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영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방법은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외국에서 영화를 사와서 배급하거나, 외국에서 직접 배급하는 거죠.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영화라는 상품은 세 단계를 통해 관객과 만납니다.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가 '생산자'라면, 그 영화를 각 극장과 연결해주는 배급사는 '도매상'인 셈이고, 극장은 '소매상'입니다. 외화를 외국에서 가져오는 수입사는 '생산자' 단계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직접 배급을 하거나 배급사에 영화를 넘기죠. 한편 미국의 직접 배급, 즉 '직배'는 미국의 도매상이 한국의 소매상과 직접 거래는 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할리우드 직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한국엔 유니버셜 영화를 배급하는 UPI(Universal Pictures International)코리아, 콜럼비아와 디즈니 영화를 배급하는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등 네 개의 직배사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직배사가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21년이군요. UIP(United International Pictures)가 1988년 9월10일에 [위험한 정사](1987)를 개봉하면서 한국에 직배가 시작되었으니까요. 이후 워너브러더스, 이십세기폭스, 브에나비스타, 콜럼비아픽쳐스 등이 들어왔고(드림웍스 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배급되었습니다), 1990년대 한국 극장가에서 맹위를 떨치던 직배 영화는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직배 영화 위기론'을 맞이하기도 했고요.
할리우드 직배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배급사가 모든 나라에서 일치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타이타닉](1997) 같은 경우 미국에선 파라마운트가 배급했지만, 한국에선 이십세기폭스가 배급했죠. 두 회사가 함께 돈을 내서 만든 영화였고, 배급권을 나눠 가진 겁니다.
전설적인 얘기로는 [쇼생크 탈출](1994)가 있습니다. 한국에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콜럼비아에서 직배를 포기했는데 어느 신생 수입사가 5,000만원에 구입해 1백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엄청난 대박을 기록했죠. 게다가 케이블 TV에서 쉴 새 없이 틀어댔으니, 그때마다 수익이 발생했고요. 영화 한 편 잘 수입해서 완전히 팔자 고친 경우입니다. 한편 미국에서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미국 직배사가 개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주쿠 사건](2008)은 대만에선 브에나비스타가, 일본에선 UPI가, 한국에선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가 배급했죠. 한때는 직배사가 한국영화를 배급한 적도 있었죠. [번지점프를 하다](2000)를 배급한 곳은 디즈니 영화를 배급하는 브에나비스타였으니까요.
'직배사'라고 하면 단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와 배급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엔 의외로 변수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어떤 영화를 배급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도, 무조건 미국의 기준을 들이대진 않고요. 한국적 정서와 흥행 코드를 감안해 한국 지사에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 배급 규모도 그렇게 결정됩니다.
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입장에서 볼 때, 해외에 직배사를 차리는 것이 반드시 이익인 것도 아닙니다. 배급이나 마케팅 비용에서 리스크를 가지는 거니까요. 영화는 맥도널드나 스타벅스처럼 로열티 개념이 아니거든요. 관객 1명당 얼마의 수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흥행 여부에 따라 비용을 못 건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의하면 2007년에 한국의 직배사 지사가 미국으로 송금한 금액이 481억 원이라고 하는데, 만약 직배를 하지 않고 한국의 수입사에 판매했을 경우 어느 정도의 수익을 거두었을지 궁금하네요.
직배 이외의 방법으로 외화가 개봉되는 방식으로 '세계 3대 영화 마켓'이라는 게 있죠. 프랑스의 칸 마켓, 이탈리아의 밀라노 마켓, 그리고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인데요,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사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영화를 팔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처럼 아주 '쎈' 영화라면 몇 줄의 시놉시스와 몇 장의 스틸 사진만으로도 고가에 팔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많을 것 같진 않습니다. 또 영화가 수입되었다고 해서, 전체 금액을 한꺼번에 다 주는 건 아닙니다. 미니멈 개런티 개념으로, 기본 금액을 얼마 주고 이후 흥행 상황에 따라 관객 1명에 얼마씩 계산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씁쓸한 이야기 하나. 한때 한국의 영화사들이 해외 마켓에서 가격 경쟁을 통해 가격을 올린 적이 있었죠. 1990년대 중반에 대기업이 영화업에 진출하면서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고 하고요. SKC가 [컷스로트 아일랜드](1995)를 5백만 달러에 사오고, 삼성영상사업단이 [제5원소](1997)를 530만 달러(당시 환율로 42억 원) 사온 건 한때 업계에서 회자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그때 올려 놓은 단가가 아직도 그렇게 내려간 건 아니라고 하네요. 외국 사람들 중, 한국 바이어라고 하면 일단 '봉'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일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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