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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쿨하지 않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jimmani 2006-08-29 오전 9:45:22 1204   [4]

수없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 장르의 영화들 중에서도 기름기와 닭살을 느낄 필요가 없는 영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뿌듯한 일이다. 특히나 특유의 공식까지 고스란히 만들어놓은 헐리웃의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물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나름의 독창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랑영화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국산 사랑영화에 더 신뢰가 가기도 한다.(물론 그 와중에도 선웃음 후눈물이라는 얄팍한 공식에만 기대 낯간지러운 상황을 연출하려는 게으른 영화들이 눈에 띌 때도 있지만)

이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상 <연애참>)이 바로 그런 영화다. 사랑의 달콤함이나 가슴 아픔을 동화스럽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포장해서 솔로가 보게 된다면 다소 민망하고 청승맞은 상황을 연출할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가 아니라, 당당하고 솔직하고 예쁘게 겉치장을 하지 않고 담백한 시선을 유지하는 그런 사랑영화다, 이 말씀이다. 영화 제목은 대놓고 참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른 가벼움을 논하고 있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렇게 대놓고 가벼워서 더 가볍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언론시사회도 하기 전에 완성본으로는 최초로 공개된 시사회에서 본지라, 다른 평가들에 휘둘리지 않고 생각하며 볼 수 있었다.

갈비집 아들로 마땅한 직업 없이 친구들과 노닥거리다 때 되면 갈비집 거들기나 하는 게 고작인 백수 영운(김승우)은 어느날 갈비집에 "저, 아저씨 꼬시러 왔어요"하면서 대놓고 들이대는 여인 연아(장진영)를 만나고 그들은 유쾌한, 아니 유쾌하다못해 물불 안가리는 연애를 시작한다. 연아는 호탕하고 가식없는 성격을 가진 룸싸롱 나가요여인. 둘은 남들이 생각하기 쉬운 아기자기하고 소름끼치는 연애행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오로지 욕과 싸움질로 얼룩진(?) 연애를 이어간다. 그러면서도 4년동안 그들의 연애는 미운정이 고운정 되는건지 끈질기게 이어오지만, 이들의 연애는 결국 끝이 보이게 되어 있다. 그것은 영운에겐 연아를 만나기도 전부터 집안좋은 결혼상대가 따로 있었던 것. 만날 때도 그저 놀이하듯 쿨하게 만났던 그들, 과연 헤어질 때도 그럴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연기력 면으로 가장 빛을 발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연아 역의 장진영이다. 오랜시간동안 공들여 연기했으나 친일논란과 더불어 흥행에서 맥없이 주저앉은 <청연>에서의 아쉬움을 타산지석삼아 제대로 기운을 불어넣은 듯 <연애참>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연기는 시종일관 적극적인 힘이 넘친다. 화통하고 당당한 성격의 여인이라는 역할의 특성도 장진영이 기존에 보여온 캐릭터와 잘 들어맞은 것도 성공의 한 요인이지만, 멜로영화의 여주인공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아낌없이 자신을 망가뜨린 그녀의 용기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시종일관 연인인 영운에게 해대는 온갖 욕설들은 욕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연기에 스며들어가 있고, 오랜시간 복잡한 감정의 굴곡을 지나는 여인답게 강인하고 남성적인 면에서 여리고 여성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넓은 감정폭의 연기를 능청스럽게도 잘 소화해냈다. 멜로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강렬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큰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거침없이 대사와 감정표현을 쭉쭉 뻗어나가게 하는 장진영의 대담한 연기가 없었던 캐릭터의 그런 매력도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진한 감정의 자국을 남기는데 성공했다면 그 요인 중 상당 부분은 이런 장진영의 파워풀한 연기가 차지할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뛰어났다.

상대역인 영운 역의 김승우의 연기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최근 그가 맡아온 몇몇 역할(곧 개봉할 <해변의 여인>까지 포함해서)에서 보아온 "몹쓸남"의 이미지를 계승하는 구석이 없지 않은 캐릭터이긴 하나, 역시나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어우러져 참 미워해야 마땅한 사람이면서도 어느순간 그 감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역할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특히나 능구렁이같은 바람둥이 근성으로 무장한 영운 역을 담넘어가듯 술술 연기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펼쳐지는 눈물연기 장면은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희생자일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강렬한 여운이 남게 하는 연기였다.

