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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2007, There Will Be Blood)
제작사 : Miramax Films, Paramount Vantage / 배급사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주)
수입사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therewillbeblood.co.kr

데어 윌 비 블러드 예고편

[스페셜] 다채로운 영화를 음미하기 위한 준비, 제14회 전주영화제 추천작 13.04.22
[뉴스종합] <아르고> 작품상 등 3관왕 차지,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13.02.25
석유만큼 한계가있는 사랑과믿음 anon13 09.03.20
미국 석유 자본 성공 신화의 이면.... ldk209 08.07.02
2시간반이넘는데 이정도로 안지루하게.. 역시 다니엘은 최고 ★★★★  tree 20.08.27
이미 거장인 PTA, '인간' 그 자체를 그리다. 다니엘과 폴의 연기는 진짜...모든 장면이 명장면 명대사. ★★★★★  chorok57 14.03.20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최고였다. ★★★☆  enemy0319 12.02.07



가족, 믿음, 권력 그리고 석유에 관한 서사시인 “데어 윌 비 블러드” 는 캘리포니아 석유 붐으로 급변하던 지역 서부를 무대로 펼쳐진다. 이 영화는 다니엘 플레인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인생 여정을 별 볼일 없는 은광 광부에서 석유업계의 거물로 자수성가하는 과정 속에서 그렸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펀치 드렁크 러브”, “매그놀리아”, “부기나이트”, “리노의 도박사”에 이은 작가 겸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앤더슨의 각본은 과거를 풍미했던 소설가 업톤 싱클레어의 1920년 작품 “오일!”을 기초로 만들어 졌다.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바 있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미스 리틀 선샤인 의 폴 다노, 시아란 힌즈, 케빈 J. 오코너 그리고 신인 딜런 프리지어가 출연했다.

앤더슨과 자주 합작하는 조안 셀러와 다니엘 루피가 제작을 맡았고, 제작 이사는 스캇 루딘, 에릭 슐러써 그리고 데이빗 윌리엄스가 맡았다. 촬영 부문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오랜 동안 앤더슨과 일을 같이 해온 로버드 엘스윗으로 “굿 나잇 앤 굿 럭”을 맡았다. 제작 디자인 부문에 잭 피스크, 의상 디자인에는 앤더슨과 이미 네 차례나 함께 작업한 경력이 있는 마크 브릿지스, 편집에는 “부기 나이트”와 “매그놀리아”를 편집 작업했던 딜런 티크노 그리고 음악 부문은 라디오 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았다.

촬영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야망, 부, 가족, 그리고 자석 같이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서부의 매력을 잘 나타낸 미국 영화의 명작 중 하나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5번째 영화에서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한 인간이 난폭한 탐광자에서 석유 재벌로 일어서며 자신과 한 마을 전체를 변화 시킨 내용을 엮어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캘리포니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에드워드 도헤니와 존 로케펠러 처럼 역사적 석유 개척자의 틀에 맞춰 다니엘 플레인뷰가 허름한 광부에서 석유재벌이 되고, 풍요를 몰랐던 한 마을에 풍요와 번영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본인의 영혼은 어둠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아카데미 수상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맡아 열연하는 다니엘 플레인뷰는 스스로의 매력, 열망, 자수성가 하려는 불변의 강박관념을 가진 인물로 캘리포니아 중부의 외딴 마을 리틀 보스턴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땅에서 석유가 나오자, 플레인뷰는 이 외딴 마을에 냉소, 욕심, 유혹과 가공할 부패에 맞선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성실 등의 극적인 변화를 순식간에 일으킨다.
로케이션은 10년 전 석유주제의 “자이언트”를 촬영했던 텍사스 말파가 맡았고, 앤더슨과 제작진, 출연진 모두가 다니엘 플레인뷰의 유성 같은 출세와 섬뜩한 몰락에 어울리는 세피아톤의 풍경에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듯한 이미지들이 어우러지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프로덕션

