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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2004, Alexander)
제작사 : Warner Bros., Intermedia / 배급사 : 조이앤클래식
수입사 : 조이앤클래식 /

알렉산더 예고편

[뉴스종합] [해외뉴스] 올리버 스톤, <알렉산더> 3번째 감독판 출시 06.09.13
[뉴스종합] [해외뉴스]1분에 990원이면 콜린파렐의 사생활을 볼수 있다? 06.01.13
알렉산더 sunjjangill 10.09.01
알렉산더 (Alexander, 2004)’ 영화를 통해 본 알렉산드로스 대왕 iwannahot 09.06.12
거장 올리버스톤의 연출과 콜린파렐의 연기 그리고 그림같은 조연들 ★★★★★  w1456 20.08.04
너무나 기대가 되고 보고파여...^^ 꼭 좋은 기회를 주세용...^^ ★★★  microward98 15.09.23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고, 그의 인생은 역사가 되었다! ★★★☆  sunjjangill 10.09.01



“‘알렉산더’ 대왕의 눈을 마주 보며 불가능이라는 의심을 버리고 원대한 꿈을 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가슴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태양신 아폴로의 빛으로 둘러싸인 저 위대한 왕과 함께 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능가하게 된다!”
    – ‘톨레미(안소니 홉킨스 분)’, 영화 <‘알렉산더’> 중에서


이상(理想)이 흔들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열정의 아이콘, ‘알렉산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불화, 점점 높아 가는 실직율에 미래의 꿈과 이상을 잃고 흔들리는 젊은이들. 그 어느때보다 진정한 리더쉽과 안목을 지닌 영웅, 흐릿해진 희망과 의지를 환기시킬 모범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면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위대한 업적뿐 아니라 삶 그 자체로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이 되었고 문명세계의 90%를 통일하고 33세의 나이로 폭풍 같이 짧은 삶을 마감했다. 신이 지배하던 시대, 그는 그 자체로 신화가 되었다. 이토록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영웅으로 역사속에 기록되지만 보통의 젊은이처럼 열정을 가졌고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으며 부모의 사랑을 갈구했고 사랑과 위업 사이에서 고뇌에 빠지는 남자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잔혹한 죽음 앞에 서기까지 적국과 미지의 세계를 향해 쉼 없는 전진과 갈등을 되풀이 해온 한 인간이었다. 대왕 ‘알렉산더’가 ‘살아 있는 신’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이상과 운명을 스스로 삶 속에서 실현했기 때문이다. 영화 <알렉산더>에는 꿈과 삶의 의지에 대한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도전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수 세기가 흐르도록 그의 이름이 역사 위에 선명히 새겨져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 <알렉산더>가 관객을 찾아 오게 된 이유다.

<알렉산더> 탄생의 힘!

헐리우드가 찾아낸 황홀한 오아시스
고대 스펙타클 서사 대작, <알렉산더>

섹스와 폭력, 허황된 인물들이 넘쳐나면서 헐리우드는 소재의 고갈과 인물의 식상함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상상력에 기대어 탄생한 영웅들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 깊이가 얕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허황되고 혹은 너무 요란스러워 관객들은 점차 뭔가 색다른 스펙타클을 원하게 되었다. 2001년 여름, <글래디에이터>의 개봉은 고대 서사극의 성공적인 첫 모델로 헐리우드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올해 초,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재현한 <트로이>를 신호탄으로 <킹 아더>를 거치며 고대 서사극은 본격적으로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고대 서사극은 위대한 사랑과 전쟁, 인간이 있는 드라마와 시선을 압도하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관객들은 고대 서사극을 통해 펼쳐지는 거대한 전쟁, 역사적인 현장, 그리고 원초적인 고대의 영웅들에게 빠져들었다. 게다가 이미 헐리우드는 <반지의 제왕> 등을 거치며 놀라운 기술력을 확보해 두고 있었다. 이에 힘입은 서사극은 당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신화 속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재현해 낼 가능성을 충분히 보이게 되었다.

