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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 2009년 7월 7일 화요일 | 하정민 이메일

<오감도>는 5명의 감독이 '에로스'를 주제로 뭉쳐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주홍글씨>의 변혁 감독, <행복>의 허진호 감독, <아나키스트>의 유영식 감독,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민규동 감독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업의 정석>의 오기환 감독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고자 나섰다. 다섯 감독들은 배당된 20분 여분의 시간동안 에로스를 질료 삼아 각자의 개성과 색깔을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바라보기에 앞서 없애야할 편견 하나. 에로스를 이야기했다고는 하나 <오감도>는 일반적으로 '에로스'하면 떠올렸던 시각적 섹슈얼리티에 치중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제목 그대로 '오감'에 배어있는 에로스의 흔적. 다섯 감독의 에로스는 일상과 기억의 틈을 파고들며 감각보다 감성을 일깨운다.

첫 번째 에로스인 변혁 감독의 <his concern>은 부산행 고속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그(장혁)와 그녀(차현정)의 이야기다. 영화는 이들의 첫 만남부터 두 번째 만남까지의 이야기를 그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데뷔작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해 연애하는 사람들을 '관찰'한 바 있는 변혁 감독은 그의 내레이션을 삽입해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는 인물의 심리에 가까이 다가간다.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여자들이 알고 싶어 했던 남자들의 속마음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그가 형(김수로) 부부와 함께하는 저녁식사 에피소드를 끼워 넣으면서 그의 욕망의 진원지를 은밀히 보여주기도 한다. 형수의 목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섯 작품들 중 가장 모던한 감성과 형식을 띈 <his concern>은 마지막 화자를 그에서 그녀로 바꾸며 그녀의 시선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려는 듯 끝난다.

<나, 여기 있어요>는 사랑과 더불어 늘 죽음에 천착했던 허진호 감독의 오랜 테마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남편 현우(김강우)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숨는 아내 혜림(차수연)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 후 순간들을 예행하듯 저녁마다 숨바꼭질을 하지만 실은 자신의 자리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다. "후각이나 촉각에 남겨진 기억에서 비롯된 에로스"라는 허진호 감독의 설명대로 <나, 여기 있어요>는 떠나는 자와 남은 자가 어떻게 사랑을 기억하는지를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을 통해 이야기한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홀로 맞이한 정오 즈음의 빈방은 혜림이 마지막으로 뇌리에 담은 생의 공간이다. 혜림을 떠나보내고 묵묵히 라면을 끓여먹던 현우는 그녀의 짐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깊은 그리움과 상실감을 껴안는다. 보풀이 난 니트, 즐겨 쓰던 향수에는 여전히 그의 오감을 자극하고 감정을 뒤흔드는 그녀의 체취가 묻어있다. 허진호 감독은 영화가 에로스와 너무 멀어져서 우려했다고 하지만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는 에로스의 기억은 그 어느 작품보다 짙고 강렬하다.

에로스 적 상상력을 극대화환 유영식 감독의 <33번째 남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에로스'라는 주제에 가장 부합한 영화다. 비단 배종옥의 파격적인 변신이 두 눈을 사로잡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촬영현장이 무대인 영화는 영화 제작에 대한 블랙코미디 혹은 여배우라는 존재에 대한 독한 농담이다. 주인공은 너무 잘 나가서 한 성격하는 중견여배우 화란과 얼굴은 예쁘지만 '발연기'로 일관하는 신인여배우 미진(김민선) 그리고 세계영화제 수상경력이 있는 영화감독 봉찬운(김수로). 영화는 이들이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는다. 화란은 미진의 발연기와 이를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봉감독의 고집 때문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미진의 연기가 못마땅한 봉감독이 결국 한 장면을 127번이나 촬영하자 화란은 미진으로 하여금 미인계를 쓰게 한다. 초반부터 코미디와 호러를 넘나들던 영화는 미진의 변신에 이르면서 판타지로까지 장르를 확장한다. 꽤 높은 수위를 오가는 에로스의 영역 또한 거침없다. 결국 이런저런 장르와 이야기가 뒤섞여 난장이 된 영화는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여 쾌감의 속도를 높인다.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한 세 배우의 연기 변신으로 가장 유머러스한 단편이기도 하다.

