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처방전
버스, 정류장 | 2002년 3월 9일 토요일 | 박우진 이메일

고백하건데, 내가 [버스, 정류장]을 손꼽아 기다린 데는 ‘음악’이라는 불순한(?) 동기가 있었다. 사실 영화보다도 루시드 폴이 맡는다는 OST를 절실히 기다렸던 것. 눈보다 귀로 먼저 찾아든 [버스, 정류장]이 내 마음 한 가득 저릿한 주름을 수놓았건만.

사람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라 그 각각을 물리적으로 측정하거나 단순 비교할 수 없다해도, 분명 그들 중에는 내구력이 강한 종족과 약한 종족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양의 풍파가 던져졌을 때, 무던히 넘어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휩쓸려 영영 침전해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내구력이 약한 종족은 가녀리고 얇은 마음을 갖고 있어서, 실바람에도 쉽게 펄럭이고 곧잘 찢어진다. 처음에는 그 찢긴 부위를 봉합하려 바둥거려 보지만 섣부른 시술은 상처를 오히려 덧나게 할 뿐. 시행착오에 지친 어떤 사람은 마음 바깥에 단단한 빗장을 질러 오히려 제 상처를 은폐하고 만다.

[버스, 정류장]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외부적인, 혹은 내부적인 갈등에 마음 움푹 패인 사람들. 온 정신에 아로새겨진 그 큰 상처를 억지로 동여 맨 채 문 다물어버린 재섭과 소희에게 세상이란 그저 그들 너머 바깥일 뿐. 이미 그들을 버려 둔 채 저만치 내달리고 있는 세상은 짐작이나 할까,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한 재섭과 소희의 굳은 표정에 언뜻 비치는 오싹한 냉소가 본래는 끔찍이도 여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처 입은 사람은 그 어떤 사탕발림으로도 치료되지 못한다. 그들의 치유법은 다만 서로에 대한 깨달음. 즉, 나와 ‘닮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상처에는 다른 이의 상처를 발견해내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재섭과 소희가 서로에게 이끌렸던 것처럼. 그리고 더욱 기묘한 일은, 일단 그들이 공존하게 되면 서로의 상처를 헤집어 교환하지 않아도(저절로?)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해낸다는 것이다.

재섭과 소희가 소통하기까지, 그들은 각자 벗겨내어야 할 빗장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들은 덥썩 제 마음을 건네지도, 상대방의 마음을 캐지도 못한다. 자꾸만 머뭇거리고 서성이는 17살 소녀와 32살 남자의 사랑은 내구력 약한 종족 관객에게는 안타까운 공감을 자아내지만, 그 외의 관객에게는 미련한 하품만 자아낼 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17, 32 숫자에 홀려, 사회의 암묵적인 금기를 뒤집는 화끈한 사랑이라도 기대한 관객에게는 더더욱.

이미연 감독은 다소 침울한 이야기를 세련된 화법으로 풀어간다. 버스, 정류장의 공간에 소희, 재섭을 녹여낸 것도 돋보인다. 분명 [버스, 정류장]에는 한국 멜로의 또 다른 방향-‘허진호 식’ 절제된 감성과 다른 각도의 사랑-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감성의 절제가 엇나가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 상처와 상처 사이의 소통은 단지 어둡고 조용한 몸짓뿐만이 아닐 텐데. 그 속에 빼곡이 들어차 아우성치고 있을 지난한 사연이 아쉽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울음을 공유함으로써 소통을 이루어낸다. 아이처럼 서러운 소희의 울음을 등돌린 채 삼켜버리는 재섭, 그리움처럼 사무친 재섭의 울음을 망연히 내려다보는 소희. 상대방의 상흔을 애써 다독이려 하지 않고, 다만 지켜보는, 다만 존재하는 그들의 사랑. 서로에게 가로지르는 열정적인 사랑보다도 이렇게 뻣뻣하고 밍밍한 사랑에 오히려 더 가슴 저미는 이유는 내 상처가 이 영화의 상처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총 4명 참여)
ejin4rang
 정말 정감가는 영화   
2008-10-16 16:21
ldk209
노래는 정말 좋다...   
2008-10-05 14:35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19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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