그 중 ‘알렉산더’ 대왕은 서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 할리우드 마켓이 가장 탐내는 고대의 영웅이다. 미청년의 자태로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의 대왕에게 ‘올리버 스톤’, ‘바즈 루어만’, ‘마틴 스콜세지’ 등 3인의 거물 감독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현재 헐리우드가 기대하는 하반기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젊은 왕 ‘알렉산더’에게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알렉산더’의 일대기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와 볼거리 때문이다.

그리스와 아시아, 이집트와 인도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으로의 원정은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13년에 걸쳐 정복지를 돌며 단 한번도 물러나지 않았던 ‘알렉산더’의 놀라운 열정은 그 만큼 죽음에 가까운 치열한 전투를 보여줄수 밖에 없다. 또 한가지는 드라마다. 여타의 전사와는 달리 ‘알렉산더’는 정치가인 왕이자 순수한 탐험가였고 또한 뜨거운 연인이었다. ‘알렉산더’야 말로 전세계 영화팬들을 뒤흔들어 놓을 수 밖에 없는 헐리우드 최고의 소재라 하겠다. 영화 <알렉산더>는 헐리우드의 서사 스펙타클의 선두에 선 또 하나의 신화로 기억될 것이다.

<알렉산더> 탄생의 힘!

 “난 지금껏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 영화 역시 지금껏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 ‘올리버 스톤’

아카데미 3회 수상에빛나는 거장 감독
‘올리버 스톤’의 평생을 지켜온 타는 열망

세계적 거장 감독들이 ‘알렉산더’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 경합에서 승리한 사람은 ‘올리버 스톤’ 감독. 그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이 위대한 젊은이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전 세계 관객 앞에 위대한 영웅 ‘알렉산더’의 감격스런 자태를 선보이게 되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과 ‘리차드 버튼’ 주연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1956년)을 보며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영웅의 존재를 확인했고 뉴욕 대학 재학시절에는 그리스 신화를 전공하였다. 수년 동안 이 위대한 인물을 영화화 하는 꿈을 꾸어왔던 그는 어떤 식으로든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 보려는 집착을 가졌고 1990년부터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몇 번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치며 스스로 ‘알렉산더’라는 인물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놀라운 몰입과 열정은 ‘알렉산더 대왕’의 “너무도 드라마틱하고 찬란한 이야기(제작자 모리츠 보만)”가 살아있는 대본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이번 작품은 아직도 내게 엄청난 도전이다” 라고 감독은 말한다. 너무도 독특하기에 수세기 동안 ‘알렉산더’의 삶을 드라마화하려는 시도는 극히 적었다. ‘알렉산더’라는 인물이 너무 위대했고 또 그의 삶이 너무도 광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장 ‘올리버 스톤’은 10년이 훌쩍 넘는 준비기간을 인내하고 스스로 ‘알렉산더’의 삶을 꿰뚫는 통찰력을 키워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절대로 멈추지 않았던 젊은이, 야심이나 정복욕을 뛰어 넘는 ‘알렉산더’의 이상에 대한 ‘올리버 스톤’감독의 믿음이 이제 자신의 거대한 도전마저 가능하게 한 것이다.

2억 4천만불 제작비,10년에 걸친 기획,제작기간 3년
50,210벌의 의상, 10,430명의 엑스트라.
‘올리버 스톤’이 지휘한 ‘알렉산더’대군 탄생!!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영화제작에는 여러 부서간, 수많은 사람들간에 업무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알렉산더>와 같은 규모의 영화는 대규모의 군사 작전에 맞먹는 작업이 요구된다. <알렉산더> 제작진은 하나의 군대와 같은 많은 작업을 했다.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전략이 자로 잰 듯 정확하면서도 그때 그때 상황의 변수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실행되고, 필요에 따라 공수되고 사용되는 엄청난 인력과 물자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약 6천명의 인력이 각자의 영역에서 <알렉산더> 제작을 위해 헌신했다. 촬영이 이루어진 7개국에서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이태리 등의 나라에서 최고의 예술가와 장인들이 영화를 위해 뛰어들었다.

만약 영화 <알렉산더>의 제작이 뭔가를 증명해 보이는 거라면 그것은 이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제작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알렉산더> 작업이 역사, 신화, 이상주의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라면 어떠한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런 내용으로 탄생 할 수 밖에 없다. 거의 6개월 동안의 촬영 - 본 촬영이 시작되기 2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한 사람도 많이 있다-이 끝난 시점에서 출연진과 제작진은 그들이 두 개의 군대에서 복무했다고 생각했다.

