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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공익 캠페인과 판타지의 적절한 만남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 2008년 1월 23일 수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지구가 뜨거워져서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 그래서 에어컨을 꺼야 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에어컨을 끄지 않는다.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의심많고 참을성 없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우리와 다르다. 그는 자동차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지구가 뜨거워지니 태양으로부터 밀어내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서 지구를 민다. 대머리 악당이 머리에 박아놓은 크립토나이트(kryptonite) 때문에 이젠 하늘을 날 수도 없고 힘도 세지 않지만 ‘남을 돕지 않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 남자는 기꺼이 남을 돕고 정의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선전한다. 그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이하, <슈퍼맨>)는 ‘슈퍼맨’보다도 ‘이었던’에 방점을 찍는 이야기다. 또한 여기서 슈퍼맨은 절대명사로서의 슈퍼맨이 아니다. <슈퍼맨>에서 슈퍼맨의 함의는 인간이며 초인적인 능력은 인간애를 의미한다. 슈퍼맨(황정민)의 능력이 봉사활동 수준을 벗어날 필요가 없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주인 잃은 강아지를 찾아주거나 학교 앞 바바리맨을 퇴치할 뿐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인간이 하지 않는 일을 자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총맞은 인간, 즉 정신병자처럼 이상해 보인다. 그가 하는 행위는 정상적인 우리라면 기꺼이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슈퍼맨이라고 가리키는 휴먼드라마다.

사실 <슈퍼맨>은 공익적인 캠페인을 위한 드라마로 치부 당할 소지가 많다. 때로 범법에 대한 응징을 가하기도 하지만 슈퍼맨의 행위는 직설적인 도덕성을 기반으로 이뤄지며 그것을 지켜보는 이의 양심의 가책을 자극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슈퍼맨의 기이한 도덕적 행위가 에피소드로 나열되는 전반부는 지켜보는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그 상황이 내던지는 직설적 화두에 불편함을 감안해야 되는 측면도 있다. 그건 휴먼다큐멘터리를 조작해야 하는 편집실의 상황과도 같다. 시청자가 현실에서 보고 싶어하는 건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자기위안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것을 행하는 이들을 추켜세워줄 명분이 필요하다. 휴먼다큐멘터리는 그래서 현실을 연출한 판타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슈퍼맨>도 마찬가지다. 왜냐면 <슈퍼맨>은 사실 송수정(전지현)의 휴먼다큐인 까닭이다.

<슈퍼맨>이 주목하는 이는 슈퍼맨이라기보단 송수정이다. 슈퍼맨의 비화가 영상으로 담겨져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듯 <슈퍼맨>은 그 다큐멘터리의 실체를 옆에서 바라보는 송수정 PD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영화적 연출은 결국 영화속 휴먼다큐의 연출과도 같은 셈이다. 인간이 싫다고 말하는 송수정의 염세적 성향이 변해가는 과정은 <슈퍼맨>이 전하고자 하는 원론적 메시지와 부합되는 최종 결과물이자 도착지점이다. 슈퍼맨의 능력은 홀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초인적인 동력이 아니라 홀로 고군분투하는 자신을 통해 세인의 작은 능력들을 작동시키는 스위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영향력의 가장 큰 수혜자는 송수정이며 송수정의 변화는 <슈퍼맨>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다큐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이다. 특히 말미에 삽입되는 그녀의 모습이 처음 슈퍼맨이 지상에서 행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은 결국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라는 일종의 권고와도 같다.

물론 지나치게 원론적인 메시지를 유연하게 중화시키는 건, 슈퍼맨의 비애가 담긴 과거의 사연 덕분이다. 슈퍼맨의 과거는 그가 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였는가를 맥락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만든다. 물론 신파적인 클리셰가 근원적인 의도에 혼선을 가중하는 감정적 미진의 진원지로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슈퍼맨의 현재를 공허한 공익적 메아리에서 구출하는데 과거가 일조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동시에 <슈퍼맨>의 드라마적 깊이를 형성하는 국면에서도 탁월하다 말할 수 없지만 적절한 깊이를 형성하기 위한 선택으로서 나쁘지 않다. 다만 그 흐름에 있어서 산만한 리듬감이 종종 감지된다. 감정의 흐름이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몰입도가 치고 빠지는 건 결국 그 드라마의 작용기능을 희석시켜버리는 까닭이다.

