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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 남극일기
sunjjangill 2010-09-11 오후 4:33:06 1149   [0]

크리스마스를 자축하며 도달불능점의 정복 의지를 다지는 6인 탐험대의 애틋한 분위기에 미스터리의 그림자를 처음 드리우는 건 내부로부터다. 그들 옆, 눈으로 채운 용기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 카메라가 그 내부를 투시한다. 끓고 있는 건 얼음덩어리라기보다 섬뜩하게 꿈틀거리는 무엇이다. 첫 번째 암시다. 겉은 차분하고 단단하지만 속은 정복의 욕망으로 끓고 있는 탐험대의 내부에서 뿌리를 키우다가 터져나오고야 말 그 무엇을 은유하는. 문제는 그 정복욕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끔찍한 현실로 귀환할 것이냐에 있다.

<남극일기>는 미스터리 드라마이지만 무보급 행군으로 남극의 도달불능점에 이르려는 지난한 탐험의 형식을 취한다. 우리도 탐험의 끝에 귀환하는 모종의 실체와 마주하기까지 몇 가지 의혹의 관문 혹은 장애물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 크레바스는 크레바스 자체다. 빙하 유동의 속도 차이로 생긴 균열을 가리키는 크레바스는 눈에 덮여 가려진 경우가 많아 대원들을 기습적으로 삼켜버릴 수 있는 위험한 함정이다. 탐험대를 덮치는 위기의 동력이 안팎에 놓여 있음을 까놓고 드러내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크레바스의 두 번째 습격에서다. 남극을 독립된 캐릭터로 가시화하는 것도 이 크레바스다. 크레바스는 무형의 지형지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존재다. 거대한 아가리를 숨겼다가 불시에 쩍 벌리기도 하지만 이따금 탐험대 주변에 아주 조그맣게 구멍을 내어 그들을 염탐하고 유혹한다.

두 번째 크레바스는 탐험대를 지켜보는 제3의 시선이다.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나타나 탐험대를 지켜보곤 하는 이 시선은 당연히 불길하다. 대원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이 고조될수록 이 시선의 주체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세 번째 크레바스는 최도형 대장(송강호)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호러의 기운이다. 불분명하지만 형체가 있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끔찍한 계기를 제공한다. 이 호러의 기운은 불투명하지만 노골적으로 등장하며 여러 ‘크레바스’ 중에서 자기 기원을 가장 분명히 한다. 네 번째 크레바스는 80여년 전 같은 행로를 거쳐간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다. 탐험대가 우연히 그 일기를 발견한 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사건들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일기의 흔적과 닮았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영국 탐험대의 잔재는 일기와 함께 예언적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는 관객에게는 최대의 크레바스로 작동할 것이다.

다섯 번째 크레바스는 모호함이다. 오해는 말자. 여기서 모호함은 결핍의 결과라기보다 직조된, 유형의 존재다. 예컨대 제3의 시선이 호러적 기운에서 나오는 것인지 남극의 눈인지 모호하다.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앞서 열거한 모든 크레바스들은 병렬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불러와서는 대원들 내부로 침투하고 그 내부에서 더욱 큰 동력을 얻는다. 그래서 단 하나의 일관된 원인으로 모든 사태를, 모든 가시적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김민재(유지태)가 던지는 “사람의 눈으로 본 건 다 믿을 수 있는 건가요?”라는 의문은 아주 기초적이고 즉자적인 자문자답이다. 물론 그 모호함은 강력하고 공포스런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을 불러오는 주문은 최도형 대장에게서 나온다. “남극을 이길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기적도 만들 수 있다”는 주문. 그가 왜 이런 욕망을 갖게 됐는지는 모호하지 않다.

남극은 인간의 어떤 오물도, 미세한 바이러스도 허용하지 않는 깨끗하고 투명한 세계다. 동시에 가도가도 끝이 없는 눈과 얼음의 거대한 공간이다. 6개월간 낮이 지속될 때 그곳에서 보이는 건 흰 지평선과 눈부신 태양뿐. <남극일기>는 그런 곳에 갇혀 미쳐가는 탐험대의 이야기다. 그렇게 넓은 공간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공간에서 미쳐가는 인간을 포착하려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남극일기>는 한국영화의 희귀한 기록이다. <샤이닝>에서 작가를 미치게 만드는 건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캐릭터였고, <백경>에서 선장을 미치게 만드는 건 바다라는 드넓은 공간이었으나 그건 눈에 보이는 상대와의 싸움이자 거무칙칙한 바다와의 대결이었다. <남극일기>는 그 공간의 캐릭터를 새롭게 확장하려는 코스모폴리탄적 도전이다.


(총 0명 참여)
wldud2199
예전에 봤던 장면들이 생각나네요~   
2010-09-14 16:20
kkmkyr
잘읽고가요   
2010-09-11 19:03
kooshu
감사드려요~~   
2010-09-11 16:39
1


남극일기(2005, Antarctic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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