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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와 아옌데 대통령의 최후 칠레 전투 2부
ldk209 2006-12-13 오후 3:54:47 770   [15]

칠레전투의 완전한 제목은 '칠레전투 : 비무장 민중의 투쟁'이다.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 민중연합 정부였던 아옌데 정부의 마지막 해에 일어났던 정치적 사건의 성격과 결과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칠레전투 제2부 : 쿠데타] 쿠데타와 아옌데 대통령의 최후

(원제 : The Battle Of Chile Part 2 / La batalla De Chile : El Golpe De Estado)

영화는 마치 핑크 플로이드 앨범 [The Wall]을 연상시키듯 헬기의 굉음으로 시작한다. 73년 6월 29일 일부 군부의 쿠데타는 합법적인 아옌데 정부 전복을 시도했던 미국과 칠레 부르주아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제 무력을 사용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대통령궁을 기습한 반란군과 경호부대의 총격전으로 순식간에 22명이 사망하지만, 쿠데타 발생에 대해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와 사법부, 야당은 침묵으로 사실상 쿠데타에 동조한다.

그러나 이날의 쿠데타는 아직 군부의 전체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 오전 10시 30분, 많은 정부군이 도심으로 이동 배치되었으며, 반란군은 밀리기 시작한다. 오전 11시, 아옌데 대통령이 궁으로 돌아오고 국방장관이 이끄는 정부의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쿠데타는 실패로 기운다.

쿠데타 소식을 듣고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은 "투쟁으로 민중의 권력을 쟁취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군 지지 시위를 벌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악명 높은 피노체트는 정부군에 소속되어 쿠데타 진압 과정에 참여한다. 그는 아직까지는 헌법을 존중하는 군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프라츠 장군이 국방장관에게 반란이 진압됐음을 보고하며, 시민들은 아옌데의 사진을 들며 거리를 행진한다. "우리 인민들이 아옌데 대통령을 지켜준다!"

오전 12시 상황이 종료되자 뒤늦게 기독교민주당에서 합법 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나 극우 정당인 국민당은 논평을 거부하며, '조국과 자유' 지도자는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쿠데타의 배후 세력임을 자인했다. 또 국민당이 장악한 라디오에서는 쿠데타가 현 정부의 쇼라는(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의 자작극?) 보도까지 있었다고 한다. 쿠데타를 주제로 진행된 TV 토론에서 공산당의 젊은 의원은 국민당을 쿠데타 지지 세력이며 반동이라고 비판하지만, 국민당 의원은 끝까지 쿠데타에 대한 명확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하자, 아옌데 대통령은 선언한다. "다원주의를 인정하지만, 반민주, 체제전복, 파시즘 세력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은 부르주아지가 장악한 국회 폐쇄를 소리 높여 외친다. 아옌데 대통령은 국회를 폐쇄할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원한다면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음을 천명한다. 국민투표는 보수 세력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쿠데타의 실패로 일시적으로 기득권층이 수그러들고 거리는 좌파가 장악한다. 노동자과 농민 등 민중들은 전국의 공장, 회사, 광산, 농업센터 등을 장악하는데, 이는 전국 주요도시에서 구성된 31개의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민중 권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아옌데는 의회에 비상사태 선포를 요청하지만, 7월 2일 국회는 81 대 52로 이를 기각한다.

한편, 7월 2일 해군은 발파라이소를 기습, 무기수색을 벌인다. 이는 1년 전 야당 주도로 발의된 무기통제에 대한 법률에 근거한 것인데, 군대가 무기 수색을 하기 위해 사전에 행정부나 입법부의 허가가 필요치 않은 법률이다. 보수층의 의도는 노동자나 민중의 무장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반대로 날로 점증하고 있는 극우테러에 군은 이 법에 의한 무기수색을 적용하지 않았다. 군은 무기 수색을 위해 공장을 포위하고 노동자의 억류와 심문을 실시했으며, 공장 직원과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좌파는 정파에 상관없이 쿠데타 위협에 직면해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천명하며 단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좌파는 가급적 무력 충돌을 기피한다. 어차피 막강한 군을 상대로 무력충돌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정치 토론이 진행되었다. 나중에 쿠데타 성공 후 아옌데 정부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자체적 무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곤 했다.