<슈퍼맨>이 판타지스럽게 느껴지는 건 현실과 판타지에 한발씩을 담그는 정윤철감독 특유의 장기가 노골적으로 활용되는 까닭이겠거니와, 너무나도 직설적인 함의의 역설적 뉘앙스 덕분이라고 이해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을 대구로 배치하는데 이 역시도 우리가 보고자 하는 현실과 우리가 대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대조군을 세우는 작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평행적인 대조군은 각자 긍정을 향해 뻗어나간다. 특히나 결말부의 클라이맥스에서 이는 선명해진다. 슈퍼맨의 희생을 활공으로 묘사한 결말부의 함의는 결국 그 희생이 슈퍼맨의 위대한 능력만큼이나 위대한 인간적 숭고미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초인적인 능력이라는 <슈퍼맨>의 궁극적 메시지일 것이다. <슈퍼맨>은 극장에서 벌이는 뻔뻔한 공익캠페인이지만 그에 드라마틱한 감정을 얹어 설득력을 가미했다. 결국 사기성 짙은 휴먼다큐라해도 감동을 연출할 수 있다면 순기능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슈퍼맨>을 치켜세울 수 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까닭도 그 이유라고 사료된다. 게다가 자신의 캐릭터를 어울리게 착용한 황정민과 캐릭터로부터 별다른 이탈 없이 소화한 전지현의 앙상블도 괜찮은 편이다.

가장 흥미로운 건 <슈퍼맨>이 어떤 역사적 사실을 영화의 부분적 소재로 활용해버리는 방식이었다. <슈퍼맨>은 여전히 뜨거운 패러다임으로서 사회적 반목과 갈등의 국면에 서있는 그 사건을 영리한 방식으로 이야기에 섞어 넣는다. 본래의 무게를 훼손하지 않으며 동시에 지나친 비장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최근 이 사건을 다룬 몇몇 영화와 비중을 논외로 하여 비교하자면 <슈퍼맨>은 그 활용법에 있어서 상당히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촌스러운 자기 어필을 외치지도 않고, 천박한 소재주의로 몰락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정윤철 감독의 사심은 공익사업보다도 이 부분에 있지 않았을까란 의심이 들 정도로.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사람들이야말로 누군가의 손길이 가장 절실했을 것 같다. 개인적인 편애를 밝히자면 이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패러다임의 세련된 진보라고 칭찬하고 싶을 정도다.

2008년 1월 23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총맞은 사람처럼 보이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그래도 밉진 않네. 그런데 어라, 진짜 총 맞았네?
-캐릭터를 입어버린 듯한 황정민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전지현도 괜찮은 걸.
-그 남자의 현실 때문에 웃다가 과거 때문에 우네. 웃다가 울면..응?
-역사적 패러다임을 다루는 진보적 양식. 설마했는데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물론 이는긍정이다.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안 하는 거지. 누가 그걸 몰라? 이러는 님 좀 짱인듯.
-진짜 슈퍼맨 나오냐고? 님아, 크립토나이트로 맞을래요? 맞을래요?
-직렬로 나열되던 캠페인 에피소드가 병렬 구조의 신파로 갈아탄다. 환승역은 혼란하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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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ohy
난 잼게 봣는데 흥행이 안됫다는   
2009-03-14 12:46
gaeddorai
확실히 진심은 있는듯하지만 더욱 확실하게 관객을 끌어가는 힘이 약하다   
2009-02-18 21:54
ldk209
정말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2008-09-17 21:37
kyikyiyi
전지현 오래간만에 찍은거라 엄청기대했는뎅ㅠ   
2008-05-07 14:14
callyoungsin
작품성도없고 흥행도 못하고   
2008-05-07 11:30
navy1003
정말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2008-02-16 13:59
bae1227
사회에 대한 반감표시..   
2008-02-10 14:38
real82
그래도 꽤 재밌었어요.. 전지현씨 오랜만에 보는 게 괜찮기도 하고..   
2008-02-1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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