폴 토마스 앤더슨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2번이나 올랐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룬 서부 배경 작품 4편을 제작한 바 있다. 그의 첫 번째 영화, “리노의 도박사”은 범죄 스릴러로, 라스베가스 카지노가 그 무대이다. 두 번째 영화 “부기 나이트”에서는 성인영화의 만화경 같은 복잡 다양한 모습을, “매그놀리아”에서는 산 페르난도 발리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이고 마술 같은 하루 밤의 뒤섞인 이야기를,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분야를 시도한 작품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헐리우드나 실리콘밸리 이전에, 석유가 부와 새로운 미래에 굶주린 사람들을 서부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었던 시대, 캘리포니아 개발의 초기 모습 담아낸 앤더슨의 첫 작품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비록 영화적 스타일로 전개되지만, 그 기반은 업톤 싱클레어의 1927년작 소설 “오일!”에 있다. 향수에 젖은 앤더슨이 런던의 한 책방에서 책들을 보고 있을 때, 소설책 앞머리에 캘리포니아 표지는 대번에 그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끈질기고 모험심 많은 탐광자들이 황량한 캘리포니아의 평야를 유전과 유정탑으로 바꾸어 놓던 그 시절, 싱클레어의 시점 속으로 깊이 빨려들었다. 소설은 캘리포니아의 시그널 힐이라는 배경으로 펼쳐지죠. 저는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 곳 역사에도 예전부터 흥미 있었어요. 소설은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업톤 싱클레어는 미국의 음식문화를 바꿨고,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시카고 도축장 배경의 1907년작 “정글”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20년후, 싱클레어는 막 싹트기 시작한 석유산업의 타락과 착취 현장을 파헤칠 목적으로 “오일!”이라는 대하소설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오일!”은 에드워드 도헤니를 포함, 그 시대에 실존했던 석유 재벌을 모델로 만들어 낸 J. 아놀드 로스와 가족사업을 이어받기 희망했던 그의 아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에게 대항하게 되고 카리스마적인 소년 목사 엘라이 왓킨스를 중심으로 광신적인 신도들과 공모해 석유업 종사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소설 전체적 흐름보다는 싱클레어가 석유 재벌의 억척스럽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탐광자들을 자세히 다룬 초반부 150장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또한 확인할 수 없는 이상적 신앙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 싱클레어에게도 끌렸다. 이러한 영감을 기본으로 앤더슨은 독자적인 주인공들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서로 얽힌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다니엘 플레인뷰와 엘라이 선데이이다.
앤더슨은 캘리포니아 곳곳의 석유 박물관을 전전하면서 그 시대의 분위기를 가득 담은 사진들을 보며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면 실소를 참을 수 없어요. 베이커스 필드 근처에 역사적인 것이 많아요. 석유업 종사자들의 후손이 많이 살아서 전해지는 얘기도 많았고요. 그래서 엄청난 양의 조사를 가능했어요. 마치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는데 짜릿하던 걸요.’
또한 앤더슨은 많은 책을 읽었다. 특히 에드워드 도헤니의 자서전 더 다크 사이드 오브 포춘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의 자서전은 에드워드 도헤니가 혈기 왕성한 이민자 아들에서, 뉴 멕시코의 실버시티에서 실패한 은광 광부, 권력, 명성, 타락한 욕망만 남은 캘리포니아의 석유재벌로 성장하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도헤니의 흔적을 찾아 앤더슨은 직접 실버 시티에 가서 도서관과 박물관에 보관된 옛 사진과 낡은 신문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결과, 역사, 풍경, 석유를 발굴하는 과정을 각본 속에 잘 녹아내고 시적인 서부극 대사를 융합시켜 끊이지 않는 서스펜스를 연출해내기에 이른다.
연구조사가 끝날 무렵, 앤더슨은 ‘책은 그만하고 이제 진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오랜 제작 동업자 조안 셀러와 다니엘 루피와 힘을 합쳐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제작 이후, 앤더슨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고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작품은 저희가 시도한 영화 중 가장 큰 모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셀러는 말했다.
‘폴은 각본이 3/4정도 완성 되었을 때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보냈고 다니엘은 바로 참여했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없이 폴이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다니엘이 들어오고 각본이 완성되었을 때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뿐이었죠’ 라고 셀러는 회상했다.

다니엘 플레인뷰

앤더슨의 심도 깊은 연구조사 끝에 탄생한 플레인뷰라는 인물은 과묵하고, 개인적이며 일찍부터 생존하기 위해 싸워야 했기에 생긴 자신만을 의지하는 심리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석유를 발굴하면서 얻은 엄청난 부와 권력으로 혼란과 불협화음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제작에 참여했을 때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은 더 심도 깊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어두운 유머와 공포스러운 광기 사이로 혹은 부드러운 성격에서 악랄하고 비겁한 협박범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데이 루이스는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배우로 알려져 있다. 데이 루이스와 여러 차례 영화를 찍은 감독 짐 쉐리단은 ‘그는 100퍼센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전부 버리긴 어렵죠, 하지만 그는 거의 그 수준까지 갑니다.’ 라고 뉴욕 타임즈에 털어 놓았다.
데이 루이스가 배역을 맡고 제작에 들어가기 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그는 세기 전의 석유업자의 삶과 플레인뷰의 영혼의 갈라진 틈을 살펴볼 시간이 충분했다.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갖고 도전하지만 오직 몇몇 만이 부와 권력을 얻게 된다는 석유산업의 본질에 매료되었다. 도헤니와 그 시대의 석유업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부 했는데, 앤더슨이 예상했던 대로 영화 제작 세트에 나타났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배역을 완전히 소화해 내기에 이른다.
앤더슨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배우와 같이 일하게 되어 행복했고, 소수의 감독들에게만 그와 일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고 말했다. ‘영화에 캐스팅 제안을 하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말고는 이 배역을 소화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레인뷰역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맞서는 엘라이 선데이역의 폴 다노도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그의 연기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의 연기는 영화의 모든 면에서 공명하는데 그 신비한 힘은 보는 사람 앞에서도 펼쳐졌다. ‘저는 영화를 볼 때 마다 다니엘의 연기에서 새로운 것을 봐요. 놀라울 뿐이예요.” 라고 조안 셀러는 설명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데이 루이스와 다노의 힘이 컸다고 말하기 쉽지만, 앤더슨은 조연과 엑스트라의 역할도 크다고 말한다. 대부분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어서 영화가 더 실제적이고 데이 루이스의 역에 부합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엑스트라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해요. 서부 텍사스의 맛은 서부 텍사스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고, 그들은 자기 시간 할애한다는 부분에서 관대했습니다. 저는 엑스트라들이 이뤄낸 성과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다니엘”과 같은 훌륭한 배우도 필요하지만 그 주변 배우 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면 영화 전체가 망하거든요.’

