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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달려 로봇트야 챔피언
peacenet 2006-11-08 오후 11:42:37 4032   [12]

1982년 11월1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시져스팰리스 호텔 특설링.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의 라이트급 세계도전에 나선 김득구와, 챔피언 레이 맨시니의 제 1라운드가 코앞에 닥쳐 있었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김득구의 초반 KO 패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만큼 "붐붐" 레이 맨시니의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24승(19KO) 1패의 화려한 전적으로 라이트급 세계 타이틀을 방어하던 맨시니는, 폭발적인 기량의 인파이터 복서였다. 김득구는 왼손잡이였다. 주먹이 맨시니만큼 강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연타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경기를 승부로 몰고 가는 데 종종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막상 1라운드 공이 울리자,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탐색전 없이 치고받는 난타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시져스팰리스 호텔 특설링에 운집한 관중은 물론, 위성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관중들까지도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링 한가운데서 맹렬하게 벌어지는 접전은 쌍방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득구의 왼손 훅과, 맨시니의 오른손 훅이 서로의 안면을 강타할 때 마다 휙휙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무서운 난타전이었다.

10라운드 까지는 김득구가 우세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그러나 11라운드로 접어들면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맨시니보다 나이가 많았던 김득구의 스텝이 점점 무거워 졌고, 자꾸만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동안의 난타전으로, 김득구의 얼굴도, 맨시니의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심하게 부어 있었다. 이윽고 14라운드. 언뜻 맨시니의 오른손 훅이 올라간다 싶더니, 이내 김득구의 턱에 꽂혀 버렸다. 그로키. 휘청거리는 김득구의 안면에 그대로 맨시니의 연타가 터졌다....

14라운드 공이 울리고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심판이 맨시니를 만류하고서야 김득구는, 링 위에 무너지듯 쓰러져 내렸다. 그리고 카운트. 하나.. 둘..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김득구는, 끝내 심판이 열을 다 셀 때 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링 위에서 맨시니가 밸트를 안고 환호하는 동안, 김득구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흘 뒤인 1982년 11월 18일 오전 7시, 라스베가스의 데저트 스프링스 병원에서 그의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생명을 지탱하던 산소호흡기가 떼어졌고, 그의 심장도 영원히 박동을 멈추었다. 링에서 내려온 지 99시간만이었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복서로는 최초로 라스베가스 시져스팰리스 호텔 특설링에 올랐던, 한때 세계 챔피언에 도전했던 라이트급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다.

영화가 막을 올리면, 관객은 1982년 11월14일로 되돌아 간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시져스팰리스 호텔 특설링. 이제 막 김득구가 링 위에 오르고, 이어서 챔피언 레이 맨시니가 등장한다. 홍코너, 청코너를 소개하는 심판의 마이크 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이 뒤범벅이 된 속에서, 레이 맨시니와 김득구가 링 가운데에서 만난다. 언뜻 고개는 숙인 채 눈만 치켜뜬 김득구의 시선이 섬뜩한 긴장을 뿜는다. 1라운드 공이 울리자 마자, 두개의 거대한 힘이 링 전체를 뒤흔들며 맞닥뜨린다.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주먹이 폭탄처럼 터져 나간다...

미안하지만, 권투 중계는 여기까지. 감독은, 관객의 시선을 끌고 과거로 간다. 김득구가 집을 나서던 날, 그리하여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하던 날. 앵벌이가 되어 껌을 팔고, 잡상인이 되어 터미널을 기웃거리고. 그야말로, 권투에 발을 들여 놓기까지 김득구가 살아온 삶은 그 자체가 생존을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그렇다고, 권수선수로서의 김득구의 삶이 더 나아졌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국내 챔피언이 되고, 동양 챔피언이 되고 그러다 사랑에도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도 하게 되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사실 영화속에서는, 하다못해 동양 챔피언 자리를 놓고 챔피언 김광민과 겨루던 것 조차도 달랑 판정승 장면 하나만으로 처리해 버렸으니, 보는 눈에 따라서는 김득구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 했던 것으로만 비춰졌을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김광민이라는 이 챔피언, 탱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맷집 하나로 버텨온 백전노장이었고, 당시의 예상도 김광민이 압도적인 우세였다. 달랑 판정승이었을는지는 몰라도, 당시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관중들은 김득구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었다. 한번이라도 김광민과 맞붙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다시는 그와는 경기를 치루기를 꺼려할 정도의 선수였으니까.

권투선수로서의 김득구의 삶은, 관장의 "욕하지 마라, 남들이 욕하는 건 그렇다 쳐도, 권투선수가 욕을 하면 못배우고, 무식해서 그런 줄 안다" 는 말이나, 또는 "권투선수는 미스 코리아 만큼 거울을 본다. 자세도 자세지만, 바로 그 안에 진짜로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라는 웅변이 대신해 준다. 무리한 요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감독은 어쩌면 김득구의 권투는 익히 알고들 계시리라고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화려한 링의 사각 이면에 가리워진, 혹독하기만 했던 일상에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김득구의 권투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야 겨우 십 오 분 정도 될까. 그나마의 대부분도, 영화 초반과 후반부에서 - 라스베가스 특설링에서 - 그리고 체육관에서의 스파링 장면이고, 정식의 경기 장면은 몇 안되고 보면 이 감독, 정말 권투를 좋아하기는 하는 건가, 라는 의문까지 든다.