어쨌든, 아옌데는 무력대결을 피하고 위기 탈출을 위해 중도 성향의 기독교민주당과의 연합을 시도하는데, 우선 카톨릭대학교의 카스틸로 총장에게 입각을 제의한다. 그러나 카스틸로 총장은 현 정부가 전체 칠레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편을 가르고 국민을 분열시킨다고 비판하며 제안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기독교민주당 좌파의 경우 쿠데타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은 계속 추진된다.

7월 8일, 무기 수색을 위해 해군은 발파라이소를 습격하고 공군은 산티아고의 공동묘지를 점령한다. 이러한 군부의 움직임으로 시민들 사이에 민중 정부 수호를 위해 자체 무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번져 가며, 노동자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민병대 창설이 필요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7월 12일, 칠레 사회당은 군인에 의한 노동자 살해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경고와 함께, 하급 장교나 사병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공장점거는 사실상 법에 근거가 없는 행위였기 때문에 (일부 중요 공장은 법에 따라 국유화되기도 했지만)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하고 군부가 현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산당이 주도하는 일부 정파는 공장 점거가 합법 정부의 이미지에 훼손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 공장 점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사회당이 주도하는 대부분의 정파는 공장 점거가 향후 다가올 투쟁을 조직하고 준비하는데 유용하다는 입장을 보인다.(우리들이 피하려고 해도 파시스트와의 대결전은 어쩔 수 없다. 파시스트의 준동에 대항하기 위해 공장점거와 무기 확보가 필요하다)

7월 19일, 군 병력이 오소르노시의 중앙 노조 점령, 20일에는 해군 전 병력이 꼰셉시옹을 습격한다.

정국이 급격하게 위기로 치닫는 와중에 민중들의 움직임은 사실상 꼬뮨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지역에서 민중권력 창출 또는 강화를 위해 중앙 정부와는 독립된 지역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조직들이 수립되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정부와 기독교민주당의 제휴 모색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공장점거를 둘러싼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계속된 군의 공장 습격에 대해 좌파 대부분의 정파는 정부 보호를 위한 무장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연대계획 수립을 위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추기경이 칠레의 단합을 위해 주요 정당의 대화를 촉구하자 아옌데 대통령과 대화를 거부하고 있던 기독교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전 대통령과 주요 간부들이 대통령 궁을 방문, 아옌데와 회담을 가진다. 기독교민주당과 정부의 제휴 가능성의 증대는 부르주아지에게 불안을 가중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파시스트 세력은 두 정당의 제휴를 방해하기 위해 7월 27일 새벽 1시 30분, 아옌데 대통령의 부관인 알라야 해군대령을 암살하게 된다. 뒤에 밝혀진 사실은, 알라야 대령의 암살은 발파라이소에서 일부 장교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 쿠데타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후 쿠데타 음모를 일부 해군 사병이 알게 된 후 이를 좌익 정당에 알렸는데, 사령관에게 발각되면서 이들은 모두 투옥되고 고문을 받는다. 알라야 대령의 죽음은 아옌데에게 최악의 사건 중 하나였다.