엘라이 선데이

다니엘 플레인뷰가 리틀 보스턴에 도착함과 동시에 엘라이 선데이가 나타나고, 그의 최고의 적수가 될 거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엘라이는 비록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강하고 카리스마적인 목사이며 더 크고 헌신적인 교회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석유와 부,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파괴될 것임을 직감한다. 선데이역의 폴 다노는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근심 걱정 없는 십대의 역을 맡아 연기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180도 변신한다. 사랑의 갈망과 신의 전도사적 영광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젊은 이로 열연한다.
다노가 말하는 엘라이의 매력은 앤더슨이 쓴 현란하고 열광적인 독백이라고 한다. ‘엘라이 역을 연기하면서 즐거웠어요. 앤더슨은 언어를 좋아하고 또 숭고함을 담아내기 때문이죠. 폴이 쓴 각본과 제가 조사한 자료, 사진들, 성경이 잘 흡수된 덕분에 연기 할 때 알게 모르게 뿜어져 나온 것 같습니다.’
다노는 다양한 설교 스타일과 인생을 살아온 목사들의 엄청난 힘과 몰락에 끌려 들었다. ‘목사님들은 말투가 부드럽지만 설교단에 서면 관중을 사로 잡는 엄청난 열기가 느껴져요.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죠. 사람들이 반응을 보면서 힘을 얻는 게 보여요. 하지만 그런 힘이 있다면, 그 힘에 중독 돼서 원래의 참 뜻을 잃기 쉽죠. 다니엘이 권력을 원했다면 “엘라이”는 관심의 중심에 서고 싶어 했고, 그래서 숙명적으로 거대한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거예요.’
다니엘 플레인뷰가 점점 힘을 얻을수록 엘라이도 유명세를 얻는다. 하지만, 다니엘이 엘라이와 그가 그 마을에 지닌 영향력을 무시하는 바람에 엘라이는 더욱 격분하게 된다. 그의 분노는 예배장면에서 종교적 열정으로 가장, 섬찟한 복수를 펼치게 된다. ‘이 장면은 제 캐릭터에게는 전환점이 되요. 알게 모르게 플레인뷰의 전환점도 되구요. 플레인뷰가 먼저 엘라이을 망신 시켜서 엘라이가 상처 받았죠. 게다가 플레인뷰는 엘라이와 그의 교회를 존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세를 전환하는 것이 엘라이에겐 중요하죠.’
폴 토마스 앤더슨은 레베카 밀러의 “발라드 오브 잭 앤 로즈”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다노와 데이 루이스의 관계가 발전한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폴은 다니엘의 연기 스타일을 잘 알뿐 아니라, 호흡을 맞출 충분한 능력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상대역으로 자신감도 충분히 있죠. 두 사람은 맡은 배역 사이의 심각한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했죠. 제 생각에는 역에 몰두해서 느끼는 스릴감과 기쁨을 서로 잘 나누었다고 봅니다. 서로 편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실제로 주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하거든요.’ 라고 말했다.
조안 셀러는 ‘서로 거리를 지켜서 라이벌 의식을 유지했습니다.” 라고 덧붙였다.
다노는 데이 루이스와 대담한 연기를 펼치게 되었다는 것에 몹시 고무되었다. 교회 신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연기자가 아닌 실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즐겼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는 앤더슨의 결정으로 많은 부분에 비 연기자들이 출연한다.) ‘다소 모험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효과가 정말 대단했어요. 모두들 잘 해주었죠’.
결국 증폭된 엘라이와 플레인뷰의 대결은 폭발을 코앞에 둔 절정으로 치닫는다. 다노는 플레인뷰 저택 볼링장에서 촬영 했을 때 전체적인 무드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했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꽤 재미있게 시작했는데, 점점 어둡고 감정적으로 변하고 나중엔 무섭기까지 했어요. 아무 제한 없이 시작했는데 갑자기 볼링공을 피하던 제 자신에 맞서, 다니엘도 강렬한 연기력을 뿜어냈거든요. 무척 심각해서 사실 조금 겁이 날 정도였어요.’

헨리와 플렛처

영화에서 가장 신비한고 매혹적인 인물은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바로 케빈 오코너 분의 헨리이다. 헨리는 다니엘 몰랐던 이복동생으로 다니엘에게 누구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가장 솔직하고 상처받은 속마음을 끌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스티븐 소머즈의 공포물에서 잘 알려진 오코너는 그의 인물상을 폴 토마스 앤더슨이 준 사진을 포함해 여러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냈다. ‘한 사진은 경찰한테 잡힌 사람의 사진이었는데 큰 콧수염이 있었죠. 그리고 친구가 보여준 가족사진 중에 한 명이 옆으로 앉아있는데 옷이 조금 타이트 해 보여서 왠지 일행들과 융화되지 않는 듯 했어요. 마치 밥만 먹고 떠날 사람처럼요. 이런 사진을 보고 나서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제가 더 배고파 보일 테니까요. 바로 그게 열쇠였어요.’
오코너는 처음으로 앤더슨 감독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고, 그의 말을 빌리면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제가 같이 일해본 감독 중에서 가장 괴짜예요. 자잘한 것까지 신경을 쓰는데 다른 사람들까지도 세세한 것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더군요. 정말 놀라워요’.
다니엘 플레인뷰의 오른팔인 시아란 힌즈 분의 플렛쳐가 있다. 그는 떠오르는 인기 배우로서 2007년 가을에 선보인 “노아 바움백”의 “마곳 앳더 웨딩”에서 코믹한 연기를 펼친 바 있다. 힌즈는 대본을 읽고 받은 충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욕망과 복수, 야망에 사로잡힌 감정에 대한 주제는 성경적이면서 서사시적이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각본은 그 재미가 한 장 한 장 스며 나오는 듯 해요. 너무나 세속적이라서 눈 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듯 하죠. 폴은 뛰어난 시야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 감춰진 감정들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합산해 낼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어요’. 힌즈는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 플렛쳐의 독특한 감성에 다시 놀랐다. ‘그는 실제로는 관찰자 입니다. 깊게 연루되지는 않지만 플레인뷰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면서 점점 더 능동적으로 변화해요. 플렛쳐의 성격은 실제 업무가 처리되도록 감독하는 거예요, 조용하고 겸손하게 말이죠’.
영화를 제작하면서 힌즈는 비 전문 배우들과 일하는 것을 특히 즐겼다. ‘자신이 비전문가라는 점을 잘 알고 있어, 항상 배우려는 태도는 저희들을 부끄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을 잘 알고 있어서, 이 땅에서 나오는 힘을 간단하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죠. 아마 도시사람이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H.W.

