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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1940, The Long Voyage Home)


귀향 제목의 영화중 가장 좋음 ★★★★  director86 08.05.10
감동적이고 재미있네요 ★★★  inferior1004 07.07.01
재미있었음 ★★★★  accdzr 07.02.11



전통 서부극의 환상적인 콤비로 일컬어지는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이 이례적으로 만든 항해 영화인 <머나먼 항해, The Long Voyage Home>는 유진 오닐의 단편 희곡 네 작품을 연결시켜 만든 것으로,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는 무식하고 단순하지만 의리와 우정이 충만한 전형적인 바다 사나이들의 애환을 묘사한 작품이다. 정신적인 가치 기준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술집 주인 및 작부들의 모습과, 부평초처럼 바다를 떠다니는 선원들의 무궤도한 생활 속에서도 삶의 정착지에 대한 강한 향수를 잃지 않고 있는 한 선원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이며, 한편 그 선원이 바라는 귀향이 좌절되는 것을 통해 삭막한 현대인의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머나먼 항해>는 상업적으로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촬영상, 편집상, 각본상 등 아카데미 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에서 최우수 영화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수작이다.
서부극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존 포드 감독은 무성 영화 시대인 191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서부극 장르의 창조, 변형,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당대 사회상을 고발한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도 확고한 족적을 남긴 감독이다. 수많은 영화 감독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고 또한 존경의 대상이었던 존 포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장편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할리우드의 진정한 장인이자 작가로 인정받는다. 197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1973년에는 미국 영화 협회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1935년 아일랜드 반란을 배경으로 한 <밀고자, The Informer(1935)>로 처음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기 시작해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1941)>로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역마차,
Stagecoach(1939)>로 뉴욕 평론가 협회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수색자, The
Searchers(1956)>는 서부와 영웅에 대한 가장 복잡하고 가장 비판적이며, 가장 생생한 자화상을 창조한 그의 최고 걸작이다. 그 외 대표작으로 <아파치 요새, Fort Apache(1948)>, <노란 리본, She wore a yellow ribbon(1949)>,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리오 그란데, Rio Grande(1950)>,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rt Liberty Valance(1962)> 등이 있다.

존 웨인은 20세기 폭스사의 소품담당자로 일하던 중 존 포드 감독의 눈에 띄어, 1928년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존 웨인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는 라울 월시 감독의 <빅 트레일, Big Trail (1930)>이었지만 진정한 스타로 떠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존 포드 감독 덕이었다. 존 포드 감독이 고전 서부극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역마차, Stagecoach (1939)>의 링고 키드역에 존 웨인을 캐스팅하면서 미국의 상징적인 배우로 떠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역마차>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존 웨인은 언제나 정의롭고 과묵하며 용감한 서부 사나이의 강인한 이미지로 총 2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아카데미는 한 번 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또한 영화 제작, 각본, 연출 등에 두루 욕심을 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고등 학교를 졸업한 뒤 신문 기자 생활을 하던 토마스 미첼은 1913년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 1920년대에 브로드웨이에서 맹활약했다. 연기 생활을 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토마스 미첼이 플로이드 델과 같이 발표한 희곡 는 할리우드에서 세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행운을 느렸다. 1934년 영화계에 입문한 토마스 미첼은 1937년 프랭크 카프라의 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39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제럴드 오하라 역으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했다.
토마스 미첼의 대표작으로는 <천사만이 날개를 갖는다(Only Angels Have Wings)>(1939),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 <노틀담의 곱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 <멋진 인생(It's Wonderful Life)>(1946) 등이 있다.

잘생긴 외모에 영국 상류층의 액센트를 구사하는 주연급 배우 이안 헌터는 1919년 연극 무대에 데뷔했고 1924년 스크린에 데뷔한 뒤 십 년 동안 연극 무대와 영화에서 주연급 배우로 활약하다 1934년 할리우드로 진출해 많은 미국 영화에 출연했다. 이안 헌터는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 연인, 친구 역을 자주 맡았는데 1942년 군에 복무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간 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서양을 오가며 영국과 미국의 연극 무대와 영화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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