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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채워질 수 없는 여백의 공허한 슬픔
검은 땅의 소녀와 | 2007년 11월 12일 월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어느 허름한 집 안, 지저분한 거울을 들여다 보는 소녀. 이윽고 책상에 엎드려 선잠을 자던 소녀는 눈을 뜬다. 그것은 꿈.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오빠를 보아하니 소녀는 늦은 밤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이윽고 전환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광부들의 고단한 표정들. 갱 속으로 들어가 석탄을 채집하고, 석탄 가루에 뒤섞인 도시락을 먹는 순간까지도 무표정한 갱내의 풍경을 거칠게 담아낸 카메라의 움직임. 마치 끔뻑이는 소의 눈동자처럼 무의식적일 듯한 눈꺼풀의 움직임 속에 하루의 고단함과 순수한 무기력이 한 가득 담긴다.

<검은 땅의 소녀와>는 소녀와 검은 땅의 생경한 표정을 대면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표정은 그 대지의 일상적인 풍경임과 동시에 그 대지만의 황폐한 심정일 것이다. 에너지 소비 구조의 변화와 함께 급격한 몰락을 경험해야 했던 태백 탄광촌의 삭막한 현재는 새카만 석탄이 덧없이 파헤쳐지듯 기약할 수 없게 암담한 내일로 무기력하게 흘러갈 뿐이다. 물론 그 척박한 현실 안에서도 삶을 일구는 이들은 존재한다. 아내이자 어머니의 존재가 부재한 이 가족은 광부인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딸까지 세 명의 구성원으로 이뤄졌다. 흰 눈을 뿌리는 아들의 장난에 웃음꽃이 핀 가족의 단란함은 마치 어두운 현실을 이겨내는 한줄기 희망을 감지하게 하지만 검은 땅의 시련은 그런 웃음으로 위안을 삼기엔 버겁다.

<검은 땅의 소녀와>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게다가 그것이 마치 현실을 기반으로 한 사실적 묘사이기에 허구적 감상으로의 도피마저 용납될 수 없음에 더더욱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노력하는 가장이던 해곤(조영진)이 육체적 질병과 피폐해진 영혼을 술로 가라앉히는 순차적인 붕괴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탄광촌의 몰락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마치 아버지의 노쇠한 육체처럼 광산의 황폐함은 형언할 수 없는 통증처럼 가슴을 찌른다.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앙상한 도시의 풍경은 희망보단 어떤 절망감을 먼저 습득하게 한다.

무기력한 갱내의 표정으로 출발한 <검은 땅의 소녀와>는 그 지역을 짓누르는 쇠퇴의 기운을 구체화시키고 무력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무엇보다도 스크린상에 구현되는 지정학적 상흔이 관객을 가장 크게 짓누르는 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일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담고 있으며 어떤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관객은 그 사실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영화상의 정제를 거친 픽션의 형태일지라도 카메라를 통해 온전히 구현되는 황폐한 거리의 풍경은 지극히 가릴 수 없는 논픽션의 육체다. 병마에 잠식당한 채 비틀거리는 병자의 상처럼 회복의 기미 없이 덧없는 삶을 부지하는 거리의 생존은 고단한 삶의 무게를 한 움큼 쥐어준다. 항상 해맑은 동구(박현우)의 웃음이 장애에서 비롯된 것처럼 희망조차 그 거리에선 덧없이 흩어진다.

결국 검은 땅의 소녀는 홀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검은 땅의 소녀, 영림(우연미)이 검은 땅 위에서 내린 마지막 결단은 그것에 대해서 누구도 감히 어떤 제지를 할 수 없음에 더더욱 충격적인 심적 통증을 유발한다. 아마 그 누구도 소녀의 결단을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 누구도 <검은 땅의 소녀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소녀의 버거운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처지가 될 수 없음을, 채우지 못한 문장의 빈 공간이 되어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절감할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스크린 너머로 누군가에게 소통의 손길을 갈구하는 표정을 남긴다. 검은 땅의 소녀가 홀로서야 했던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 우리는 <검은 땅의 소녀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검은 땅의 소녀와>는 그 문장의 여백을 채워주길 갈망하는 힘에 겨운 손짓이다. 결국 길 잃은 듯한 소녀의 표정은 채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여백의 공허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2007년 11월 12일 월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우리가 모르는 혹은 우리가 무관심한 누군가의 현실. 그곳에서 소녀는 어떤 결심을 내린다.
-기울어가는 탄광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카메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무겁다.
-영민한 아역들의 연기는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하다가 이내 씁쓸한 심적 통증을 유발한다.
-제64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수상작, 작품의 가치는 충분한 보장을 얻었다.
-당신이 사는 주변 환경이 아닌 바에야 관심 따윈 끄고 살고 싶다면.
-인디 영화는 재미없다. 그래, 역시 당신이 볼 수 없는 영화, 아니 봐서는 안 될 작품일 것 같다.
-슬프지만 어떤 현실, 그 버거움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15 )
ldk209
한 소녀의 절망의 날개짓....   
2009-04-22 21:21
callyoungsin
인디영화라 좀 지루한 면도 있지만 아역들의 연기는 뛰어났다   
2008-05-09 16:20
kyikyiyi
감동적인 작품이죠   
2008-05-08 11:12
lee su in
역시나 이런 영화는 주위깊게 개봉관을 찾지 않으면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화로 남고 말죠.   
2007-12-09 00:05
ranalinjin
감동적이예요!   
2007-12-06 20:03
qsay11tem
감동적인 영화에요   
2007-12-03 23:26
ewann
좋아요   
2007-12-03 00:57
justjpk
기대되요..   
2007-11-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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