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예쁜 여자. 똑똑한 여자. 돈 많은 여자. 그리고 이걸 제외한 나머지 여자. 부류가 어찌 되었건 지 잘난 맛에 사는 여자들일 수록 입은 재빠르고 눈과 귀는 소머즈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들의 능력은 간혹 신과 맞먹는 경지의 아우라가 되어 누군가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하고, 생사의 기로에 선 이를 구원하기도 하며, 배신에 치를 떨다 몸져눕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습성이 삼국지의 도원결의 같은 우정아래, 지지고 볶고 끈적하게 엉켜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냥 덮어?’ ‘아니야. 까발려.’ 이런 동정과 이해와 배신의 삼중주에서 사랑과 우정과 질투라는 하늘이 천명한 감정은 내 멋대로만 할 수 없는 갈팡질팡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바로 <내 친구의 사생활>은 가장 흔하디흔한 소재인 ‘내 남편의 바람’과 ‘내 친구 남편의 바람’을 통해 이러한 여자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상황에 속한 자신과 그걸 바라보는 타인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우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좁아지고, 이해되어지며, 결국은 고통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나의 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내 친구의 사생활>에는 각기 다른 인생을 사는 네 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월스트리트를 주름잡는 남편을 두고 딸과 대저택에 사는 패션 디자이너 메리(맥 라이언), 뉴욕 최고의 패션지 편집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비(아네트 베닝), 그리고 오직 아들~!을 외치며 다섯 번째 임신을 한 에디(데브라 메싱)와 여자가 좋은 이유를 백 개 정도 거뜬히 나열할 수 있는 작가 알렉스(제이다 핀켓 스미스)까지. 그들은 어쨌건 둘도 없는 좋은 친구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절친했던 메리와 실비의 우정은 왠수 같은 메리 남편이란 작자의 바람으로 위태로워진다.
모든 가십의 온상지인 네일 샾에서 안 들었어도 잘 살았을 것 같은 향수코너 아가씨(에바 멘데스)와 남편의 바람 얘기를 듣고, 사랑의 배신으로 온 가슴이 쑤셔대던 메리는 결국 몇 번을 피하고 참은 끝에 이혼의 절차를 밟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어느 것도 지켜내지 못하고 흔들린다.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저만치 물러가고 딸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며 아내로서의 성실한 내조도 이제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못할 지경이다. 여기에 자신의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성공의 야욕으로 팔아 해치운 믿지 못할 파렴치한 실비의 우정이 마지막 한 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그녀를 감정의 외면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메리는 상황에서 도망친다. 현실의 눈을 피해버리며 자신을 가장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로 인식해 버리는 그녀의 도피. 그것은 현실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영화는 구태의연하게 바람피운 남편에 대한 사랑과 용서라는 맥 빠진 부분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들의 우정 관계에 집중하고 삐딱선을 탔던 이들이 어떻게 아파하고 어떻게 화해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중요하고 옳았기에 니가 나쁜 년으로 보였던 순간이, 사실은 내가 모자란 년이었기에 니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던 거야.’ 이렇게 외쳐대며 남편보다도 친구의 부재가 인생의 결정타였음을 시인하고, 성공의 야욕으로 친구를 팔아넘긴 것이 텅 빈 인생으로 향할지 모르는 기폭제가 된 다는 사실에 진심의 깃발을 든다. 그리고 이런 중대한 사건을 겪어내면서 스스로가 발전적인 자아의 복구를 선택한다.
<내 친구의 사생활>은 단 한명의 남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점에도 불구하고 남성 역할의 부재가 아쉽다거나, 이혼을 앞둔 메리의 감정이 심드렁해 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펼쳐지는 위트 있는 대사의 향연. 바닥을 치고 다시 회생한 로맨틱 코미디 계에 두 말 필요 없는 맥 라이언 언니와, 온 몸에 로맨스를 풍기고 다니는 아네트 베닝을 필두로 한 확실한 캐릭터의 구분. 배경인 뉴욕에 걸 맞는 세련된 의상과 패션쇼를 보는 즐거움. 여기에 수다스러움 안에 자신의 삶이 나가가고 있는 방향을 정확히 말하는 그녀들의 유쾌한 태도는 가십만 남는 트랜디 로맨틱 코미디들과 방향을 달리한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내 친구의 사생활>이 주는 최고의 미덕은 마지막까지 발랄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10월 9일 목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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