김득구의 역으로 열연을 했던 유오성이야 너무도 유명한 배우이고. 그럼 김득구의 아내, 이경미로는 누가 나왔나? 채민서. 챔피언이 데뷔작이고, 2005년 7월 개봉 예정인 "가발" 에서 주인공 수현 역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김득구의 둘도없는 동료 이상봉 역으로 나왔던 배우는? 정두홍.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흑운 역으로, 또 내츄럴 시티에서는 싸이퍼 역으로도 나왔었다. (둘 다 악역이다) 사실은, 정두홍은 무술감독으로 더욱 유명하다. 최근 주먹이 운다와 혈의 누에서 무술감독으로 활동했고, 그 이전에도 튜브, 공공의 적, 무사, 반칙왕 등 굵직굵직한 영화에서 무술감독을 책임진 바 있다. 물론, 챔피언 또한 그가 무술감독을 맡은 영화중 하나이다.

한편 곽경택 감독은, "친구 (2001년)" "똥개 (2003년)" 로 잘 알려진 감독이고. 오는 2005년 12월 개봉 예정인 "태풍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 에서 메가폰을 잡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게 영화는 흘러 흘러, 다시 1982년 11월14일, 라스베가스 시져스팰리스 호텔 특설링으로 되돌아온 관객을 기다리는 건, 운명의 마지막 14라운드 뿐이다. 이미 기진맥진한 김득구가 13라운드를 끝내고 제 코너로 되돌아 오는 것이 보인다. 관장이 코치를 하지만, 기력을 쇠진한 김득구 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어 14라운드가 울리자, 쓰러질 듯 일어선 김득구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싶게 맹렬한 기세로 레이 맨시니를 향해 달려든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기억나는 건, 김득구가 한 대 한 대를 맞을 때 마다 쩌엉 쩌엉 울려대던 소리 뿐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로키를 허용했는지, 그가 언제 링 바닥에 누웠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시합에 졌다는 것도, 멀리 서울에서 중계를 지켜보던 그의 아내, 그 흐느끼는 어깨 너머로 비춰지는 TV 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그 속에서는 김득구 대신 레이 맨시니가, 챔피언 벨트를 걸치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으니까.

김득구가 숨을 거두던 날, 아내는 꿈을 꾼다. 김포공항에서, 김득구가 귀국을 하는 꿈을. 아내와 포옹을 하고 나서 그는 말을 한다, "나 안죽었어, 근데 왜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그러지?" 좋은 꿈 같다고, 엄마, 오늘 그이가 돌아올 것 같아, 라고 전화를 하고서 돌아서는 아내의 눈에, 전파상 진열대에 놓인 TV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어쩌면, 감독은 김득구의 복싱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복서 김득구를, 수많은 이시대의 김득구들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막을 내리기 전, 이제는 문을 닫아버린 체육관에 하나 둘 사람의 그림자가 되살아 난다. 그 속에서, 김득구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감독은 체육관의 빗장을 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지난날의 자취를 관객과 함께하고자 하였던 건지도 모른다.

- 현 -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경기가 있고 나서, 세계 권투 연맹이 규정을 바꿨다. 그전에는15라운드도 했는데, 이젠 최고 12라운드까지다. 또한, 그전에는 시합전에 양쪽이 동의하면 한라운드에 세번이상 다운되도 계속 시합을 진행했는데 그것도 바뀌었다. 결정적으로, 심판 판단하의 시합중지제도도 사실상 이 시합 이후에 생겨난 제도다. 당시 세계 권투계가 김득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선수를 보호하자는 운동이 급격히 늘어났다.

한편, 김득구의 죽음은 국내 프로권투가 긴 침체에 빠져든 신호탄이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150만 관중을 동원하며 출범과 동시에 대성공을 거둔 그 해, 김득구선수를 포함한 6명의 한국선수가 세계타이틀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국내 유일의 세계챔피언이었던 김철호마저 타이틀을 잃었다. 74년 홍수환 이후 매년 세계챔피언을 배출했던 한국권투가 8년만에 겪게된 `무관의 시대'였다. 이듬해 탄생한 프로축구, 프로씨름 등이 권투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백인들의 영웅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던 맨시니도 김득구의 사망에 충격을 받아, 권투에서 멀어져 방황하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강펀치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에게선 더 이상 그 이전의 태풍처럼 몰아치던 인파이팅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맨시니는 리빙스턴 브램블에게 14회 KO로 져서 타이틀을 빼앗기고, 재도전에도 실패한 이후 젊은 나이로 링을 떠나고 말았다.


(총 0명 참여)
orange_road
좋은 글...추천하고 가요^^   
2006-11-11 10:32
peacenet
김득구가 버스를 따라 달리는 장면에서, 로보트태권브이 주제가가 울려오는 바람에 그만 가슴이 뭉클해져 버린 현이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릅니다. ^^   
2006-11-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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