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그림’(맷 데이먼)은 주술과 마법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면서 퇴마사 노릇을 한다. ‘윌’의 형인 ‘제이크’(히스 레저)는 지금은 동생과 한패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사기꾼 퇴마사 노릇을 하지만 ‘학자’로서 전설/민담 연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속임수로 퇴마사가 됐지만 그들의 명성은 날로 높아간다. 이들 형제의 사기행각을 눈치 챈 프랑스는 마르바덴 숲에서 사라진 소녀들을 찾으면 죄를 용서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어떤 속임수로 소녀들을 납치했는지 밝히기 위해 그림형제는 자신들이 고안한 과학적(?) 방법으로 숲을 탐색한다. 그러나 마르바덴 숲에선 그들의 사고능력을 벗어난 일들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다. 거기다 계단 없는 라푼젤 성에서 500년 동안 산 ‘거울여왕’이 깨어나 마법을 부리자, 그림형제는 현실과 마법 사이에서 일대 혼란을 겪게 된다.

안데르센과 함께 동화 계의 쌍두마차로 군림하고 있는 ‘그림형제’를 ‘테리 길리엄’감독은 사기꾼으로 영화 속에 설정해 놓았다. 영화<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은 그림형제가 동화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 어떻게 그 많은 전설과 민담을 융합할 수 있었는지 배경을 설명한 영화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고 자라온 우리로서는 감독의 상상력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불온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림형제가 쏟아낸 많은 동화들은 유럽지역에 퍼져있던 전설들을 취합해 만든 조립품이다. 감독은 이 점에 착안해 그들이 유럽을 여행하며 정보를 얻는 과정을 그들의 동화처럼 환상과 마법으로 덧칠해 버린다. 마법과 전설을 믿지 않는 ‘윌’은 테리 길리엄 감독의 자아가 투영된 캐릭터다. 반대로 그것들을 믿는 ‘제이크’는 어린 시절에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고 상상력을 키운 ‘테리 길리엄’의 또 다른 자아다. 상반되는 두 개의 심리를 감독은 그림형제 둘에게 똑같이 배분해 놓고, 라푼젤 성이 있는 ‘마르바덴’ 숲으로 그들을 데려온다. 그림형제가 전설과 민담을 조립해 ‘동화’를 썼듯이, ‘테리 길리엄’ 감독도 그들의 동화를 가지고 그림형제 본인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조립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 갈래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감독 자신도 그에 버금가는 ‘이야기꾼’임을 보여줘야 한다. 때문에 마르바덴 숲에선 빨간 망토 소녀,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그림형제 동화 속 캐릭터들이 거의 모두 등장할 수밖에 없다. 동화의 모티브가 됐던 캐릭터들이 현실과 마법이 공존하는 ‘마르바덴’ 숲에 살고 있다는 설정은 감독의 진짜 ‘상상력’인 게다. 결국, 이야기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감독은 자신이 이야기꾼임을 확실하게 증명한 셈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은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형제의 여행담과 현실의 밖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을 결합시켜 잊었던 상상력을 찾고자 한다. 자유와 억압, 현실과 판타지의 충돌 속에서 얻게 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영화 <그림형제>가 지닌, 동화를 읽어서 얻는 것보다 큰, 실질적인 힘이다.

‘그림형제’의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영화 속 그들의 모험을 진짜로 믿으면 된다. <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이 탄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 관람가능: ‘그림형제’ 동화책을 아직도 상상력의 밑천으로 삼고 있는 자.
관람불가: 영화 광고만 보고 ‘모니카 벨루치’가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