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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베르제 (Pierre Berge)
+ 성별 : 남자
 
출 연
2010년 제작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L’Amour Fou)


1930년 올레롱 섬에서 출생. 1948년 파리로 이주하였다. 문학에 열정이 있었던 그는 장 지오노, 장 콕토와 절친한 사이였고 이들과 죽을 때까지 친구로 지냈으며, 카뮈, 사르트르, 앙드레 부르통 등 당대의 지성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장 콕토가 죽은 후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법적 권리자가 되었다. 1949년에 베르제는 화가 베르나르 뷔페를 만났고 1958년까지 그와 긴밀한 관계로 지냈다. 같은 해에 이브 생 로랑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3년 후 둘은 함께 오뜨꾸튀르 하우스를 설립했다. 현재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의 대표로 있다.
그는 아테네-루이 쥬벳 극장의 디렉터를 맡아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나비르 나이트>, 앙투완 비테즈 연출의 몰리에르 희극들을 무대에 올렸으며, 아테네의 월요음악축제를 설립했고 필립 글래스와 존 케이지의 콘서트 및 잉그리드 카벤 쇼를 제작했다. 또한 수년간 로버트 윌슨이나 피터 브룩의 연극 작품을 후원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파리 오페라단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이 때 정명훈을 음악감독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수년간 에이즈 확산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1996년부터 에이즈 재단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브 생 로랑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사업가이자 좌파 정치가들의 후원자이며 사회운동가이자 공연예술 경영자이기도 한 피에르 베르제. 그는 프랑수아 미테랑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2007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와 맞서던 사회당 대통령 후보 세골렌 루이얄을 적극 후원했었다. 지난 해에는 경영난에 처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르몽드’를 좌파 성향의 기업인 컨소시엄을 결성해 인수하면서 사르코지로부터 독립언론을 구해냈다는 뉴스의 중심 인물이 되기도 했다. 2009년 경매 당시에는 중국의 청동상 반환 요청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인권선언을 실천하고 티베트인들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허락한다면, 당장 이 청동상들을 돌려줄 수 있다.”라고 답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영화 속 이브 생 로랑과의 50년에 걸친 다사다난했던 사랑을 지켜내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런 세상을 향한 굳은 신념과 그것을 실천해내는 강인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40년을 한결같이 패션쇼 런웨이 무대의 한쪽 끝에 숨어서 지켜보던 피에르 베르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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