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동물도, 기계도 할 수 없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에 인간은 인간일 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고등 생명체로서의 인간다움의 정점에는 인간만이 느끼는 섬세한 감정, 그리고 거기에서 창조되는 예술의 세계가 있다. 그것이 없고 서야 어떻게 인간이 기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이퀼리브리엄>이 창조한 ‘감정 없는 세계’는 그런 인간다움을 부정하는 세계이다. 증오와 이기심으로 인해 인류는 3차 세계 대전을 겪게 되고, 21세기의 지구는 리브리아라는 새로운 세계의 총사령관에 의해 통제된다. 독재자인 총사령관은 전 국민으로 하여금 매일 프로지움이라는 약을 투여하게 하여 그들을 무감정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모든 예술 작품과 애완 동물은 보는 즉시 ‘제거하게 한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거부하는 반군을 색출하고자, 리브리아에서는 고도의 훈련으로 단련된 특수요원을 양성한다. 주인공 존 프레스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냉정함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면서도, 머리카락 몇 올만 흐트러뜨리면 사람다워보이는 존 프레스턴이라는 역할에 크리스찬 베일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비록 ‘매트릭스는 잊어달라’는 영화 포스터의 외침은 허공에 흩어져버렸지만, 크리스찬 베일은 키아누 리브스와 대등한 정도의 매력을 영화 감상자의 뇌리에 남긴다. 특히 후반부의 화려한 ‘건 댄스 (건 카타)’ 씬은 다소 만화적인 발상이라지만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퀼리브리엄>을 단순히 B급의 액션 영화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사실 국내에서는 ‘스타일리쉬 액션 영화’라는 말로 내내 홍보되었다. 그러나 <이퀼리브리엄>은 ‘치고 박고 싸우는’ 액션 영화 이상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본다. 미움도 있고 이기심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애정과 측은지심 같은 감정도 있다. 아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 많은, 그리고 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인간에게는 있다. 그 감정을 통제하는 세계에서, 죽어도 그 감정을 되찾겠다는 인간의 몸짓은 처절하다. 인간답게 살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현실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