1. 촬영 에피소드

진짜 군인과 실제 같은 무기 그리고 부활한 고대의 전법!
여기는 진짜 전쟁터였다!

“올리버는 사실성을 요구했다”라고 스턴트 코디네이터 ‘게리 파월’은 말한다. 가우가멜라 전투씬에서 수 천명의 군인들은 진짜에 가까운 무기를 들고 한데 엉켰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많은 영화에서 보여 왔던 과장된 전투씬이 영화 <알렉산더>에서 보여지길 원치 않았다. 올리버와 스탭들은 고대의 전투 방식을 가장 가깝게 재현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배우와 스탭들의 부상 등 얼마간의 희생이 뒤따랐지만 완벽한 진실과 정확성을 담은 끔찍한 전투장면이 재현되었다. 제작 자문을 맡은 ‘로빈 레인 팍스’는 처음 촬영지에 와서 마케도니아 기마병의 무구를 완전히 갖추고 말 위에 올라 있는 엑스트라를 보고 “내가 꿈꿔오던 전쟁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30년 전에 ‘알렉산더’ 전기에서 적었던 내용이 바로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역시 ‘알렉산더’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전투 중 하나인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 군대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마치 현실처럼 펼쳐지는 광경에 ‘알렉산더’의 전기를 쓴 작가의 가슴이 심히 움직였던 것이다.

2. 촬영 에피소드

7,000피트 고도의 요새와 정글을 만들다!
‘알렉산더’와 스텝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제작진은 오늘날의 파키스탄에 속하는 고대 발크에 있는 요새를 보여주는 거대한 세트 장면을 찍기 위해 로어 아틀라스 산맥의 7,000피트 고도에 위치한 마을로 올라갔다. 이곳에는 2천년 전과 비슷한 삶을 이어오고 있는 ‘버버’족의 마을이 있다. 이곳 마을 중 한곳을 촬영장으로 섭외하기 위해 스텝들은 실로 국제 외교에 가까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 마을의 장로들과 빈번한 접촉을 유지하고 끈질긴 설득을 벌였다. 결국 제작진은 사원과 수로, 그리고 가로등 등 마을에 몇 가지 편의 시설을 지어주기로 약속하고 세트 건설에 착수 할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숲 속 전투씬을 위해 ‘얀 로엘프스’는 정글을 만들어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건기를 맞은 태국에서 진행된 이 촬영 기간 내내 스탭들은 나무에 계속 물을 주며 ‘숲’을 지켜내야 했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그곳은 완벽하게 이전 상태로 돌아 갔다. 아니 좀 더 푸르러진 숲을 남겨 두고 돌아왔다.


3. 신화가 된 세트

고대의 가장 위엄있고 흥성하던 도시와 지도에도 없는 오지의 요새까지 모두 정복해 나간 ‘알렉산더’의 업적은 세트를 담당하고 있는 스탭들에게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웠다. 그러나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스탭들로 구성된 제작팀은 영웅 ‘알렉산더’의 위대한 업적을 그려낸다는 자부심으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거침없이 도전했다.

9,037 피트 절벽 위에 천상의 문을 세우다!

로어 아틀란티스 산맥에 발크 요새를 만들기 위한 눈물겨운 협상에 이어 이제 고도 7000피트의 산 중 마을에 세트를 지어야 했다. 이로서 자재 공수부터 제작까지 20주가 걸려 세트가 건설되었다. 당시 난공불락의 거대하고 웅장한 성이었던 발크 요새를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부족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내부 장식등에는 엄청난 자료의 고증과 상상력이 필요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틀라스 산맥을 2천 피트 더 올라가서 ‘알렉산더’와 그의 군대가 눈 덮인 인두 쿠시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촬영한 후에 제작진은 마라케치에 있는 ‘존 인더스트리엘레’로 내려왔다. 이곳에는 기적처럼 바빌론의 성문이 높이 세워져 있었다. 바빌론 성문은 37피트 높이로 제작되었고 이후에 시각효과를 통해 80피트가 연장됐다. 문을 가로지르는 빗장은 진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문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내려다보는 날개 달린 황소 상은 영국에서 조각된 후 모로코로 옮겨져서 색칠되고 완성되었다. 이로서 고도 9037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성문을 지나 ‘알렉산더’가 바빌론을 정복한 과정을 생생하게 재연 할 수 있게 되었다.