배역을 맡은 텍사스 주민 중에 두드러지는 사람은 H.W.의 역을 맡은 딜런 프리지어이다. 그가 맡은 H.W.라는 인물은 다니엘 플레인뷰가 아들처럼 길러온 육체적이고 감정적 위험을 내포한 관계의 인물이다. 프리지어는 연출 감독 카산드라 쿨룩쿤디스가 텍사스 지역 학교에서 심도 있는 자연주의자의 역을 소화할 수 있는 아역 배우를 발굴할 당시 찾아낸 소년이다. 그는 텍사스에 있는 포트 데이비스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랐고 영화 제작 전에는 미국의 대도시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딜런은 이전까지는 영화하곤 아무 관련 없던 놀라운 10살 짜리예요. 폴이 찾던 그런 아이죠.’ 라고 조안 셀러가 설명했다. ‘폴은 총도 쏠 줄 알고 말도 탈줄 알며 이 지역 환경에 익숙한 아이를 찾고 있었어요. 딜런는 아주 훌륭한 발견입니다’.
야외도 집안처럼 편하게 느끼는 프리지어는 타고난 열성으로 유정탑에서 사고로 청각을 잃고 삶의 전환기를 맡는 H.W의 역을 맡았다. 친한 사이가 된 시아란 힌즈의 말에 의하면 ‘처음 하는 연기에 많은 감정 표현이 필요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진심을 담아서 연기했어요. 그 안에서 참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프리지어는 우리 시대에 가장 훌륭한 배우와 연기를 했지만 절대 기죽지 않았다. ‘다니엘은 대단했어요. 그를 만난다는 건 특별한 일이죠. 저도 많은 것을 배웠는데 권투를 할 때는 항상 앞으로 피해야 되요, 뒤가 아니고요. 전 몰랐어요’.
영화 내용상 프리지어는 수화를 배워야 했고 유정탑 폭발로 내동댕이 쳐지거나 아버지 집에 불을 지르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스턴트도 직접 해야 했다. ‘처음에는 스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 긴장되고 떨렸지만 방법을 알고 난 후에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프리지어를 들뜨게 만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진실을 찾는 젊은 H.W.의 역을 맡은 러셀 하버드를 만난 일이었다. ‘러셀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우리는 아주 친해졌는데 정말 좋았어요’.

선데이 家

캘리포니아 중부에 위치한 가족이 운영하는 목장 땅에 석유가 있다는 말을 들은 플레인뷰는 선데이가 가족들과 유대와 충돌을 반복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가장인 에이벨 선데이는 플레인뷰와 숙명적인 거래를 한다. 에이벨 선데이는 데이빗 윌리스가 맡았고 스티븐 소더버그의 “굿 저먼”에서 최근 열연한 바 있다. 마르파지역의 배우 크리스틴 올레닉작은 영화에서는 활동한 적이 없지만 선데이가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처음 인터뷰를 갔을 때 폴은 사무실에 그 시대 사진을 붙여놓고 이 사진들이 현실로 만들어 지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어요’.
올레닉작이 배역을 맡은 후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 의상과 촬영장, 영화의 스토리는 그녀를 다른 시대로 옮겼다. ‘제 의상은 회색이거나 짙은 가래 색이었어요. 참 불쌍해 보였죠. 이런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자 폴이 말한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올레닉작은 배우들이 선데이 가족처럼 극히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었던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 겉 모습이나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것도 참 신기했어요. 우리가 모이자 마자 닭살 돋을 만큼 형편없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 속 가족은 실제로 친하게 되어 촬영이 끝났어도 떼어놓기 힘들었다. ‘촬영 마지막 날에도 폴은 촬영이 끝난 것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마치 우리들과 헤어질 수 없다는 듯이 말이죠. 그리고 정말 끝났을 때는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서로를 껴안았어요. 여자들은 앞치마에 얼굴 가리고 울었죠. 참 감동적이고 아름다움 순간이어요’.
텍사스 알파인에서 사는 10살 박이 시드니 맥알리스터는 어린 메리 선데이의 역을 맡아 H.W의 평생 친구의 역을 해내었다. 동물들과 가까이서 자란 맥알리스터는 목장집 소녀의 역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왜 메리가 H.W.에게 끌렸는지도 쉽게 이해했다. ‘제가 맡은 역할의 소녀는 몹시 외로운 데다 아버지도 난폭해요. 그래서 H.W.와 친구가 되고, H.W.는 그녀가 가난하다거나,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 둘은 서로 좋아할 수 있었어요’.
리틀 보스턴에서 단 하나 남은 H.W.의 친구인 젊은 메리 선데이는 떠오르는 여배우 콜린 포이가 맡았다.
마르파에서 나온 또 한 명의 배우 켈리 힐은 마르파 연극학교에서 나오자 마자 루스 선데이로 발탁되었다. ‘전 루스가 항상 수줍고 할말이 있거나 나서고 싶어도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라고 힐은 자신의 조용한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리틀 보스턴 석유업 종사자 역의 연출은 여러 명의 엑스트라로 구성 되었다. 대부분은 마르파지역의 목장, 공사장에서 뽑았다. 엑스트라 중 한 명인 베리 어윈은 ‘노동직 종사자라 맡은 배역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유전에서 일하면 돈은 많이 받지만 위험한 일이라 협동이 필수 입니다. 이런 부분은 저희도 잘 알고 있죠’.
촬영장에 전문 배우와 비 전문 배우를 섞어 고용했는데도 별 문제가 없었다. ‘폴은 이렇게 다양한 배우들을 섞어 놓아도 잘 만들어 내요. 모두에게 관심을 많이 줘서 가능한 일예요’. 라고 셀러는 설명했다.
앤더슨도 가끔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석유업 종사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당시 석유업 종사자는 여기 저기 방황하던 사람들입니다. 12시간씩 일하면서 다 몸으로 때워야 되는 일들이거든요. 저희도 똑같았습니다. 실제로 유전을 판다는 환상을 갖기도 했죠’.

