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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아니 중년, 감독이 되다. 김조광수 감독의 <소년, 소년을 만나다> 연출일기!
2008년 11월 4일 화요일 | 김조광수 감독 이메일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청년필름이라는 영화사를 만들고 나서
10년 동안 10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하면서도
영화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연출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7년 가을,
갑자기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을 맞았다.
연출이 너무 하고 싶은 들뜬 마음에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다.
신내림이었을까?
신열도 있었던 것 같다. ㅋㅋ
그 날 이후 어떤 영화를 만들까 궁리하면서
제작과는 다른 연출이라는 영역의 재미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난 내가 소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짧은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겁 없이 뛰어든 연출이라는 일,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며 좌절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맘에 드는 장면 하나를 발견하고는 해냈다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했다.
그리고 이제
부끄럽지만
첫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설렘에 행복하기도 하다.

나와 일하는 감독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너나 잘 해!”
그래도 두려움은 없다.
난 초보 감독인걸 뭐.

소년(나이는 중년이지만 데뷔감독이니까 ㅋㅋ) 감독, 시나리오를 쓰다.

영화를 만들기로 했지만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연출 데뷔작인데,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마음이 무거웠다.
소년 감독의 데뷔, 출발선부터 삐걱거리는 건가?

어떤 게 좋을까?
머릿속에 그득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내 맘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게 '솔직한 내 마음을 잘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그래, 맞아.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잘 풀어 보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 졌다.

내 경험이라면?
옳지.
난 로맨티스트.
그래, 멜로를 하자. 멜로.
내 지난날의 로맨스 중에서 가장 영화적인 것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이 건 어떨까?
지하철에서 만난 아저씨의 타우너 트럭을 타고 부산까지 출장에 따라 갔던 일?
그래, 지하철에서의 끌림.
눈빛 교환.
그 아저씨의 쑥스러웠던 소년 같은 얼굴.
출장 가는데 같이 가자며 부끄럽게 짓던 미소.
사무실에 들러서 차를 가져 오겠다고 떠날 대의 허둥지둥 대던 귀여움.
마침내 나타난 타우너 트럭.
푸하하. 이 아저씨 정말 귀여운 걸.
처음 데이트에 타우너 트럭이라니... ㅋㅋ
아, 아니야.
귀엽기는 한데 좀 샤방하지는 않은 것 같아.
더 샤방샤방한 이야기가 없을까?
내겐 샤방샤방이 필요해!

그랬다.
한국의 몇 안 되는 퀴어영화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겁고 슬픈 쪽인데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란 사람, 진지 무게와는 좀 거리가 있지 않은가?
난 발랄이 어울려! 맞아! 발랄 상쾌 샤방!!!

다른 거 찾아야 해!
또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
그러다가 전광석화처럼 나를 강타한 그 소년.
아, 석이.
그래 석이가 있었지.

20년도 넘은 나의 진짜 소년 시절, 나를 달뜨게 했던 소년 석이.
아~ 그 녀석을 다시 만나 보자.
그래 아주 샤방하게.
그리고는 타닥타닥 써내려간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

1. 버스 안.
 나의 소년 시절. 이 땐 정말 파릇파릇하니 이뻤구나. ㅋ
나의 소년 시절. 이 땐 정말 파릇파릇하니 이뻤구나. ㅋ

추운 어느 날.
민수는 좌석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잡지 혹은 책을 읽고 있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려던 민수는 뭔가(물건은 아직 뭔지 잘 모르겠다. 사과나 귤일까? 그냥 봐서는 평범한 건데 알고 보면 의미가 있는 거면 좋겠다.)를 흘리게 되고 그게 굴러가서 어떤 사람의 발 밑에 닿게 된다.
아니, 어떤 이의 발이 그걸 멈추게 한다.
인터컷. 누군가의 발.
그 발을 따라 올라가면 덩치 큰 소년 석이.
석이와 눈이 마주치는 민수.
헉, 그 놈 참 잘 생겼다.
민수의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얼른 눈을 피한다.
주우러 가야 하나? 잠깐 망설인다.
물건을 줍기 위해 석이에게로 가는 민수.
더 크게 뛰는 민수의 가슴.

물건을 줍다가 스치게 되는 소년들의 손. 너무나 장르적인 설정. 코믹하게? 될까?
다시 마주치는 소년들.
떨리는 가슴 때문에 민수는 석이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가슴은 또 왜 이리도 크게 뛰는 거야?
이 소리 설마 저 녀석에게도 들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 쪽팔려.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민수.

어느새 아줌마 한분이 자리에 앉아 있다.
천연덕스럽게 민수의 가방을 챙겨주는 아줌마.
민수, 석이 쪽을 보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더 두근거리는 가슴.
용기를 낸 민수, 석이 쪽을 보는데 바로 앞에 와 있는 석이.
민수의 놀란 눈.
진정되지 않는 민수.
얘가 왜 내 옆에?
그럼 얘도 나를 좋아한다는 뜻?
한참을 보는 소년들.
이번에는 석이가 먼저 눈을 돌린다.
혼란스러운 민수.
그렇지만 다시 석이를 보지는 못한다.
민수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다 와 간다.

어떡해.
이제 내려야 한다구!
그런데 석이는 민수를 보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내리는 척 하면서 석이의 앞을 지나쳐 문 쪽으로 간다.
석이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민수의 가슴이 또 방망이질 한다.
민수가 벨을 누른다.
이어 들리는 벨소리.
나 내린다구.
알겠니?
나 이번에 내려!!!
석이를 본다.
석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민수가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내린다.

