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여친>은 제목 그대로 두 얼굴을 가진 애인이 생긴 구창의 연애담이다. 여기서 두 얼굴이란 표면적인 외모가 아닌 내면적인 심성의 양면성을 뜻한다. 그건 영화가 대사를 통해 스스로 정의하는 일종의 자기 보호, 즉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다른 인격, 바로 이중 인격이다. 구창의 연애담이 그저 핑크빛으로 빛을 발할 수 없는 건, 그의 연인이 그 이중 인격을 지닌 대상이기 떄문이다. 그것도 아주 난폭한 이면-성향만이 아닌 실력까지-을 지닌 여친인 덕분이다.
사실 <두 얼굴의 여친>은 <엽기적인 그녀>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여겨도 상관없을 만큼 많은 점이 닮았다. 우연히 인연을 섞는 커플의 성사담도 그렇지만-최초의 만남이 지하철에서 이뤄진다는 점부터- 다소 엽기적인 성향을 지닌 그녀의 모양새가 더욱 그렇다. 그리고 엽기적인 성향의 태생이 과거 연인에 대한 기억 때문이란 점도 비슷하다. 또한 그녀들의 곁에 있는 어리숙한 그들이 이야기의 시점이자 화자 노릇을 한다는 것도 그렇다. 다만 <엽기적인 그녀>가 성격을 전제로 한 일관적인 캐릭터를 유지하는 것에 비해 <두 얼굴의 여친>은 정신적 질병에서 기인한 돌발적 성향의 캐릭터를 교대로 드러낸다는 점은 두 영화 간의 미묘한 차별화가 성립되는 지점이다.
<두 얼굴의 여친>은 캐릭터에 의존하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배우의 개인기와 이미지에 기대며 코믹한 연출이 강조된다. 그것이 종종 과잉의 성향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가볍게 즐길만한 장르적 재미에 기여하는 바는 쏠쏠하다. 또한 이중 인격이라는 소재가 지닌 무게감을 덜어내며 장르에 걸맞은 소재로 활용한 것도 어느 정도 기발해 보인다. 다만 영화적 소재로 쓰인 이중 인격이 전문적인 소견상 장담할 수 있는 적정 수위 이상의 영화적 비약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란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캐릭터에 의존한 만큼 연출보다도 배우들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마치 캐릭터에 배우를 적용한 것이 아닌 배우에 맞춰 캐릭터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봉태규와 정려원은 캐릭터와 맞아떨어진다. 특히 인격을 오가는 캐릭터 덕분에 각기 다른 성향의 연기를 펼친 정려원의 연기는 데뷔작으로서 나쁘지 않다. 다만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성의 없게 소모되는 주변 인물들은 아쉽다.
<두 얼굴의 여친>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구창의 연애성공담이다. 수다스러운 캐릭터와 엽기적인 상황에서 빚어지는 코믹한 설정은 귀여운 웃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적인 설정으로 느껴져 거리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가벼운 웃음과 눈물을 원했다면 <두 얼굴의 여친>은 적당한 만족감을 주겠지만 그 이상의 진지한 성찰을 남겨주곤 하는 장르의 업적에 다다르기엔 부족해 보인다.
2007년 8월 22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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