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어느 가족>(수입 (주)티캐스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한, 30일(월) 오전 10시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어느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는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족이 어느 날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데리고 오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후 밝혀지는 비밀을 다룬다.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키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가 출연했다.
▶ 아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한국 방문 인사를 부탁한다.
영화를 시작한 후 15년 정도까지 일본에서 독립영화를 주로 제작했기에 큰 규모의 개봉이 없었다. 그때와 지금이나 자세와 마음은 같다. 이렇게 <어느 가족>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고 직접 인사할 수 있어서 기쁘다.
<어느 가족>이 올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소감은.
평소 작게 만들어 오래 잘 키워가자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이번에 뜻하지 않게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게 됐다. 예상 못 했던 일이지만 너무 기쁘다. 일본의 경우 오리지널 작품을 개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에는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이전에 했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게 아닌가 한다. 앞으로 조금은 수월하게 개봉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기대를 걸고 있다.
<어느 가족>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음에도 아베 총리의 축하 인사가 없었던 거로 알고 있다.
정부의 축하가 영화의 본질과는 그다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가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는 건 편치 않은 일이다.
최근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2017)에서 일본 영화의 내향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어느 가족>의 칸국제영화제 수상은 괄목할만한 성과로 볼 수 있겠다.
일본 영화가 점점 내향적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세계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점점 좁아지고 가늘어진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일본 영화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기요시 등 멋진 선배들이 활약해줬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그 후광의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다행히 국내를 비롯해 해외 여러 곳에서 상영할 기회를 얻었지만, 현재 일본 영화의 경향이 계속된다면 재능있는 감독이 빛을 보지 못할 것이고 제작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시야를 넓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나 역시 계속 도전 중이다.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부분이 사람의 정서에 울림을 주고 감동을 주는가 혹은 어떤 것이 국경과 문화를 넘어 감동을 주는가에 대해 최근에는 의식 하지 않는 편이다. 의식한다고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전해질 것은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열중할 모티브를 찾고 그 부분을 파고들려고 한다.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그리고 한국에서 특히 사랑받는데, (아마도)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전해져서가 아닐까 한다.
이번 <어느 가족>을 비롯해 ‘가족’은 당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소재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가족은 어때야 한다든지 좋은 가족이란 어떤 것이다든지 이런 식의 정의를 내리지 않으려 한다. 어떤 형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어느 가족>을 만들었다. 극 중 가족 구성원이 범죄를 저지르고 심판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족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보다 작품이 더 친절해지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의도한 것인가.
관객과 소통하겠다고 일부러 의식한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고 혹은 영화를 오래 하다보니 기술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작품마다 내 안에서 말을 거는 상대가 다르고, 매번 그 상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품을 만든다. 내가 말 거는 상대에 따라 영화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어느 가족>의 경우, 아이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가족>이 전작이 지녔던 따뜻한 '결'과는 다르게 다소 현실적인 결론을 제시한다는 견해도 있다.
<어느 가족>의 엔딩을 두고 여러 형태의 감상이 있다. 누군가는 잔인하고 어둡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무언가 밝은 빛이 느껴진다고도 한다. 그건 보는 이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가령, 어린 소녀 ‘린’의 경우 엄마의 품으로 돌아갔기에 부정적인 결말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린’은 엄마의 의사에 반하는 의지를 보인다. 이는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또, 영화의 시작에서 난간 틈새로 바깥을 바라보던 ‘린’이 마지막에는 뭔가를 밟고 올라가 난간 위로 바깥을 바라본다. 훨씬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 역시 큰 변화다.
당신과 그간 많은 작업을 함께 했던 배우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가 이번에도 역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별히 두 배우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는지.
<어느 가족>의 플롯을 구성하는 전 단계에서 연금 사기 사건 기사를 접했었다. 부모의 사망 후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계속 연금을 수령했던 자녀 이야기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사건이었다. 그때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모자(母子) 관계를 등장시키려고 생각했고, 이를 연기할 인물로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 외에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극 중 아들과 함께 물건을 훔치고 길 위의 소녀를 외면하지 못하는 아버지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어떤 인물인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릴리 프랭키’와 그가 맡을 역할에 관한 손편지를 주고받았다. 손으로 쓴 편지를 카메라로 찍어 SNS상에서 공유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그에게 ‘오사무’는 영화 내내 인간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어려운 역할이라고 말했다. 아들 ‘쇼타’(죠 카이리)가 성장하여 그를 앞질러 가는데, 이때 아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아버지는 (아들의) 감정을 전달받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슬픈 아버지상이라고 소개했고, 맡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
극 중 바다에 간 가족이 파도 놀이 하는 장면이 있다. 백사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가 소리 내지 않고 입으로만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장면이 마침 첫 촬영이었는데 대본에도 없던 걸 그녀가 즉흥적으로 한 거였다. 사실 옆에서 찍고 있던 나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걸 몰랐었고, 편집하면서 비로소 발견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영화의 주제와 핵심을 포착하여 자기의 연기 안에서 슬쩍 꺼내 놓는 배우다. 만약 자신이 꺼내 놓은 연기를 감독이 알아채지 못한다면, 연출자를 별로라고 평가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펼치는 연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진검 승부를 주고받았던 거 같다. 그런 배우가 현장에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앞으로 또 가족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은가.
지금으로서는 아직 머릿속에 없다. 이번 <어느 가족>은 가족 내부보다 가족 밖에 주목했었다. 가족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마찰에 초점을 맞췄었다. 앞으로 사회 안에서 가족들이 어떻게 변해 나갈지 그 변화에 따라 내 안에서 모티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차기 작품 소개와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사하다. 감독이 작품에 관해 부연 설명을 한다면 작품에 어딘가 미숙한 점이 있는 거라고 평소 자신을 타이르며 작업한다. 기본적으로 작품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작품에 관해 질문 받는 것 또한 아주 값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영화는 에단 호크,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등과 같이 프랑스에서 작업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작품이 문화와 언어를 넘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문화와 언어를 넘어 감독인 내가 연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새로운 도전이 성공한다면,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와 언어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한국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향후 한국에서 작업할 수 있다면 너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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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
부연 설명을 들으니 더 다가오는 <어느 가족>
2018년 8월 1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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