8월 3일과 4일, 군은 산티아고 세리오 지역 내의 주요 공장을 포위하고, 푼따 아레나스의 공업지역을 점령하는데, 이는 장교들이 사전에 일반 주민과 사병들을 대치시켜 반응을 보는 일종의 경험을 위한 것이었다. 군은 이 때까지 총 27회의 공장 습격을 했지만 무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극우세력은 기민당과 정부의 제휴 차단을 위해 운송업자들의 무기한 휴업을 일으킨다. 운송업자들의 휴업을 위해 미 CIA로부터 5백만 달러가 지원됐으며, 운송업자들에게 매일 4달러가 별도 지원되었다. 7월 31일, 정부는 운송트럭에 대한 강제 회수 작전에 들어갔는데, 이는 국회에서 주요한 이슈로 등장했으며, 운송업자와 정부의 충돌은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되었다.(보수세력은 주요 채널인 13번과 라디오의 75%, 인쇄매체의 70%를 장악)

보수 세력은 트럭 압류를 계기로 정부 불신임 운동을 강화해 나간다. 이 때문에 기민당과의 제휴는 난관에 봉착하고, 기민당은 제휴를 위해 대통령의 국회권위 복종, 국유화 정책 포기, 기민당이 원하는 장교의 입각이라는 조건을 내걸지만, 아옌데는 이를 거부한다.

7, 8월 동안 미 정보부의 교육을 받은 테러 집단은 다이너마이트, 소이탄 등으로 250회에 걸쳐 테러를 감행하는 등 총 공세에 나선다. 이에 대통령은 군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파시스트에 대한 단호한 법적용을 천명한다.

8월 9일, 프라츠 장군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는 등 군 사령관들이 정부와 결합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극우세력은 반대, 기민당은 다양한 의견 제시, 좌파는 탐탁치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게 된다. 새로운 내각은 11일, 트럭을 압수하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한다. 8월 12일, 기독교민주당이 공식적으로 파업 지지 결정을 선언한다.

파업의 장기화로 인해 공장에선 원료가 바닥나고 농촌에선 종자가 부족해지게 되는데, 노동자와 시민들은 물자를 배분위원회로 옮기고, 상점 철거에 대해 식량위원회 지원과 '민중상점'을 강화하는 등 대응해 나간다.(민중상점 : 국가로부터 원가에 물품 구입해 다시 그 가격에 주민들에게 판매. 주민들이 직접 운영. 일종의 직접 공급 형태) 산티아고 주민의 절반 정도가 민중상점의 혜택을 입었으며, 이때부터 주민에 의한 자체 통제가 경찰들보다 우세하게 된다. 사실상의 꼬뮨.

8월 22일, 야권은 하원에서 합의문을 채택하는데, 별다른 법률적 근거도 없이 정부가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합의문은 결국 군의 개입을 부추기는데 활용되고, 쿠데타의 합법화에 기여한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대표적 장군인 프라츠 국방장관이 장성들의 지지 거부로 사임되고 직업군인인 피노체트가 신임 총사령관에 임명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노체트는 헌법을 존중하는 듯이 보인다.

드디어 야권은 3년간의 경제난을 이유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한다.

9월 4일은 아옌데 선거 승리 3주년 기념일. 약 80만 명이라는 칠레 정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가 열려 민중연합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다.

"아옌데, 인민이 당신을 지켜주리라!"

"화해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투쟁이다!"

이날의 거대한 민중의 결집을 본 미국과 파시스트들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9월 7일, 아옌데는 야권의 사임 요구에 국민투표로 대응한다. 국민투표를 통한 민주적 정부 교체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9월 11일로 날짜까지 확정짓는다.(운명의 9월 11일)

국민투표일 당일 9월 11일 오전, 아옌데 대통령의 육성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확인된 보고에 따르면 해군이 발파라이소를 포위, 점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저는 이곳 대통령궁에서 국민의 뜻에 의해 제가 대표하는 이 정부를 지킬 것입니다."

바로 국민투표 당일, 발파라이소에서 해군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같은 시각 미군의 구축함 4대는 칠레 해안에 접근해, 반란군과 지속적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 아옌데 대통령, 대통령궁 도착.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헌파 장교들은 이미 반란군에 의해 무장 해제된 상태였기 때문에 정부를 위한 지원군은 파병될 수 없었다.