2. 정류장

버스에서 내린 민수, 뒤 돌아 보지 않는다.
보고 싶지만 보면 안 된다.

이 때 등장하는 연애 박사.
‘록키호러픽쳐쇼’에 등장하는 해설자처럼 차트를 보여 가면서 설명할 수도 있다. 더 재밌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장면.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처럼 기타맨을 등장시켜? 아, 뭔가 더 재밌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해.

길거리 게이 연애 수칙.
길거리에서 식성이 되는 상대를 만났을 때.
바로 대쉬한다.
퍽. 상대가 바로 주먹을 날린다. 탕. 총을 쏜다. 아니면 칼로 몇 번 쑤신다.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쳐다본다. 상대도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와서는 지갑을 뽑는다. 놈은 도망친다. 아, 내 지갑~~~
그러면 어떡하나?
확인하는 방법.
일단 천천히 걷는다.
최대한 천천히.
그러다가 따라오던 넘이 나를 앞지르면 쫑이다.
나를 따라 오는 게 아닌 것.
내가 최대한 천천히 걷는 데도 나를 앞지르지 않으면 그건 나를 따라오는 게 맞다.
일단 확률 50% 이상.
그러다가 속도를 조절한다.
조금 빠르게 걷기도 하고 또 느리게...
내 속도에 그 넘이 맞추면 확률 100%.
지독히도 계속적으로 살피라. 그렇지 않으면 개망신 당하거나 맞는다. ㅠ.ㅠ

다시 현실로.
민수가 천천히 걷는다.
뒤 돌아 보고 싶은 마음 굴뚝이지만 참는다.
속도를 조절한다.
버스가 출발하고 100미터 이상 갔을 때 쯤 돌아본다...

더 알려주면 스포일러에 해당하니 여기까지만. ^^*

그래, 이 이야기로 하자.
그럼 지금부터 시나리오를 써야지.

아, 문제가 생겼다.
시나리오가 써지질 않아.
당췌 써지질 않는다구.
어쩌나.
이야기는, 장면은 다 떠오르는데 시나리오가 한 줄도 써지질 않았다.
아, 난 어쩌면 좋아.
감독되기 이렇게 어려운 거야?


다음에 계속... to be continue...

글_김조광수 감독(청년필름 대표)

700 )
juya0414
꼭 보고싶은 영화예요!!!   
2008-11-16 21:11
take3417
궁금하네요..무엇을 말하려는지 너무 기대됩니다.   
2008-11-16 21:08
qoo2946
감독님의 최초의연출데뷔작이너무기대된답니다 소년시절의 풋풋하고순수함이묻어나는샤방한 얼굴(젤라뽀..ㅋㅋ 먹으면혓바닥이빨개지져 저두저거많이묵었는데..)..이 자료로올라와서 살짝놀랬답니다 요즘거의모든영화가 너무주제의식이담겨서 무겁고 다가서기힘든점이있었는데..오히려 복잡한것보다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좀더 폭넓고새로운각도로 살릴수있다는점이 어찌보면 연출자의 입장에선 세련된모습임을입증하셨네요 세월이변해도 그런때묻지않은 순수함을 되살리려는 연출일기의 단편단편의 열정과 창작의지의노력이엿보이는 것같아무척잼있게읽었어요
감독님의 데뷔작 소년소년을만나다는 어쩌면 이세상을살아가는 모든알게모르게 저지를수있고 생각할수있는의식적,무의식적가식의덩어리를 살짝 풀어헤쳐 샤방한햇살을비추는듯한느낌이든답니다   
2008-11-16 20:51
hjeye1001
재밌을 것 같아요! 꼭 보고 싶어요~   
2008-11-16 20:35
duck7639
삶의 열정이란 늘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요즘 같이 답답한 일들이 많은 때에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는 영화는 필수조건이 됩니다.   
2008-11-16 20:23
jinycomoh
사랑이 숨쉬는 소년과 소년, 동성애라는 소재라는 인식보다는, 순수한 마음의 접수라고 할까요.
조물주가 남녀라는 것을 규정지어놓고 만들어놨을 뿐이지, 같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여러감정은, 남녀를 구분짓지 않고서라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아닌지, 그래도 세상은 아직, 아니 영원히 남녀는 남녀로, 동성끼리는 안돼! 라고 갈거라고 봅니다.
일부러, 고의적으로 동성을 사랑하지는 않겠죠.
그게 자연스럽게 깊이 느껴지기 전에는 말이죠.
다들 뭐 어떠냐 자연스러운건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래서 너도나도 쉽게 동성을 사랑한다면, 세상 참 어지럽게 돌아갈 수 있겠죠.

이 영화에서는 탐욕, 좌절, 우울모드보다는 그렇다고 순수함보다는 그냥 소년시절의 거짓없던 경험(순수함과는 다르다고 봐요)을 자연스럽게 미화하고 있는 것도 같고, 여러가지 많이 생각이 드네요.   
2008-11-16 20:04
jinok274
참신하면서도 문제의 영화로 매스컴에 대두될만한 영화인데, 뭐 아닌가요?^^:: 왠지 따스하고 수수함 속에 깊은 떨림이 있을 것 같은 느낌.   
2008-11-16 19:55
dlsgud22
소년, 소년을 만나다.. 기대만발^^   
2008-11-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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