기타 조연들의 연기도 빼어났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영운-연아 커플은 보기 드물게 둘끼리만 노는 게 아니라 친구들까지 데리고 파티플레이를 즐기기 때문에 조연들도 꽤 자주 등장하는데, 순둥이같은 외모와는 달리 많이 놀았던 게 빤히 보이는 준용 역을 연기한 탁재훈은 예의 그 입담처럼 시치미 뚝 떼고 웃기고, 많지 않은 비중이지만 아이딸린 유부남인 학이 역의 오달수 역시나 영화에 진한 양념을 쳐준다. 이외에도 연아의 상사(?)인 전상무(김상호)는 처음에는 여자들 울리는 악역 캐릭터로만 나올 것 같더니 알고보니 표현방식이 좀 험악해서 그렇지 은근한 순정파인 감초 캐릭터로 나와 꽤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앞서 얘기했듯, 이 영화는 기존에 봐왔던 멜로영화들과는 많이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동화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극악의 배경을 설정해놓고 한없이 처연한 분위기로 몰고가는 비극적 로맨스도 아니다. 그야말로 사람들 사이의 감정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고나 할까. 사랑에 빠진 남녀인 영운-연아 커플은 단둘이서 뭔 환상적인 이벤트나 데이트를 꾸미지도 않고 그저 자기네 친구들과 부대껴가며 신명나게 놀아제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남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앙탈이나 애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물 준 거 불평 한번 했다간 바로 욕과 손찌검이 오가는 것이 이들 커플이다. 남자가 여자를 숙녀라며 대접해주는 것도 없이, 그저 둘이 싸우면 너나 할 것없이 머리를 쥐어뜯고 방바닥을 구르며 걸쭉한 욕설을 우렁차게 퍼붓는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격한 싸움의 감정으로 뒹굴던 것이 어느 순간 애정이 가득한 뒹굴기로 바뀌니 참 희한할 따름이다. 이렇게 영화는 초반에 이들의 사랑에 어떤 심각하고 진지하거나 애틋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격하고 가식없는 행동들로 이들의 사랑을 표현한다. 어쩌면 이런 이들의 행각들이 더 이들의 사랑을 "가벼운 연애"로 보이게끔 하는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장난같은 연애도 4년이란 긴 세월동안 지나오면서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볍고 쿨하게 시작한 관계였지만 어느 순간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영화적인 상황으로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것도 아니고, 쿨하다못해 우악스런 분위기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 이들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깔깔대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 측은한 눈길로 응시하게 되는 마력을 이 영화는 가지고 있다. 흔한 멜로물처럼 마치 사랑의 전문가라도 되듯 예쁘게 포장된 감정을 표출하는 연인들과는 달리 사랑이든 미움이든 추스르지 못하고 어설프게 내뱉어버리는 이들이어서 그럴까, 이들이 겪게 되는 관계의 걸림돌도 꽤 공감이 가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 속 사랑의 과정에서 피해자를 꼽으라면 영운보다는 당연히 연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둘 다 장난처럼 시작한 연애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연아에게 훨씬 불리한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운에게는 이미 결혼하기로 예정된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연아와는 결혼이라는 무게를 벗어버리고 그저 즐기자는 마음으로 부담없이 연애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아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녀도 물론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지만, 어느새 유일하게 "연인"이라는 관계를 맺어온 영운은 그녀에게 단순히 "장난스런 연애"라는 단어 안에 가두기에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영운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칸막이로 설정해둔 채 두 관계를 이어가지만, 연아는 그런 게 없으니 "연애"가 "사랑"이라는 구분으로 어느 순간 변해버린 것이다. 결국 원한다면 언제든 미련을 끊을 수 있을 영운과는 달리 연아가 더 힘들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영운이라고 해서 결국은 쉽게 그 미련을 끊을 수야 없겠지만.

이렇게 영화는 "연애"와 "사랑", "결혼"이라는 명제들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이 이런 식으로 구분지어질 수 있고, 우선순위가 판가름날 수 있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듯 만날 치고박고 싸우고 쥐어뜯고 놀고 먹으며 즐겨온 연애이지만, 그걸 어느순간 가볍게 떨쳐버리기에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남긴 궤적은 꿰 짙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인륜지대사라는 "결혼" 앞에서,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이들의 관계는 가벼운 "연애"라는 단어 앞에서 그 우선순위가 애초에 한계를 가지게 되어 버린다.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관계라고 해서 이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 역시 뜬구름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이별을 예감하고 난 뒤 연아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미련 앞에서 흘리는 숱한 눈물은 "쿨한 연애"로 시작했다고 해서 감정까지 쿨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연애는 어느 순간 "장난으로 시작했으니 장난으로 끝나야지"라는 시선에 얽매여 버리고, 그 때문에 괜한 미련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건 무슨 스토커라도 되는 양 취급받게 된다. 정말 "연애"라는 이름표를 붙인 관계는 끝까지 가벼워야 한다는 듯. 결국 시작하는 당사자들이 가볍게 가자고 한 관계는 어느새 남들의 강요에 의한 "강제적인 가벼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가벼움 속에서는 진지한 감정도 금방 버려야 할 것이 되기 때문에 더 "참을 수 없는" 게 되어 버리는 것일까.

영화는 이처럼 연애는 쿨하게 시작할 수 있어도 그게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 쿨하지 못하고 지긋지긋하게 잡고 늘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를 파고듦으로써, 단지 "연애"와 "결혼"이라는 형식적 구분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의 흐름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외형적 관계는 가볍게 설정할 수 있어도, 그 속에 실린 감정은 자기도 모르는 새 무게를 더해가며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깊이를 남긴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말이다. 깔끔하게 끝내자고 했으면서 징그럽게 붙잡고 늘어지는 게 비굴하고 초라하게 보여도 할 수 없다. 사람의 감정은 국수 면발 자르듯 그렇게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의 감정을 놓고 "쿨한 연애" 어쩌고 하는 그럴듯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건 비굴하고 초라한 게 아니라, 사랑이란 감정 앞에서 인간이 맞이하게 되는 당연한 감정인 것이다.

<파이란>의 각본을 썼던 김해곤 감독은 <파이란>에서도 보여줬듯, 이 영화에서도 현실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은 "리얼리즘 멜로"의 모양새를 그대로 이어간다. 한편 이런 모양새를 통해 보여주는 생각은 한층 현실적이고 심지가 굳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파이란>을 결코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파이란>은 내가 본 최고의 한국멜로 중 한편이다) 현실적으로 치고 박고 싸우고 소리지르는 그들의 연애처럼, 쉽게 잊을 수 없는 만큼 더 격하게 서로를 공격하는 그들의 사랑처럼, 영화같은 클라이맥스 없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 앞에 가슴 먹먹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그들의 눈빛처럼, 이 영화는 외형적인 구분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오버하지도, 절제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랑영화다. 그저 미친듯이 놀고 미친듯이 사랑하는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보면 저게 뭐하는 짓이냐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적어도 예쁘게 울고 예쁘게 사랑하기만 하는 인공적인 순정만화 속 주인공들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이들임은 분명하다. 사랑은 장난도, 예쁜 소꿉놀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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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j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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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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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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