리틀 보스턴

폴 토마스 앤더슨이 그의 제작진에게 “데어 윌 비 블러드” 각본을 보낼 무렵, 100여장이 넘는 사진으로 가득한 노트북과 함께 전송됐다. 그것들은 “앤더슨”이 만들고자 했던 시대, 즉 너무 동떨어져있어서 현재와 차이점이 한눈에 보이지만 시간의 어디에도 정착시키지 못 할 시대의 영감이 되었다. 순수한 창작의 전류가 앤더슨을 그의 영화인생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정말 짜릿하고 흥분됐어요. “부기 나이트” 느낌이 난다고 자신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영화의 긴장감과 분위기를 살리는 열쇠인 완벽한 환경을 잡아내기 위해 앤더슨은 아카데미 수상경력이 있는 사진감독 로버트 엘스윗과 동행했다. 엘스윗은 앤더슨과 이 전 작품에서부터 같이 일해왔다. 그가 참여한 작품 중에는 조지 클루니의 시대극 “굿 나잇 앤 굿 럭”의 흑백 사진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서부의 광활한 야외에서 촬영해야 한다. 그는 영화의 주제인 사막의 무자비함과 숨어있는 보물과 쌍을 이루는 뛰어난 그림 같은 작품으로 예전에는 보여진 적 없는 각도에서 서부의 풍경을 포착해 냈다.
‘이제 서로 너무 잘 알아서 언제 껴안아주고 언제 앞에서 얼쩡거리지 않아야 되는지 확실히 알아요. 제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해해 주고 더 좋게 다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20미터 땅굴에서 사진 찍는 게 쉽지 않은데, 이제 같이 일하는 걸 즐기는 단계까지 왔어요’ 라고 앤더슨은 엘스윗과 관계를 설명했다.
앤더슨은 제작 디자이너로 잭 피스크를 고용했다. 피스크는 테런스 말릭의 씁쓸하고 애끊도록 시적인 배드랜즈의 예술 감독에서 시작했다. 피스크는 말릭과 자주 손을 잡았는데, 그 외에도 스타일의 도전이 강한 데이빗 린치나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과도 함께 일 했다. 앤더슨이 말하기를 ‘그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어요. 잭같은 사람이 없지요. 처음 제안을 했을 때 어떻게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혀서 꼭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보다 더 흥미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고 했다.
“피스크”는 “말릭”과 일했을 때처럼 “앤더슨”과의 작업에도 고도의 창작력이 필요했다. ‘“테리 (테런스 말릭)과 일해본 경험 때문에 저는 완전한 세트를 만들면 절대 없애지 않아요. “앤더슨”은 배경을 그때 그때 바꾸는 스타일이라 잘 맞았어요. 이 영화는 항상 변화가 있고 창의적이라 재미 있었습니다’.
앤더슨은 처음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캘리포니아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이전 모습을 찾을 수 없어요’ 라고 한 마디 말했다. 셀러도 캘리포니아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장소를 찾지 못했어요. 한쪽에는 버거킹이 있고 반대 쪽엔 고속도로가 깔려있으니까요’. 하며 거들었다.
촬영지를 찾아 제작진은 인구 2400의 텍사스 마르파까지 오게 되었다. 마르파는 미국-멕시코 국경에 목초지 마을로 지금은 한가한 예술인의 마을이 되어있다. 그 곳은 사방이 트였고 개발된 땅이 없어1세기전의 중부 캘리포니아를 재현하는데 딱 맞았다. 마을의 자연 인적 자원을 사용해서 제작에 들어갔으며 마을인구의 15%를 영화 제작에 고용했다. 마르파의 모습은 그 당시의 베이커스 필드와 비슷했고 텍사스 서부의 유전과 가까워서 유전 장비를 발굴해 낼 수 있었으며 지역 사람들은 친절하며 최고의 세트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을 더 했다.

