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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가족주의의 배다른 형제
존 큐 | 2002년 3월 11일 월요일 | 우진 이메일

끔찍한 아들내미가 갑작스런 심장병 판정으로 오늘 내일을 헤아리고 있는데, 정작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수술 대기자 명단에도 올리지 못하는 아비의 심정이란 오죽하랴. [존 큐]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의 부모 마음을 '병원 점거'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죽어 가는 아들에게 삶을 되돌려 주기 위한 방법은 심장이식 수술뿐이나 그 비용은 존 큐(덴젤 워싱턴)가 당장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한 그의 필사적인 노력은 자꾸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상황은 점점 절박해져만 간다-영화는 이런 전개 이전에 막역한 부자 관계를 부각하며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전체적인 정체성은 감동의 영역을 공략하는 기존 헐리우드 가족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신파'의 설정에도 불구, [존 큐]는 한 가족의 상황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발견하려는 기특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주인공을 흑인이자, 공장 노동자로 설정한 것에서부터 인종과 계급 문제를 건드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존 큐의 빠듯한 살림살이와 막막한 고충-심지어, 너무 '뛰어나서' 취직을 거절당하는 아이러니한 경우같은-에서 우리는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존 큐가 병원을 점거하도록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보험회사와 병원을 빌어 '천민 자본주의'에 물든 미국 '관료제' 사회를 비판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분노를 폭발시킨다(병원에 갇힌 인질들과 존 큐의 대화에서 까발려지는, 썩은 사실들처럼, 비판은 매우 직설적이다). 인간의 생명 앞에 어지럽게 드리워진 검은 손들의 연계와 까다로운 절차를 드러내며, [존 큐]는 가장 고귀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유도해냄으로써 애틋한 부성애의 감동을 증폭시키려는 똑똑한 전략을 편다.

영화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냉소를 보낸다. 존 큐가 도움을 청할 때는 능글맞게 둘러대다가 그가 일을 저지르자 인질극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기자의 얄팍한 의도를 희화화함으로써, 진실의 전달이라는 '도덕적인' 역할보다는 시청률에 편승하여 상업적 이익을 꾀하는 타락한 언론의 현실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 이렇게 [존 큐]는 사회 구석구석에 예리한 칼날을 들이밀며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전도된 가치와, 간과되어 온 사회의 책임을 일깨운다.

[존 큐]는 그러나, 다소 문드러진 결말로 아쉬움을 남긴다. 곳곳에서 반짝였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사회 전복의 계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흐지부지 헝클어진 채, 다만 개인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고 마는 것. 존 큐의 총은 결국 혁명을 수행하지 못한 채, 관객의 카타르시스에 충성하는 장치로 머무르고 만다. 사회를 변혁하기란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막막한 심정의 대변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행복한 결말로 관객의 구미를 당기려는 장르영화의 한계가 더 역력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존 큐] 역시 헐리우드 자본으로 탄생한 대중적 오락 영화의 형제임을.

4 )
ejin4rang
그런대로 작품이 괜찮다   
2008-10-16 16:21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18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48
js7keien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은 자국 의료체계의 큰 구멍을 각성할 수 있었을까?   
2006-10-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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