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나는 애국심 마케팅
한국형 휴먼재난영화를 표방한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가 서서히 그 베일을 벗고 있다. 해운대를 덮치는 거대한 파도의 모습을 담은 컨셉아트로 눈길을 끌었던 <해운대>는 한국영화에서 과연 시각적으로 표현이 가능한 영화인지 의문을 낳기도 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기다리는 동안 영화의 기술적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처음 <해운대>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될 때는 영화의 특수효과가 초점이었다. 특수효과의 퀄리티는 결국 자본과 기술력의 결과물인 탓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실제 예고편에서 볼 수 있는 재난 현장은 솔직히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특히 파도의 충격으로 빌딩이 맥없이 자빠지는 모습에선 아무런 중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세트를 이용한 장면에서는 실감나는 재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복도에서 물에 휩쓸리는 박중훈의 모습은 그럭저럭 사실적인 느낌을 줬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최근 <해운대> 관련 홍보 영상을 보면 티저 예고편에서 집중했던 특수효과 장면들이 무색할 정도로 안습의 멘트가 줄을 잇는다. 영화 제작 초기에서부터 컨셉아트, 티저 예고편까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그리 꿀릴 것 없다는 영화임을 강조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예고편만으로 역대 최고의 재난영화 비주얼을 선보인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가 차츰 공개되면서 비주얼에 관한 이야기가 쏙 빠져버렸다.
그 대신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홍보 방식이 변화했다. 얼마 전 공개된 영상의 경우 멘트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저질 그 자체다. 영상에 삽입된 멘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 컷 한 컷이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공식과는 다른, 웃음과 눈물도 우리 것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국형 휴먼재난영화"로 마무리가 된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제대로 활용한 사례는 심형래 감독의 <디 워>로, 개봉 당시 그 재미를 톡톡히 봤다. 허나 심형래와 윤제균은 다르다. 관객이 <디 워>의 애국심 마케팅에 기꺼이 지갑을 연 것은 그가 처해있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심형래는 인정받지 못하는 영화인이다. ‘코미디를 하는 주제에 무슨 감독이냐!’가 충무로 영화인들의 인식이었고, 그는 노골적으로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디 워>는 할리우드 공략을 위해 홀로 묵묵히 싸우는 심형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어필했다. 이에 반해 윤제균은 심형래처럼 치열하게 뭔가를 위해 싸운다는 이미지가 없다. 관객이 기억하는 윤제균은 <색즉시공> <낭만자객>의 감독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해운대>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 전략은 관객에게 먹힐 수가 없다. 이 영상을 보며 드는 기분은 대체로 '짜증 지대로네, 좆같네, 토할 것 같다' 따위의 느낌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비주얼로 한판 승부를 볼 것 같은 영화가 갑작스럽게 꼬리를 내리고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러면 관객은 ‘'영화가 얼마나 후지면 이런 방법으로 관객을 낚시질을 하려고 할까?’라고 추측할 수밖에. 솔직히 <해운대>의 티저 예고편만 보더라도 영화를 보고 싶은 욕구가 크게 일어나진 않는다. 안 그래도 비호감 영화인데, 속셈이 뻔히 보이게 애국심에 호소한 것은 판단 미스로 보인다.
또 하나, 나는 <해운대>에서 얘기하는 '한국형 휴먼재난영화'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재난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주얼이 아니다.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재난영화들도 따지고 보면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휴먼 드라마가 사실상 메인이다. 비주얼은 최강, 드라마는 바닥을 치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들조차 재난영화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른다.
땅이 갈라지고 해일이 도시를 휩쓰는 것은 단순한 눈요기에 불과하다. 이 눈요기들이 보다 강렬하게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잘 짜인 드라마가 필수적이다. 재난영화에서 거대한 비주얼은 관객을 낚기 위한 요소일 뿐,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한 차례 재난이 몰아치고 나면 소원해진 가족 관계, 트러블이 생긴 연인들, 감동적인 희생정신, 극단적 이기심을 발휘하는 인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묘사된다. 재난의 상황에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의 갈등은 해소된다. 대부분의 재난영화들은 이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게 미제든 일제든 다르지 않다.
그럼 ‘한국형 휴먼재난영화’라는 용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딱 2초만 생각하니 답이 나온다. 영화에 자신 없다. 그렇게 해석하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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