피스크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어 방해 안받고 제작에 신경 쓸 수 있어 좋았가’ 고 말했다. 피스크는 마르파에서 철길이 있는 5만 에이커에 달하는 맥과이어 목장을 택해 세트를 제작했다. ‘마치 우리 스튜디오 같았어요. 외부에서 따로 나와 감싸져 있는 환경이라 정말 과거로 돌아온 느낌도 들었습니다. 외딴곳에 있어서 필요한 물건을 제때 준비 못하기도 해서 창작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라며 셀러가 설명했다. 라스베가스로 의상을 납품하던 근처 깃털 공장은 제작 사무실 겸 의상과 소도구 창고로 변신하기도 했다.
피스크는 이어 ‘가장 좋았던 점은 모든 세트를 목장 안에 둘 수 있었다는 겁니다. 3킬로 정도 떨어져 있긴 했지만 폴과 저는 걸어 다니면서 구상을 할 수 있었죠. 유정탑을 세울 곳, 그 다음엔 선데이 목장, 멀리 조금 솟아 있는 장소를 보고 교회를 만들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죠. 목장, 유정탑, 교회가 삼각형 모양으로 구성된 거죠’. 라고 말을 이었다.
선데이 목장은 설계도 없이 지어졌다. ‘내가 농부라면 어떻게 할까? 어떤 집을 지을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인물을 하나하나 거쳐가는 일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교회 내부에 물건은 듬성듬성 펼쳐 놓았는데, 이는 신도들이 가난해서 교회를 지을 때 엉성하다는 점을 나타내려는 시도였습니다. ‘저희 생각은 교회를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유럽 성당처럼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언덕에 볼품 없는 교회가 된 것처럼요. 유리도 없이 고딕풍으로 잘라낸 창문이나 바닥 없이 맨 땅만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고요’.
리틀 보스턴을 만드는데 총 3개월이 걸렸다. ‘작은 마을이 되었어요. 나무로 벽 지붕이 있는 집을 만들었고 실내 장식과 기차역도 지었습니다’라고 피스크는 회상했다. 기차역을 완성하기 위해 발드위 로코모티브 웍스에서 제조한 낡은 초원 기차 No. 7도 샀다. 이 기차는 1907년에 펜실베니아에서 생산되어 처음에는 목재를 나르다 석유, 승객을 나르는 여객열차로 모습을 바꾸었다.
매과이어 목장은 지형적이나 시간적으로 외딴 곳이라 앤더슨과 피스크는 엉뚱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신호를 쓰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교통신호나 사업상 쓰는 신호 모두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몇 번 쓸 뻔 했어요. 그때 마다 서로 신호 쓰지 않기로 했다는 점을 상기 시켜주었죠.’ 폴이 원한 것은 영화에 과거의 모습만 담는 것이었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어느 시대에서도 살 수 있어요’

당연히 가장 큰 문제는 30미터 높이의 유정탑을 세우는 것이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목조 건물을 세우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했을 뿐 아니라 몇 번의 파국적인 일도 견뎌야 했다. 피스크는 먼저 역사에 있었던 유정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델은 캘리포니아 컨 카운티, 타프트에 있는 106피트의 유정탑이다. 한창 오일붐이 일던 캘리포니아에서 한때 유전 발굴의 온상이 되었던 장소이며 레이크뷰 거셔는 미국 역사상 최고인10만 배럴의 석유를 매일 뿜어내기도 했다. 결국 “피스크와 특수효과 코디네이터 스티브 크레민은 컨 석유 박물관에서 1896년 제작된 설계도를 찾아내 유정탑을 만들었다.
크레민의 아버지가 석유업에 몸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합류는 영화에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착굴 작업 이론이나 역학을 잘 알고 있어서 실제 같은 유정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쓰였던 유정탑이 존재하지 않아 그 당시의 유정탑을 만들 부품부터 준비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안전수칙이 없어서 유정탑이 자주 무너지곤 했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튼튼하게 만들고 몇 가지 부품은 갑판 아래 숨기기도 했습니다’.
피스크와 크레민은 정성 들여 만든 탑을 폭발물로 파괴하기도 했다. 피스크는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만든 유정탑이 불에 탈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철거해야 했죠. 어차피 태울 거라면 폭발시키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며 전혀 걱정 없이 말했다. 크레민은 ‘내부로 무너지면서 나사처럼 밑으로 가라 앉는 모습이 굉장했습니다. 보기에도 훌륭했죠. 마치 알아서 무너지는 듯 했어요’ 라며 거들었다.
유정탑의 폭발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뤄졌다. 만약 80피트 높이의 탑을 부순 후에 다시 필요한 일이 생길까 최대한 연장한 것이다. 유정탑 폭발은 굉장히 기대되는 이벤트여서 마을 주민들은 의자를 가지고 나와 구경하기도 했다.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 남부로 이동한 피스크는 아주 색다른 세트를 준비했다. 바로 호화롭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까지 관심 없이 방치되었던 플레인뷰 저택이다. 마지막 장면은 로스엔젤레스의 1920년에 지어진 유명한 그레이스톤 저택에서 촬영되었는데 필연인지 바로 석유 재벌이었던 에드워드 도헤니가 자기 아들을 위해 지어준 저택이다. 아들이 살해 당해 죽는 바람에 방 55개 46000평방피트의 집에 하루도 살지 못했다.
그레이스톤 저택이 많은 영화에 촬영장소를 제공 했지만 이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폴은 이 저택을 확실히 변화 시켰어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거실 벽난로 앞에서 캠핑하는 거나 요강 쓰는 것 등등이 그것이죠. 저택은 아름다운데 미친 남자의 혼란함이 가득 차 있어요. 그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많은 것을 보여줘요. 볼링장을 만드는 것도 재미 있었습니다. 원래 하나 있었는데 부서져서 다시 만들었어요’. 라고 피스크는 말했다.
피스크의 예상 밖 성공은 영화에는 보여지지 않은 삼각대형 유정탑이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운명은 바로 이 삼각대형 유정탑에 좌우된다. 피스크는 유정탑의 형태가 진보해 왔는지 연구하며 재현 해보기도 했다. 또한 40피트가량 내려가는 땅굴을 파고 밑에 석유를 담아 바닥까지 내려가 촬영을 하기도 했다.
제작기간 내내 잭 피스크는 앤더슨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고무되었다. ‘앤더슨은 ‘내가 정말 이거 찍는 거 맞아?’ 하면서 촬영 내내 흥분해 있었어요.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각본을 쓰고 준비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작업하면서 이 영화를 실제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만 해도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피스크는 세트장을 훌륭한 작품으로 담아낸 카메라 감독 로버트 엘스윗과 일하는 것을 특별히 즐겼다. 로버트와 일하는 것은 커다란 기쁨 입니다. 그는 쓸데 없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고의 영화를 찍는 것 말고는 원하는 게 없어요. 열정이 변하지도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도 돼있습니다’.