민규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끝과 시작>은 욕망과 금기가 빚은 에로스 대한 영화다. 격렬한 카섹스를 벌이던 남녀는 어이없게도 차가 움직여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마주오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는다. 교통사고는 한 여자로 하여금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남자는 정하(엄정화)의 남편이었고 여자는 그녀의 절친한 후배 나루(김효진)였던 것. 배신감에 시달리는 정하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녀 앞에 나루가 찾아와 동거를 제안한다. 헌신을 약속하며 통 사정하는 나루를 결국 받아들이는 정하. 하지만 여기에 죽은 남편의 존재를 불러들인 영화는 두 여자가 아니라 세 남녀의 기묘한 동거담을 건넨다. 현실과 환영을 오가는 <끝과 시작>은 나루에게 가하는 정하의 기괴한 행동과 나루의 마술로 몽환적인 이미지를 더한다. 세 남녀를 조여오던 욕망의 정체는 후반부 뜻밖의 반전을 통해 드러난다. <33번째 남자>와 묘하게 겹치는 몇몇 코드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발견일 수도 반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순간을 믿어요>는 10대들의 에로스다. 하지만 대담하게도 영화는 10대들을 주인공으로 '스와핑'이라는 발칙한 소재를 꺼내 보인다. 친구 사이인 세 쌍의 고등학생 커플은 각자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 동안 서로의 파트너를 바꿔보기로 한다. 윤정(이성민)과 커플이었던 지운(김동욱)은 세은(이시영)과 윤정은 수정의 남자친구 재혁(송중기)과 그리고 수정(신세경)은 상민(정의철)과 하루를 보낸다. 상민의 여자 친구는 세은이다.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발랄하다. 수정과 상민만이 수위를 넘길 뿐 1일 커플이 된 지운과 세은, 윤정과 재혁의 하루는 불온함보다 밝고 풋풋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하루가 지나고 이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파격적 일탈을 통한 깊은 성찰이나 형식의 새로움이 번뜩이는 단편은 아니나 청소년과 스와핑이라는 이질적 소재가 주는 괴리감을 크게 받아들이는 관객에게는 다섯 작품 중 가장 획기적인 에로스영화가 될 듯하다.

<오감도>는 에로스라는 통일된 주제를 다루는 것 외에도 배우의 교차 출연을 통해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다섯 작품이 하나의 영화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감도>는 그 점을 제외하고는 별개 영화들의 모음집으로 봐도 무방한 옴니버스 영화다. 다섯 감독의 다섯 가지 이야기는 개별적으로 보면 흥미롭지만 '따로 또 같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얻는 옴니버스 영화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뒤로 갈수록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히려 몇몇 에피소드는 '에로스'라는 주제에 묶여 감독의 개성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2009년 7월 7일 화요일 | 글: 하정민(무비스트)




-에로스에 대한 다섯 감독의 다섯 개 생각. 설득력 있네.
-5명의 감독, 16명의 배우를 한 영화에서 만나는 재미
-16명의 배우 중 군계일학은 단연, 배종옥!
-끈적한 에로스는 상상하지 말지어다. <오감도>는 '사랑 영화'일뿐.
-18세 관람가에 걸 맞는 그 무언가에 대한 기대는 접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에피소드 별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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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cy1211
배종옥씨 엄정화씨~ 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분들이에요
시사회 평이 좋은 편은아니라 좀 걱정은되지만 그래도 보고싶네요   
2009-07-07 21:10
mooncos
배종옥!만세   
2009-07-07 18:49
jhee65
골라보는 재미만 있다.. ㅋㅋㅋㅋ   
2009-07-07 18:26
bjmaximus
에피소드 별 차이가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인 듯.   
2009-07-0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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