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호크 다운>은 미국 전쟁영화이다. 하지만 풍겨지는 분위기는 이때까지 보아온 미국의 영화와 사뭇 다르다. 스포츠와 연예, TV프로그램이 신문의 핵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겨우 기억할까 말까한, 미국과 제 3세계의 분쟁을 다뤘다는 점부터, 전쟁을 했다해도 세계적인 스케일만 선호(?)하는 지금까지의 경향과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눈에 띄는 점은 그 대단한 미국이 실패한 전쟁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9.11테러로 한참 심난한 이 때에 미국이 전쟁에서 실패하는 영화를 개봉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이 영화를 비난했을 정도이니 미국을 위한 영웅 영화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이완 맥그리거나 죠쉬 하트넷 같은 가볍지 않은 배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머리속에 남는 것은 그네들의 모습이 아니라 전쟁이 가져다 준 죽음이라는 공포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총부리를 메는 병사들이다.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전우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사람이다. 전우의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애도는 다시 총을 장전하고 적진 한가운데를 뚷고 나가야 하는 긴장속에서 꽉다문 입속으로 삼켜진다.
<블랙 호크 다운>의 전쟁은 바로 내 옆에서 죽어가는 전우의 신음소리와 어깨를 뜷고 들어오는 총알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너무도 치밀하게 짜여진 화면은 각본이 미리 있었으리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눈앞에 적을 두고 들이키는 숨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숨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완벽하게 재현한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의 힘이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