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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 아이들 혹은 예술가들을 부둥켜안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rcnhorg7 2006-11-30 오후 11:01:50 1779   [10]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만해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中




 헐리웃 안팎에서 ‘크로노스’ 혹은 ‘블레이드 2’같은 잔혹한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 입지를 굳혀 나갔던 감독 길레르모 델 토로의 신작 '판의 미로(El Laberinto del Fauno)'는 그의 영화 세계의 정수라고 부를만한 작품입니다. ‘판의 미로’에선 2차 대전 시절 -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나라였던 - 에스파냐(스페인)를 배경으로 이 어지러운 현실의 피해자 중 하나였던 오필리아라는 어린 아이에게 일어나는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오필리아는 어머니를 따라 새 아버지인 비달 대위가 요새처럼 주둔하고 있는 한 숲속에 옵니다. 판타지로 가득한 동화책 속의 세상을 좋아하는 오필리아에게 요정이 나타나고 그 요정은 오필리아를 마법의 나라의 판(pan)이라는 정령에게 데려갑니다. 판은 오필리아를 인간의 몸을 빌려 태어난 마법세계의 공주님이라고 하며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개의 열쇠를 가져와야 한다고 합니다. 오필리아는 끔찍한 집을 등지고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대략 이 부분만 들으면 어린아이가 판타지의 세계에 들어와서 겪게 되는 일들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판의 미로’는 오필리아가 겪게 되는 환상보다는 양아버지인 비달 대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끔찍한 현실들이 더 부각되는 영화입니다. 갖은 고문과 폭력적인 장면들은 쓸데없이 긴 영화제목으로 이 영화가 마치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아류작 쯤 될 거라 믿는 부모들이 어린 애들을 데려와서 보기엔 조금 아이들의 눈을 가려줘야 할 장면이 많은 영화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일거라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독일 사람들이 많이 읽었다는 그림 형제의 동화가 자국에선 어떤 미화(美化)도 없이 그대로 읽혀졌듯 ‘판의 미로’역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과감히 보여줍니다. 2차 대전이 세계 전역을 휩쓸던 1936년 에스파냐는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파시즘 정권이 인민정권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고 파시즘의 선봉에 있던 이탈리아와의 공조아래 프랑코라는 군인이 에스파냐를 장악하게 됩니다.

<< 프랑코(Francisco Paulino Hermenegildo Teódulo Franco) 장군 >>


        에스파냐 내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

        프랑코 장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여기


 감독 길레르모 델 토로의 말에 따르면 ‘판의 미로’는 전작인 ‘악마의 등뼈(El Espinazo del diablo, 영어 제목은Devil's Backbone)’처럼 스페인 내전의 최대의 희생자였던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참상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물 구도를 통해 조금 다르게 영화를 짚어볼까 합니다.


<< 감독 길레르모 델 토로 >>




         

< 오필리아 >

스페인 내전 당시의 어린이들

하지만 당시의 문학, 예술가, 지성인들로도 해석

< 비달 대령 >

스페인 내전 시대의 군사정권을 주도했던 군인계층

< 메르세데스 >

반(反)정부 세력으로 메르세데스 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게릴라들, 의사선생님을 포함함.

< 아이(오필리아의 동생) >

에스파냐. 국가 자체가 될 수도 있고 국민이 될 수도 있음.


 오필리아를 일차적으로는 어린아이로 보는 이유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유아기적 태도에 있습니다. 호기심과 엉뚱함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어린 시절엔 삭막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기제가 큰 데다 어른들 역시 자신들의 선에서 그 현실에 대해 방어막을 쳐주려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차적으로 오필리아의 캐릭터를 일부 문인들이나 예술가들로 규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국(時局)이 어려울 때 자신의 펜을, 붓을, 카메라를 무기삼아 쥐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 편으로는 일제강점기의 친일작가들처럼 그들을 찬양하는 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완전히 접어버리거나 도피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오필리아의 캐릭터가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들은 퇴폐주의자나 패배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써왔던 것은 그것이 그들만의 간절한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필리아가 판에게서 받은 빈 책을 채우듯이 말이죠.



 68년 파리의 혁명시절을 배경으로 한 ‘몽상가들’같은 영화에선 의식적으로는 깨어있지만 행동하는 지성이 아닌 지독한 영퀴(영화퀴즈)와 섹스에서 끝나는 권태로운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권태에 빠진 사람들과 비교할만한 ‘판의 미로’의 메르세데스 같은 사람은 정말 용기 있는 혁명가지만 썩어가는 다리와 싸우고 악랄한 고문기계와 싸워야 하고 자신의 의지와 싸울 의지가 없어 도망자가 된 사람들을 혼란의 시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필리아를 움직이는 판은 오필리아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존재로 오필리아가 이룰 수 있는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인 세 가지 미션들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주의 시종이란 작자는 미션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닦달을 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유혹하는 말이 가진 양면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면 편하지만 그것을 지불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를 협박으로 제시하는 것이죠. 그럼 오필리아의 미션을 통해 그녀가 과연 어떤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미션은 나무 아래 사는 두꺼비를 제거하는 것으로 이것은 용기를 뜻하는데 이는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그림형제의 옛 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형제의 이야기는 한 어린 아이와 두꺼비와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데 어린 아이가 두꺼비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 주는 대신 두꺼비는 아이에게 보석을 선물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은 반대로 두꺼비에게 보석을 주고 열쇠를 얻습니다.