의상

이 영화에서 그 시대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마크 브릿지스의 의상도 중요한 몫을 했다. 마크 브릿지스는 앤더슨과 이미 여러 영화 제작에 동참한 바 있다.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두 사람 모두 시대 배경이 색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 의식을 불어 넣어 주었다. 앤더슨이 각본을 쓰고 있을 때 브릿지스는 기본 방침과 의상 철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폴이 하루는 전화를 하더니 ‘이 영화가 어떤 모습일까’ 물어봤고, 그 시대의 사진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라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다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합류했죠. 다니엘 플레인뷰의 역을 맡은 그의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전혀 새로운 방향이 보이더군요. 다니엘은 의상 디자이너에게 이상적인 배우입니다. 디자인 과정에 많은 인풋을 넣어줬거든요. 모든 제안에도 긍정적이고요. 옷이나 넥타이는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고심하면서 골랐는데 서로 아주 훌륭하게 도움이 됐어요’. 플레인뷰의 모자처럼 간단한 디테일마저도 중요한 대화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수많은 모자 중 어떤 모자가 시각적으로 플레인뷰에 어울리고 강한 이미지를 줄까 결정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깨나 바지 형태에 대해서도 긴 시간 동안 토론을 했죠. 제가 다니엘이 역에 맞는 이미지를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제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898년에서 1927년 사이 플레인뷰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발전해가는가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플레인뷰의 아들 H.W.의 의상의 경우 빅토리아 시대의 부자집 아들처럼 반바지에 고급 무릎양말을 입혔다. ‘다니엘은 자기 아들을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 하기 위한 장신구처럼 이용했기 때문에 H.W.는 사람들 눈에 잘 보여야 했습니다’.
브릿지스 역시 앤더슨의 폭넓은 연구조사를 십분 이용했지만 그 시대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저는 1902년이든 1911년이든 별 상관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회색이 대부분이었고 지금처럼 빨리 유행을 타진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시와 비슷한 믿음을 주려고 했죠. 연구 한 것과 예술적인 면을 복합해서 사용해야 해요’.
엘라이 선데이의상의 경우, 브릿지스는 부푼 종교적 야망은 있지만 그 야망을 이룰 특별한 방법은 없는 사람에겐 어떤 의상이 좋을지 고려해야 했다. ‘초기 엘라이를 보면 목장에서 염소 여물이나 주던 소년이 어떻게 목사의 옷을 준비했을지 궁금할겁니다. 교회 첫 장면에서 저는 조금 우스운 짓을 했어요. 엘라이를 검은 셔츠에 윗 단추를 하얗게 해서 목사의 옷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내가 엘라이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유명세를 타면서 그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어디서 옷을 구했을까? 신자들이 입지 않는 옷을 기부라도 했을까? 어떤 옷을 기부했을까? 등등 그 시대에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여러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브릿지스는 선데이 가족의 의상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메리 선데이의 복장을 마음에 들어 했다. ‘비둘기 가슴처럼 만드는 보디스가 있는데 그걸 꼭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에이벨 선데이에게는 전통적인 1902년 식 정장을 입혔다. ‘이 정장은 독특한 모양에 지금은 잘 입지 않아서 그 시대에 딱 맞는 의상이라 생각했습니다. 형사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는 옷을 찾는 것도 재미 있었어요’.
색상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로 무채색을 사용하는 것이 중점이었습니다. 회색이나 베이지색 또는 갈색, 그리고 진하게 염색한 파란색이 전부고 작업복은 반드시 파란색이 들어가는 것으로 준비했죠. 영화 속 색채와 맞추려고 많은 색상을 만들었어요. 의상은 로버트 엘스윗의 조명과도 어울려야 했다. ‘저는 색에 대해 항상 로버트와 상의 했어요. 그가 눈썰미가 좋고 모든걸 마술처럼 더 아름답게 만들거든요’. 배우들은 보통 옷에서 많은 영감을 얻지만 뜨거운 사막에서 가발과 모자, 옷을 겹겹이 입고 연기하려면 보통의 인내가 필요한 게 아니다. ‘38도가 넘나드는 사막 날씨에서 옷을 그렇게 껴입고 있기란 정말 힘들었어요’. 라고 “크리스틴 올레닉젝”은 고백했다. 브릿지스는 ‘저도 배우들이 고생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영화가 완성되고 나면 그 힘든 일을 참아냈다는 게 자랑스러울 겁니다’.

음악

4년간의 연구조사와, 준비 그리고 제작 후 앤더슨은 영화 내용에 다시 시간을 할애 할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영화 촬영 때는 온갖 사람들과 일하다 촬영이 끝나면 남는 사람은 딱 3사람 뿐예요. 감독, 작곡, 그리고 편집자 딜런 티크노가 마무리 작업을 하죠’.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등장 인물이나 배경만큼, 영화 음악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세기 전의 시대를 무대로 한 영화 음악은 그 시대가 정한 규칙에 반항하는 듯 하다. 관습적인 협주를 뒤바꿔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 내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 시작에 다니엘 플레인뷰가 유전을 찾으려고 결심했을 때처럼 조용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폴 토마스 앤더슨은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라디오 헤드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조니 그린우드에게 작곡을 맡긴 것이다. 앤더슨은 라이오 헤드을 높이 살뿐만 아니라 BBC의 “팝콘 수퍼헷 리시버”에서 음침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그린우드의 음악이 그의 생각과 공명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그린우드에게 전권을 주었고 그린우드는 그 자유를 맘껏 누렸다. 그 결과로 그린우드는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이미지와 인물에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감춰진 공포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데도 성공한다. 영화 앞 부분에는 어떻게 보면 무성영화를 위해 작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 때문에 그의 음악의 다양한 음과 여러 가지 느낌이 전해지게 된다. ‘그의 음악은 긴장감의 극치를 보여줘요’ 라고 조안 셀러는 덧붙였다. 후에 악보는 런던의 전설적인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어 탁월한 영화 음악을 얻었다는 확신을 주었다.
앤더슨은 ‘저는 조니가 뭔가 훌륭한 음악을 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들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생각 했겠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안정되기 시작하고 그냥 잘 진행되었어요. 조니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몰두 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석유의 역사

