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말지어니...대니 보일이로다.
비치 | 2000년 3월 21일 화요일 | 이지선 이메일

"별이 쏟아지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자던 유행가가 있었다. 그랬다. 해변은 언제나 젊음에게는 해방구이고 아름다움의 실체처럼 느껴지는 무엇이었다. 대니 보일의 네 번째 영화 [비치]는 낙원을 찾아 떠난 주인공의 모험담을 통해 해방구로서의 해변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 남녀는 지도 하나만 믿고 해변을 찾아 오월동주(吳越同舟, 한 여자를 놓고 겨루는 두 남자라니!)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섬은 실재했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는 한 무리를 만난다. 그들은 세 남녀를 또 다른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곧이어 체인징 파트너가 이루어진다. 불안한 일들이 하나씩 일어나지만 여전히 낙원을 찾은 기쁨에 심취한 그들은 행복하다. 그들에게 그 해변은 해방구였고, 대안이었고, 낙원이었으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해변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언제나 생활의 터전이 되는 것은 바위와 파도가 공존하는 어촌이지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해 변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경멸해마지 않는 문명으로부터도 완전히 독립해 생활할 수 없었고, 그러므로 그곳에서 오래 행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침입자와 원주민, 그리고 공동체 생활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던 주인공은 그들의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제일 먼저 직시한다. (그 게 주인공의 특권이겠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그러한 현실인식이 대마초가 부르는 환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루었던 모든 것은 알고보니 환각이고 환영인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낙원은 곧 피로 물들고, 서로를 물고 무는 배신 속에서 공동체는 확실하게 조각난다. 사실 그들의 생활을 가장 위협했던 것은 외부자 가 아니라 내부의 자신들이었다. 순수에 대한 열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그들의 행위는 실상 환영을 좇는 것에 불과했고, 결국 그러한 강박과 아집으로 인해 파멸에 이른다.

이제 그들은 한 장 남은 사진을 통해 '그때가 좋았지'라고 스스로의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윤색하며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들의 젊은 시절, 한 때를 함께 했던 해변, 친구들, 공동체 생활과 사랑, 믿음, 신념…, 모든 것은 한낱 대마초 연기에 의지한 환영들이었다. 한여름 더위와 일상을 피해 달아나는 피서인파의 그것처럼 '추억'이라는 이름의 윤색된 기억일 뿐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여름휴가의 기억에 남기고 돌아온 "쓰레기는 어떻게 되었나"를 포함시키는 이는 없을테니까.

영화는 그렇게 해변을 훑고나서 이 한 마디를 남긴다.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허구로 지어낸 것이니 속지 말 것". 모든 것은 그렇게 환각이고 환영이었다. 그들이 현실에 적응해 현실의 일부가 되어 버린 순간부터 그들이 행했던 사상적 실험과 적용은 모두 대마초 연기 속에 만난 신기루가 된 것이다. 비록 여전히 그것을 믿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 공동체의 우두머리 '살'처럼 '교조주의자'라는 이름을 달아 또 다른 환영으로 낙인해 둘 뿐이다. '우리의 믿음은 실패할 수 없다'는 환영 속에.

사실 [비치]는 보는 사람을 꽤 안타깝게 한다. 분명 [비치]는 대니 보일의 전작들보다는 단점이 더욱 눈에 뜨인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 은 현저히 줄었고, 답습인지 자기복제인지 모를 설정과 전개방식은 진부하다. 촬영은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건 다리우스 콘쥐에게 바쳐져야 할 헌사이다. 그렇다고 누구말대로 '헐리우드로 가 망쳐전 유럽감독의 전형' 을 보여주는 예라고 깍아내릴 정도의 영화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1960년대 말 미국을 휘몰아쳤던 히피문화에 대한은 유로 읽혀진다는 사실이다(영화 속의 그들의 복장과 주장을 보라. 더 이상 똑같기도 어렵다!). 반전운동과 자연주의를 부르짖으며 공동체 생활을 했던 히피들은 결국 대부분 사회에 투항했다. 그리고 과거를 잊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문명에 적응했다. 1980년대 보수주의가 판치던 미국의 경제적 호황기, 중산층으로 올라선 그들은 여피라 불렸다.

사실 대니 보일은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대로 조롱과 은유를 구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다 직접적인 대상을 그렸다는 것이 전작들과의 차이라면 차이 겠지만,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여전히 주인공은 주변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훑어내리고 있으며,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상태로 영화는 막을 내리니까.

단지 전작과는 달리 이 영화가 더욱 뼈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실패를 그저 실패로만 한정짓는 데 있다. 게다가 묘사된 그들의 '공동체'는 얼마나 극단적이며, 비인간적이던가.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본 히피문화는, 영국인의 눈으로 본 미국의 히피운동은 젊은 시절의 치기일 뿐,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는 결론이다. 이런 식이라면 몇 년 전 [포레스트 검프]에서 잠시 묘사 되었던 히피문화의 단면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모든 개혁적 사상과 행동이 결국은 환각, 환영이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윤색된 한때의 악몽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화 한 편으로 때 아닌 바캉스를 즐겼음에도 서글퍼진다. 마치 피서철 끝무렵 친구들과 떨어져 쓰레기 가득한 해변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어차피 극장을 나서듯 돌아오면 그만일테지만... 그래도 서글픈 것은 서글픈 것이다.

(총 3명 참여)
ejin4rang
속지말자   
2008-12-02 14:49
ljs9466
기대되는 영화!!   
2008-01-14 15:15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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