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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그 비릿한 혼돈
프롬 헬 | 2002년 3월 14일 목요일 | 우진 이메일

19세기 말 런던에 나타난 엽기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 그야말로 '지옥에서 온' 사람처럼 잔인한 수법으로 창녀를 살해하던 그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1세기를 넘어 인간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프롬 헬]은 잭 더 리퍼의 살인 사건에 대한 여러 갈래의 추측 중 한 줄기를 골라내어 영화화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잭 더 리퍼의 어두운 미스테리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히는 감독 휴즈 형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세기 말 런던의 음습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 놓는다. 극심한 가난으로 찌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 그 곳에 겨우 남은 것은 사나운 욕망으로 으르렁거리는 더럽고 지친 영혼들. 영화는 현실적인 인간의 공포를 안개로 덮인 축축한 풍경에 잘 녹여낸다.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일반적인 영화들에는 '탐정(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가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적인 궤적에 초점을 맞춘다. [프롬 헬] 역시 조사관 애벌린(조니 뎁)을 내세워 사건을 따져나간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여타 영화에서 익숙한 '지적 게임'과는 어긋나 있다. 조사관답지 않게(?) 마약에 푹 절은 그의 의식은 오히려, 꿈속에서 실마리를 낚는다.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의 설정은 세기말의 상황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맞물린다. 영화가 드러내는 세기말의 혼돈이란 이미 개인의 의지로는 타개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고,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더 이상 이성적인 사유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애벌린이 제 정신을 의탁하는 꿈은 타락한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극도로 참혹한 희망의 도피이다. 도피로는 결코 현실을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수사는 범인을 지목하고 그를 처벌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을 다지는 '완전한(혹은, 거짓)' 해결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점 또한 그 살인사건이 어느 한 개인의 도덕성에 책임 지울 수 없는, 사회 전체에 만연한 가치관의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감독의 생각에서 유래한다.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캐내려는 영화의 시도는 살인사건의 비밀이 드러나는 후반부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그들 입장에서의)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층과, 그러한 음모는 생각지도 못한 채 서로를 경계하는 하층 계급 사이의 불공평한 구조가 대비되는 것. 하지만 결국 이 양극은 팽팽하게 대립되지 못한 채 잭 더 리퍼의 이야기처럼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그 사이를 넘나들며 홀로 분주하던 중산 계급 애벌린만이 모든 것을 밝혀내지만, 그 역시 개인적인 연민에 지친 채 최후를 맞는다.

따라서 [프롬 헬]은 범인의 정체성보다는 범죄의 맥락을 탐구하려는 영화이다. 여러 명의 용의자를 떠올리고 단서를 수집, 논리적으로 조합하여 범인을 집어내던 다른 스릴러에 비하면 솔직히 좀 재미가 없다. 탐정이 사회적 모순에 덤벼드는 설정에서는-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라- 탐정과 범인 즉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증폭될 법한 두뇌 싸움의 긴장을 느끼기 어렵다. 상대방을 뒤흔들 힘조차 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애벌린의 모습은 지켜보던 관객까지 덩달아 힘 빠지게 한다.

[프롬 헬]은 흑인 사회의, 흑인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해 온 휴즈 형제의 작품이다. 시대와 인종을 옮겨 표현되는 그들의 사회적인 분노 '성향'과 여전히 몽환적인 조니 뎁의 연기에 관심을 둔다면 그 늘어지는 지루함도 가뿐히 견뎌낼 수 있을까.

3 )
ejin4rang
혼돈이온다   
2008-10-16 16:20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18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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