오전 8시, 몇 대의 비행기가 수도 상공을 비행.

오전 8시 20분, 반란군 지도부 대통령에게 사임요구. 국외 도피용 비행기 제공 의사.

오전 9시 15분, 아옌데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공군이 포르딸레스 방송국과 연합방송을 폭격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저는 노동자 여러분께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씀 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인 전환점에서 민중의 신뢰에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민중이 이룬 이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군, 아옌데 대통령에게 최후 통첩-투항하지 않으면 대통령궁 폭격할 것이다.

아옌데 대통령은 군의 최후 통첩을 받고, 경호 부대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었다. 경호부대마저 궁을 떠난 상황에서 대통령은 40여 명의 민간인과 함께 최후의 결전을 맞이한다.

공군 비행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무너지고 화염에 휩싸인 대통령궁. 비행기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3시간 동안 저항이 계속되고 산티아고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오후 2시 15분, 아옌데 대통령 사망.

오후 9시, 반란 주동자들 담화문 발표.

피노체트, "오늘 군이 봉기한 이유는 오직 이 혼란에서 조국을 구하겠다는 애국심뿐이다.

조국은 혼란 속에서 살바도르 아옌데의 막시스트 정권에 유린당했다.

'혁명위원회'는 사법권과 언론통제권을 갖게 되며, 다음 조처가 있을 때까지 국회의 휴회한다. 이상"

쿠데타 초기에 산업지역, 도시, 광산, 농업센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무장 저항은 압도적인 군의 무력에 의해 순식간에 진압된다. 수백 명이 죽고, 대형 운동 경기장은 군의 강제 수용소로 변한다.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의 쿠데타 성공은 남미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대의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하얀 바탕에 검은색 큰 글씨로 1973년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흐르면서 막을 내린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도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순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 참고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보면(오래 전에 봐서 정확한지 가물가물하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을 중심으로 개인화기로 무장한 채 탱크로 밀고 내려오는 군과 맞선다. 군에 가기 전에 노동자였던 일부 사병들이 노동자 군대로 합류하는 장면도 나온다. 거리에서 산발적으로 저항하다가 군에 의해 사로잡힌 많은 군중들은 거대한 실내 경기장에 수용된다. 잡혀온 군중 가운데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가 있다. 그는 노래를 선창하고 군중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군인에 의해 끌려 나온 빅토르 하라. 장교는 빅토르 하라에게 '어디 내 앞에서 노래를 불러보시지'라며 비웃는다. 노래를 부르는 빅토르 하라. 그에게 기다린 건 무차별 구타에 의한 죽음. 그리고 쿠데타 주동 세력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에서 한 기자(이 영화의 사실상의 주인공)가 피노체트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방금 파블로 네루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침묵하는 쿠데타 주동자들. 이 영화는 마지막에 파블로 네루다의 장례식에 모인 군중들과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침묵 행진하던 군중들이 구호를 외치며 끝난다.

※ 칠레 민중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와 파시스트에 의해 살해된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가 스페인 주재 칠레 영사로 일할 때가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던 당시였다. 파블로 네루다의 친구들도 학살된 바로 그 내전에서 프랑코를 피해 스페인을 탈출한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로 향했는데, 본국으로부터 사전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여서 칠레 정부에서 거부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칠레 보건장관은 스페인 이민자 전원을 받아 들였는데, 바로 그 당시 보건장관이 아옌데였다.


- 장르 : 다큐멘터리

- 국가 : 베네수엘라

- 감독 : Patricio Guzman


(총 0명 참여)
ldk209
우리의 쿠데타 역사에도 저렇게 마지막까지 저항한 정치 지도자가 있던가... 아.. 서글프다..   
2007-04-19 16:05
sbkman84
허허헉;;;   
2006-12-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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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전투 2부(1976, The Battle Of Chile Part 2 / La Batalla De Chile : El Golpe De Est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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