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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욕망
움찔거리게 하는, 그 남자들의 사랑법 | 2004년 5월 9일 일요일 | 심수진 기자 이메일

영화가 시작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크레딧이 떠오르고, 화면 바깥에서 두 남자의 보이스만이 들려온다. “마음대로 된다면, 넌 여자를 사랑하겠니? 아니면 여자한테 사랑받겠니?”, “사랑을 주는 쪽이 되고 싶은지, 아니면 받고 싶은 쪽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거야?”, “응”, “난 서로 사랑하는 게 좋아”, “난 사랑하는 쪽이 낫겠어.”

어딘가 냉소적이면서 명민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하나와 소심하지만 성실함이 묻어나는 다른 목소리 하나가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몇 분간의 대화. 영화 <애정과 욕망>의 오프닝은 그렇게 꾸며진다.

별다른 기교없이 ‘대화’만으로 진행되지만, 이 오프닝엔 참 묘한 흡입력이 발산된다. 그건 두 남자가 주고받는 말들에 솔직하면서도,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내용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데이트에서 내가 만져도 가만히 있더란 말야. 그 모습에서 왠지 정이 떨어졌어.”, “난 여자하고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미인은 아니어도 맵씨는 있는 게 좋아”, “난 섹시한 게 좋아”, “난 헤픈 건 싫어”, “섹시한 게 헤프다는 건 아니야”, “키는 늘씬해야 해”, “이해심이 많아야 해”, “가슴은 커야지” 등등.

왠지 알고 있는 남자들이 여자와 연애를 대상으로 주절거리는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어떤 부분에선 웃음까지 피식 뱉게 되는 내용들이다. 또, 그 파편적인 생각들의 덩어리만으로도, 두 캐릭터를 알게 되기에 <애정과 욕망>의 오프닝은 상당히 매력적인 편. 1971년에 나온 이 할리우드 영화는 주옥같은 고전으로 남은 <졸업>을 비롯해 <워킹 걸>, <울프>, <버드케이지> 등을 연출한 마이크 니콜스가 감독이다. 여기에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없는 잭 니콜슨과 ‘사이먼 & 가펑클’의 아트 가펑클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Carnal Knowledge'라는 원제가 <애정과 욕망>이란 볼품없는 제목으로 바뀐 건 불만이지만, 이 영화는 은근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중 압권이 바로 잭 니콜슨. 요즘의 그를 보면 노련한 연기력이야 재차 확인하게 되지만, 숭숭 빠진 머리카락, 볼록한 뱃살, 자글자글한 주름살 등 늙은 외모와 마주치는 것이 싫었다. 그 모습이 던져주는 삶에 대한 쓸쓸한 상념이 견딜 수 없기 때문. 그런데 잭 니콜슨의 쌩쌩한 옛날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에 대한 신선한 매력들이 되살아난다.

잭 니콜슨은 앞서 말한 ‘보이스’ 가운데, 냉소적이면서 명민한 캐릭터 쪽. 그가 맡은 ‘조나단’은 어떤 여자에게건 쉽게 말을 걸 수 있고, 그녀들을 유혹할 수 있는 남자다. 세련된 화술과 몸짓, 저돌성과 같은 장점들로 ‘사랑’을 어렵지 않게 낚아채지만, 예의 그런 남자들은 결정적인 순간, 여자들에게 버림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안정적인 사랑을 꿈꾸는 여자들에게 그가 지닌 매력들은 불안하고 위험스러우므로.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얻는 대신, 끝없는 외로움과 대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구속받기 싫어하지만, 강력한 영혼을 지닌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기 바라는 모순 속에 살아가는 조나단.

그에 비해 아트 가펑클이 맡은 ‘샌디’는 ‘조나단’과는 180도 다른 인물이다. 연애에 대해 어설프고,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 샌디는 한마디로 여자들이 결혼 대상으로 일반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남자다. 정열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 알겠지만 샌디같은 사람이 조나단과 비교해 꼭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똑 부러지는 깔끔한 아내와 얼핏 보기엔 윤택한 중산층 가정을 꾸려가지만, 왠지 모르는 균열이 잠재돼 있는 샌디의 삶. 거기엔 조금만 비틀거려도 순식간에 압사당할 수 있는 숨막히는 단정함이 도사리고 있는 것.

<애정과 욕망>은 그런 ‘조나단’과 ‘샌디’가 대학 시절부터, 중년의 시기까지 겪는 삶의 행로를 보여주는 영화다. 한마디로 그들의 연애의 기록이자 삶의 기록인 작품. 그 기록에는 미칠듯한 건조함이 스며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가 그려내는 ‘사랑’, ‘이별’, ‘결혼’ 등의 삶의 모습에서 행복의 실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 그게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니 이 영화를 보노라면,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게 된다.

물론 몇 십년 전 영화니만큼, 그 화면 연출이나 기법은 당연히 낡고 지루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그 내용에선 전혀 예스럽지 않은 세련미가 폴폴 풍겨난다. 친구의 애인 뺏기, 스와핑 등 건드리고 있는 소재도 파격적인 요소가 적지 않은 편. 연애에 관한 한, 어떤 영화라도 흥미로움을 느끼는 당신이라면, 주저없이 권하고 싶은 영화다. 아, 남자라면 특히 더 말이다!

3 )
ejin4rang
사랑이 아름답네요   
2008-10-15 16:54
callyoungsin
움찔거리게 하는 이남자들의 사랑   
2008-05-16 15:39
qsay11tem
자극적인 영상이 볼만해요   
2007-11-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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