럴 기회가 있어도 거절하는 언론사 부장까지 세 부류의 언론인이 출연한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기에 더해, 또 다른 기자가 있었다. 만섭이 서울에서 태웠던 임산부의 남편, 그가 기자였다.

오. 새로운 내용이다.
‘만섭’이 광주에서 빠져나올 때 ‘최기자’에게 광주 상황을 기록한 수첩을 전달받는다. 그것을 서울의 기자인 그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있었다. 촬영까지 다 마쳤지만, 결론적으로는 편집했다.

편집하는 신과 살아남을 신을 결정하는 당신만의 기준이 있을 텐데.
영화를 만들 때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소시민이 위험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일을 잘 해낸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다룰 수 있는 에피소드와 범위를 정해놓고, 모든 것이 한 줄로 정리될 때까지 계속 요약한다. 가장 마지막에 남는 한 줄이 핵심 메시지다. 그다음에 남는 것이 주변 메시지다. 그에 따라 전체 구조를 어떻게 짤 것인지, 이야기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정한다. 여기까지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과정이라면, 이제는 관객에게 어떻게 정서적인 전달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의 호흡을 고려해 편집 지점을 결정한다.

잘려나간 부분 중에서는 아까운 신도 있을 것 같다. 송강호, 유해진, 류준열까지…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좋지 않은가.
상당히 아까운 신이 많다. 배우들의 연기 중에는 사실 (영화에 쓰이지 못한) 상당히 많은 ‘오케이’컷이 있다. 그렇다고 다 넣을 수는 없다.(웃음) 영화의 전체 흐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 한 개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나만 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이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지…(웃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출연 분량은 짧지만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연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군인 역의 엄태구가 그런 경우다. 송강호와 <밀정>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다.
그가 소화한 군인 역할에 딱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 사람이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캐스팅에 애를 먹었다. 그때 마침 송 선배가 태구씨 이야기를 하더라. <밀정>을 촬영할 당시 다른 배우들의 기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고 칭찬을 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때 <숲>이라는 단편, <Keep quiet>라는 중편 작품으로 워낙 눈여겨본 배우이기도 했다. 내면에 엄청난 폭발력을 담고 있어 어떤 감독이 발견해도 발견할 배우였다. 비록 한 신이지만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해 함께하게 됐다.

고창석, 전혜진, 정진영 등도 기꺼이 출연을 결정해줬다.
고창석 선배는 카센타 장면에서 딱 한 번 나오고, 바로 전화 목소리 녹음을 진행했다. 전혜진 배우도 두 신, 정진영 선배도 다방 두 신과 택시 앞 한 신 정도다. 짧은 분량이라 부탁드리기 어려웠는데 다들 작품을 보고 참여해 주신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들 같은, 숨겨진 특별 출연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일부의 경우이긴 하지만, 그간 종편 방송과 인터넷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영화를 연출하고 개봉하는 동안, 그에 대한 우려도 다소 있었을 것 같다.
<택시운전사>를 검색할 때에도 그런 내용의 댓글을 간혹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참 망설이다가) 참 안타까웠다. 많은 시간이 흘러 여러 사실이 밝혀지고, 또 인정됐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왜곡한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면 광주 시민들의 심정이 어떨지도 걱정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듯하다.
아무래도 힘이 든다.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지만,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는 경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저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넘어’)의 황석영 작가가 GV를 맡아 영화에 힘을 보태주었다.
‘넘어 넘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서술한 최초의 기록으로 알고 있다. 영화를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본 책의 저자를 만나는 일이라 남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말씀을 해 주실지 기대도 됐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내용까지도 관객에게 설명해 주시더라. 특별한 시간이었다.

개봉 후 올라오는 리뷰를 읽기도 하는지.
읽어봤다.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도 있고, 개인적인 의견도 많다. 모두에게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 것이다. 관객은 자신이 경험한 인생 전체를 안고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감상도 조금씩 다르다. 그들의 다양한 평가가 영화를 완성한다고 본다.

영화는 창작자의 산물이지만, 관객에게 선보이는 순간 감독의 손을 떠나는 숙명을 지녔다.
내 의도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한다. 그러나 평가는 관객의 영역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상당히 궁금하다. 사실 영화감독은 영화를 잘 만들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먼저인데, 이렇게 인터뷰에서 여러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웃음)

구구절절 설명하는 느낌이 들어서인가.(웃음)
때로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웃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구구절절’ 시간을 드리겠다.(웃음)
<택시운전사>라는 작품이 가진 힘이 있다고 본다. 덕분에 0순위로 생각하던 모든 배우가 캐스팅됐다.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는 물론,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면서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측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을 기대하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되길 바라겠다. 마지막 질문,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영화 홍보하느라 최근에는 개인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 와중에 혼자 산책을 하거나 걸어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그게 참 좋다. 집에 돌아갔을 때 아내가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볼 때도 행복하다.


2017년 8월 7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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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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