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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귀여워' 촬영현장 취재 | 2003년 1월 10일 금요일 | 서대원 이메일

한때,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한 영화 <데미지>를 보고 적잖이 데미지(damage)를 먹은 적이 있다. 아이언스와 그의 아들놈이 비노쉬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기가 막힐 노릇의 영화적 내용 때문에. 한데, 이보다 더한 콩가루 집안이 있다는, 화들짝 놀랄 만한, 투고가 무비스트에 들어와 촬영기사를 대동해 필자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내용인즉슨, 아버지와 아들 셋, 합이 네 부자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

장소는 양수리 종합 촬영소 제 5세트장.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귀여워>라는 문패를 내걸고 허름한 집(세트장)안에서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었다. 간간이 들여오는 “레디잇~~이, 꼬!”소리, 그리고 외부인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엄포의 단말마. 이처럼 이들은 삼엄할 정도로 자신들의 본거지를 쉽사리 타인에게 노출시키지 않았다.

영화 <귀여워>는 <나쁜 영화>의 조감독이었던 김수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선인들의 격언을 존중하기는커녕, 사부의 그림자를 멋대로 창조해내기 위해 장선우 감독을 영화 안으로 모셔왔다. 그것도 콩가루 집안의 수장인 아버지로 말이다. 이런 배포라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전직 박수무당 장수로(장선우), 퀵 서비스계의 진정한 후까시, 963(김석훈), 시대가 요구하지 않는 건달 뭐시기(정재영), 레커차 기사 개코(박선우). 이 네 부자는 단순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성격의 뻥튀기 장사 순이(예지원)가 출현하자 마음을 그녀에게 송두리 채 도둑맞는다. 영화는 이러한 네 남자를 둘러싸며 일어나는 일상을 잡아낸다.

자신의 아들 963과 순이가 데이트 한 것에 질투를 느낀 장수로가 순이에게 다그치는 신이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 한창 진행 중이었다. 충무로에서 이력이 날 만큼 난 장선우도 한 컷이 끝날 때마다 모니터를 응시하며 생경한 자신의 몸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스텝들 역시, 점심시간마저 영화에 저당 잡히며, 한 신의 오케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영화 촬영장, 생 노가다에 다름 아니다.

인터뷰를 위해 배우들은 식사를 일단 뒤로 제쳐놓고 회견장소인 분장실로 이동했다. 장선우 감독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속세를 벗어난 듯한 그만의 흐드러지는 미소를 자주 지었다. 역으로 복장은 속세를 초월하기는커녕 속세에 쪄들은 듯 한 초라한 행색. 예지원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때로는 요조숙녀처럼 때론 씩씩한 여걸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과 함께 감독과 정재영 박선우가 인터뷰에 응했다. 김석훈은 몸이 안 좋은 관계로 불참.

무엇보다 <귀여워>가 기대되는 점은, 그간 수많은 진실과 풍문사이에 놓여 있던 장선우가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대중들에게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날 인터뷰하는 김수현 감독의 모습과 자세야말로 영화에 대한 신뢰를 부여하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겸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옹골차게 전달하는 말 주고받음의 과정을 반추해 보자면, 영화에도 그의 그러한 진정어린 태도들, 분명 녹아날 것이라 판단된다.

Q: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 달라.
장선우: 영화에서 전직 박수무당 장수로로 나온다. 세 남자의 아버지이기도 하구.
예지원: 모든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직업은 뻥튀기 장사이고 이름은 순이다.
정재영: 시대가 요구하지 않는 건달로 장수로의 셋째 아들 뭐시기로 나온다. 가장 늙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박선우: 현실세계에서 보기 드문 레터 기사, 개코이다.
김수현(감독): 일단 먼 길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가지고 말이 되게 하려니까 고생스럽다. 하지만 좋은 연기자들 덕분으로 한결 수고를 덜고 있다.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Q: 사부인 장선우 감독을 어떻게 기용하게 되었나.
김수현: 보시면 알겠지만 얼굴이 괜찮게 생겼다. 물론, 처음부터 장선우 감독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진 않았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읽은 분들이 장 감독을 많이 추천해 한 번 생각해보니, 장감독의 카리스마와 극중 캐릭터가 잘 어울리더라. 그래서 스승을 모시게 됐다. 어렵게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선뜻 출연해주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쨌든 다행이다.

Q: 장 감독의 연기는 어떤가.
김수현: 어떻게 감정을 드러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 하여튼, 잘 한다. 특히 순이랑 연기하는 부분에서는.

Q: 제자인 김 감독의 프로포즈를 한번에 허락했나.
장선우: 글쎄, 솔직히 반 강제였다(웃음). “너 밑에서 고생한 게 어느 정도데”하며 속으로 뭐라 그랬을 것 같다. 어쨌든 출연하길 잘 한 것 같다. 특히, 순이가 힘을 많이 주었다.
예지원: (바로 말 받아치며)장 감독 역시, 저의 에너지원이다.

Q: 순이는 은근히 복잡한 캐릭터 아닌가.
예지원: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인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자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지금은 그냥 순이가 된 듯싶다. 나랑 순이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자유에 대한 욕심, 거침없는 행동정도

Q:뭐시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정재영: 연기를 하기 전에는 분명, 매력이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나서 매력이 떨어졌다.(웃음) 뭐시기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건달의 모습이긴 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마도 등장인물 중 가장 정상적인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Q: 연기는 처음인가.
박선우: 전에 노래를 잠깐 했었고(남성 듀엣 미스터 투), 장 감독과 함께 배우의 길로 전업 했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다.

Q: 장 감독은 <성소>이후 무엇을 하며 지냈나?
장선우: 그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어디 가지도 못했다. 놀고 싶기도 하고 계획도 많았지만 다 무산됐다. <귀여워>에 출연하게 된 것은 인연이라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 솔직하게 말해서 작품의 시나리오도 매우 좋았지만 <성소>에 대한 미안함도 영화에 참여하게 된 작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성소>와 <귀여워>는 튜브가 참여한 작품이다)

취재: 서 대원
촬영: 안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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