4. 신화가 된 세트

세계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파인우드
화려하고 뜨거운 이국 바빌론, 인도, 마케도니아의 궁정이 재현되다!!
  
  북아프리카에서 촬영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 런던의 스튜디오 셔퍼톤과 파인우드의 스텐리 큐브릭 빌딩에서 세트 제작이 이루어 졌다. 또 다른 군대는 ‘얀 로엘프스’의 가장 야심만만한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 이미 몇 달 동안 작업을 하고 있었다. 파인우드의 유명한 ‘007 스테이지’에는 바빌론과 펠라, 그리고 인도의 궁전이 제작되었다. 가로334 세로136 높이40피트 6인치의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이 거대한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큰 상근 시설이다. ‘알렉산더’ 세트는 건물의 거의 모두를 사용해야만 했다. 전체적으로 인도 성과 바빌론 성 세트는 300톤의 회반죽과 4마일에 달하는 목재, 10마일 튜브, 칸바스 750묶음등 엄청난 재료가 소요됐다.

특히 ‘얀 로엘프스’가 자랑하는 회심의 역장인 바빌론 궁과 인도 궁전은 각 4개월의 노고와 엄청난 물량 투입으로 영화 속에 그 웅장함을 드러낸다. “바빌론은 내가 만든 가장 풍요로운 작품이다. ‘알렉산더’의 바빌론 입성은 그의 엄청난 여정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는 이전에 결코 그렇게 웅장한 건물을 본적이 없다. 자신의 문화보다 많은 면에서 뛰어난 이 문명을 만나기 전에는 그 비슷한 것조차도 본적이 없을 정도이다.”라고 ‘로엘프스’는 설명한다. 바빌론 궁전내부의 세밀한 인테리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수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이 각국에서 만들어낸 걸작인 것이다.

 ‘007 스테이지’의 지붕을 함께 사용한 또 다른 메머드급 세트는 면밀하게 만들어진 인도 궁전. 당시 인도의 건축 형태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 궁전의 제작은 ‘로엘프스’의 상상력이 가장 크게 발휘된 세트였다. ‘로엘프스’는 풀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진 인도 사원에서 영감을 얻었고 건물의 용도에 변화를 주었다. 인도궁을 짓는데 4개월이 소요됐고 엄청난 나무와 150명 정도의 인력이 동원되어 매일매일 작업했다.

5. 온 몸을 던진 연기

배우 역할이 아닌 전사로 태어나기 위한 훈련들
마침내 무적불패의 마케도니아 기병대 탄생하다!

‘알렉산더’의 마지막 일생은 하루 하루가 전쟁이었다. 게다가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13년을 달려 온 그의 부하들 역시 전투에는 이골이 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영화 <알렉산더>에는 군사 고문관이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청된 인물이 바로 ‘데일 다이’. 지금은 당연한 듯 여겨지는 영화계의 “신병훈련소”- 군인역을 맡은 배우들의 훈련소-를 30년 전 <플레툰>을 위해 고안해 낸 장본인이다. ‘다이’대장은 이전 어떤 일보다도 골치 아픈 임무를 떠맡았다. 수 십 명의 배우와 수 천 명의 엑스트라를 고대 전쟁형태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키는 것에 덧붙여 2천년 전에 사라진 고대 전투와 전략을 정확히 재현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에게 이 일은 17살 때 이래로 무의식적으로 준비해오던 것이다. 당시 그는 군사학교에서 알렉산더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었기 때문이다.

