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리스>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스페인의 천재감독 자우메 발라구에로가 연출한 작품으로 숨가쁘게 움직이는 짧은 컷들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리면서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거머쥔 새로운 스타일의 호러 영화다. 전작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30대 중반의 이 젊은 감독이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특기를 살려 만들어 낸 <다크니스>는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엑스맨>씨리즈의 안나 파킨,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톱 스타로 발돋움 하다 그만 주저 앉고 만 섹스 심볼 레나 올린이 등장한다고 하니 이 또한 영화의 매력을 한껏 부풀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스페인의 어느 외딴 언덕 위의 집에서 빠져 나와 숲을 달리는 아이가 보인다. 숨막히는 어둠의 공간, 아이를 둘러싼 경찰들은 7명의 실종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아이를 향해 사라진 나머지 6명 아이들의 소재를 묻지만 유일한 생존자인 아이는 벌벌 떨며 어둠이 두렵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40년간 비밀을 간직한 채 버려진 이 집에 미국에서 막 이주한 레지나 가족이 정착한다. 할아버지 페리니의 배려로 스페인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려던 레지나 가족. 그러나 유난히 어두운 이 집 곳곳에서 레지나는 이상한 징후를 느끼고, 끔찍한 악몽은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는 익숙함에 대한 공포를 통해 관객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야기의 발전이나 집중력을 유도하는 인과의 구성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다. 40년 전 일어났던 사건이 현재와 섞이면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은 ‘왜?’ 라는 의문을 한번 던질 때 마다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맹점으로 작용한다. 어둠에 잠식당해가는 가족들의 붕괴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 되지 않는 무관심으로 은근 슬쩍 넘어가고, 결국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어둠을 두려워 하라’라고 겁을 준다.
필시 향상된 컴퓨터 그래픽이나 음산한 세트는 돈 들인 맛을 풍기며 싸구려 영화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지만, <네임리스>가 보여주었던 감독의 참신한 맛은 많이 휘발되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무관심한 어머니. 말 없이 어둠에 고통 받은 아이들의 모습은 영화의 분위기를 억지로 만들어가기 위한 인위적인 요소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들어진 구조와 캐릭터 설정은 영화의 집중을 방해하며, 공포를 몸으로 느끼기에 그 거리감은 너무도 멀다. 어린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던 어둠에 가졌던 두려움을 형상화 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지나치게 과장되고 탈색되어 오히려 그 의도를 분명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