 이는 관계(주로 ‘우정’)의 단절이라 보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행동하는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특정 사상단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진짜 변절자들 외에 도피주의자들도 똑같은 변절자 취급하고 절교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보석을 가졌지만 껍데기만 남았고 오필리아는 열쇠를 얻었지만 친구를 잃은 셈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선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요.


 한 편 메르세데스는 반정부 세력이지만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오필리아를 가족처럼 아껴주는데 이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가족주의적 희생정신을 나타내고 지식인 계층을 대변하는 의사선생님을 등장시켜 계층에 상관없이 에스파냐를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을 모두 공평하게 다룹니다.



 두 번째 미션은 이상한 공간에 사는 괴물을 피해 두 번째 열쇠를 가져와야 하는 것으로 인내를 뜻하는데 오필리아는 괴물에 대한 공포(아이들을 찌르고 잡아먹는 사악한 괴물임이 그의 방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음)보다 음식에 대한 탐욕에 더 약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양아버지의 권력이면 쉽게 얻을 수도 있는 포도 두 알에 목숨을 걸고 때문에 그녀를 말리던 요정 친구 둘이 괴물에게 끔찍하게 잡아먹힙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전쟁이 낳은 사상자 못지않게 기아와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람도 상당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말라비틀어진 아이들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입니다. 물론 감독은 순수한 피해자인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이 낳는 의도하지 않은 죄악을 우화적으로 그리는데 그 목적이 있었겠지만 제 나름의 의미로 파악해 보면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 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예술을, 작품을 계속 하고 싶어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겼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미국 매카시 의원 시절의 밀고자들, 군사 정권 시절의 지식인들, 파시즘의 패배자들 그리고 그 밖에 억압 속에 꺾였던 나약한 존재들을 되새겨 봅시다. 물론 그들의 박약한 의지력은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그 시대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영혼을 더 가치 있게 빛나게 할 수 있는 존재였음을 생각한다면 정말 그들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중국의 문학가 루쉰 같은 경우 동시대에 활약했던 좌파 혁명주의 작가들에 의해 패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루쉰의 작품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주의 작가들은 그의 작품에는 능동적으로 사회에 저항하는 인물도 그런 시대정신도 없다며 그를 퇴폐주의 작가로 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회 비판적인 작가마저 그런 비난을 받는 시대에 허름한 술집 같은 곳에서 완전한 도피를 꿈꾸는 몽상가들이 많았을 거란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몹쓸 인간들인지는 판이 제시하는 세 번째 미션을 통해 밝혀집니다. 영화를 못 보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그 세 번째 미션이 어떤 것인지는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그것이 인간이 많은 것을 잃어버리더라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덕목에 대한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본 ‘판의 미로’에 대한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억지 주장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왜곡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의 감상이고 은유가 많은 작품일수록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뱀발 : 혹자는 에스파냐 내전이 잊혀진 전쟁이라고는 하나 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 사건을 작품으로 남겼는데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면 피카소의 <게르니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같은 동시대의 작가들 뿐 아니라, 이 영화 <판의 미로>나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같이 후에 그 사건을 다룬 작품들도 있는 것을 보면 오히려 우리의 6.25전쟁이 더 세계에 잊혀진 전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플스투 : 시사회장에서 한 일가가 잔혹함을 못 견디고 자리를 뜨고 말았는데 누차 이야기하지만 가족들이 재밌게 볼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독일에선 아이들이 그림 형제의 잔혹한 동화를 읽으면서 세상은 그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하더랍니다. 이 세상엔 모두가 보고싶은 엔딩(유토피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실런지...

 

 

 본 영화평은 조선일보 7월 19일자 기사와 네이버 영화, 엠파스 영화에서 자료를 얻었습니다.


(총 0명 참여)
zoelle
대단하시네요. 수고하셨습니다.   
2006-12-03 14:48
ummumm
저도 봤는데 이런 시각으로도 볼수있다는 생각에

감동이네요   
2006-12-01 16:46
eye2k
괜찮은 해석이네요.   
2006-12-01 07:07
deskun
음... 다른 시각. 잘 읽었습니다. 글씨가 큼지막하고 그림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 읽기 편하군요.   
2006-11-30 23:21
1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 Pan's Labyri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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