‘콜린 파렐’을 포함해 전투씬을 좔영해야 하는 배우들은 모두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3주간의 훈련기간은 모로코의 사막에서 진행되었다. 텐트생활을 하며 음식은 스스로 해결하고 뜨거운 태양아래 검게 그을리는 기간으로 짧지 않은 시간이다. ‘다이’와 훈련팀이 짠 훈련캠프 스케줄은 모든 참가자들의 감정과 육체을 한계에 까지 밀어 붙였다. 훈련 코스에는 칼과 방패, 사리사스(방진), 활과 화살, 철퇴와 창 등 다양한 고대 무기의 사용 훈련이 필수였다. 그리고 무적불패의 기병대로 유명한 마케도니아 군에게 너무도 당연한 승마 훈련을 위해서는 스페인의 뛰어난 승마선수인 리카르도 크루즈 모랄이 투입되었다. 그 외에 전차를 끄는 방법, ‘공격적인 정신’상태가 되는 훈련, 고대 종교 세미나, ‘낙마, 부상 그리고 죽음’, 위생과 동물과 식물의 세계 등 5,000여 년 전의 군인이 되기 위해 놀라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이’대장은 “나는 배우들을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군인이 될 사람들을 훈련 시켰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결국 배우들은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에 각인한 ‘마케도니아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또한 전우와 함께 하는 전투 자체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6. 온 몸을 던진 연기

온 몸을 휘감은 1300마리의 독사
그리고, 끊임없는 부상. 배우들 온 몸을 던지다!

최고의 배우들이 캐스팅 된 만큼 그들이 보여주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몰입도 최고였다. 특히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캐릭터 올림피아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디오니소스의 숭배자였던 ‘올림피아 왕비’는 주변에 늘 뱀이 들끓었다고 한다. 때문에 ‘안젤리나 졸리’ 는 촬영 전부터 뱀과 친해지기(?) 위해 거의 합숙을 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촬영기간 내내 수많은 독사가 그녀의 목을 감싸거나 다리에서 꿈틀거리는 상황에서도 숨이 막히도록 매력적인 ‘올림피아’를 자연스레 연기해 냈다. 또 다른 매력을 물씬 풍기는 로자리오 도슨도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알렉산더’의 첫 번째 부인 ‘록산느’역을 맡은 ‘도슨’은 자신의 결혼식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사로잡는 춤을 추어야 했다. ‘도슨’은 2개월 동안 영국 국립발레단 출신의 안무가 ‘피어스 기엘구드’로부터 고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와 페르시아 춤 등을 배웠다. 그리고 춤의 신에게서 태어난 고대의 공주처럼 원시적이고 도발적인 춤을 선 보이게 되었다. 물론 ‘알렉산더’역할에 임하는 ‘콜린 파렐’의 투혼의 연기야 말로 모든 제작진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근육을 키우며 몸을 단련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콜린 파렐’은 가능한 스턴트맨 없이 직접 연기하기를 원했고 그 만큼 부상도 많았다. 태국의 숲에서 인도군대와의 전투씬을 찍을 때 ‘콜린’은 말에서 떨어져 1,400파운드나 나가는 말에게 다리를 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콜린’은 서둘러 다리에 붕대를 감은 뒤 바로 말에 올라타고 촬영을 계속했다. 특수분장과 실제 상처를 구별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이후에도 부러진 발목에 철심을 대고서라도 촬영을 하겠다는 ‘콜린 파렐’의 열정이 실제로 다음날 아침의 촬영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그 밖에 모든 전투씬이 다 위험했으며 일개 엑스트라까지도 영화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부상도 무릅쓰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카메라 앞에 서는 투혼을 발휘했다.



(총 51명 참여)
qsay11tem
좀 철학적이네여     
2007-09-22 10:05
naredfoxx
조금 지루한 것만 빼고 좋았어요     
2007-09-15 19:24
remon2053
정말 실감나는 부분이 많았다.     
2007-07-26 14:58
dreamcinema
씁쓸한 대왕의 그림자     
2007-04-30 12:26
maymight
한심해서 말도 안나오는 전쟁영웅퀴어영화     
2007-04-29 02:11
codger
실패작     
2007-04-26 00:13
szin68
무게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2007-04-25 20:50
paraneon
jkh     
2007-04-21 16:44
yjmnbvc
지루하다...영화는 왜 또 이렇게 긴거야.;;;     
2006-12-04 15:13
nansean
실망 그 자체였다     
2006-10-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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