캘리포니아의 최고 산업은 영화산업을 제외하고 석유산업이 가장 거대했다. 텍사스만큼 석유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20세기 초 석유산업의 빠른 성장은 캘리포니아 주의 발전에 핵심이 되었고 엄청나게 넘치는 부는 많은 이로 하여금 캘리포니아를 꿈의 땅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변화무쌍한 지형을 갖은 캘리포니아의 대지에는 라 브리 타르 핏 과 같은 화석의 보고처럼 오랫동안 천연가스가 새어 나오는 지역이 있다. 1500년대 스페인 개척자들이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이미 아스팔트 형태의 석유를 파내 카노, 바구니등 방수가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개척자들은 석유를 185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스 피코장군(멕시코의 마지막 캘리포니아 총독, 피오 피코의 형제)이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석유를 증류해서 뉴헐 근처의 자택에서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등유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자 석유의 필요성이 점점 커져 갔다. 1865년에는 농업위주의 센튜럴 발리에 첫 유전이 개발되었고 여러 자잘한 유전발견은 그때만 해도 작았던 샌프란시스코의 번영에 기여했다. 그 당시는 석유를 찾는 다는 것이 위험부담 크고 힘든 일이었다. 정교하지 못한 장비로 땅을 판다는 것이 어렵고 위험하며 큰 도박이었다. 땅을 판다고 석유가 나올지 확실하지도 않았고, 만약 석유가 나와도 장비의 상태를 예측하기 어려워 만약 불이라도 나면 큰 재해를 가지고 올터였다. 용감하거나 무모한 모험가나 선견과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성공하는 사람은 그 시대 미국 산업의 지존이 되었다.
일단 석유가 발견되면 그 별볼일 없던 지역은 동부에서 몰려든 일꾼과 사업자 그리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로 넘쳐 소위 말하는 블랙 골드 러쉬로 급변하였다. 많은 마을들이 석유를 찾아 몰려든 실업가, 매춘부, 도박꾼 등의 화려한 캐릭터들로 문화적 격돌을 경험했다. 그런 마을 중에 하나가 산타 바바라 외각에 있는 섬머 랜드라는 마을로 원래는 종교적인 부락이었지만 유전 때문에 마을 주민의 경악 속에 금방 술집, 하숙집 등의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차 버렸다. 결국 마을 주민의 원한은 그 시대 최고 석유업자중 하나였던 J. 폴 게티의 유전파괴를 포함한 생산방해에 까지 이르렀다.
1888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최고 유전이 발견되었다. 아담스 넘버 식스틴이라 명명된 유전은 벤츄라 분지에 자리하고 있었고 유니언 석유사의 전임회사에 의해 굴착 되었다. 이것으로 캘리포니아 석유산업의 가능성이 증명되었다.
1892년, 자동차가 생산된 해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에드워드 도헤니는 지금의 로스엔젤레스 다저스 구장 근처에서 5년 동안 500개 이상의 유정탑을 세워 미국에서 손꼽힐 만큼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다. 다른 주목할 만한 석유사업가에는 지금의 세브런의 모체가 되는 스텐더드 석유사를 세운 존 락펠러가 있었다.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은 “락펠러”와 그의 노동조합에 반하는 영업방식에 반대하는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도 했다)
세기의 전환점에 들어서, 캘리포니아의 석유 붐은 가장 활발했다. 특히 산 조아퀸의 경우는 극에 달했다. 1910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역사상 가장 큰 유전인 레이크뷰 거셔가 매일 12만 5천 배럴의 석유를 분출했다. 그 해 캘리포니아 석유 생산량은 대략 7천7백만 배럴로 그 정점을 찍었고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는 전 세계의 석유 사용의70%를 공급했다.
캘리포니아의 석유 붐은 대략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굴착 작업은 계속되었지만 경제공황이 왔을 때는 이미 큰 유전들은 말라버린 상태라 대부분 버려졌다. 그러는 동안 자동차 증가로 석유의 수요가 높아져서 석유를 찾는 작업은 해외로 옮겨갔고 다국적 석유사 출현의 시발점이 되었다.



(총 47명 참여)
bjmaximus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는 잘하지.     
2008-04-25 15:24
sk4000
수작..그러나 너무 느림     
2008-04-23 10:03
callyoungsin
별로였어여     
2008-04-21 07:44
kyikyiyi
지루하네요     
2008-04-20 02:11
gt0110
다소 지루     
2008-04-12 04:25
gkffkekd333
갠찬은 수작..     
2008-04-11 03:22
crintyou
정말 재미있습니다..... 보면 후회 안합니다.....     
2008-04-01 19:47
fadet
보기 드문 역작 미라막스사에선 영화를 신중히 제작하는 듯     
2008-03-29 21:50
kangwondo77
다소 지루할수도 있겠지만..걸작은 걸작이네..     
2008-03-25 14:22
ssang2z
오랫만에 우연히 들어와봤는데..역시 무비스트 평점 수준이...휴~     
2008-03-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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