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극장 청소부로 전락한 안드레이가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보낸 볼쇼이 교향악단 초대공문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공문을 가로 챈 그는 흩어져 있는 옛 동료들을 모아 볼쇼이극장 오케스트라를 사칭해 파리로 떠난다. 목적은 30년 전 연주를 끝내지 못한 차이코프스키 협주 완성. 이를 위해 그는 바이올린 솔리스트 안네 마리 자케(멜라니 로랑)에게 공연을 함께 해 줄 것을 요청한다.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안드레이와 통제 불능의 단원들을 본 안네는 그들과의 공연을 거부하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말에 불안한 이 협연에 참여하기로 한다.
<더 콘서트>는 오합지졸 오케스트라의 재기와 유명 바이올린 솔리스트의 숨겨진 과거라는 두 개의 이야기를 축으로 한다. 사실 두 가지 모두 새로울 게 없는 소재다. <노다메 칸타빌레>부터 <베토벤 바이러스>, 최근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 하모니’가 이미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통해 감동을 노렸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출생의 비밀에서 가지를 쳤다. 굉장히 안전한 노선만을 걷는 <더 콘서트>는 그래서 다소 진부해 보이고 때론 심심하다.
그러나 진부함으로만 끝난 뻔한 이야기는 라두 미하일레아누 감독이 어릴 적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에서 경험한 비극이 결합되면서, 기사회생한다. <더 콘서트>에는 공산당의 유대인 박해라는 시대의 비극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비극을 희극적 시선으로 견지하는 이 영화 특유의 건강함이다. <더 콘서트>에는 포기할 수 있었지만, 버리지 않은 꿈들도 있다. 영화에서 꿈의 열정을 품은 이는 비단 안드레이만이 아니다. 공산당의 탄압으로 음악을 떠나야 했던 단원들, 이제는 공장에서 망치를 들고, 에로영화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길거리 좌판에서 돈벌이를 하는 그들의 가슴 속에도 각자 다른 색의 꿈들이 자리해 있다. 영화는 꿈을 꾸는 것 못지않게, 한번 품은 꿈을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함을 이들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새로울 것 없고, 구성상의 허점도 많은 이 영화가 가장 크게 빚지고 있는 건, 영화 마지막 15분을 장식하는 콘서트 장면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35번을 배경으로 영화는 이제껏 품어왔던 비밀들을 빠른 속도로 풀어낸다. 현재의 콘서트가 30년 전 콘서트와 교차하고, 안네의 모습이 30년 전 바이올린 리스트 레아의 모습에 겹쳐지면서 음악도, 영화도, 감동도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그것이 영화의 힘인지, 음악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콘서트>의 라스트가 예상보다 강렬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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